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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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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6.30 21: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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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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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7(1)

DUMMY

-짐승-



“노예기사가 곰무덤에서 마지막 사도를 찾으면 우린 끝이야.”


“알고 있어.”


“방법은 생각해 둔 거야?”


“생각하면 뭐 할 건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는데.”


“헛소문이라고 다시 내려왔잖아.”


“신빙성 있다고 결론 내려놓고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다고?”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야?”


나는 덩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애꿎은 돌멩이를 뻥 차버렸다.


“애초에 네가 가장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 결정이 의심스럽다니.”


“의심스럽다고 안 했어. 갑자기 바뀐 태도가 의문이라고 했지.”


“이거나 그거나.”


그래.


생각하지 말자.


내가 언제 생각했다고.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생각하지 말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생각해 보니까 열받네.”


“네가 생각한다고?”


최근 동안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웃기네.


“우리가 어제 그 소식을 들었으면, 그 결정은 그보다 훨씬 한참 전에 나왔다는 거잖아.”


“그렇지.”


“조금만 더 빨리 전해줬다면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억울해?”


“아니, 뭐···.”


이번엔 덩치가 돌멩이를 툭 찬다.


“나는 네가 언젠가는 호되게 당할 줄 알았어.”


“내가 노예기사한테 당한 게 잘됐다는 거야?”


“어.”


“뭐, 뭐!?”


덩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콧김을 뿜어내며 날 내려다본다.


“진정하고 앉아봐.”


미동도 않는다.


“너. 노예기사 만나면 어떻게 할 거라고 했더라?”


“아니, 그건 또 왜 물어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 함께 다소곳이 내 옆에 앉는다.


“내가 골백번은 들었는데. 노예기사를 만나면 바로 목을 날려버린다고 했지?”


“내가 언제···.”


“노예기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과거의, 확인되지 않은 명성에 가려진 거품에 불과하다. 노예기사는 자기 주인 지킨다는 웃기지도 않는···.”


“그만, 그만해! 알았어!”


“만나보니까 어땠어?”


“하···. 무기력한 내가 정말 싫더라.”


“나는 오줌 지리는 줄 알았어.”


“쌌어?”


“줄 알았다고.”


덩치가 고개를 기울여 내 가랑이를 쳐다본다.


“쌌어도 아직 남아있겠어? 그리고 그것보다. 그거 엄청나게 실례되는 행동인 거 몰라?”


“너도 보던가.”


“으휴.”


“하아, 가기 싫다.”


덩치가 뒤로 누워버린다.


“본심을 드러내시는구먼.”


“그냥 둘이 숨어 지낼까?”


···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아본 적이 언젠지 모르겠네.


거기서도 있긴 하겠지만 여기만 하지 않을 텐데.


“미쳤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놈이 있는 거 몰라?”


사실 이 대화도 위험하긴 한데.


그 정도까지 가까이에 있지는 않겠지.


··· 목소리는 조금 줄여야겠다.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노예기사가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살아남음을 당했지.”


나는 검지를 위로 올려 몇 바퀴 돌리고 손바닥을 땅과 수평으로 만들고 아래로 까딱거렸다.


“어쨌든. 거기서 살았는데 또 그곳에 내보낼 줄이야.”


덩치가 알아듣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우린 나은 거야. 배신한 짐승 봐 봐. 사도한테서 살아남았는데 또 사도한테 보냈잖아.”


“내가 그놈 심정을 이해할 줄이야. 그렇게나 씹어댔는데 말이야. 역시 짐승은 겪어봐야 안다고.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네.”


“나이 든 짐승만 보면 꼰대라고 말하던 네가? 세상이 망하려나.”


얘가 정말 철이 들었나?


“몰라. 죽음을 맞이할뻔해서 그런지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 그리고 내가 했었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알게 됐고.”


“하하, 이거 한 번만 더 노예기사를 맞이하면 완전히 다른 짐승이 되어버리는 거 아니야?”


“뭐···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그래 너. 항상 신경질이었는데 그때 이후론 조금 온순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때도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지금이 더 훨씬 더 낫네.”


“뭐라고!?”


“컥,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덩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때리자, 엄살과 함께 몸을 비튼다.


“나는 항상 똑같거든!?”


내가 성격이 바뀌었다고?


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 도망가는 거 말이야.”


“어.”


“진짜 우리도 도망갈까? 곰무덤에서 살아남아도 또다시 사지로 보낼 텐데.”


“방금까지 회의적으로 말하더니.”


“아니, 뭐. 생각해 보니까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싶어서.”


덩치가 벌떡 일어나 나를 쳐다본다.


“진심이야?”


“사실 잘 모르겠어. 네가 우리를 사지로 보낸다고 해서 심경이 바뀐 건지. 아니면 죽음의 문턱을 밟아서 그런 건지.”


“이유가 어쨌든 네가 그 생각이 들었다는 거잖아.”


“네 말대로 도망가도 문제야. 사망 처리되지 않고 행불 처리가 됐으니 우릴 찾아다닐 게 분명하다고. 우리가 그 짐승을 찾으러 다녔던 것처럼.”


“죽음을 위장하자?”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런 말은 안 했지만, 어감이 그렇잖아.”


“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짐승 맞아? 다른 짐승이 탈 쓰고 있는 거 아니야?”


덩치의 얼굴을 이리저리 꼬집어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아니네.”


“아니네는 무슨. 그래서 내 말에 동의하는 거야?”


“모르겠어. 정말.”


“일단 가자.”


“곰무덤에?”


“어. 곰무덤에 가서 노예기사랑 붙어있자.”


“보자마자 우릴 죽여버리면?”


“저번에도 살려뒀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그리고 남은 탈이 있지 않아?”


“아마 두어 개 정도 있을걸.”


가방을 열어보니 과연 2개가 남아있다.


“그거 쓰고 가면 되지.”


“들키면? 그 짐승은 탈 쓴 짐승을 알아본다고.”


“죽음만 위장하고 떠날 거라고 우리 입장을 말해주자. 미리.”


말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닌데.


“알았어. 곰무덤의 마지막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척을 하고 동행해야 해. 빨리 움직여야겠어.”


“좋아. 동의하는 거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개 같은 군대.


나도 빠져나가야겠어.


우리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는게 뭐가 중요해?


내가 죽게 생겼는데.



///



곰무덤의 마지막 주막.


우리는 평상에 앉아 출입구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지나간 거 아니야?”


“숲을 가로질러 왔으니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우리를 앞설 수는 없어.”


“노예기사가 뛰어갔다면?”


“거기서 여기까지 뛰어온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 그런가? 근데 정말로 뛰어갔다면?”


“··· 망하는 거지.”


“지금이라도 곰무덤에 가야 하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우리는 그렇게 노예기사가 오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기나긴 기다림에도 노예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막에 들리지 않는 건 아닐까?”


“그곳에서 여기까지 이틀거리야. 그리고 식량을 이틀 치 샀다고 했으니 반드시 여기에 들러야 한다고.”


덩치가 초조함에 다리를 덜덜 떤다.


누군가가 출입구로 들어온다.


기쁜 기색에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노예기사는 아니다.


행색을 보니 곰무덤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행상인인 듯하다.


익숙한 듯 다른 행상인이 모여있는 자리에 앉는다.


“어허, 이제 돌아가는겐가?”


“그렇네.”


“어디, 물건은 많이 팔았나?”


“팔긴 했는데. 당분간 이곳에 오지 않는 게 좋을듯하네.”


“아니, 왜?”


행상인의 말에 우리는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의 이목이 모여든다.


우리는 곰무덤의 일을 알 수 있어서였고, 행상인은 자신의 밥줄에 영향이 갈까 봐.


“아직 소문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내가 출발하자마자 그 사태가 일어났으니.”


“뭔데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는 거야?”


“곰무덤에 괴물이 나타났네.”


“괴물!?”


이번엔 모든 행상인은 물론 주모들까지 모여든다.


우리만 가만히 있다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옆에 껴들었다.


“이보게 자세히 좀 말해보게. 괴물이라니?”


“괴물이 나타났네. 그리고 그 괴물 때문에 곰들이 봉안을 하지 못하고 있어.”


“디쿤이 있을 게 아닌가!? 디쿤이 있다면 어지간한 괴물쯤은 상대도 안 될 텐데!”


한 행상인의 말에 우리를 포함한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괴물이 아니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겠나?”


“도대체 무슨 괴물인데 그러는겐가?”


“큰 뱀이었다네. 정말, 아주 큰 뱀.”


뱀!?


덩치와 나는 서로를 마주 봤다.


“이무기?”


그리곤 나도 모르게 이무기라는 말을 내뱉었는데 모두가 들었던 건지 행상인에 모여든 시선이 이번엔 내게 모여들었다.


“자, 잠깐. 이보게 젊은 새댁. 지금 뭐라고 했나?”


“네, 네? 저요?”


“그래, 자네 말이야. 지금 이무기라고 했나?”


“아, 네. 맞아요. 이무기요.”


“어허, 이무기라니!”


“그건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던 거 아니었어?”


“이무기 말고 다른 괴물 아니야?”


이무기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반향이 튀어나온다.


대부분은 부정했으며 일부만이 생각에 잠긴 채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게 뭔지 나도 모르네. 하지만 범상치 않은 건 확실했지. 정말 컸어. 정말로. 내 장담하건대 그놈의 몸을 일직선으로 쭉 세우면 여기서도 보일걸세.”


모두가 곰무덤이 있는 쪽을 쳐다본다.


하지만 당연히도 커다란 뱀은 보이지 않는다.


“화, 확실히 큰 뱀이라면 이무기밖에 없는데.”


“확실해? 모든 뱀이 이무기는 아니잖아.”


“하지만 정황상 그렇지 않은가?”


“다른 뱀 괴물은 없나?”


“돌마녀 아니야?”


“돌마녀는 머리카락이 뱀이지 전부가 뱀이 아니라고.”


“이거 정말 난처하군.”


“나는 이만 가보겠네. 다들 몸조심하라고.”


뜬금없이 나타나 이무기의 존재를 알린 행상인이 사라져 버린다.


남은 행상인이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얘기는 나눈다.


욕설과 큰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우리도 자리로 돌아가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너무 큰 변수가 생겼는데.”


“정말로 이무기 맞아? 그거는 아까 누가 말한 대로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물이잖아.”


“설사 이무기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야. 그렇다면 그 큰 뱀이 알려지지 않은 괴물이라는 건데 그건 더 골치 아파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겠어. 이 소식은 반드시 군에 전달될 테고, 따라서 이곳에 파견되는 짐승도 많아질 거야.”


“어떡하지?”


“그전에 빨리 우리 죽음을 위장해야지.”


“위장하려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이무기 때문에 죽었다는 좋은 핑계가 있으니까.


“빌어먹을. 그런데 왜 노예기사는··· 왔다!”


덩치의 말에 출입구를 쳐다보니 과연 노예기사와 짐승이 들어오고 있었다.


노예기사는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아무렇지 않게 비어있는 평상에 앉는다.


짐승도 노예기사 맞은편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 우리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우리가 탈을 쓰고 있는 짐승인 걸 알아차렸어.


덩치가 과도하게 불안한 기색을 보인다.


짐승이 여전히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달싹인다.


노예기사가 우릴 흘끗 쳐다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돌린다.


“아이, 씨발. 안 그래도 기분 잡치는데 누가 짐승 새끼를 데려오는 거야!?”


술에 취한 행상인 중 하나가 비틀거리며 노예기사 쪽으로 걸어간다.


장사가 망할 위기에 처했는데 때마침 등장한 짐승은 좋은 먹잇감이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거 같은데.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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