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하성군(河城君) - [3]
다음 날.
몸소 집으로 찾아온 류성룡.
“도대체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가?”
“조선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는 무덤덤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류성룡의 안색이 붉어지며
“자네와 만난 뒤로 선생님이 방 밖으로 나오시지 않고 계시는데 그것만 얘기했다는 것인가?”
“정확히는 조정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더불어 주상전하의 후계자까지요.”
“...지금 뭐라고 했는가?”
후계자의 단어에 깜짝 놀란 류성룡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리며 되묻는다.
“주상전하의 후계자를 거론했습니다.”
“미, 미쳤는가? 자네가 지금 말한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지 않는가? 같이 빌러가세.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선생님이라면 지금 문제를 덮어주실 수 있을 것이야.”
나의 걱정을 해주는 류성룡.
그를 빤히 쳐다보며
“저를 믿습니까?”
“그럴 소리가 할 때가 아닐세. 지금 문제는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의 가족과 가문의 사활이 걸려있네!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류성룡은 나의 소매를 잡고 일어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힘으로 버티며
“저를 믿습니까?”
또 다시 질문을 하자 소매를 당기던 류성룡의 행동이 일순 멈춘다.
“...자네를 믿네. 그러니 자네가 역모 죄로 의금부에 가는 것을 막을 것이네. 얼른 일어나게! 얼른!”
나와 함께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던 류성룡. 비록 그의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청렴하고 강직했다.
“저를 믿으시면 자리에 앉으시죠.”
“이러지 말게나. 이러다가 자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조선의 땅에 전쟁이 터진 직후. 류성룡만 나의 능력을 높이 사 조정에 추천을 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당겨도 꿈쩍하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진정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애타게 바라본다.
“자네의 아들을 못 볼 수도 있어.”
“정말 괜찮습니다. 이미 선생님과 얘기를 끝낸 상태니까요.”
“...끝냈다고?”
멍한 표정을 짓는다.
‘성리학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
지금 얘기하면 도리어 그와 척을 질 수 있다.
나의 능력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지만 이황 선생님의 수제자인 만큼 성리학에 대해서 자부심이 높다.
아주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조선에는 성리학이 필요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자네의 말을 선생님이 들었다는 것인가? 그건 역...”
자리에서 일어나 차마 역모라고 하지 못하는 그의 옆을 지나쳐 하늘을 바라보며
“왕실과 조정의 신료들은 태평성대가 찾아왔다고 얘기를 합니다.”
맑고 투명한 하늘.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하늘에 비해 양면 된 이 땅의 백성들은 핏빛으로 물들여져 있다.
“신료들은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있으며, 왕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못 본 척하며 그들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
조용히 나의 옆에 서는 류성룡의 인기척을 느끼며
“그런 신료들은 주상전하의 직계혈통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서 방계 출신인 하성군을 밀어주려고 있습니다.”
“...하성군?”
하성군의 이름이 나오자 커다랗게 눈이 떠지며
“주상전하가 아끼시는 하성군 말인가?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지만 그가 임금이 되려고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네. 자네의 억측이 아닌가?”
“아닙니다. 그는 의심이 많은 자로서 자신의 속내를 영의정 대감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의정이라면 이준경 대감[大監] 말인가?”
여전히 그를 보지 않으며
“하여 직접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림의 영수인 선생님이라면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네가 나에게 주선을 부탁했군.”
내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류성룡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이 일에 연루가 된 것인가?”
“죄송합니다.”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한참을 입을 떼지 않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류성룡은 내가 바라보는 하늘을 보며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이황 선생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수제자 류성룡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조정에 출사하여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관료들을 막아주십시오. 그게 제가 원하는 목적입니다.”
* * *
가야금이 울려 퍼지는 기루.
기루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만 들어도 절로 주흥(酒興)이 일어난다.
“나으리~”
“너희에게 볼일이 없으니 저리 가거라.”
기루에 들어선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기녀들을 뿌리친다.
매일 기루를 들락거린다던 하성군을 잠깐 보기 위해 중앙으로 들어간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정자.
수많은 기녀들과 사내들은 술과 고기를 뜯으며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보인다.
으드득.
그리고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인물.
훗날 임금이 될 어린 하성군은 술에 취한 다른 이들 사이에서도 옷을 단정히 입고 주위를 눈치를 보고 있다.
‘달라진 게 없구나.’
끊임없이 의심과 경계를 놓지 않았던 그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든다.
“한잔 받으시죠.”
그리고 하성군 옆에 앉아 있는 한 명의 인물은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비어있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른다.
‘정철?’
훗날 서인의 영수가 될 정철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이지?
분명 하성군이 임금으로 즉위할 때 이조좌랑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혹시... 하성군은 임금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현재 그는 사헌부 재직을 하는 중이지만 조만간 벌어질 미래에서는 명종의 종형인 경양군이 정철의 처가의 재산을 먹기 위해 처남을 죽여 강물에 던진 사건이 있다.
사건을 덮자고 말을 한 주상전하(명종)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절해 파면이 되어 전라도 광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낙향한지 3년 뒤 정철이 이조좌랑에 복직했을 당시 조정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상전하의 미움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난 정철을 복직시킨 하성군이 흑막이었나?’
조만간 벌어질 경양군 사건을 생각해보자면 아귀가 들어맞자 팔뚝에 닭살이 돋는다.
총명하지만 13세에 불과한 하성군.
이 정도로 심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지금 막아설 명분은 나에게 없다.
특히 나는 그를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라 그들을 바라보다가 결국 발걸음을 돌린다.
기루 안에 있던 방에 들어가자
“그대가 이순신인가?”
눈빛이 형형한...
그래, 이청진 군수와 똑 닮은 눈빛을 가진 노인이 나에게 묻는다.
“네, 그렇습니다. 예조정랑 어르신.”
정탁.
현 예조정랑이며 훗날 정쟁의 현실에서 도움을 내밀 수 없었던 류성룡.
하지만 정탁은 달랐다.
판중추부사의 자리에 있던 그는 정쟁에 겁을 먹지 않고 곧장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나의 목숨을 구한 분이다.
“그래, 어르신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홀로 자작을 하던 정탁은 이윽고 입을 떼며
“재미난 것을 꾸미고 있더군? 내 앞에서도 한번 말해보겠나?”
누구보다 성리학을 믿으며 임금을 하늘같이 여기는 그는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한다.
‘여기서 그를 설득을 시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가장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심호흡을 하고선
“들어오실 때 보셨습니까?”
“무엇을?”
“하성군.”
“이것 봐라? 그 뚫린 주둥이로 계속 말해 보거라.”
정신을 가다듬고서 준비했던 얘기를 시작한다.
“현재 주상전하의 직계 혈손이 없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하여? 하성군을 왜 언급을 하는 것이지?”
“이황 선생님께, 전부 들으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그는 비틀린 입매를 벌리며
“정말 네 간이 얼마나 크길래 그 따위 망언을 하는 것이냐? 하성군은 왕족이다. 왕실의 후손이란 말이다.”
“다 들으신 것으로 알고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비어있는 술잔에 술을 따라 한 번에 마시며
“도와주십시오.”
“내가? 역모를 말이냐?”
“백성들이 굶주려 하고 있습니다. 왜구들은 계속해서 해안가의 마을들을 약탈하고 있으며 저 멀리 있는 오랑캐들은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게 하성군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왜 상관이 없습니까? 지금 주상전하의 용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것 모르십니까? 그렇다면 주상전하가 총애하던 하성군이 즉위를 할 겁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신립장군의 패보소식을 접한 선조는 아들인 광해군에게 도성을 맡기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 분노가 가득 찬 백성들이 불태워 잿더미가 된 경북궁과 창경궁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지금 내가 들었던 말들은 선생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모른 척을 할 터이니 썩 나가라.”
하지만 나의 설득이 부족했는지 정탁은 고개를 저으며 밖을 가리키며 나를 쫓아내려고 한다.
“어르신! 만일 하성군이 어좌에 앉는다면 반드시 큰일이 닥칠 겁니다.”
“...더 이상은 들어주기 힘들다. 당장 나가라.”
재차 설득을 하지만 정탁은 고개를 젓는다.
더 이상 설득을 했다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방에서 나오는데...
“하하하...”
분명히 정자에 있어야 할 정철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쳐다본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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