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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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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6.30 21:0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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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4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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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1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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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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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DUMMY

-짐승-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암컷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포에 잠식당한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사, 사람들이 이런 계획을 세웠어요. 자귀추적자를 짐승의 손에 죽게 만들어 당신을 앙갚음으로 만들자는.”


그, 그게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이야?


아니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벌어질 뻔했으니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아니, 그건 둘째치고 굳이 자신의 편인 사도를 죽일 필요가 있나?


좋아, 모든 게 이치에 맞는다고 가정해 보자.


짐승이 미쳤다고 아쥔타를 죽여?


또, 사도가 제 목을 얌전히 바칠 리도 없잖아.


왜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세운 거지?


암컷이 주인님의 눈치를 본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말 끊지 마!.”


“네, 네.”


암컷이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친다.


“첩보를 입수한 저희는 위에 보고했고 원로들이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어요. 느끼셨겠지만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계획이잖아요? 하지만 원로는 가능성 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저,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알잖아? 위에서 까라면 우리는 깔 수밖에 없다는걸.”


얼마나 다급했던 건지 암컷이 반말까지 하며 내게 동의의 의사표시를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암컷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른 거밖에 없어요.”


“그게 단가?”


“네, 네? 네! 이게 전부예요.”


“이제 너는 쓸모가 없군.”


“아···? 그, 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가 잠깐 떠돌았어요. 기사 출신 사람이 이 일과 연관이 되어있다고. 직접 저희에게 접촉했다고 얼핏 들었어요!”


암컷의 눈치를 보고 연신 땀을 닦아낸다.


암컷의 말에 주인님이 눈을 감으시고 생각에 잠기신다.


“한자단이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곰무덤에 한자단이 있나?”


“제가 알기론 곰무덤엔···.”


암컷이 말을 흐린다.


모르나?


“주인님, 아시다시피 곰무덤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 곰무덤엔 아무것도 없었지. 여기서 가장 가까운 한자단의 지부가 어디에 있지?”


“위대한폭포인데 이곳에서 사흘 정도 가야돼요.”


하지만, 위대한폭포는 곰무덤과 반대 방향이야.


“반대쪽이군.”


“네.”


“단순히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길만한 일이 아닌데.”


주인님이 눈을 다시 감으시고 인상을 쓰신다.


미간에 생긴 복잡한 주름이 주인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주인님은 그 상태로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으셨고 나와 암컷은 그런 주인님을 쳐다보기만 했다.


“예정대로 곰무덤으로 간다. 주비를 찾으면 아가씨께서 오실 테니 그 순간부터 내가 붙어있으면 돼. 그리고 너.”


주인님이 암컷을 가리키셨다.


“네, 네?”


“위대한폭포··· 하아, 한자단은 짐승의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걸 깜빡했군.”


“탈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바본가?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몰라?


“한자단은 기본적으로 거울을 구비하고 있다.”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군. 방금 말했던 대로 곰무덤으로 간다.”


“그럼, 내일 출발하실 건가요?”


“아니, 당장 출발한다.”


“하지만 채비도 안 되어 있고, 주인님의 몸 상태도 온전하지 않으시잖아요.”


연님도 안 오셨는데.


하지만, 주인님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암컷과 나도 재빨리 주인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주인님께서 주변을 둘러보신다.


주변에 있던 모든 짐승의 시선이 주인님에게 모인다.


몇초간 정적이 흐른 후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집안으로 숨어들고, 아이가 있는 짐승들은 서둘러 자신의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다.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낀 아이들이 하나둘 울음을 터뜨린다.


이는 다른 아이들에겐 울음을, 제 어미에겐 불안한 감정이 들게 했다.


“그새 소문이 퍼졌나 보군.”


주인님의 울음바다가 된 주변을 신경도 쓰지 않고 태평히 말씀하셨다.


“이런 작은 마을은 외부인의 등장에 민감해요. 더군다나 사람이 나타났으니···.”


암컷이 서둘러 손짓해 주위를 물리쳤다.


정신을 차린 짐승들이 꽁무니가 빠지도록 집에 들어가 버린다.


그 순간, 꼬마 짐승 하나가 앞을 보지도 않고 도망가는 쥐를 쫓아 이쪽으로 뛰어온다.


이쪽으로 오면 주인님과 부딪힐 텐데.


주인님도 똑같이 생각하신 건지 품에서 단검을 하나 빼 들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꼬마를 유심히 쳐다보신다.


아, 안돼!


저 꼬마가 주인님하고 부딪히면 죽을 거야!


“어머! 어머!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아가,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어미로 보이는 짐승이 뒤늦게 뛰어오며 소리쳤지만, 쥐에 정신이 팔린 꼬마는 듣지 않는다.


“막지 마!.”


암컷이 나서서 아이를 막으려 했지만, 주인님이 이를 제지하셨다.


암컷이 체념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난다.


결국 꼬마가 주인님의 다리에 부딪히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제야 꼬마가 위를 올려다본다.


“어··· 어···?”


주인님이 무심하게 꼬마를 내려다보신다.


“일어나.”


주인님의 말에 꼬마가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인님의 한 손엔 여전히 단검이 쥐어져 있다.


“내, 내 아이에게 손대지 마!”


달려오던 어미가 손톱을 빼내고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근처에 있던 덩치가 어미의 배를 어깨로 들이받아 넘어뜨린다.


“손대면 죽여버릴 거야! 내 새끼에게 손대면 죽여버릴 거야!”


어미는 자신을 넘어뜨린 덩치 신경도 쓰지 않고 핏발 서린 눈으로 주인님을 노려보며 엉금엉금 기어간다.


얼마나 힘이 센지 몸집의 3배는 차이가 나는 짐승이 짓누르고 있음에도 덩치가 끌려간다.


주인님은 그런 어미를 흘끗 쳐다보시곤 다시 꼬마에게 시선을 두신다.


주인님의 시선에 꼬마의 떨림이 심해진다.


“사,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 다시는 사람님에게 이런···.”


꼬마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지금 무슨 감정이 들지?”


“네, 네?”


맥락 없는 주인님의 말에 꼬마가 대답하지 못하고 되묻기만 했다.


“아가야! 대답하지 마!! 저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마!!”


“빌어먹을! 이 년 힘이 왜 이렇게 세!?”


어미는 여전히 이쪽을 향해 기어 오고 있고 덩치는 끌려오고 있다.


참다못한 덩치가 손톱을 뽑는다.


“저 새끼 막아.”


“네, 네?”


“저 새끼가 어미 못 죽이게 해.”


“아, 아! 네! 야, 죽이지 마!!”


“뭐라고!?”


“손톱 집어넣고 그냥 붙잡기만 하라고!”


덩치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어미를 찌르려던 손톱을 집어넣는다.


“어린 짐승, 내가 이 상황에서 무슨 감정을 느끼냐고 물었다.”


“죄, 죄송해요··· 다시는···.”


“죄송하다는 건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네 감정. 지금 어떻지?”


“무, 무서워요.”


“저길 봐라.”


주인님이 뒤에 덩치를 단 채 이쪽을 향해 악을 쓰며 엉금엉금 기어 오는 어미를 가리키셨다.


“네 어미는 널 살리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채 몸부림치고 있다. 혹자는 쓸모없는 행동이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란 그런 존재다. 죽음이 예상되는 길임에도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런 길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다.”


꼬마가 어미에게 시선을 거두고 주인님을 올려다본다.


“어린 짐승아, 기억하거라. 지금, 이 순간을. 나를 대면해서 느끼는 공포가 아닌, 네 어미가 자신에게 공포를 돌리는 그 숭고함을.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제 한 목숨 바쳐 널 지키고야 말겠다는 무한한 사랑을.”


주인님이 꼬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시고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



결국 연님은 오지 않으셨다.


주인님은 곰무덤으로 가는 와중에도 이따금 뒤로 돌아보셨다.


그렇게 걷던 와중.


주인님이 또다시 뒤를 돌아보신다.


이번엔 한참이나 돌아보신다.


“때때로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꿈?


“네?”


“왠지 모르게,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언제부턴가 일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암컷의 말은 내 생각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 말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내가 느끼는 이 정체 모를 불안감은 허상에 불과할 테니까.”


주인님이 눈을 감으시고 감정을 추스르신다.


“짐승, 자신의 불안이 실체화되어 가는 느낌을 알고 있나? 그리고, 그 실체화된 불안을 눈앞에 맞닥뜨렸을 때의 그 감정을. 나는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두렵다. 나는 이 모든 게 두렵다.”


주인님의 닫힌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나는 아가씨가 아직도 사도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 후회된다. 내가 아가씨를 시장에 모시지 않았다면, 내가 아가씨와 떨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그 후의 상황에서 인내를 발휘했다면, 내가 아가씨의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내가 포식자 명을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아가씨는 사도가 되지 않으셨을까?

신은 왜 아가씨와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노예기사로 만들어 아가씨에게 보냈으면서, 신은 왜 아가씨를 사도로 삼으셨는지 모르겠다. 신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주인님께서 하늘을 쳐다보신다.


“짐승. 나는 주비를 찾으라는 아가씨의 명령을 완수하는 순간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너의 자리는 없다. 짐승. 나와 네가 다시 만났을 땐 내가 이처럼 친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가씨를 도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을 죽일 것이며, 그 행동은 너희가 항복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짐승. 그러니 내 너에게 마지막 호의를 베풀겠다. 도망가라. 도망쳐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숨어서 지내라.”


“싫어요! 저는 주인님과 같이 있을 거라고요!”


주인님이 슬픈 얼굴로 날 쳐다보신다.


“네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 남은 건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다. 나는 너를 죽이는 데 주저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떠나라.”


어느새 슬픈 기색을 없앤 주인님이 무심하게 날 쳐다보신다.


“싫어요!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곰무덤까지 가서 주인님을 보필할 거예요. 애초에 랑님이 제게 주신 임무예요.

주비를 찾을 때까지 주인님을 보필하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 네 충정이 호의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말거라.”


주인님이 뒤로 돌아 걸음을 옮기셨다.


··· 그래 주인님의 말씀대로 여정의 끝이 다가온다.


그 마지막엔 뭐가 있을지 모른다.


말씀하신 대로 주인님이 느끼시는 정체 모를 불안이 있을 수도, 나의 죽음이 있을 수도.


비록 나의 죽음이 있을지라도 후회는 없어.


처음엔 내 자유의지가 아닌 명령이었지만, 주인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과 부대낄 수 있어서 좋았으니까.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었지만 나는 행복했어.


만일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난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일거야.


나는 죽음을 웃으면서 받아들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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