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152,534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4.27 18:00
조회
982
추천
29
글자
21쪽

*ㄷ*

DUMMY

39.

*ㄷ*

*ㄷ*

원래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절이라는 단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하는 내 귀로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억.”

“악!”

“갑자기 소리는 왜 질러!”

“갑자기 남자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생각해봐요. 안 무섭나.”

내 말에 이신후 아저씨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 얼굴이 나름 잘생기지 않았나?”

“일자 눈썹 좀 제대로 깎고 말해요.”

“어허. 눈썹이 어때서. 이거로 내 사랑도 꼬셨어. 이게 내 매력 포인트란 말이지.”

자신의 미간에 난 털을 매만지며 하는 말에 두통이 다시 도질 것 같았다.

“알았으니까. 나가죠.”

“그래야지.”

아저씨가 먼저 나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나가다가, 안에 갇혀 있는 다섯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다음부터는 허위 증언은 하지 마세요. 잘못되면 이렇게 안에 갇혀서 범인 취급당하는 게 기본이니까요.”

“정말 미안하네.”

“미안...”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다.”

김미화, 이민성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내 시선을 외면하고 말하지 않았다.

“설마, 이 사람들이 너를 범인이라고 한 사람들이냐?”

“네. 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저한테 사과했어요.”

아저씨는 두 손을 허리에다 걸고 말했다.

“당신들 때문에 이 아이는 동네에서 살인범 소리 듣고 있다는 거 알아? 사과한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 둘. 둘은 꼭 민사까지 갈 거니까. 그리 알아. 합의도 없어.”

그의 말에 두 사람이 움찔하고 뭐라 하기 전에, 아저씨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빨리 나와!”

“네.”

내가 나오자.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명훈 아저씨에게 걸어갔다.

“데려가도 됩니까?”

“네. 여기 사인 해주시면 됩니다.”

아저씨는 종이를 바라보다가 명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이건 증거 은닉죄가 아니라, 증인 보호자 참석 동의서인데-”

“직접 사람을 구하기도 했고,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알아서 보호한 공로가 우선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재판 참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았다.

“참석 안 해도 되는 거 알지? 미성년자는 의무가 아니-”

“해야죠. 그게 무서우면 나중에 경찰 하겠어요?”

탁.

내 어깨를 한 대 친 이신후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 내가 아는 수호지. 유치장에서 멍하니 있길래 난 겁이라도 먹은 줄 알았는데, 멍 때린 거였구나.”

“멍 때린 게 아니라. 범인이 누굴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건 네가 고민할 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자. 여기 사인하면 됩니까?”

“예.”

아저씨는 서류에 사인한 다음 명훈 형사에게 내밀었다.

“범인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돌아가실 때는, 저 두 사람이 바래다줄 겁니다.”

명훈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지동인, 김범, 두 사람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신후 아저씨는 그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거부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입구에서 얼마 떨어진 곳 다섯 대 정도 모여 있는 경찰차 중 제일 뒤에 있는 차에 탄 나는 움직이는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바로 집으로 가시죠?”

아저씨가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대신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네. 그곳으로 바래다주세요.”

“알겠다.”

김범 아저씨가 대답 후 시동을 켰고, 조수석에 탄 지동인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미안하다. 그곳이 거의 매일 민원이 들어와서 출근하다시피 하는 곳이고, 사건이 있기 전날 다섯 번이나 민원이 와서,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응한 거 같다. 그러다가 여성이 뒤에서 날아온 아령을 봤다는 말에 놀라서 허둥대다가...”

민원? 그리고 뒤에서?

“아저씨. 그럼 제일 먼저 사고가 아니라고 알았던 이유가, 피해자의 신고 전화가 아니라. 여자 증언 때문에 안 거라고요?”

“여자 증언 때문에 인지를 한 거고, 그걸 토대로 조사하다가 신고 전화를 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렇구나...”

“여자가 겁이 많아서, 새벽이 되어서야 그 얘길 하더라고. 담장이랑 전봇대 때문에 아령이 날아온 각도는 잘 모르지만, 뒤에서 날아온 순간을 목격했다고 말이야. 아령이 부딪히고 비탈길 아래로 굴러갔고, 피해자는 앞으로 쓰러졌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가 더 당황해서-”

“크흠. 변명은 그만 합시다.”

이신후 아저씨의 말에 지동인 아저씨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다음 질문을 했다.

“제가 다섯 용의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피해자랑 그들이 다툰 게 죄다 경찰이 있었을 것 같던데, 혹시 두 분이 간 거였어요?”

“그렇지. 만약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였으면, 그거라도 잡은 공로로 어떻게 버티는 건데 다섯 명 다 꿰었으니 우리나 명훈이나 골치 아프게 됐다.”

“피해자는 지금 상태가 어때요?”

“의식이 없어. 오늘이 고비라고 하더라.”

“흠... 혹시, 어떤 것 때문에 싸웠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첫 민원이 아마 피해자가 이사 오고 난 첫날이었는데, 그때가 한 달 전쯤이었어. 위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여자 고함에 정신을 놓을 거 같다는 말이었지. 그다음엔 영화 소리가 난다고 그러고, 어떨 땐 비린내가 너무 난다고 그러더니, 바깥에 버리는 쓰레기봉투 가지고도 신고해서, 그때부터 거의 매일 갔었다.”

“그렇게까지 신고하는데 어떻게 안 되는 거예요?”

내 물음에 답한 건 지동인 아저씨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신후 아저씨였다.

“층간소음은 제대로 증명하기도 힘들고, 증명해도 법적으로 문제없는 경우도 있다. 문제가 있어도 벌금만 물면 끝이라서 경찰이 해결하기 힘들지,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고. 그냥 생활 민원은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는 이상, 경찰은 그냥 들러리일 뿐이야.”

“그런데도 왜 나가요.”

“경찰은 범죄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방을 위해 출동 및 순찰, 감시하는 것이 중요해. 그걸 소홀히 하면 경찰 자격이 없는 거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소방관들이 장난 전화가 많아도 계속 출동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신후 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해졌다.

나도 경찰이 되면...

답답해서 내가 죽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냐?”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혹시 일주일 동안 그 집에 출동한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어디 가서 소문내면 안 되는데.”

“절대 소문 안 내요.”

“흠... 믿고 말해준다.”

“감사합니다.”

지동인 아저씨는 물통을 꺼내 목을 축인 다음 말을 했다.

“큼. 팔 일 전인가? 그때 이틀은 정말 조용했어. 우리가 오히려 그자가 죽었나 걱정되어서 슬쩍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 그런데, 일주일 전에 사건이 하나 터졌지.”

“이민성씨 집 도둑질한 거 말씀하시는 거죠?”

“어. 그거 어떻게 알았냐?”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더 자세하게 말해도 되겠구나.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현금이랑 자기가 모아놓은 시계 중 진열대에 들어가 있지 않았던 시계 하나가 도둑맞았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명훈 형사 말고 다른 강력팀 형사랑 같이 수사했었어.”

“범인은 잡았어요?”

“아니, 아직은 못 잡았어. 단지, 다음날 이민성씨가 피해자가 훔쳤다고 신고하면서 한 차례 난리가 났었지.”

여기까지는 내가 들었던 거랑 다르지 않네.

“그렇게 확신을 한 이유는 뭐죠?”

“피해자가 찬 시계가 자기 꺼라고 했었지. 그래서 우리도 제대로 수사하려고 했는데, 두 시간 뒤에 갑자기 아니라고 하더라고.”

“갑자기요?”

“자기가 잘못 봤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형사가 전에 증명할 수 없으면 무고로 오히려 잡혀 간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 거 같아.”

“아...”

“그 이후로 삼일 연속 김미화씨를 신고해서 세 번째 날에 서로 죽이겠다고 소리까지 지른 일도 있었고, 최창욱씨 집이랑 몸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가 너무 역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면서 몸싸움이 난 적도 있어. 그리고 강지훈 씨에겐 피해자가 자신을 물었다고 신고해서 죽이려고 한 일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

이민성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화가 단단히 났겠는데.

피해자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까.

“혹시 피해자 정신이...”

“아니, 병력 사항을 보긴 했는데, 그건 없었어. 물론 진찰받지 않으면 기록이 없지만... 아시다시피 경찰은 어떤 일이든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 수사권이 없거든.”

“제가 아는 사람과 똑같이 골치 아픈 인간이군요.”

이신후 아저씨의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범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그쪽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우리는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신고하지 않아도 매일 가고 있습니다.”

“그게 제일 힘든 경운데, 고생하십니다.”

“저만 고생하나요. 경찰 대부분이 겪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쩌다 사고라도 나면 그 사람 부모나 가족보다 우리가 더 혼나잖아요. 사회복지과 직원보다 우리가 더 큰 벌을 받으니...”

그 뒤로도 서로 민원에 따른 고충을 얘기하였고, 나는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귀로 흘리며 사건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차가 동네로 들어서서 비탈길을 올라갔고, 나는 비탈길 위에 노란 테이프로 둘러쳐진 건물이 가까워지는 걸 보다가 말했다.

“저기 사건 현장에서 세워 주시면 안 돼요?”

“왜?”

“범인은 알겠는데, 뭔가 맞지 않은 게 있어서요.”

“범인을 알았다고?”

“네. 확실하진 않지만, 그자가 맞는 거 같은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

“그게 설명이 잘 안 돼서...”

끼이익.

“그럼 내려야지. 사건 하나 빨리 해결되면 우리가 좋은 거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경찰차에서 나와 빌라를 바라봤다.

빌라는 반지하는 주차장, 일층부터 삼층까지 있었는데, 가운데 계단이 있고, 양 옆으로 집이 있는 구조였다.

계단 유리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열수 없었고, 우발적으로 던졌을 테니, 던질만한 곳은 옥상과 각 집 거실 창문밖에는 없었다.

옥상엔 발자국이 없었고, 그들 모두 집에 있었다고 말했으니까, 결국 거실 창문이라는 건데.

왼쪽은 삼 층부터 일 층까지, 최창욱, 이민성, 강지훈씨가 살고 있고, 오른쪽은 김미화, 피해자 권호섭, 김갑민이 살고 있었다.

아령이 발견된 위치는 우리가 경찰차로 타고 올라온 왼쪽 전봇대에 있었으니까...

역시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아.

그자가 거의 맞는데...

역시 그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가...

“대낮에 아령을 던져 죽이려고 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정말 미친놈이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빌라에서 거리도 멀어서 제대로 맞을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안 맞는다?

“그래...”

그랬던 거야!

그러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게 설명이 안 돼.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경찰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어?”

“저기 계단으로 가셔서 입구 지붕 좀 사진 찍어주실 수 있어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지동인 대신 김범 아저씨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내가 갔다 오마. 기다려라.”

“감사합니다.”

잠시 뒤.

“여기 찍어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받아들고 바라보았다.

흐릿하지만 무언가에 부딪힌 자국이 있어.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야.

내가 아저씨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명훈 아저씨에게 연락하세요.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고.”

내 말에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딱.

아저씨가 내 뒤통수를 때려서, 나는 그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왜 때려요!”

“만화 그만 보고 공부나 해.”

“진짜 범인 알았다니까요.”

“알긴 뭘 알아. 그냥 범인인 거 같은 녀석을 안 거지.”

“그게 그거-”

“아니. 많이 달라. 여긴 만화처럼 추리로 해결하는 세상이 아니야.”

“그러면 산장에서는-”

“산장이야. 변수가 거의 없는 환경이었잖아. 하지만 여길 봐라. 탁 트인 공간이고, 증언, 동기, 증거 모두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야. 섣부른 단정만큼 위험한 건 없어.”

“쳇. 그냥 단정 짓지 말라는 걸, 사람 뒤통수 때려가며 말해야겠어요?”

“예전 내 모습 보는 거 같아서 그런다. 그러다 나처럼 만년 경사로 근무하다 끝나는 거다. 알겠어.”

“우리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번엔 학생이 너무 갔어.”

다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알았어요. 그럼 이만 올라가죠.”

말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아저씨가 내 팔을 잡았다.

“그래서? 범인은 누군데?”

“섣불리 단정 짓지 말라면서요. 그냥 올라가요.”

“그건 나중에 경찰이 되고 나서고, 너는 지금 일반 시민이잖아.”

“아저씨들은 경찰이잖아요.”

“수사에 참여 안 하니까, 우리도 일반 시민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어서 말해봐. 누구야?”

“그자는....”

*ㄷ*

*ㄷ*

일주일 뒤.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진짜 범인이 현장검증을 위해 주택가로 나오고 난 이후였다.

일주일 동안, 몇 사람들은 꺼지라는 말도 하고, 뒤에서 욕을 내뱉거나 침을 뱉는 등, 나를 비난하고 모욕했지만, 그들의 사과는 들을 수 없었다.

[아니었다고? 알았어.]

[잡아간 경찰들이 잘못한 거지.]

[나쁜 놈 아니더라도 그럴만했으니까 잡혀간 거 아냐.]

[쯧쯧. 그런 거 가지고 따지기는, 너도 욕해라.]

나뿐만 아니라, 이신후 아저씨와 아주머님은 동네 계 모임에서, 할아버지도 양로원에서 여러 말들을 들었고, 그것 때문에 많이들 싸웠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뉴스나 현장검증에서, 다른 사람이 포승줄에 묶인 채 재연하는 걸 보고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선 다들 사과했지만, 그때 앙금이 제법 커서 동네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그에 반해 나와 친해진 사람들이 있다.

“어이~ 동생. 내 옷 어때? 멋지지!”

완전히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라서, 영동에서 짐을 가지고 비탈길을 올라오던 길에, 빌라에서 나온 강지훈 형이 내 앞을 막고 돌고 있었다.

노란색 코트에 안에는 검은색 상의와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에 나는 떠오르는 한 단어를 말했다.

“표지판 같네요.”

“그래 표지. 응? 표지판. 동생! 이거 동대문에서 고르고 골라서 어렵게 맞춘 거라고. 이 차갑고 시린 겨울에서 눈에 확 띄는-”

“제 짐이나 들어줘요.”

“어? 쳇. 알았다.”

내가 내민 짐을 든 그가 휘청거리다가 몸의 중심을 잡았다.

“우와. 이거 왜 이리 무거워.”

“안에 운동기구가 들었거든요.”

“너. 이걸 들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운동 삼아서요.”

“진짜 대단하다.”

“제가 대단한 게 아니라, 형이 운동 부족이라서 그런 거거든요.”

“운동 부족이라니. 나처럼-”

“오~ 수호군.”

재료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나온 김갑민 할아버지에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영동에서 올라온 거야?”

“예. 지금 장사 나가시는 거예요?”

“그렇지. 조금 있다가 이 녀석이랑 같이 내려오렴. 내가 맛난 거 해주마.”

“에이. 한 번 먹었으면 됐죠.”

“어허. 어른이 먹으러 오라고 하면 오는 거야. 무거워 보이는데 어여 올라가고.”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이따가 보자.”

내가 움직이자, 강지훈 형이 뒤뚱거리며 짐을 들고 내 옆에 따라 붙었다.

“덕분에 밥 값 굳었다.”

“성공하면 김갑민 할아버지에게 잘 해드려요.”

“당연하지. 내가 방송인으로 성공하면 아저씨 가게에 내 사인으로 도배해 놓을 거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올라가고, 나는 평생 공짜 음식을...”

이 형은 진짜 말을 멈추지 않는구나.

천천히 위로 올라가다가, 한 여학생이랑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흠칫한 교복 입은 여학생이 옆으로 살짝 비켜선다.

아마도 나를 여전히 범인으로 아는 거겠지.

부주의하게 나를 체포한 이유로, 두 경찰 아저씨는 경기도 의정부로 옮겼고, 명훈 아저씨는 사건 해결을 공으로 인정받아 간신히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어서, 현장검증 후에 잠깐 만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신 적이 있었다.

[나중에 경찰 되면 꼭 내 밑으로 와라.]

[에이. 그럴 수 있으면 이신후 아저씨 밑으로 가야죠.]

[그런가? 그럼 임대는 어떠냐?]

[왜 그러시는데요.]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말이다.]

[그게 뭔데요.]

[한 아이가 자살한 사건인데, 파란 연필로 자기 눈을 찌른 채 죽어 있었다.]

[파란 연필이라고요?]

[그래 파란 연필. 아무튼 번개탄 연기에 의한 질식사-]

“수호야?”

형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들어보니, 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에 머리 아프다고 끙끙대더니, 이번에도 그런 거야?”

“죄송해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저기, 그런데 수호야.”

“네?”

“범인이 누군지 어떻게 안 거야?”

“그 사람 밖에는 없으니까요.”

“그 사람밖에?”

“예. 우리 중에 프린트에 인쇄할 수 있고, 모두에게 제가 범인이라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는, 둘 다 가능한 사람이 그자밖에 없잖아요.”

“오~. 그럼 이미 유치장에서 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거네?”

“네.”

“동기는 뉴스에 나온 절도 신고 때문이었잖아.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바로 말하려던 순간, 머릿속으로 자신이 피해자 신고 내용을 들려준 걸 숨겨달라고 말한 지동인 아저씨 부탁이 떠올랐다.

“그자가 유치장에 들어오자마자 살짝 중얼거려서 알았어요.”

“너는 시력도 좋은 녀석이 청력까지 좋아. 너무 부럽다.”

“글쎄요. 좋지 않은 소리까지 들으면 형도 그리 좋지 않을 거예요.”

내 말에 강지훈 형의 입가에 쓴 웃음이 번졌다.

“어딜 가던지 뒷말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제 거의 다 왔네요.”

“그런데, 그자가 위협만 하려고 던졌다는 말에 넌 반대했었잖아. 왜 그런 거야?”

그건...

나는 언제 죽을지 몰랐던 피해자가 잠깐 상태가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자의 머리 위에 떠오른 검은 숫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숫자를 보고 알았다는 말보다...

“애초에 자수를 하지 않았잖아요.”

“아. 맞다! 거기서 네가 자수를 권유했잖아. 그런데 그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사과도 안 했죠.”

“맞아. 사과도 안 했어.”

“거기에 던지려다가 실수로 패대기쳐서 지붕에 떨어뜨렸는데, 우연히 튕겨서 피해자 머리를 친 거잖아요. 만약 진짜 우연이었다면, 던진 사람이 제일 먼저 신고를 했겠죠?”

“네 말이 맞아. 나라면 사람 죽는 순간 살인범이 되는 건데, 무조건 신고하고 달려갔을 거야. 이야~ 그 새끼는 진짜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거네. 더러운 새끼, 카악. 퉤.”

“네. 그래서 검사님도 제 이야기를 듣고 증인으로 신청하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찬성했어요.”

“그래. 나도 검사님이 신청했는데, 그럼 나도-”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왜?”

나는 파란 하늘에 끼기 시작한 회색 구름을 보며 말했다.

“그래봤자. 십 년 정도면 다시 나와요. 방송인이 될 거라면서요. 나중에 그 녀석이 방송국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형을 칼로 찌를 수 있어요.”

내 말에 강지훈 형이 내 앞을 막아섰다.

“박 동생.”

“네?”

“너는 내가 겁쟁이로 보이냐? 내가 이래 봬도 귀신 잡는 해병대에서 좃뺑이 치다 나온 형이야. 나도 증인으로 나갈 거다. 알았냐? 그러니 너나 증언하지 마. 내가 하고 내가 칼 맞는다. 알았어?!”

진지하게 말하는 형의 모습이 생소하긴 해도, 내 얼굴에 스치는 칼바람을 막아주어서일까?

상당히 따뜻했다.

그런데.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형! 그 옷 어디서 샀어요?”

“왜? 무슨 이상한 냄새 나?”

나는 코를 막고 형의 옷을 살펴보았다.

“네. 똥 냄새요. 잠깐 형 왼발!”

내 말에 자신의 왼발을 본 그가 펄쩍 뛰었다.

“악! 이따가 저녁에 방송에 신고 갈 신상 구두에 똥이 묻었어!”

“형! 제 짐! 제 짐에 묻히지 말아요! 형~!”

“떨어져! 똥 덩어리!”

발을 털 때마다 똥 가루가 허공에 눈처럼 휘날렸고, 그 중 하나가-

“안 돼~!”


작가의말

저녁에 똥 이야기가 올라왔군요...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숫자를 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Six* +3 19.05.21 758 18 17쪽
63 *Six* +2 19.05.20 704 19 14쪽
62 *Five* +4 19.05.19 747 21 15쪽
61 *Four* +3 19.05.18 733 19 13쪽
60 *Four* +3 19.05.17 746 22 10쪽
59 *Three* +3 19.05.16 760 18 13쪽
58 *Three* 19.05.16 743 19 16쪽
57 *Two* +2 19.05.14 773 19 10쪽
56 *Two* +2 19.05.13 812 19 14쪽
55 *One* +3 19.05.12 843 20 15쪽
54 *One* +2 19.05.11 860 20 16쪽
53 *Zero* +1 19.05.10 846 19 12쪽
52 *Zero* +3 19.05.09 831 25 16쪽
51 *Zero* +3 19.05.08 930 22 15쪽
50 *ㅅ* +2 19.05.07 909 24 18쪽
49 *ㅅ* +3 19.05.06 881 23 15쪽
48 *ㅅ* +4 19.05.05 833 23 15쪽
47 *ㅅ* +3 19.05.04 854 24 20쪽
46 *ㅂ* +1 19.05.03 841 23 18쪽
45 *ㅁ* +1 19.05.02 892 23 16쪽
44 *ㅁ* +2 19.05.01 888 25 15쪽
43 *ㅁ* +1 19.04.30 985 27 16쪽
42 *ㄹ* +2 19.04.29 943 27 14쪽
41 *ㄹ* 19.04.28 983 27 12쪽
» *ㄷ* +4 19.04.27 983 29 21쪽
39 *ㄷ* +4 19.04.26 979 23 18쪽
38 *ㄷ* +2 19.04.25 983 23 10쪽
37 *ㄷ* +3 19.04.24 970 25 13쪽
36 *ㄷ* +2 19.04.24 1,064 29 15쪽
35 *ㄴ* +6 19.04.23 1,099 35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