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하성군(河城君) - [2]
“자네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서릿발이 몰아치는 것 같다.
하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성리학을 배우던 과거의 나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겠지만
“현재 주상전하가 낳으신 아들이 없다는 거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위하신 지 21년. 최근 듣는 소식에 의하면 병상에서 쉬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 그게 변명인가? 내 친히 의금부에 자네를 알릴 수도 있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다.
다른 선비들이나 관료들 경우 곧장 의금부에 알린다고 하겠지만 내 앞에 있는 퇴계 이황의 표정은 담담하네.
‘변명을 하라는 거지?’
이황 선생님도 현재 조정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 같다.
“현재 영의정 대감은 방계출신인 하성군(河城君)을 밀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준경 그 친구가? 자네가 지금 곡해를 하는 것 같네.”
믿기 힘들겠지.
이준경 광주 이씨.
고조부인 우의정 이인손부터 시작한 명문문관 가문의 자제.
무오사화[戊午史禍], 갑자사화[甲子士禍], 기묘사화[己卯士禍], 을사사화[乙巳士禍].
하지만 68년 전에 일어났던 조선의 4대 사화에 직접적으로 연루가 되어 멸문까지 몰렸었고 그나마 지금은 사면을 받고 인순왕후의 총애를 받아 영의정 자리까지 올랐다.
“영의정 대감과 인순왕후마마는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하성군을 밀고 있습니다. 주상전하의 용태가 나빠지는 것을 안 이상 악착같이 밀것입니다.”
만일 이 선택으로 인해 이준경이 실각하면 사림을 견제하지 못해 내가 겪었던 미래보다 더욱 빠르게 조정을 움켜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촉박하고 뾰족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나의 친우인 류성룡을 거쳐서 이황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문관의 친우를 거치면 자연스럽게 이황 선생님은 류성룡을 밀것이며 자연스럽게 조정에 진출하게 만드는 것.
이게 나의 계획 중 일부분이었다.
“자네 뭔가 알고 있군? 더 얘기해 봐.”
“.....”
내 입에서 인순왕후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그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렇게 입을 꾹 다물 셈인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의금부로 지금 가지.”
노쇠한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 보이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의 행동을 지켜만 본다.
“자네 무섭지 않는가?”
결국 반쯤 일어서다가 멈춘 이황은 황당한 듯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무섭습니까?”
“자네가 말한 것은 왕실을 능멸했으며 조정의 관료들의 험담을 했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나라의 상황을 말하는 것조차 역모라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자네 그 말 진심인가?”
무덤덤하지만 눈가가 씰룩 움직이는 것을 보며
“성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뜬금없는 나의 말에 이황의 표정에는 노기가 실리며
“지금 나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인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입니다. 그 중 공자는 춘추시대의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몸소 실천을 했습니다. 인(仁)과 예(禮)를 설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무관인 자네가 내 앞에서 인과 예를 논하는 건가?”
이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꾸중한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저는 무관이지만 문관출신입니다! 제가 공부한 성리학은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 공동체와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지나치거나 부족한 기질을 교정하여 선한 본성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 그게 성리학이죠.”
도리어 이황에게 고함을 치자 이황은 탁자 위에 올려둔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다.
“하지만 성리학을 교모하게 이용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는 자들이 선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성리학을 벗어난 도적떼에 불과합니다.”
“......”
이황은 조용히 두 눈을 감는다.
자신들이 주장하던 성리학.
그 성리학은 현재 조선을 좀먹는 학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나도 전장을 누비며 깨달았었다.
성리학은 조선에 필요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조선의 근간이 되는 것도 성리학.
성리학의 주된 목적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이끌어내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도리를 다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황은 내가 살고 있는 조선의 대표하는 성리학 선비.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 곳곳에 있는 유생들이 발걸음을 옮긴다.
‘부술 수 없으면 바꾸리라.’
그러기 위해선 1570년에 죽는 이황을 이용해야 한다.
‘백성을 위해서...’
“...자네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가?”
내가 처음 말을 했을 때와 똑같은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의 본질은 전혀 달라졌다.
계속 눈을 감고 있는 이황.
“성리학. 좋습니다. 하지만 이 학문이 백성들을 위한 학문이 된다고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영의정 대감은 조광조의 제자로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황의 가장 아픈 곳인 조광조를 언급하자 감겼던 눈이 떠진다.
“...지금 조광조 어르신의 제자라는 이유로 나에게 위험하다고 말하는 건가?”
폐지되었던 성균관을 다시 원상복구 시켰으며 유신정치를 추진했던 조선 사림을 부흥시켰던 조광조.
“조광조 어르신이 위험하다는 게 아닙니다. 저의 본질은 제자였던 영의정 대감의 사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리를 깊이 연구하고 사문을 진기시키는 것을 자신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조광조.
훈구세력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권력형 비리를 문제시하며 깨끗한 조선을 만들고자 했지만 지금 와서는 훈구파와 똑같은 세력으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그는 연산군의 치세에서 잘못된 정치를 하던 훈구파와 동일한 사상을 품고 있습니다. 주상전하에게 사랑받는 하성군을 다음 임금으로 만들어 조정의 실권을 가지려는 이준경 대감을 실각시켜 인순왕후와 사이를 멀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찌 나에게 얘기한단 말이냐! 그리고 자네가 말하는 방계! 현재 주상전하의 직계자손이 있으면서 말하는 건가?”
이윽고 나의 얘기에 폭발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노려본다.
“없습니다. 하지만 인순왕후가 조정에 뻗는 힘을 줄일 수 있고 인성왕후마마의 힘을 올려줄 방계를 내세워야겠죠.”
“자네와 인순왕후마마와 다를 게 뭐가 있나? 똑같이 조정을 주무르기 위해 허수아비 임금이 필요한 거 아닌가?”
얼굴이 시뻘게진 이황은 대노를 한다.
“조정은 새로운 관료들이 필요합니다. 사림, 훈구파가 아닌 진정으로 조선을 위하는 관료들로 채우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황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네를 어찌 믿고? 어차피 영의정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맹세합니다. 저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조선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끼칠 시 곧장 의금부에 알려도 됩니다.”
나의 진심어린 말에 사림의 영수인 이황은 결국 한숨을 쉬며...
* * *
“늦으셨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하인이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듯. 방수진은 대문 앞으로 나온다.
“잠시 할 일이 있었소.”
그렇게 말을 하며 그녀의 품안에 안겨있는 나의 아들 이회를 바라본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아직 낯선 나를 무서운지 계속해서 품속에 얼굴을 묻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죽었던 내가 과거로 되돌아 온 것일까?
두근. 두근.
또 다시 요동치는 가슴.
해전 도중 총알을 맞았던 위치인 왼쪽 가슴을 살짝 움켜쥐자
“어디 편찮으십니까?”
나의 행동에 불안함을 느낀 그녀는 곧장 사색이 되며 물어본다.
“괜찮소. 그것보다 이회를 안고 싶소.”
계속 요동치는 심장을 아무렇지도 않는 듯 얘기하며 포대기에 쌓인 이회를 나에게 건네준다.
조심스럽게 나의 품에 받아들자
“으아아앙!”
곧장 울음을 터트리며 방수진 쪽으로 양 팔을 벌린다.
“이회야.”
나지막이 부른 내 말을 용케 들은 이회는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시선은 나의 입에 고정을 한다.
“강하게! 굳세게! 누구보다 강해져서 힘이 없는 백성들을 위해 살아가거라. 그게 네가 태어난 이유다.”
자그마한 아들의 이마에 나의 이마를 맞댄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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