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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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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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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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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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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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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0화 6월 항쟁 (5)

DUMMY

“일단, 경찰 측 입장은 다시 강경진압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당국도 봉쇄를 장기화하여 성당에서 알아서 내보내게 하는 쪽이었는데, 신부님들이 저렇게 강하게 나오시니까 선회 한 것 같습니다.”


‘미친놈들. 성스러운 성당 앞까지 최루탄을 쏴 대니까 그렇지. 신부님들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이젠 경찰 얘기만 나오면 자동반사로 욕이 튀어 나오려고 한다.


따지자면 모두가 전두안 잘못이고, 징계를 감수하지 않는 한 항명을 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그들에게 인간이길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징계조차 선택할 수 없는 징집 병들만 불쌍할 뿐이지. 그나저나..



“저, 그리고 총재님. 여기..”


‘그래. 나는 솔직히 지금, 저게 더 문제인 것 같아. 저게..’



나의 상념과는 상관없이, 김무석이 심각한 표정의 YS에게 오늘자 일간지들을 건네줬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제 저녁 김무석이 언급했던 그 감당할 수 없다는 친구, 바로 나의 기사들이 실려 있었다.


한율이를 끌어안고 연대 정문으로 향하는 모습과 백골단들을 상대로 쇠파이프를 늘어뜨리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로이탑 통신의 정태운 기자에게 의도적으로 찍게 했던, 성공회 대성당 종탑에서 태극기를 들고 절규하는 나의 모습도 함께였다.



“이기 뭐꼬? 박종천의 증인.. 저항의 철성. 이한율의 방패.. 백골단 저성사자?”


‘미친다. 그새 또 뭐가 이렇게..’



하나하나 신문들을 넘겨보는 YS와 그런 YS와 나를 번갈아 보는 사무실 안의 시선이 피곤하다.


비록 내가 바라던 바였고, 의도했으며, 나름 계획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젠장. 좀 과한가?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과해진 것 같기도 하고.. 에잇! 시절 탓이다. 시절 탓.’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나는 이제 나만을 바라보는 YS와 사람들을 향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을 수 없는 민망함에 힘을 준 입 꼬리가 파르르하게 떨렸다. 그런데 그때.



“푸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YS가 그 민망한 침묵을 깨드리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와마.. 이기 이기.. 으하하하하!”



뭐가 저렇게 웃긴 걸까. 신문기사와 사진들을 다시 살피며, 나를 번갈아 보는 YS의 두 눈이 하회탈 같다.



“험! 흠.. 국장님아. 니 커피 두 잔 타가 올라오그라.”



YS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의 말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커피를 준비했다.




***




잠시 후, 민추협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서 나는 YS에게 커피 잔을 건넸다.


그가 전경들에게 새까맣게 둘러싸인 건물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주핵아. 니 아나? 내가 와 니더러 성공회성당으로 가라 켔는지? 여, 여 봐라. 이기 아주 중요한 뽀인트데이. 이래 너처럼 이슈에 힙쓸리지 말고, 이슈를 만들어야 칸다, 이 말이다. 그기 싸움꾼이고, 그기 마, 호랭이 아니겠나?”


한동안 말없이 커피만 홀짝이던 YS가 나를 향해 신문을 흔들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성공회 대성당에는 제가 간다고 했거든요?’



나는 YS를 향해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섣부른 호응으로 얻을 건 없으니까.



“그래. 마, 어데 함 보자! 니가 호랭이 새낀지, 고양이 새낀지. 니, 내리가가 바로 맹동으로 가라. 아마도 맹동성당이 이 싸움의 수위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 기다.”



이럴 때의 YS는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결심할 때 나오는 무표정함 같았다.



‘근데.. 싸움의 수위를 결정한다? 그러려면 저항의 수위를 만드는 외부압력의 수위 먼저 확인해야.. 엉?! 허! 이 양반 이거, 전두안이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릴 계엄카드를 염두에 두고 있구나! 그저 그런 강경진압이 아니라, 전국적인 계엄령 얘기다! 확실히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성공회보단 명동성당이 국제사회의 반응을 살피기엔 적합하다. 한국가톨릭의 상징인 명동 성당을 바티칸에서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까.’



나는 물끄러미 YS를 바라봤다.


역사대로라면 계엄은 없다. 말했다시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정세가 그렇고, 군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나또한 이 부분만큼은 마음 편하게 장담할 수가 없다.


이미 나로 인해 역사의 주요한 장면들이 소소하게 바뀌고 있음은 물론, 6월 항쟁의 전체적인 시간대도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완성되는 역사에서 전두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너무 위험한 변수다.


하물며 그 위험천만한 변수가 수백만의 목숨이 걸린 명령권을 쥐고 있다면, 그것을 어찌 허투루 넘길 수 있을까.



‘가만, 근데 지금 거길 나보고 가라는 건.. 하. 이 양반이 정말!’



맞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 전두안의 저의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나라는 장기 말의 가치와 쓰임새를 다시 이슈로 증명하라는 거다.


경찰력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명동성당의 운명이 향후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척도가 될 테니, 국제사회와 국민들에 대한 전두안의 판단을 읽고, 할 수 있으면 대응해 보라는 거겠지.



“그라고 주핵아. 잊지 말그레이. 니캉내캉, 우리는 성직자 아이다! 그라믄. 때를 놓치지 말아야제. 가라! 마, 가서. 그 판 잘 얻어 묵고 온나!”



YS가 자신의 빈 커피 잔을 받아드는 나에게 기어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염병. 삐끗하면, 어찌될지도 모르는 판에 뭘 잘 얻어먹으라고.. 쳇! 뭐, 그래도 일단 역사대로면 계엄은 없다. 없으니까.. 근데 설마, 이번에만 다른 건 아니겠지? 안 된다. 이번만은 절대, 절대 역사와 달라지면 안 된다. 썅.’



잠시 멈칫하여 YS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그의 잔과는 달리 출렁거리는 나의 커피 잔이 보였다.


문득, 할 수 만 있다면 나에게서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했던 겟세마네의 예수님 얘기가 생각났다.


전생의 우리 어매가 사람은 누구나 다 고민하고, 갈등한다며 해주었던 그 얘기가.




***




같은 날, 6월 11일 오전 11시.


민추협 사무실을 빠져나온 나는YS의 말대로 전경들이 철통같이 원천봉쇄한 명동성당 인근에 도착했다.


사방에서 지휘관들로 보이는 경찰들이 신속하게 무전을 주고받으며 현장을 살폈고, 그에 따라 병력들이 중·소대 규모로 빠르게 이동하며 방어선을 보강했다.



“호헌철패! 독재타도!”



익숙한 구호들 속에 성당 들머리에 연좌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보였다.



“화륵! 화르륵!”



그리고 연좌한 그 시위대 앞에선 전두안과 노태후, 로날드 레이언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쓰인 허수아비들이 불타올랐다.


아마도 저 화형식은 현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과 이를 광주에서부터 묵인한 미국에게 보내는 그들만의 확고한 의지이리라.


그런데 그때.



“삐익!”


“퍼벙! 퍼버버버버벙! 퍼벙!퍼벙!”



어디선가 들려온 호각 소리와 함께 전경들의 무차별 최루탄 난사가 시작됐다.



“착!착!착!착! 착착착착!”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방패 벽이 열리며, 백골단을 비롯한 천여 명의 체포조가 달려들었다.



“쿵! 쿵! 우지근! 휙! 쿠당탕!”



전경들은 학생들이 명동성당 앞, 좌우 50여m에 세워둔 바리케이트를 들어올리고, 집어던져 부숴버리며 성당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콜록! 콜록! 케겍.. 피, 피해! 모두 다 성당 안으로, 안으로 피하십시오!”



학생들이 다급히 명동성당 안으로 피했다가, 어느새 성당 앞 바닥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반격했다.



“빠각! 휙! 휘리릭! 퍽! 화르륵!”



순식간에 명동성당 일대가 최루탄과 화염병 연기로 자욱해졌고,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성당 안의 바닥과 그 외벽까지도 엉망이 되어가던 그 때.



‘그래. 지휘관들 입장에선 저 화형식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그러니까 윗선들 볼세라, 저 지랄일거고. 근데, 나는.. 나는 말이다, 이 타이밍이 왠지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인 것 같아. 같은데.. 하. 니미, 방금 도착했구만, 또 뛰어야겠군!’



나는 자욱한 연기와 혼돈을 틈타 스미듯 성당 내로 진입을 했다.



“엄숙한 성전에 들어와 최루탄을 난사하는 경찰에게 다시 한 번 강력히 항의하며, 천주교회는 성당 안에 들어와 있는 시위 학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후, 명동성당 김명도 주임 신부는 성당 외곽에서 마이크를 집어 들고, 다시 한 번 경찰을 향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전두안과 경찰의 강경진압이 천주교회와 농성학생들의 연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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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설계된 엔딩 (2) 23.05.26 151 5 9쪽
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8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4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8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4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0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1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4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7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3 8 10쪽
8 7화 시국사범 (3) +2 23.05.13 336 11 10쪽
7 6화 시국사범 (2) +1 23.05.12 356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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