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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H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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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남
작품등록일 :
2021.10.09 10:28
최근연재일 :
2021.12.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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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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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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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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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45 장: 아르세티 법관

저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DUMMY

아르세티는 습관처럼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으로 표면이 반들반들한 작은 구체의 보석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그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덩달아 그의 아랫도리가 뜨거워졌다.


그때 직무실 문이 활짝 열리며 막내딸 르네가 뛰쳐 들어왔다. 몹쓸 짓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아르세티는 딸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막 일고여덟 해를 지났을 거 같은 르네는 자신의 주먹만한 얼굴을 아르세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에 그는 딸을 번쩍 들어 올려서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공주님. 일찍 일어났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르네는 조그마한 새처럼 꺄르륵 거리며 웃어댔다.


곧이어 회색 머리가 힐끗힐끗한 중년의 여인, 그레이스가 문 앞에 서서는 두 부녀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힘들어. 내려와.”


엄마의 말에 르네는 뽀루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싫어. 하루 종일 있을 거야.”


아르세티는 몇 차례나 빙그르르 돌고 나서야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르네는 배가 고프다며 아르세티의 볼에 입맞춤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레이스는 아르세티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르세티는 그녀를 곧장 지나쳐서는 맞은편에 있는 닫힌 창문을 열어젖혔다.


“아침부터 궁에 들리시는 거에요?”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응. 왕을 뵙기로 했어. 알잖아. 요즘 아르젠 시끄러운 거.”


그레이스는 그와 눈을 맞추려고 했지만 아르세티는 멍하니 창밖의 풍경만 쳐다보았다.


“그럴 만도 하죠. 왕궁에 난리가 났으니까요.”


“오늘은 늦을 거 같으니까 미리 자도록 해.”


“오···늘도 늦어요?”


그레이스의 물음에 아르세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그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만을 만지작거렸다.


그레이스는 이내 슬픈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녀가 방을 나서자 몽롱하던 아르세티의 표정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그녀에 대해 식을 대로 식어버린 애정은 어떠한 노력으로도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식과 가문이 있기에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그로서도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상대방이 틀어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분은 언짢아졌다.


그는 대신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다른 이를 떠올렸다. 거의 동시에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났다.



아르세티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아르젠 왕궁의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의 유난히 큰 키와 하얀 피부는 모두의 눈에 띄었기 때문에 지나치는 병사들과 하인들은 일제히 멈춰서서는 인사를 하였다.


어느 방 앞에 도착한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문을 두드렸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나무로 만들어진 듯 청명한 울림이 그의 귀에 울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제라드 총관이 그를 향해 눈인사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맞은 편에 주다스 왕이 커다란 의자에 몸을 반쯤 묻은 채 앉아 있다. 그의 한 손에는 붉은 포도주가 들려 있다.


“앉지.”


주다스가 그를 힐끔 보며 말했다. 곧이어 제라드가 와인이 가득 담긴 잔을 건넸다.


“흠. 향이 좋군요.”


아르세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와인은 모두 그리노스에서 나지. 가끔은 그들의 뜨거운 태양이 부럽기도 해.”


주다스 왕의 말에 아르세티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와인과 여인이 유명하다죠.”


“와인은 그런데 그리노스 여자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군. 다들 고집이 세지.”


주다스 왕의 말에 아르세티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요. 신녀가 적극적으로 나라 일에 관여하는 곳은 그 곳 뿐이니까요. 그런데 호위병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까?”


아르세티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계속 숲의 끝으로 향하고 있다더군.”


주다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왕의 피를 이어받으신 두 분입니다.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르세티의 칭찬에도 주다스 왕은 그저 와인만을 홀짝거렸다.


아리오네와 제릭 왕자를 조사단으로 보내고 나서, 주다스 왕은 그들 몰래 호위대를 딸려 보냈다. 물론 호위대의 목적은 간단했다.


조사단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정말 큰 위험이 닥쳤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 지금껏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아리오네 일행이 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미 괴물을 마주쳤을 때도 호위대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물론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조사단이 자신들의 존재를 안다면 필히 왕궁으로 쫓겨날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특별한 위험은 닥치지 않았다.


겉으로는 엄격해 보여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느 부모와 똑같다는 면에서 주다스 왕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그것을 아르세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왕궁에 있는 쥐새끼들은 잡아냈나?”


주다스 왕이 물었다.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탓에 신원이 불 확신한 자들과 의심스러운 자들을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첩자들을 가려낸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은?”


“고위직 중에서도 변심을 한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리세티의 말에 주다스 왕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젠 같은 거대한 왕궁에 모두가 같은 마음을 품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사상, 이상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다스 왕은 그러한 일에 있어서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드러내는 것에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평화가 오래되었나?’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될 길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강력한 왕으로 군림해온 그도 결국은 늙어가는 법.


그 후에 아르젠을 이끌 자가 자기 자신의 씨가 될지 아니면 다른 이의 씨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야욕을 드러낸다면 그는 가차 없이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의심스러운 자가 있어?”


주다스 왕의 물음에 아르세티가 주저거렸다.


“아직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생각을 말해봐.”


“다르엥이 의심스럽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주다스 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아르세티를 쳐다보았다.


이유 없는 모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마치 아르세티 눈 너머에 있는 진실을 파악하려는 듯 하였다.


“그자의 가문이 북부에서 온 것은 알고 계시죠?”


아르세티가 담담히 물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왕궁의 반은 이미 변절했겠군.”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미르테투스에서 과거 북부의 있던 가문들을 접촉한 것은 분명합니다. 단지 그 수가 많아서 누가 그들과 공모했는지를 밝히기가 어려울 뿐이지요. 저는 다르앵의 가문 역시 그중 하나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결국 심증뿐인 아르세티의 말에 주다스 왕이 코웃음을 쳤다.


“확실한 물증을 가져와.”


주다스 왕이 차갑게 말했다. 진짜가 아닌 것도 그럴 수도 있다라는 가정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진실이 되어있다.


그 후에는 그것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는 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가짜로 만들어진 칼은 결국에는 누군가를 찌르고 그 후에는 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미르테투스 말입니다. 그들이 젠을 점령한 이후 특별한 군사적 행동은 없지만, 그들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아르세티의 말에 주다스 왕은 말없이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르세티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빵끗거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너무 길었지.”


침묵을 깨고 주다스 왕이 말했다.


“네?”


아르세티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평화 말이야. 모든 지 오래되면 썩는 법이지. 그것이 설령 좋은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게다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무심한 듯 정제된 주다스 왕의 눈빛에 아르세티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했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기 전, 온몸의 힘을 쏟아내기 직전에 보이는 관망하는 듯한 짐승의 눈빛.


“그들이 중앙 대륙의 패권을 노린다면 이번에는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주지. 영원히 일어날 수 없게.”


순간 그의 눈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아르세티는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잠깐이나마 그가 어떤 사내였는지 잊고 있었던 자신을 한탄했다. 그가 어떠한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냈는지. 그의 칼에 쓰러져간 목숨이 얼마나 많은지.


잠시나마 아르세티는 그를 자신과 같은 범주의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고는 그것이 대단히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전···하께서는 누가 뭐래도 중앙 대륙의 패권자이십니다.”


아르세티가 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왕의 기세아 단단히 눌렸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아리세티가 아니었다. 그는 억지로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르테투스가 헨타리온와 협력하면서 그들의 힘이 세지고 있습니다. 아르젠이···그들과 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결코···작은 분쟁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왕의 물음에 아르세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한쪽이 망해야만 끝나는 전쟁일 것입니다. 자칫했다가는 중앙 대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어느새 아르세티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간신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나보고 그들의 도발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


“그런···뜻이 아닙니다. 단지 작은 분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 생각지도 못한 결말로 이어질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리노스에서 지원을 받는다면 어쩌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수도 있습니다.”


순간 방안에 적막이 흘렀다. 아르세티는 무언이 잘못됐나 싶어 주다스 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하하하. 지원이라고? 그것도 그리노스에서?”


주다스 왕은 들고 있던 와인을 바닥에 쏟을 정도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여인네들 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허약한 놈들에게 군사 요청을 한다고? 아르젠이 그 정도밖에 안되나?”


순간 주다스 왕의 안광이 빛났다.


“만약에 아르젠이 그리노스에게 군사 요청을 해야 된다면 그건 곧 망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군.”


주다스 왕이 무서운 기세로 노려보자 아르세티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만 나가보지.”


왕의 명령에 아르세티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이내 방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르세티 말이 맞나?”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던 주다스 왕이 허공에 대고 물었다. 그러자 제라드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르엥이 북부 출신인 것도 미르테투스가 그에게 접근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미르테투스와 공작을 꾸몄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골몰히 생각에 잠긴 주다스 왕은 머릿속에 인물들을 떠올려 보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동지에서부터 최근 왕궁에 발을 들인 이들까지.


“그 외에 의심 가는 자들은?”


“몇몇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아르세티도 있습니다.”


헛소리하지 않는 제라드임을 알기에 주다스 왕이 미간이 찌푸렸다.


“위험한 발언이군.”


“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그것은 왕비님의 친혈육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림 없이 제라드의 대답에 주다스 왕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확실한 물증이 있기 전까지는 함구하도록.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제라드가 왕의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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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 46 장: 조사단의 귀환 21.11.28 20 0 13쪽
» 제 45 장: 아르세티 법관 21.11.25 23 0 12쪽
45 제 44 장: 돌아가는 길 21.11.24 23 0 16쪽
44 제 43 장: 단서 21.11.23 26 0 15쪽
43 제 42 장: 빛의 신의 사제들 21.11.22 2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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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 39 장: 이반 21.11.17 40 0 16쪽
39 제 38 장: 토벌대의 귀환 21.11.16 29 0 12쪽
38 제 37 장: 트래비스 산맥 토벌 (2) 21.11.15 3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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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 34 장: 요정의 땅 21.11.10 3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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