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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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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529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4.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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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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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19쪽

*ㄴ*

DUMMY

34.

“뭐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냈어요.”

내 말에 이신후 아저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내게 슬쩍 다가와 속삭인다.

“누군데?”

“그건... 비밀.”

“야!”

순간 소리 지르고는 주변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낸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누구야. 누군지 알아야 유사시에 대비할 거 아니야.”

“알았어요. 그 사람은...”

*ㄴ*

*ㄴ*

아저씨가 카메라를 들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네가 예측한 수법에 근거로 해서 주변을 살펴봤더니, 추가로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동영상으로 찍으시지.”

“그거야.”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었다.

“당연히 찍었지. 용량 부족해서 네 것도 썼다.”

“역시 우리 아저씨가 최고라니까. 그럼 아저씨가 할래요?”

“뭘?”

“이곳으로 오면서 나중에 휴가 쓴 거 틀기면 크게 혼난다고 중얼거렸잖아요. 여기서 자수하게 만들어서 공로로 포상금에 휴가까지 타면 사모님에게 덜 혼나지 않겠어요?”

“그거는 맞는데...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너처럼 조리 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리고 다시 포상 휴가 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네가 해라.”

“저요?”

“너 표창장이나 하나 더 늘리자.”

“어차피 면접에서나 좋지, 필기랑 실기 시험은 다르잖아요.”

“하나 더 늘리면 더 좋지. 안 그래?”

“그냥 말하기 쫄려서 그렇죠?”

“확 그냥! 잔말 말고 해.”

“알았어요. 그럼, 그 사람이 헛짓 못하게 해주세요.”

“오케이.”

대답하자마자 아저씨가 움직였고, 나도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오자마자 김민주 씨가 말을 걸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요. 혹시 무슨 증거라도 찾으셨어요?”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이리 된 거 바로 말하자.

“예. 증거를 찾았고, 범인까지 알아냈습니다.”

내 말에 모두 움찔했다.

“정말요?”

“네. 정말이죠. 제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런 거로 장난치지는 않습니다.”

“그럼... 누군지도-”

“민주님은 누군지 이미 아시잖아요.”

“네?”

불안하게 흔들리는 민주 씨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다는 옆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범인을 비롯해 다른 분들도 얼추 알고 계실 거고요.”

내 말에 범인을 비롯해 세 사람의 눈동자가 내게서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범인은 여러 증거를 남겼고, 그 증거를 토대로 누군지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지금 실토하신다면 자수로 인정되는 사항이니만큼, 범인은 손들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일 분 정도 기다린 나는,

“역시 없군요. 그래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카메라를 조작해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건, 살인 현장으로 추정되는 이백삼호와 이백이호 사이에 있던 에어컨 실외기를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발자국 자국이 있는 게 보이시죠?”

내 말에 탁자 위에 놓인 카메라를 향해 상체를 크게 기울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마디씩 했다.

“진짜.”

“자국 위로 자가 놓여 있는데?”

“발자국 크기가 이백오십에서 육십사이군.”

멀리 있어서 길이도 모를 텐데 정확하시네.

나는 백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우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강력반에서 근무한 놈이, 자까지 있는데 모르면 경찰밥 먹었다고 할 수 없죠.”

“그런 분이 왜 그만두고 짐승 목숨이나 거두고...”

“죄송합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였고, 카메라를 거둔 나는 다시 조작하면서 말했다.

“범행 수법은 간단합니다. 방마다 있는 비상 탈출용 줄을 이용해서 범인이 위에서 내려옵니다. 약속이 되어 있어서, 피해자는 문을 열었고, 그 안으로 범인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뭘 했냐면... 이걸 보시면 아실 겁니다.”

다음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줬고, 사람들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뭐야. 채찍?”

“저거 나 영화에서 본 건데...”

“그럼 멍 자국이...”

“더러워...”

“시체 손목에 난 자국도 저랬다면 이해가 되는군.”

나는 다시 카메라를 거두었다.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피해자와 가해자이니만큼, 몰래 접근해서 사랑을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아마도 두건을 얼굴에 씌워두고 목을 졸랐겠지요.”

내 말에 삼 층에 있던 세 명의 여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남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나요?”

“힘이 필요하니까.”

“당연히 남자지.”

“그럼, 게이? 으~ 난 좀 그렇다.”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사이에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전 발자국 크기를 봤을 때, 여기계신 남성 중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발이 커서 결코 실외기 위에 찍힌 발자국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럼... 범인은...”

“발이 작은 남자라면...”

사람들의 시선이 이수명에게 몰리자, 화들짝 놀란 이수명이 두 팔을 휘저으며 급하게 말했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아니에요. 저는 진짜로 그날 잤다니까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봐요. 제 몸에 멍 없잖아요.”

식스팩이 새겨진 복근을 보여주면서 말했는데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근육도 제법 탄탄하네.”

“줄도 많이 타봤으니, 내려오는 것도 문제없지.”

“때리는 사람 쪽이면 애초에 멍 자국은 하나도 없지 않나.”

“아니라니까! 정말 아니라고!”

그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나는 말했다.

“네. 그는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네. 자신할 수 있습니다.”

백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라면 충분히 위에서 내려올 수 있을 텐데요.”

“그건 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내려오는 장면이라...”

“옥상에서 줄을 타고 일직선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면, 일단 이층까지 내려간 다음 반동을 이용해서 피해자 방 창문에 가거나, 혹은 실외기에 발을 딛고, 창문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잡은 다음, 다시 다음 실외기로 이동해야 합니다. 두 방법 모두 창문에 누군가 볼 경우 걸리고, 중간에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아야 하며, 눈에 미끄러지거나, 발을 디딘 실외기가 갑자기 무너질 위험 등등 불안정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저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복도를 이용했을 겁니다.”

내 말에 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 말대로 위험하겠어. 나는 무서워서 그 짓은 못 해.”

“나라도 그렇게 할 바엔 사람들 안 걸리게 조심히 걸으면서 계단 내려가는 걸 택할 것 같아.”

이수명이 내게 감사의 눈인사를 보내온 가운데, 나는 카메라를 다시 조작했다.

“무엇보다, 다른 실외기와 옥상엔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증명하듯,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멀쩡했다.

“그러면 이곳에 발을 찍을 수 있는 건, 두 곳밖에 없잖아.”

“두 곳이라면 이 호실... 삼 호실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두 사람은 남자가 아닌데요.”

“아니야 매니저 몸이 말라비틀어진 거 못 봤어. 나랑 전에 팔씨름 할 때 여자보다도 약했었다고.”

“그러면... 진짜로 두 사람이...”

사람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배희수와 김민주.

여왕과 공주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두 분 다 여성이지만, 줄을 탈 줄 아시고, 드라마 팬인 이신후 아저씨에게 들어보니, 액션이 많아서 근력 운동까지 하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여성 보다는 손의 힘도 좋을 텐데요. 제 말이 맞습니까?”

“하지만, 두 개의 증거 가지고 저와 선배님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진 않잖아요.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아요?”

김민주 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모두 가능합니다. 세 여성분이 모두 공범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하지만 말입니다. 추가로 증거가 있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봤던 입구에서 찍은 방 내부 화면을 보여줬다.

“저기 줄이 걸려 있는 고리 부분을 봐주세요. 그리고 늘어진 정도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말에 사진을 유심히 보던 사람 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전직 경찰 출신이었던 두 사람이었다.

“같은 층 중 다르게 매어진 곳이 하나씩 있는데?”

“감긴 숫자를 세 봐, 층마다 달라. 줄의 길이가 다 같은 줄 알았는데, 다른데? 이건 어떻게 된 거지?”

“그건 우리 정남 아저씨에게 물어볼까요?”

내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박정남 아저씨에게 쏠렸고, 그는 움찔하다가 말했다.

“점검하다가 줄이 헌 것들이 있어서, 찜찜하니까, 그냥 통째로 창고에 있던 거를 가지고 바꿨습니다.”

“바꿀 때 어떻게 바꿨어요.”

“그야. 자루에 네 개씩이어서 한 층마다 놓고 바꿨지...요.”

아저씨의 말에 이치헌 씨가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범인이 줄을 쓴 다음에 헷갈렸구나.”

“아무래도 줄이 짧아서였을 거예요.”

“줄아 짧아?”

백수홍씨의 질문은 이신후 아저씨가 답했다.

“조사 결과 사층에 있는 줄은 이층에서 쓰면 딱 맞을 정도로 되어 있었습니다. 삼층에 있는 줄은 사층에서 쓰면 적당할 길이였고, 이층에 있는 줄은 삼층에서 쓰기 좋은 줄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되어 있네요?”

김민주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려는 전 산장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바로 이해되더라고요.”

“줄이 다 같은 길이로 만들면. 쓸모없는 부분이 나오니까 돈을 아끼려고 각 층에 맞는 줄을 구했다는 건가?”

박인훈 아저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박정남 아저씨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교체할 때 그냥 바로 바꾸셨을 거예요.”

박정남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알았다면 제대로 바꿨을 텐데, 운 좋게 불이 안 나서 다행이야.”

이제 다들 이해가 됐겠지.

짝.

손뼉을 쳐 다시 내게로 시선을 끌어당긴 나는 말했다.

“그걸 범인은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줄이 짧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고민했을 거고요. 그래서 범인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 냅니다.”

“묘수?”

“바로 아래층에 있는 줄에 연결하면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

“그러면 되지.”

“그래서 범인은 밑에 있는 세 명의 아가씨들에게 술을 주었고, 어떻게든 줄을 얻을 방을 비우게끔 만듭니다. 그 다음엔 줄을 얻었고, 결국 살인을 하게 된 거지요.”

내 말이 끝나고, 세 명의 여자들은 한 곳을 바라보았다.

“제게 술을 주시고, 계단에 붙어 있는 일 호실에서 먹으라고 하신 분이...”

“나한텐 환기 좀 시키라고 창문 열어 놓으라고 하셨어.”

“나는 술을 잘 안 먹으니까, 애들 좀 챙기라고...”

그녀들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줄만 바뀌지 않았어도, 어렵지 않았을 텐데... 참 운도 없어. 안 그래 학생?”

배희수.

사십 대라고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중년 여배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운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당신 방 창틀에 난 줄 자국이랑, 지금 당신 손바닥에 있는 붉은 물집 자국, 핏방울이 묻은 운동 재킷 등등. 제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경찰들에 의해서 붙잡혔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제부터 맘 편히 살아보려고 그랬는데... 그냥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나만의 환상이었구나...”

그녀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눈처럼 사라지는 꿈 같이 말이야...”

딸깍.

탁탁.

어느새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그녀였지만, 산장 주인인 박정남은 물론이고,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 했다.

“후~”

그녀 옆에 앉아 있던 김민주 씨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역시, 어제 제가 상담했던 내용 때문에...”

민주씨의 머리에 손을 뻗은 그녀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애야. 단순히 그것 때문에 정의감이 솟구쳐 올라 그런 건 아니니 죄책감은 가지지 말렴. 그냥 내가 놈에게 화가 나서 그랬을 뿐이야...”

그녀의 남편이자, 왕 역할을 맡은 박인훈 씨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그랬는지 말은 해줄 수 있습니까. 누님.”

“후~ 너는 알고 있겠지. 놈이랑 내가 어떤 사이인지.”

“네... 모를 리 없죠. 제가 누님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해외 원정 도박으로 놈에게 협박만 당하지 않았어도 누님을 도와드렸을 텐데. 죄송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어린 시절, 민주씨처럼 고왔을 때, 놈에게 속아 몸도 주고 인생도 맡긴 내 잘못이지. 그리고 놈이 애초에 약점 잡힌 여배우들이랑 자려고 발정난 걸 모르지 않았으니... 내 업보가 돌아왔다고 생각해. 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민주씨 소지품에 어울리지 않은 콘돔이 들어가 있었던 걸 떠올렸다.

밤에 쓰레기가 협박에 겁먹은 민주씨가 상담을 했고, 그걸 들은 희수 씨가 분노해서 쓰레기를 죽였다는 거구나.

사건 전말이 어떻게 된 건지 추측하며, 나는 주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 계속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의 숫자는 여전하지만, 조금씩 검게 차오르는 희수씨의 머리 위에 숫자에 나는 그녀의 몸을 훑었다.

그리고 조금씩 품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왼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신후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1


아저씨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슬쩍 점퍼 왼쪽으로 앞을 가리고 아저씨만 볼 수 있게 오른손으로 가슴을 매만졌다.

내 신호에 아저씨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숫자가 완전히 검게 변하기 직전.

나는 아저씨의 손이 그녀의 팔 근처로 도달한 것을 보고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꺅!”

“지금 무슨 무례한 짓 입니...”

박인훈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려다가, 그녀의 왼손에 잡혀 있는 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저씨와 손을 뻗음과 동시에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은 이수명씨가,

“놔! 이거 놓으라고!”

몸부림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매니저의 거짓말 때문에 제가 학력 위조한 사실이 걸릴까 봐 두려워 자살하려고 할 때 저보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악물고 견디라고, 그러다 보면 살아진다고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저까지 죽는 거 보고 싶으세요!”

그의 말에 몸부림치는 걸 멈춘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 으아아아...”

비명.

아니 그녀의 울음소리가 산장을 가득 채웠다.

잠시 지켜보던 아저씨는 그녀의 울음이 진정되자 수갑을 꺼냈다.

철컥.

“벌을 달게 받고 새 사람이 될 생각을 하셔야지. 이렇게 도망치시면 안 됩니다.”

“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렇게 범인은 은빛 수갑을 손목이 묶였다.

그 뒤로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가 계속되면서 회색 숫자는 사라졌고, 그렇게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끝이 나게 된다.

*ㄴ*

*ㄴ*

나는 서울에 있었다.

정확히는 이신후 아저씨 집, 옥탑 방에 있다.

“후~”

역시 서울 공기는 탁해.

그냥 다시 내려갈까.

삼 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서 학원도 다녀가며 공부해야한다는 이신후 아저씨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는데, 이렇게 탁한 아침 공기가 내 목구멍에 들어올 때마다 살짝 후회하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그냥 경찰이 되어도 서울 말고 지방에서만 돌다가 은퇴할까.

숫자만 안 보이면, 경찰보다는 선생님 하며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도 좋은데-

“어때? 춥지는 않아?”

고개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비를 들고 있었다.

“괜찮아요. 근데 그건 뭐예요?”

“우리 마눌님이 너 먹으라고 주는 된장찌개다. 네가 나를 도와줘서 포상금 탔다고 말하니까 바로 끓이더라.”

“그걸 왜 말해요.”

갑자기 아저씨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왜긴. 부부 사이에는 다 말해야 하는 거야. 말하면서 생기는 싸움이나 아픔은 있겠지만, 대신 서로의 믿음이 유지되는 게 중요해. 나중에 사랑이 사라지면 믿음밖에 없다. 늙어서 이혼당하고 홀아비 되기 싫으면 내 말 꼭 기억해.”

평소엔 실없다가도 이럴 땐 반박하기 힘든 말을 한다니까.

휘이잉.

매서운 겨울바람에 진지했던 아저씨의 표정이 와장창 깨졌다.

“으~ 춥다. 뭐해 어서 문 열지 않고.”

“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뒤따라 들어온 아저씨가 가스레인지에다 냄비를 올려놨다.

“먹으면 씻지 말고 내려줘라, 저거 뚝배기라서 퐁퐁으로 씻으면 클 난다, 알았어?”

“알고 있어요. 잘 먹을게요.”

“그럼, 난 우리 새깽이들 바래다주러 가본다.”

“네. 가보세요.”

“오냐.”

아저씨가 나가고, 나는 열린 방문 사이로 삐져나온 메모장을 보고 얼어붙었다.


정말 미친놈의 일기.


보지 못했겠지?

에이 봤으면 바로 보려고 하셨겠지...

이러는 김에 전에 못 쓴 일기나 써볼까.

나는 방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산장 살인 사건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여배우가 자기 매니저와 불륜 관계였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박인훈 씨는 원정 도박, 이수명씨는 학위위조를 실토해 자숙하겠다는 말을 했고, 김민주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는 걸 협박당했다는 말과 함께 노예보다 심한 계약서를 공개했다.

민주씨를 제외하고는 주연들이 모두 하차 하면서 날벼락을 맞고 추락하는가 싶던 사극은, 조연에 불과했던 세 여인의 멋진 액션 연기를 바탕으로 부활하더니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사람일 정말 모른다더니...

최고의 스타들이 추락하고, 그녀들이 최고 스타가 되어 티비 광고에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내가 선생님이 아닌 경찰이 되기로 한 것도 그렇고.

이렇게 이신후 아저씨 옥탑방에 머물 줄이야...

[마치 눈처럼 사라지는 꿈 같이 말이야...]

문득 한순간에 불륜녀에 살인자가 된 배희수씨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라 맴돌았다.

[내 업보가 돌아왔다고 생각해.]

눈, 꿈, 업보.

과거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

과거에 내가 꾼 꿈들이 숫자로 인 해 경찰로 바뀌었다.

그리고 앞으로 과거에 내가 한 일들이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내 꿈을 이룰까?

아니면 갑자기 숫자를 보는 내 능력이 사라져 경찰을 포기할까?

단,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가만히 있어봤자 죽도 밥도 안 된다.


이거 하나는 알고 있다.

이거 하나는...


작가의말

하나를 알면 뭐하나... 

둘을 알아야지.


둘을 알면 뭐하나...

셋을 알아야지.


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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