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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3,006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5.19 08:30
조회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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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0쪽

19화 아! 이한율!!(5)

DUMMY

‘이런, X팔 악마 같은 새끼!!’



교란. 교란이다.


연이은 최루탄과 체포조 백골단의 등장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학생들을 마지막까지 한명이라도 맞혀 죽이기 위한 양동 작전.


내가 생각해 낸 방패가 변수였을까. 아니면,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시위를 초전박살 낼 생각이었나.


내 생각은 거기서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한율이가 어느새 내 곁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썅..’


- 퍼벙! 퍼버버버벙! 펑! 펑!.. -



뭐라고 말을 건넬 틈도 없었다.


내가 한율이의 존재를 깨달음과 동시에 빌어먹을 진압대가 세 번째 최루탄을 발사했다.



“이한율! 숙여!!”



나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고.



‘빠각!’



막았다. 한율이 앞에서. 다행히 한율이에게 향하는 최루탄을 내가, 내가 막았다.


그래, 막은 줄 알았다. 태어나서 그토록 간절했던 적이 없었기에 정말로 난 막은 줄 알았다.



- 풀썩! -



하지만 한율이는 쓰러졌다.


내가 막은 것이 한율이에게 향했던 두발 중에 한 발이었나 보다.



‘젠장! 젠장! 젠장!!’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순간이 바로 내 앞에서 무참한 현실이 되어 벌어졌다.



“왜지? 왜 이렇게.. 야! 야, 이 새끼야!! 한율아! 이한율! 형이다! 임마! 정신 좀.. 좀!!”


“형. 뒤통수가 아파. 나 괜찮아?”


“어엉? 어.. 어, 그럼! 괜찮아, 너 괜찮아. 괜찮고말고..”



나는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방패를 집어 던지고, 내 셔츠 팔뚝을 뜯어 한없이 늘어지는 한율이의 머리를 감았을 뿐.


그저 반사적으로 길 건너를 살피며 한율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고.. 정문으로, 정문으로 움직였을 뿐.



“형! 주혁이 형!”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소크 대원들과 함께 하면서 안면을 터둔 황장군이었다.


문득 나는 길 건너의 그 개새끼와 진압부대를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다시 백골단이 나오고 있었다.



“장군아. 잠깐만 한율이 좀 부탁할게. 바로 연대병원 응급실로 가. 한율이.. 지금..”



염병. 눈물 때문에 말을 맺을 수 가 없다.


장군이가 그런 내 맘을 다 알아들었는지, 한율이를 들쳐 업고 뛰기 시작했다.


나는 한율이를 장군이에게 업혀주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여기저기서 쫓기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을 쥐 잡듯이 두들겨 패는 백골단이 보였다.


눈이 뒤집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온 몸이 차갑게 식은 적은 없었다.


무심히 손목시계를 풀어 시간을 봤다. 오후 4시 40분이었다.


시계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변을 둘러 마땅한 뭔가를 찾았다.


한율이가 여기까지 꼭 쥐고 들어온 쇠파이프 한 개가 보였다.


나는 그 쇠파이프를 들고, 누군가 한쪽에 내팽개친 손방패에서 현수막 끈을 풀었다.


쇠파이프를 단단히 묶어 내 손에 고정했다.


그리곤 미친놈처럼, 전경들의 저지선으로 달렸다.



‘그래, 언제나 어떤 개새끼들이건 좀 더 한다는 놈들이 있지.’



나는 백골단에게 둘러싸였다.


하지만 전생에 죽을 때까지, 또 이생에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눈 돌아간 적이 없다.


싸움은 이성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봐. 형.. 눈 돌아갔다, 이 씨벌 놈들아!”


‘타다다다닥! 우웅.. 웅!!’



기억이 안 난다.


어매가 시장 바닥을 박박 기면서 처 맞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살풀이가 있다면 이런 거겠지.



‘근데, 니미.. 정말 짜증나는 건, 내가 지금 추고 있는 칼춤은 원래 니들을 위한 게 아닌데.. 니들이 뭔 죄냐. 무슨 죄가 있어서.’



이것들을 지휘하고 있던 그 개새끼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두들겨 맞으며 발악했던 나도 어느새 체력이 다해 한쪽 무릎이 꺾였다.



“허억.. 헉.. 허억..”



그렇게 쇠파이프를 지팡이처럼 꽂아 들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위는 참혹한 폐허와 같았다.


십 수 명의 백골단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겁에 질려 다가오지 못하는 십 수 명은 여전히 내 앞을 막고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다 귀찮아져서 그만 하려고 대가리를 내줬다.


마치 전쟁에서 패한 장수가 상대의 칼에 목을 길게 늘어뜨려 주듯이 말이다. 그런데..



“선배! 형! 선배!!”


‘염병.. 니들은 또 뭐냐?’



장군이와 소크 대원 십여 명이 백골단에게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겨누고 나를 끌고 간다.


우리와 대치 한 채 기회만 노리던 백골단들에게 쫓지 말라는 듯,무전을 보내는 그 개새끼가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쥐똥만큼도 힘이 없다. 힘이. 그래도..



“장군아. 한율이는.. 한율이는 어떻게..”



나는 한율이의 상태에 대해서 물었지만, 답을 듣진 못했다.


나 또한 그쯤에서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




병상에 누운 나는 무심코 TV를 바라봤다.



“1987년 6월. 군사독재에 항거한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지만, 정작 항쟁의 주역들은 제대로 된 평가와 예우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뭐지?’


“정부가 6.10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전태인 열사와 이한율 열사의 어머니, 박종천 열사의 아버지 등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보도에 이상미 기자..”


‘3.. 33주년?’


“정부는 오늘 오전 10시,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인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개최된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나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내 양손을 뻗어 펼쳤다.


주름 가득한 내 양손 손등이 전생에 있었던 손목의 상처와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꾸.. 꿈인가?’



나는 다시 천천히 내 얼굴을 만졌다.


손끝으로 거칠고, 주름 가득한 피부와 나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굵은 콧수염이 만져졌다.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일들은 대체..



“이 자리에서 이제 유일한 생존자이며, 이한율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순 여사는 ‘33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 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한율이.. 그래서 한율이는..’



머리가 부서질 듯이 아팠다.


지금 이것이 꿈인지, 아니면 내가 있던 1987년이 꿈인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



“오늘부로 마음 탁 털어버리고 세상 살아갔으면 좋겠어. 30년 넘게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으면 됐지..”


‘왜 TV에 나오던 한율이 어매가 내 눈앞에..’



나는 내 앞에서 내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한율이의 어머니를 황망히 바라보다가, 끝내 고개를 떨궜다.


미친 듯이 몰려오는 회한들이, 그 죄책감이, 내 영혼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처음엔 그저 생때같은 목숨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내가 다시 살아나면서 이미 빼앗아 버린 것 같은 김주혁의 목숨에 더해, 살릴 수도 있는 또 한 목숨을 외면하는 게.. 그게 꼭 내가 죽이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크흐흑..”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속내를 주어 삼켰다.


솔직히 되살아난 인연에 이끌려 결심도 하고, 나아가 싸우기도 했지만, 그 밑바닥엔 이번 생만큼은 주인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못나고 이기적인 내 욕심들이 권력욕만큼이나 끈적하게 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내 욕심을 위해서라도 세상은 바뀌어야만 했고, 바꿔야만 했다.


박종천군의 죽음에 목이 터져라 외치고 증언하면서, 한율이를 살리겠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그토록 기를 쓰면서, 나는 깨달았고, 그렇게 물들었나 보다.


적어도 사람이라는 건 고통 받는 누군가의 감정에 연민을 느끼는 게 본능이고, 그것을 입장 바꿔 헤아려 보는 게 정상이다.


그런 걸 공감능력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래. 그게 있어야 누군가와 소통도 하고, 그 소통이라는 걸 할 수 있어야 그 잘난 민주주의도 할 수 있는 거다.


몰아치는 상념에 한참을 한율이 어머니에게 안겨 울다 보니 이상했다.


팔순이 넘어보이던 한율이의 어머니가 어느새 내 나이를 넘어 중년이 되는 것 같더니,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진해서 그냥 자는 거라니까요. 포도당 들어가고 있으니까,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겁니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소린가?


아니면 천정? 분명히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떠드는 것 같은데.



“정말이요? 후..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한율이 형 때문에 난린데, 이 형마저 잘못되면..”


“가벼운 뇌진탕 증세는 있는데, 워낙 사람이 무식하게 강골이라서 아무렇지도 않을 겁니다. 여기저기 멍이야 들겠지만, 걱정 마세요.”


‘한율이.. 그래, 한율이! 그리고 이건 내 얘기가 맞다.’


“끄응!”



순간 나는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펼쳐진 내 두 손은 24살의 김주혁, 역시 1987년의 내 손이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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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8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4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9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4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1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1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4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8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3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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