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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펭귄의 서재입니다.

천재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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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群青)
작품등록일 :
2020.12.28 17:09
최근연재일 :
2021.01.28 07:05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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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59
추천수 :
1,707
글자수 :
179,402

작성
21.01.03 09:05
조회
1,592
추천
56
글자
8쪽

#2 - 디오게네스 (5)

DUMMY

빌어먹을 비평가들이 내 그림을 보고 뭐라 했던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린 꼬맹이의 그림?

매력 없는 작품?

창의성 없는 작품?

대체 뭘 원하는 건가. 피카소의 그 망할 큐비즘? 넙대대한 볼따구에 초점 없는 눈, 밀대로 면상을 밀어버린 그거?

아니면? 고흐처럼 물감으로 떡칠이라도 해주랴?

조셉 코수스처럼 의자 세 개 갖다 놓아줄까?


좋다. 그렇게 지식을 뽐내고 싶다면. 이건 어떤가.


그들이 정말 지식인이라면. 더는 그 더러운 아가리로 내 그림을 까내릴 수 없을 것이다.


붓을 들었다. 조금 폭력적인 작품이겠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하는 법이다.


뒷일? 조금 무책임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젯소도 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까만 아크릴 물감을 듬뿍 짜냈다. 사이즈는 60호 정도 될까. 위, 아래로 아마 130cm의 사이즈는 될 것이다.


아크릴 물감을 몇 번씩 끊어 짜내니 하얀 캔버스 위에 까만 송충이가 수십 마리 기어 다니는 것 같다.


백붓을 들어 까만 송충이들을 짓이긴다. 진물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별 하나 없는 까만 밤하늘이 완성되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아크릴 물감이 빨리 마른다 해도, 바로 위에 물감을 올리면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온다.


“형, 스케치북 주세요.”


백현우는 순순히 보던 스케치북을 내줬다. 상대도 안 해주는데 남의 작업실에서 뒹굴대는 게, 이 사람 참 제멋대로 사는구나 싶다.


스케치북에 연필로 사람을 하나 그려 넣는다.


백현우의 궁금증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뭐 그리는 거야?”

“디오게네스에요.”

“그건 또 누구야?”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영혼이죠.”

“어우-, 또 철학이야. 내 작품 해석할 때도 그렇고. 너 자꾸 그런 소리 하면 언젠가 큰코다친다.”


백현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의 예술관이 무책임을 전제로 함에 그의 태도가 이해되었지만 내게는 이것이 미술을 함에 있어 중요한 기반이다.


“저도 철학 좋아하지 않아요. 필요하니까 외우는 거지. 심지어 수박 겉핥기인걸요.”

“철학이 왜 필요한데?”

“정확히는 철학이 아니라. 지식이에요.”


눈이 침침하다.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생리현상을 이길 순 없나 보다.


“학교 물리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생각하면······.”

“아악! 어려운 소리 하지 마!”


백현우가 소파에 누운 채로 펄떡펄떡 발작했다. 아직 설명도 안 들었으면서.


하는 수 없이 결론만 말한다.


“······결론만 말하면. 음-. ···생각했어요. 아, 학문의 끝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머리 깨지겠네. 또 무슨 소리야?”

“미술의 역사만 봐도 그렇잖아요. 예술은 다른 학문에 의해서 도전하고, 관측 가능한 영역이 넓어져요.”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백현우는 양손으로 귀를 막는 척- 했다.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형은 알고 있어요. 이미 형의 작품들이 그런걸요. 작품 활동에 3D 프린터를 쓰잖아요. 형은 남들이 못 하던 다른 영역의 개념을 미술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어요. 바로 컴퓨터 공학이죠.”


백현우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미술은 바보같이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에 신화를 첨가하면 <비너스의 탄생>이 나타나고, 종교를 첨가하면 <천지창조>가 생기죠.”

“음-.”

“순간의 감정을 추상화에 담거나, 움직이는 만화 캐릭터, 음악을 사용해 애니메이션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전부 학문과 학문의 결합이에요.”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백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내가 컴퓨터 공학을 이용해 그만큼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는 건가?”

“······네, 뭐.”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었지만, 아니라 할 수도 없었다. 그가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는 아니겠지만 석고상에 전선을 박아넣은 최초의 인간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영역의 지식을 쌓는 건 중요하다는 거죠. 자유성이 높은 예술에서는 그게 더 심하다고 생각하니까 열심히 외웠어요.”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단순히 불행하거나, 행복한, 자극적인 주변 환경만이 아니다. 선대 예술가들, 학자들이 쌓아 올린 역사다.


백현우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춘팔 교수님이 왜 널 맘에 들어 하셨는지 알겠네.”


글쎄,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다. 여춘팔 작가는 내 작품 하나 보고서 그 소리를 한 거지만···.


대화하는 사이에 스케치북에 데생을 끝냈다. 내 손이 빠른 걸 감안해도 이례적으로 이른 시간. 머리는 몽롱하지만-.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며, 손가락 컨디션을 확인한다. 최고다.


좋아. 이번 그림은 빨리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형. 부탁이 있어요.”

“엉? 뭔데.”

“3D 프린터 빌릴 수 있어요?”

“상관은 없는데···. 쓸 줄 알아?”

“아뇨, 가르쳐주세요.”


내 입에서 나왔다기엔 빠꾸없이 뻔뻔한 말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백현우는 선심 쓰듯 말했다.


“급한 거 아니면 그냥 말해. 만들어줄게. 배우려면 한세월이야. 형이 그래도 선배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이리 말하길 기다렸다.


“그럼 손 좀 만들어주세요.”

“손?”

“네, 손. 손목까지 있는 거로.”

“사이즈는?”

“일단은 성인 손 사이즈인데···. 이거 봐주세요.”


디오게네스를 데생한 스케치북을 백현우에게 건넸다.


백현우는 아기 선인장 같은 턱수염을 긁적였다.


“이 그림을 캔버스에 옮긴다고? 저거?”

“네.”

“캔버스가 제법 크긴 한데. 이 사이즈로 할 거면. 호빗?”

“아뇨. 상반신만 드러낼 거에요. 어둠에서 나오듯. 카이로스쿠로처럼, 살짝 각색해서-.”

“아, 아-아, 알겠어.”

“네, 남자는 그림을 뚫고 나올 거에요.”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게 만들 거지만, 설명보단 결과물로 보이는 것이 옳다.


“좋아. 비슷한 건 이미 파일이 있으니까 금방 만들 수 있어. 그림이 완성되면 내가 견적 보고 만들게.”

“좋아요.”

“근데 여기 스케치 보면 등불? 이런 것도 있는데 이건 어떡하게?”

“만들 순 없을까요?”

“글쎄, 만들기보단 있는걸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턱수염을 긁적이던 백현우는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뭐, 형한테 맡겨.”


그 말을 끝으로 백현우는 작업실을 나갔다. 설마 오밤중에 등불을 파는 가게라도 찾아가려는 걸까. 지방 촌놈은 모르는 24시간 가게라도 있나 보다.


백현우가 나가니 북적북적한 느낌이던 작업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여름이지만 살짝 추워진 감각을 느낀다.


스마트폰을 조작해 내 이름을 검색했다. 주르륵 나오는 기사와 블로그,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


{한국 미술계 굴욕! 세계가 주목하는 부패한 한국 미술계의 실상!}

{그림 하나가 500만 원? 심지어 모작 의혹}

{미술 입시생 아우성, 또다시 불거진 특혜}

{김도진은 누구? 부모 없이 자라 반사회적 성향을 보여}

{미술평론가 문태범. 김도진 사태로 예술계···}


참···. 사람 놀려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내가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다면 금방 불식되었을 이야기다. 그랬다면 저들이 날리는 화살은 여춘팔이나 경매사 측으로 향하겠지.


하지만 누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늘에서 황금 동아줄이 내려왔다. 사람들이 그걸 타지 말라고 한들 당장 붙잡을 수밖에 없지 않나.


꿈을 이룰 기회다. 화가가 되는 것! 어쩌면 이미 이룬 꿈이고, 이미 끝나가는 꿈일 수 있다.


“해내야지.”


조용히 다짐한다. 아니, 이건 맹세다!


나는 그림으로 증명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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