1장. 대비(對備) - [3]
“가문의 홍복입니다.”
당당히 아내에게 합격통보를 알려주자 그 누구보다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한다.
‘저번 생에선 이립 때 무과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첫 관직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디일지 궁금하네.’
“어디로 배속 받을지는 아직 모르오. 만일 먼 곳으로 가야 한다면 부인은 여기에 남는...”
“오지에 가더라도 서방님을 따라 갈 것입니다.”
굳은 의지가 아내의 눈에서 엿보인다.
나를 따라 오겠다고?
전쟁 때는 가족이 보고 싶었지만 조선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버텼었던 나의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이회(李會)를 장래를 위해서 나를 따라오면 안 되오.”
전장은 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린 아내 방수진과 갓 태어난 이회는 버틸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거절을 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 서방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어떤 것도 포기할 수가 있습니다.”
매몰차게 거절을 당한 아내는 더욱 강하게 주장을 한다.
“후.....”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다.
부창부수라는 말에 굳게 다짐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리며
“그렇다면 함께 고민을 해봅시다.”
고민만 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다독인다.
며칠 뒤 예상대로 권지훈련원봉사 즉, 종8품의 자리를 받았다.
정식 직책은 아니지만 실무를 배우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완전히 실무를 익혔다고 판단이 되면 정8품 저작이나 사맹으로 임명이 된다.
‘부사맹이 아니라 봉사라...’
미래가 달라지지 않았군.
봉사는 문관의 실무를 익히는 자리이며, 부사맹은 무관의 실무를 익힌다.
“미덥지 않은 것인가?”
하지만 봉사와 부사맹은 언제든지 바꿀 수가 있는 것을 안 나는 동요치 않고 배속될 곳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기다리던 도중.
쾅쾅.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랑채에 있던 나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크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나는 뒷짐을 지고 사랑채에서 나온다.
노비가 문을 열어 주었는지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앞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서 있다.
“이순신이오?”
“그렇소.”
“권지훈련원봉사 이순신은 교지를 받으라.”
그는 허리춤에 묶여져 있던 두루마리를 꺼내 펼치자 급히 한쪽 무릎을 꿇는다.
“권지훈련원봉사 이순신은 함경북도에 있는 두만강으로 배속을 내린다.”
* * *
두만강이라?
나의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듯 거세게 뛴다. 두만강이라면 근처에 있는 하나의 외딴섬으로 그곳에서 나의 오랜 지기인 선거이를 만났었다.
‘선거이...’
내가 알고 있는 선거이라면 아직 무과에 급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님, 이번에는 아우가 먼저 농을 해도 되겠습니다.”
녹둔도에서 여진족을 막을 당시 회포를 풀 때마다 항상 나보다 먼저 급제를 했다고 놀려대곤 했었다.
나는 그를 떠올리며 두만강으로 떠나갈 준비를 위해 사랑채에서 나서는데
“서방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올라갔던 나의 입매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함경북도에 있는 두만강으로 발령이 나셨다고요?”
“그렇소.”
“어찌하여 권지훈련원봉사에 갓 임명된 서방님이 국경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
이미 오진 곳까지 따라온다고는 하였지만 예상보다 가장 먼 국경으로 배속 받은 사실이 못내 두려운지 서글픈 눈망울을 하며 나에게 얘기를 한다.
“...건강히 돌아온다고 약속 하리다. 그러니 우리가 했던 약속은 없던 것으로 하지 않겠소?”
‘이미 전장에서 구르고 구른 몸이라 안전은 약속하리라.’ 라고 말을 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을 것 같아 간신히 입을 떼고서 얘기를 한다.
“매정하십니다.”
“매정해서 미안하오.”
부창부수를 주장하며 어디든 같이 따라가겠다고 같이 고민을 해보자던 그 약속을 없애자고 말하자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노릇.
아무리 가족을 사랑하더라도 과거로 다시 돌아온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리에 주저앉은 아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품에 안고서 등을 다독이자
“꼭... 꼭 건강히 다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내 부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거 한가지뿐이니 반드시 약속하리다.”
결국 나의 품에 얼굴을 묻은 아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던 나의 가슴은 한층 무거워진다.
‘가족도 조선의 백성인데...’
더 많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나의 가족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다.
* * *
1566년 7월. (명종 21년)
두만강에 당도한 나는 파릇파릇 피어난 꽃들을 보며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이 떠오른다.
“이랴!”
서둘러서 권지훈련원봉사 실무를 끝내고 정식으로 배정을 받기 위해서 타고 있던 고삐를 흔들며 옆구리를 살짝 차자 천천히 걷던 말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말에 앉은 채 주변을 지켜보던 나는 급히 말을 멈추게 하고서 바닥에 발을 디딘다.
“이 어찌.....”
아직 10살 채 되지 않는 아이가 검에 베인 듯 긴 자상을 몸에 남긴 채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이순신은 화가 나는지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온다.
아이를 보던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길가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깊은 자상의 상처를 남겼거나 화살을 맞은 채 죽은 게 보인다.
주욱.
곧장 화살이 꽂혀져 있는 시체에 다가가 화살을 뽑아 확인을 한다.
‘이건...’
분명 조선이 쓰는 화살이다.
국경을 수비하는 조선군이 백성들을 죽였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이런 사건은 자신의 평생 들어보지 못했다. 서둘러서 다른 시체들도 확인해보며 누군가의 소행인지 찾기 시작한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전혀 없다.’
결국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곤 이들이 지닌 재물이나 식량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즉, 이들이 죽은 이유는 약탈.
이순신의 눈이 가늘어지며 두만강 근처에 있는 적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해본다.
‘...산적.’
원래는 백성이었지만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다른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 패거리들이다.
대략 숫자는 8명에서 10명 정도군.
근처를 조사하며 바닥에 찍힌 족적을 확인하던 나는 8~10명의 산적의 소행이라고 확신을 가진다.
‘멀리가지 않았을 거다.’
내가 타고 온 말의 발굽만 찍혀있지 다른 말들의 발굽이 찍힌 것 흔적은 보이지 않자 높은 나무 위를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산적이 있을 만한 곳을 찾는다.
“찾았다.”
전 방향을 둘러보다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산의 중턱을 발견하자 나의 눈에 살기가 깃들며
“백성이었지만 같은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는 도적.”
급히 나무 밑으로 내려와 말에 올라타며, 자신이 배속 받은 곳과 가까운지 가늠해보며 출발한다.
* * *
“권지훈련원봉사 이순신입니다.”
“나는 이곳을 관리하는 이청진 군수다. 두만강에 온 걸 환영한다.”
불혹을 넘긴 노인은 백두산의 정기를 담은 형형한 눈빛을 내뿜으며 나에게 소개를 한다.
정4품에 위치한 군수라면 병사들을 지휘하는 권한이 있겠지.
“이청진 군수님.”
나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올 때 보았던 무참히 살해당한 백성들과 산적이 있을만한 지형을 빠르게 설명을 하며
“당장 백설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도적떼 놈들을 토벌해야합니다.”
“토벌?”
방금 배속 받은 이가 갑자기 토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니 어이가 없겠지만 나는 굽히지 않고
“네, 도적떼를 그냥 방치를 하실 경우 길가에 버려진 백성들의 시체가 더욱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식 직책도 아닌 종8품인 내가 정4품에 위치한 군수에게 이렇게 말을 할 시 치도곤을 맞을 수도 있지만 백성들을 위해서 강하게 주장을 한다.
“으음...”
이청진 군수는 나의 눈을 바라보다가
“자네가 말한 지역이 도적이 있는 곳이 확실한가? 정찰은 어찌 되었나? 그들의 규모는? 전부 말해 보거라.”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 작가의말
정4품 이청진 군수는 허상의 인물입니다.
1566년 두만강과 인근 지역을 전부 뒤졌지만 제대로 쓰여진 인물이 없던 터라 직접 창작한 인물입니다.
선호작과 추천을 눌러주시고 고마운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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