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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펭귄의 서재입니다.

천재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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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群青)
작품등록일 :
2020.12.28 17:09
최근연재일 :
2021.01.2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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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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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 - 공상의 영역 (3)

DUMMY

가늘게 뜬 눈으로 <디오게네스>를 살피던 아나스타샤가 혀를 빼물었다.


“이거 색깔 진짜 이상해. 엄청 어두워.”


아나스타샤의 웩- 하는 말에 이리나가 화들짝 놀랐다.


“실례야 아냐. 한국에서 인정받는 화가야. 혹시 러시아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려고.”

“들으라고 하지. 넌 모르겠어? 이거 그린 자식 분명 엄청나게 음습한 녀석일 거야. 뒷골목에서 아디다스 츄리닝 입고 쭈그려 앉는 그런 녀석들 말이야.”

“고프닉을 말하는 거야? 고프닉은 러시아 문화야 한국에는 그런 사람 없을걸?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을 헐뜯는 건 나쁜 짓이야.”

“얼굴을 알면 괜찮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이리나가 손뼉을 짝! 쳤다.


“아! 맞아. 아냐, 왜 저 작품이 기분 나쁘다고 한 거야? 기술적으로도 훌륭하잖아. 난 아크릴로 저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본 적 없어.”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아무리 기술이 잘나면 뭐 해 저리 어두운 그림을 그려대는데. 자기가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아나.”


아나스타샤가 툴툴댔다.


쓸데없는 경쟁심리를 불태우는 건 둘째치고, 어두운 그림이라는 건 디오게네스의 주제로서도 맞지 않았다.


이리나는 스마트폰에 저장한 그레고리의 논평을 읽었다.


“그레고리 도브리긴의 말에 따르면 <디오게네스>는 세태와 체제, 관습에 대한 비판이야. 안 읽어봤어?”

“내가 했다간 가문에서 이름이 지워질 작품이네. 그리고 그 인간은 엉터리야. 그딴 논평 볼 필요도 없어. 똑바로 평가할 줄 안다면 내 작품에 찬사를 했겠지.”

“······아무튼, 그걸 왜 어두운 그림이라 생각한 건데?”

“바탕. 저 색깔 사용한 걸 봐. 더럽게 어둡지.”


아나스타샤는 그 고귀한 입술로 запачканный(더럽다)가 아닌 костлявый(엄청)을 사용했지만, 이리나의 귀에는 비슷하게 들렸다.


“키아로스쿠로를 사용한 거래. 요즘 사용하기엔 번거로운 기법이지만 이것도 관습과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사용한 거랬어. 작가가 처한 상황과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과 대립의 극단적 표출이래. 와! 이것 봐. 작품을 겨우 하룻밤 만에 완성한 거래. 어쩐지 아크릴을 사용한 이유가 있었어.”

“노이즈 마케팅이야. 거짓말도 작작 해야지 이런 걸 어떻게 하룻밤 만에 그려. 그리고, 고작 키아로스쿠로를 한다고 물감을 저렇게 쓰는 사람은 없어.”


이리나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나스타샤가 색에 대해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지만,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냥 검은색 같은데.”

“물감을 저렇게 썼는데. 못 보는 사람이 바보인 거야.”


한순간에 바보 취급당했지만 이리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이젠 익숙한 일이다. 말은 험해도, 본심이 아닌 건 옛적에 알았으니.

보라, 슬쩍 눈치를 본 아나스타샤가 설명했다.


“캔버스 바탕색. 검은색만 사용하지 않았어.”

“당연히 풍부한 어둠을 나타낸다면 다른 색을 섞지 않겠어? 애초에 중후한 분위기를 주려면 검정에 가까운 진갈색을 쓰잖아.”

“그게 아니야. 누가 아크릴을 쓰면서 저렇게 색을 사용해? 인체에 가까운 어둠은 진갈색을 섞었고, 멀어지면 푸른색을 썼어. 빛으로 밝힌다기보다는 어둠이 뱀처럼 똬리를 튼 거 같아.”

“난 잘 모르겠는데.”


이리나가 미간을 좁히며 노려봤지만, 그 정도로 섬세한 색깔 사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착시현상 아니야? 저 등불의 효과를 이용하려고 농담 조절을 강하게 했다는데. 저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작품 정면에 달린 등불도 빛을 뿜고 있고.”

“아니야. 인체를 가리고 봐.”


이리나는 여전히 끙끙대며 다른 점을 찾으려 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사파이어색 눈을 빛냈다.


처음엔 깐깐한 비평가 그레고리 도브리긴의 호평을 이끌어낸 동양인 꼬마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하면서 영문을 모를 색 사용을 하는 인간의 심리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작가를 직접 봐야겠어.”



*



추상화는 감각과 본능의 영역이다. 따로 추구하는 목표가 없는 이상. 손에 잡히는 대로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데뷔 이전에나 사용하던 미니 캔버스에 손이 가는 대로 물감을 발랐다. 그냥 손이 이끄는 대로.

헌데, 물감이 아깝다. 이게 대체 뭐라고···. 내 돈으로 산 물감도 아니지만 진짜, 너무 아깝다. 구두쇠라고 욕해도 상관없다. 난 구두쇠 맞으니까.

하도 물감이 아까우니, 제법 많이 사용한 어두운 계열의 물감을 남은 치약 짜내듯 짜서 캔버스에 문질렀다. 결과물은······.


물감통 속 구정물을 캔버스에 쏟은 것 같다.


“······.”


웃음도 안 나온다. 이걸 추상화라고 봐야 하는가. 최소한 나는 이런 쓰레기를 전시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니, 내 낙서라고 하기도 부끄럽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까? 인류 역사의 위대한 화가들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본다.’라고 했다. 땅딸보 난쟁이인 나로선 선대 화가들의 지식을 빌리는 것이 옳다.


선대 화가, 떠오르는 작가는 많다.


최초로 추상화를 그렸다고 여겨지는 바실리 칸딘스키.

기하학적 도형의 미학이 담긴 피트 몬드리안.

미국 미술의 혁명가,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

한국 작가 미술품 경매 최고가의 김환기.

나보고 추상화를 그리라고 한 여춘팔.


각자 특징이 있다. 그래, 맞다. 특징이 있다.

먼저 할 것은 추상화라는 것이 물감을 흩뿌리고 문대는 종류일 뿐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버리는 거다.


(이 뒤로 추상화에 관한 설명입니다. 글 수정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글의 끝으로 가주세요.)


스케치북에 먼저 ‘바실리 칸딘스키’라는 이름을 적었다. 추상화의 창조자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는 회화를 근본적으로 ‘감정’으로 인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륜관계였던 가브리엘레 뮌터와의 유랑 생활이 영향을 끼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감정’의 표현에 있어 ‘외부세계의 것’은 거추장스럽고 따분하게 인식하여 ‘모방’하기를 그만두었다.

이것이 추상화의 시발점이다.


‘외부세계의 것’을 ‘모방’하지 않는 것.


······글쎄, 나와는 맞지 않는 방식인 듯하다. 나는 애초에 모방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미천한 식견의 자신으로서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기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그래, 나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성자의 가르침으로 여기는 신도다. 물론 리처드 프린스처럼 극단적인 모방은 하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결과물’이 작품 활동에 필요하다.

나의 내면의 것은 믿을 것이 못 되기에.


이번에는 스케치북에 ‘피트 몬드리안’을 적었다.


자신이 해석하기에 몬드리안은 일종의 편집증을 앓고 있다. 전 세계인이 살면서 한 번쯤은 보았을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을 보면 기하학적 구조, 단순한 수평선과 수직선의 사용으로 말미암은 극단적인 정돈성은 이루 말할 것이 없다.


그 작품에서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과 무채색, 검정색의 선만을 이용한 것도 편집증적이다. 특히 삼원색은 농도와 명도를 일정하게 만들어 그 편집증적인 태도를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이 삼원색의 농도와 명도의 조절로 일종의 리듬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기에 ‘역동적인 평온함’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다.


정적인 추상화의 상징적인 인물. 이게 내가 생각하는 피트 몬드리안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잭슨 폴록······.”


패스해야 겠다. 잭슨 폴록이 회화에 ‘우연성’을 결합한 것은 위대한 발견이지만 탐구할 가치는 느끼지 못하겠다.

그를 상징하는 ‘액션 페인팅’에 괜히 ‘액션’이 붙은 것도 아니다. 그는 ‘완성된 회화’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

내가 지금 ‘추상표현주의’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니까. 난 결과적으로 완성된 추상화를 원한다.


그렇다면 김환기는 의미 있는 연구 대상인가?


김환기는 무수히 많고 작은 점을 찍어 점(點)화를 만들었고, 그 작은 물감 흔적의 집합으로 위대한 우주와 자연의 풍부한 에너지를 담았다고 한다.


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내 카테고리에 넣는다면 제법 의미가 있다. 주류가 되지 못하는 한국, 동양 미술계의 한계를 서양화의 특징을 결합해 특유의 ‘점(點)화’로 승화시킨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반항심이 든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혹시 모르지 않나. 난 혼혈일 수도 있고, 일본인일 수도 있으며, 중국인일 수도 있다. 유전적 국적과 사회적 소속 국적에 대해 따지기 전에 내 유전적 모체의 이름조차 모르는 상황에 내 뿌리에 관해 탐구할 가치는 없다.


무엇보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


“마지막으로 여춘팔.”


현대의 화가다. 나이는 늙었지만 생존해 있고, 그의 작품들은 김환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비싸다.


그의 미술사조는 미니멀리즘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을까?

확실히 이전에 보았던 <무제>는 캔버스에 삼각형으로 붓칠을 했을 뿐이다. 그를 통해 추억을 선사한다고 했는데······.


미니멀리즘의 기초적인 의도와 거리가 멀다. 극단적인 형태의 단순화, 수직선과 수평선의 사용으로 경직된 느낌을 내는 미니멀리즘은 창작자의 아이디어만이 존재하는 미술이다.


창작자의 감정과 손길, 감상자의 감정 이입 또한 배제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인 것을.

여춘팔의 발언과는 모순된다.


흠······. 모르겠다. 볼펜으로 선을 그어보자. 죽- 죽- 그어지는 직선에 마음이 진정된다. 몬드리안은 옳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닌데.”


아무래도 전제가 잘못된 것 같다. 여춘팔이 서구의 미니멀리즘에서 거리를 둔다면?


청동을 녹여 청동검을 만들고, 쇠를 녹여 철검을 만든다. 근본적으로 다른 요소라는 거다. 같은 틀에 찍어내더라도 어떤 물질을 제련하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 틀=추상화

- 청동=동양

- 쇠=서양


이런 해석을 가한다면 당연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동양의 미니멀리즘에서 감정은 배제 요소가 아니다. 반대다. 그 작은 면, 혹은 선, 또는 점에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담는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추상화라 하면 솔직히 편할 줄 알았는데, 이것도 다종다양한 특징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지.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뺀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추상화가 나오겠지. 시간과의 싸움이다.


다시 미니 캔버스를 꺼냈다. 양은 많다. 물감을 문댄다고 생각하면 좀 아깝지만, 탐구의 재료라고 생각하면 덜 아깝다.


부우웅-


겨우 마음을 다잡았건만, 타이밍 나쁘게 울리는 스마트폰에 손을 얹었다. 통화를 건 사람은 박정인.


“왜요?”

-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추상화 칸딘스키.jpg

바실리 칸딘스키가 그린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입니다.

추상화는 칸딘스키의 착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본인의 작품이 비스듬하게 기대어진 것을 보곤 형태도 색도 모호한데 이에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해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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