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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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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4,795

작성
23.05.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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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7화 6월 항쟁 (2)

DUMMY

몇몇을 제외하곤 자세히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다.


하나같이 치약을 눈 아래 바르고 손수건으로 복면을 만들어 쓴 연대 총학생회의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그새 어디서 만들어다 붙였는지, ‘한율이를 살려내라!’는 스티커를 온 몸에 붙이고 있었다.


치약과 눈물, 거기에 덕지덕지 붙인 스티커까지.


복면 때문에 얼핏 과격한 시위대 같아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조금 웃겼다.


마치 얼굴에 뭔가를 대단히 잘못 그려 넣은 누더기 인디언처럼 말이다.



“형님이 부의장이시니까 어쩔 수 없었겠네요. 뭐, 한율이의 뜻도 그럴 것이고. 형님. 그보다 지금 여기 서대련 학우들이 얼마나 모여 있습니까?”



나는 우상우의 입장을 이해했다.


의장인 이원영이 검거된 상황이라면, 부의장인 그가 서대련의 시위대를 이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5백 정도 될 거야. 사실, 서대련 방침은 지도부가 다 딸려 가면 안 되니까, 나도 학교에 머무는 거였지만. 그건 한율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상우가 말끝을 흐렸다.


충분히 그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나도 진심만큼은 그와 똑같으니까.



“좋아요. 그럼. 혹시 플랭카드나 피켓 같은 거 있나요? 시위는 제가 앞장 설 게요.”



나의 질문에 한 쪽에 쪼그려 앉아 있던 여학생이 우상우보다 먼저 뭔가를 들어 보였다.


직접 쓴 현수막과 피켓들이었다.



‘어? 근데, 쟤는..’



연대 총학생회실에서 나에게 재킷을 건네줬던 그 막내 선전이다. 겁이 많아 아직 시위 현장에는 안 나올 것 같았던 그 녀석 말이다.



“아니야. 같이하자. 그렇지 않아도 이대로는 동력들이 흩어져서 오래 못갈 것 같았어.”



우상우가 특유의 우직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도 나처럼 때를 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좋습니다. 갑시다!”



나는 우상우에 앞서 전경들을 살피며 대로로 향했다.



‘그래! 이들과 함께 거리에 선다. 6월 항쟁이 승리한 곳마다 나의 흔적을 분명히 남겨야하니까!’




***




“아까 성공회 성당에서, 마지막에 너였지?”



대오를 정비하여 골목을 나서던 선두에서 우상우가 내게 물었다.



“네. 멀어서 잘 안보였을 텐데, 용케 알아봤네요?”


“후훗. 그 찢어지는 목소리를 알아들었지. 그게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선 잊혀지지가 않거든. 덕택에 산발적으로 흩어지기만 하던 학우들이 좀 더 빠르게 모여들었다. 고생했어.”



나보다 나이도 어린 친구가 이럴 때보면 꼭 형 같다. 그냥 좀 이렇게 쭈욱 늙어 주면 좋으련만.



“형님. 이제 그 모인 학우들을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할 시간입니다. 가시죠!”



나는 우상우의 말에 답을 하곤 서둘러 대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손목시계가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사보다 한 시간이나 빨라진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거리의 시간이다.


앞으로도 장장 6시간 가까이 전경들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세를 불릴 것이다.



“독재정권 살인정권, 종천이를 살려내라!”


“의도적인 조준사격, 한율이를 살려내라!”



나는 먼저 시위대의 가슴을 두드려 주는 구호를 외쳤다.


서울대성당의 종탑에서처럼, 지금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성명서 만큼이나, 가슴을 치는 분노와 절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나를 따라 달려온 학생 500여 명이 순식간에 십여 줄의 종대를 만들고, 구호를 외쳤다.



“기만적인 체육관 선거, 직선제를 쟁취하자!!”


“호헌 철폐! 독재타도! 전두안을 끝장내자!!”



내 곁으로 따라 붙은 우상우가 그나마 이성적인 구호를 외쳤다.



- 호헌철폐! 독재타도! 한율이를 살려내라! -



연대 총학생회의 막내 선전이 쓴 현수막 앞에서 우리는 외치고 또 외쳤다.



“콰콰콰콰콰쾅! 과과과과쾅”


“퍼벙! 퍼벙! 퍼버버버벙!”



괴물 같은 페퍼포그를 따라, 대로 반대편에 아예 진을 친 방패벽 뒤에서 무자비한 최루탄이 난사됐다.



“잡히지 마십시오! 흩어졌다 다시 모입니다!! 최대한 산개해서 근방에 대기합니다! 제가 다시 여러분을 부르겠습니다!!”



나는 벼락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 하던 학생들이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했다.


학생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다급히 나의 목소리를 앞에서 뒤로, 뒤에서 옆으로 전달하며 흩어졌다.


최루탄 쏘는 소리가 터지자마자 전달된 나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백골단보다 좀 더 빨리 움직이며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적인 여유가 학생들에게 보다 가깝고 안전한 은신처를 찾게 만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종천이를 살려내라! 한율이를 살려내라!”


“독재정권 살인정권! 전두안을 몰아내자!!”


“콰과과과.. 콰콰콰콰쾅!”



롯데 백화점에서 신세계 백화점으로, 다시 롯데 호텔에서 퇴계로, 을지로로, 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잡히지 말자! 흩어져라! 때가되면! 철성을 듣자!”



학생들은 그새 영악하게 우리의 움직임을 구호처럼 외치며 흩어졌고, 나의 목소리에 다시 모였다.



‘좀 더 정보를 효율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나는 우상우에게 서대련의 발 빠른 학생 수십을 부탁했다.


전경들이 눈치 채기 전에 충분히 거리를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우상우는 시위대의 연락책을 담당할 서대련 학생들을 모아 시시각각 거리의 정보들을 수집해줬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헌법 쟁취하자!”


“나로부터 결의결사, 직선제를 쟁취하자!”



쉴 새 없이 달리고 외쳤다.


나를 따라 시위대가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시위대의 숫자는 5백에서 천, 천에서 2천으로 늘어갔다.


또한 내가 이끄는 시위대가 전경들의 집중을 유도하면, 그 반대편엔 어김없이 다른 시위대가 그 숫자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4시 20분. 주저하던 시위대들이 이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 뒤엔..’



서대련의 정보에 따라, 남대문 시장에서 서울역까지 밀리는 척 교란을 하던 그때였다.



“현장 지휘차량 근처에 숨어있던 학우들한테서 들어온 정봅니다. 백골단에서 우리 연락책하고, 철성 씨 전담 체포 조를 꾸렸답니다.”



연락책을 총괄하던 학생 한명이 나와 우상우에게 다가와 긴급히 전했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저들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철성씨는 좀.. 아우 정말 미치겠네.’



나는 내 속내와는 달리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형님. 그럼 이제 여기 시위대는 형님께 부탁합니다. 저는 몸을 숨기면서 위쪽으로 합류할게요. 아무래도 저들이 저를 찾을 때는 이쪽부터 뒤질 테니까.”



그리곤 우상우에게 지금의 시위대를 부탁했다.



“후후. 그래. 근데, 뭐 어차피 끌려가봤자, 이젠 경찰서고 파출소고 잡아둘 공간도 없다는데, 뭘.”



사실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이미 시위를 위해 나와 있던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닥치는 대로 연행을 하던 경찰서와 파출소는 터지기 일보직전이 아니라, 이미 터졌다고 봐야했다.


연행된 학생들이 경찰서와 파출소 밖으로 밀려나, 하는 수 없이 다시 시위대로 합류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요. 일단 싸움은 밖에서 하는 게 기본입니다. 아, 그리고 연락책들도 이제 그만 합류하라고 전해 주세요. 학우들도 이제 움직임에 익숙해졌는데, 괜히 잡혀서 좋을 것 없습니다.”



우상우가 나의 의견에 입술을 단단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 씨.. 그나저나 대체 오늘 얼마나 뛰는 거야?’



다시 시청 쪽으로 달리는 나에게 언뜻 연대 총학생회에서 준비한 전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고문, 물고문, 이번에는 최루탄 살인! 우리의 착한 친구 이한율을 살려내라! 사랑한다. 그대, 이한율! 등의 구호가 빼곡한 전단이었다.




***




내가 다시 시청 인근에 도착한 때는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걸어서도 40여 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전경들을 피하고, 우회하며 달렸던 탓이었다.



‘이게 대체..’



달려오는 내내 보았던 모습처럼, 시청주변 곳곳에도 투석전이 있었는지, 온통 깨진 보도블록들 천지였다.


여기저기 도심 한 복판을 자욱하게 메운 최루가스는 이젠 빠지지도 않았다.



“콰과과과과과쾅! 콰과쾅!”



그저 전경들이 또 다른 발포 소리를 들으면서, 눈앞의 최루 가스를 없애기 위해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댈 뿐.



“타다다닷! 첨벙! 첨벙! 타다다..”



군데군데 흐르는 물들과 그 고인 웅덩이를 밟고 나면, 사방으로 각종 시위 용품들과 화염병, 시위자들이 흘리고 간 신발들과 찢어진 전경방패들이 보였다.


전경들은 연신 물을 뿌려대는 한 편, 곳곳에서 수많은 유인물들을 모아 불태우며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다.


종로1가에서 6가까지.


거의 모든 대로가 그야말로 폐허처럼, 전쟁터처럼 황량해 보였고, 여전히 전경들과 시위대의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헌법! 쟁취하자!”



게다가 언제부턴가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한 시민들은 직업도 복장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부님들과 스님들은 물로, 목사님, 학생, 아줌마, 아저씨들이 속속 시위대를 응원하거나 합류하며 세를 보탰다.


그들은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었거나, 주변의 상가의 상인, 그도 아니면 시청 앞을 무정차로 통과하던 버스와 택시를 세워 내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뎅! 뎅! 뎅! 뎅!..”



오후 5시 40분이 되자,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6월 10일의 본 대회를 알리는 42번의 타종이 다시 시작됐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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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8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4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9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4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0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1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4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7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3 8 10쪽
8 7화 시국사범 (3) +2 23.05.13 337 11 10쪽
7 6화 시국사범 (2) +1 23.05.12 356 10 11쪽
6 5화 시국사범 (1) +1 23.05.12 417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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