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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펭귄의 서재입니다.

천재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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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群青)
작품등록일 :
2020.12.28 17:09
최근연재일 :
2021.01.28 0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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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9,402

작성
21.01.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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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 디오게네스 (6)

DUMMY

서울. 아침 9시.


박정인은 김도진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은 잘 잤으려나?’


옆 호실의 이미나가 올빼미족인데다, 시끄럽게 작업한다는 민원이 있기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재우려 했지만, 지금껏 경험한 바에 의하면 김도진은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한 번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박정인이 밝게 외쳤다.


“좋은 아침!”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살갑게 굴면 김도진이 나쁜 말은 안 한다는 것을 눈치챈 박정인이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작업실. 김도진은 샤워라도 했는지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었다.


“뭐야. 일어나 있었어? 설마 밤샌 건 아니지?”

“밤샜어요.”

“저런.”


김도진이 언제나의 뚱한 표정을 지었다. 눈 밑이 검게 물들어 평소보다 음습해 보였다.


“어떡하지. 오늘은 낮잠이나 잘래? 옆 방은 낮에는 작업 안 해.”

“······알고 있었네요.”

“하하하! 미안, 미안. 그래도 좋은 경험 아닐까?”


‘무슨 좋은 경험?’이라는 표정으로 김도진이 째려봤으나 박정인은 능청스레 넘겼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갤러리로 가요.”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갈까? AM은 이미 봤으니까 RM? 아, 너 갔을 때랑 달라진 건 없겠다. 그럼···.”

“AM으로 가요.”

“볼 건 없을 텐데?”

“보려고 가는 거 아니에요.”


김도진이 작업실의 구석을 가리켰다. 사실상 생활공간으로 설계된 작업실 안의 진짜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곳.


“그사이에 작업을 했다고?”


김도진이 고개를 꾸벅였다. 긍정인지 졸음에 의한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박정인의 눈에는 제법 자랑스러운 태도로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작업을 끝내기엔 시간이 너무 빠르다.


‘갑자기 미쳐서 추상화를 그린 건 아니겠지?’


의심을 품으며 작업실 문을 연 박정인이 경악했다.


‘이걸 하룻밤 만에 그렸다고?’


그림은 흑백으로 그려진 남성의 상반신이었다.


어둠을 골조로 하는 작품 속. 남자는 동굴 속에서 튀어나오듯 명암이 진하게 사용되었다.


본래 깜깜한 어둠 속 보이지 않았을 남자에게 색을 부여하는 건 작은 빛이다.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림 속 남자의 앞에 있다.


위치는 시선보다 살짝 아래. 모닥불인지 횃불인지 모르겠으나 남자의 정면에 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완전한 흑백인 줄 알았으나 옅은 분홍빛이 돈다. 천부적인 음영 사용 감각이 느껴진다.


남자의 생김새는 벗겨진 머리에 툭 튀어나온 광대,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특징적이고, 살짝 찌푸린 눈매에서 고집스러운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화풍은 바로크 시대의 작품과 유사했다. 카라바조나 렘브란트로 대표되는 시대의 작품.

그래, 극단적인 명암법 사용. 키아로스쿠로다.


작품을 살피는 박정인의 뒤로 김도진이 다가와 말했다.


“작품명은 <디오게네스>에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이름이죠. 다 마른 거 같지만 아직 만지지 마세요.”

“잠깐만. 아직 미완성인 것 같은데?”


박정인의 손가락이 <디오게네스>의 손이 있어야 할 부분으로 향했다.


<디오게네스>의 팔이 뻗어진 끝, 손이 있어야 할 부분은 누가 봐도 물감을 대충 칠해 뭉개져 있었다. 일부러 뭉갰다기에는 손 주위의 모양이 이미 완성되어있어 비율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다.


“곧 와요.”

“뭐?”


김도진은 다크서클이 늘어진 눈을 피곤하게 깜빡이며 하품했다.


쿵 쿵 쿵-


작업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김도진이 현관문을 여니 백현우가 나타났다.


백현우는 예의 시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뭐야. 도진이 매니저도 왔네.”

“매니저라기보단···. 뭐, 비슷하네요. 무슨 일입니까?”

“도진이가 부탁한 게 있어서.”


백현우는 김도진에게 ‘주먹 쥔 손’을 건넸다. 하얀 것이 석고 비슷한 재료로 만든 인공물이란 것이 느껴졌다.


김도진이 그 물건을 받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좋네요.”

“내가 그래도 짬밥이 있는데.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실실 웃는 백현우를 꼬랑지에 붙이곤, 김도진이 <디오게네스> 앞으로 걸어갔다.


“이거 붙일 수 있겠어?”

“아뇨.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그냥 붙이면 떨어질 거 같은데.”

“이거 저기 등불도 써야 하니까 그냥 본드 쓰면 안 되고······.”


쑥덕거리기 시작한 김도진과 백현우의 뒤에서 박정인은 조용히 그들이 하는 모양새를 지켜봤다. 작품이 탄생하는 중이다.


박정인은 자신이 제법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졌음을 자각하며 주변을 살폈다.


작품 <디오게네스>의 옆에는 고풍스러운 유리 램프가 하나 있었는데 모양새로 보아 배터리로 작동하는 LED 등불이었다.


저것도 백현우가 가져온 걸까. 대충 쓰임새는 짐작이 갔다.


과연 예상이 들어맞게도 백현우는 그 유리 램프를 인공 손에 쥐여주고는 캔버스에, 본래 디오게네스의 손이 있어야 할 부위에 달았다.


김도진이 디오게네스가 쥔 램프를 작동시켰다. 주황색 LED 불빛이 퍼져나왔다.


김도진이 이야기의 방점을 찍듯 말했다.


“완성이네요.”


전체적인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셋은 작품에서 물러났다. 셋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림만을 살폈다.


유리 램프의 LED 불빛이 <디오게네스>의 근육과 두드러진 갈비뼈 사이의 음영이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평면 회화임을 생각하면 착시현상에 가깝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조용한 감탄의 분위기가 흘렀다.


박정인이 생각하기에는 횃불을 들려주어 작품 <프로메테우스>라고 칭해도 좋을 듯했다.


바로크 양식의 회화에 현대의 최신 기술을 이용해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박정인은 김도진이 회화에 담은 의미는 몰라도 공간 활용과 음영의 활용도, 기술적인 가치만 따져봐도 상당한 명작이었다.


“······킁.”


정적 속. 김도진이 콧물을 훌쩍였다.


“감기 걸렸냐?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백현우가 낄낄 웃으며 놀렸다. 박정인은 살풋 웃으며 말했다.


“······잠이나 자. 전시는 내가 책임질게.”


김도진은 군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가 쓰러져 잠을 잤다. 평소 발작하듯 보이던 작품 활동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박정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거참.”

“저게 천생 예술가지 안 그래?”


백현우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김도진은 천생 예술가였다.



*



AM 갤러리 스튜디오


박정인은 AM 갤러리 관장 오미숙에게 고개를 숙였다.


“관장님.”

“어, 정인이. 무슨 일이야. 김도진 작가한테 간 거 아니었어?”

“돌아왔습니다. 잠을 못 잤는지 피곤해 보이는 데다, 몸 상태도 안 좋아 보이구요.”


오미숙이 혀를 찼다.


“에구- 애기가 어째.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던가?”

“2학년입니다. 그보다 김도진 작가 작품 말입니다···.”

“걱정 마. 가져오면 전시해줄 테니까. 물론 <낭만>만큼의 파급력은 있어야 해.”

“그게···. 가져왔습니다.”


오미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겨우 하루 지났어. 설마 추상화는 아니지?”

“아닙니다. 인물화에요.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난 아닙니다. 진짜로.”


오미숙은 의심을 숨기지 않으며 박정인을 따라나섰다.


미술품을 옮기는 트럭. 그곳에서 몇 명의 직원이 조심히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직원들이 옮기는 물건은 에어캡으로 돌돌 감싸져 있었지만, 캔버스라기에는 중간에 튀어나온 것이 눈에 띄었다.


“뭐야 저 볼록한 거는. 설마 입체 작품이야?”

“예. 백현우 작가의 도움을 받아서 3D 프린터를 사용했답니다. 이미나 작가도 도움을 줬다고 하고요.”

“아이고- 두야. 회화로 뜬 애가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어떻게 해. 심지어 이게 두 번째 작품인데.”


오미숙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박정인은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관장님 그래도 결과물을 보시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인물화입니다. 3D 프린터를 쓴 거는 아주 조금이고요.”

“에휴- 알아서 해.”


오미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박정인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 또한 작품을 본다면 180도 태도가 변할 것이다.


직원들의 손길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도진의 작품이 그 베일을 벗었다. 머리를 짚곤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던 오미숙이 일어나 작품의 앞으로 다가섰다.


“맙소사. 이게 하루 만에 만든 작품이라고?”

“백현우 작가의 말로는 새벽 동안 쉬지 않고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돼.”

“저 인조 손은 백현우 작가가 만들어 주었고, 등불은 이미나 작가의 것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걸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재질은? 아크릴이고, 젯소를 안 발랐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물감 사용이 단순해. 그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니, 흰색과 검은색만 쓴 게 아니잖아. 불가능해. 근육을 봐. 이 갈비뼈 사이의 음영을 봐! 농담(濃淡)의 질이···.”


오미숙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대학도 안 들어간 학생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이게 진짜 재능이죠.”


박정인의 말에 오미숙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퍼뜩 정신을 차린 오미숙이 외쳤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치수 재고 촬영해!”


그 외침에 스튜디오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뛰었다.


박정인이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훌륭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인데.”


박정인이 머쓱하게 웃었다. 갤러리 관장 겸 큐레이터인 오미숙.


큐레이터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하는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시실을 꾸미는 것, 작품 도록을 만드는 것, 작가에게 작품을 받아오는 것까지. 직접 발로 뛰어 발품을 파는 경우도 셀 수 없다.


“원래 같았으면 내가 발로 뛰어야 하는 작품이야. 이게 저절로 굴러들어왔으니···. 저절로 굴러들어온 건 아닌가?”


김도진의 영입 당시 상황을 말하는 거다. 수십 개의 국내 갤러리들이 튀어나와 김도진에게 서류를 들이밀던 당시.


“도진이는 팔리는 상품이니까요.”

“그렇지. 그림 잘 그리고, 인생에 스토리까지 있어. 엄마, 아빠도 없이 자라선 안방 사모님들 손수건을 적시지. 얼굴도 잘생겼고.”

“저번엔 너무 말라서 기생오래비 같다면서요.”

“보다 보니 정들데.”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저희가 다른 미술관이랑 다르게 AM 그룹 이름을 그대로 받아서 쓰는 게 효과적이었습니다. 도진이가 안 그래 보여도 제법 계산적이에요.”

“우리가 국내 업계에선 최고지.”


오미숙이 어깨를 으쓱였다.


박정인은 머쓱하게 웃었다.


오미숙이 지금은 칭찬하는 분위기지만 영입 당시에는 역대급 계약서의 모습에 쌍욕을 퍼부었다. 자신이 시말서도 썼지 않은가.


오미숙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아유- 내 정신 좀 봐. 작품 전시할 공간 만들어야지. 김 팀장! 촬영하고 SNS에 올려! 홍보 돌리고!”

“예! 관장님!”


스튜디오 팀장을 비롯한 인원들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이 잠시 흘러 인터넷에 한 기사가 올라왔다.


{김도진 작가 두 번째 작품. AM 갤러리에서 최초 공개!}

디오게네스 (요한 H. 빌헬름 티슈바인).jpg

작중 주인공의 두 번째 작품 <디오게네스>의 모티브가 된 요한 H. 빌헬름 티슈바인의 <디오게네스>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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