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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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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2,999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5.16 08:30
조회
270
추천
9
글자
9쪽

13화 태풍 속으로(4)

DUMMY

“형제님, 괜찮으세요?”



김승운 신부님이었다.



“아, 예. 뭐.. 별일 아닙니다.”



나는 짜증을 감추기 위해 애써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신부님이 그런 나를 잡아주곤, 잠시 정문 아래로 전력질주 하는 그놈과 저놈을 바라봤다.


나는 신부님 곁에 나란히 서서 툭툭, 마저 옷을 털었다.



“저.. 그래도 당분간은 이곳에 머무시는 게 어떨까요? 이제 형제님께도 밖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그새 내게로 시선을 옮긴 신부님의 두 눈에 걱정이 가득하다.



‘어.. 너무 애틋하신 거 아닌가? 쩝. 누가 보면 오해하겠네.’



그래도 모름지기 성직자는 이런 분이셔야 한다. 암.



“괜찮습니다. 뭐, 신부님만큼 든든한 빽은 아니어도, 저도 이제 꽤 괜찮은 빽이 생겨서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신부님의 어깨 뒤로 보이는 성당을 올려봤다.



“네?.. 아~. 하하하하!”



신부님이 내 시선을 따라 하느님처럼 솟은 성당을 뒤돌아보곤, 이해 한 듯 금방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대체 진범들은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로서도 보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그게.’



주머니 속에서 아침에 나올 때 할망구가 퉁명스럽게 던져준 메모가 부스럭 거린다.


며칠 전, 나는 그저 할망구한테 내가 잡혀있었을 때 남영동 현장 수사관들의 인사이동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할망구는 단지 그걸 알아봐 준 거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다.



“실은 제가 이달 초부터 민추협(민주화 추진 협의체)의 대학 조직국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사례도 있고 하다 보니..”


“아, 그 김영산 총재와 김대종 의장의..”


“예, 예. 그 민추협 맞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상 당시 수감 중이던 동하일보의 해직기자 이부용에게서, 교도관들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막후라 불렸던 김종남에게, 진실이 전해진 것은 3월이었다.


그 김종남이 편지 내용을 토대로 박종천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정리하여 성명서 초안을 완성한 것이 4월 초.


김종남은 그 초안을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회에게 전달하기 전, 먼저 김영산 총재 측에 전달했었다.


전달받은 이들은 나중에도 YS와 DJ의 측근으로 5선에, 6선 국회의원을 역임. 장관도 하시고, 국회부의장도 하신 김덕령, 홍오덕 님 되시겠다.


정치인 개개인의 평가야 역사가 하겠지만, 분명한 건 지난 4월에 김종남은 그들을 통해 민주통일당이 국회에서 그 성명서를 발표해주길 바랬다는 것이다.


민주통일당 측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 라는 말로 김종남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저 외부 유출을 막아 보안을 유지해줬다는 것 정도가 의리라면 의리였겠지.


어쨌든 내가 민추협 내부의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알게 된 내용들은 여기까지다.


따라서 민추협을 통해서 내가 진범을 알았을 거라고 예상하신 신부님의 생각은 틀렸다.


그건 위대하신 우리 할망구의 정보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민추협으로 우리 할망구를 감추고, 보다 소상한 과정과 또 다른 진상을 확인한 건 맞다.


때문에 나는 진범의 이름만으로 내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믿고, 민추협만으로 그 과정을 납득한 신부님의 반응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한 거다.


아,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하면, YS와 DJ의 정당인 민주통일당과 그들의 재야 정치 조직인 민추협은 적어도 그들이 단일화에 실패하기 전까진 한 식구였다.



“그렇다면야, 뭐..”



무거운 짐을 떠넘긴 민추협 얘기에 불편해 할만도 하건만, 신부님의 표정엔 안도감마저 흘렀다.


아니, 뒤늦게나마 YS와 DJ가 힘을 보탰다고 오해했거나, 내 빽을 민추협으로 오해한 걸 수도 있다.



“근데, 정말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이젠 형제님이 가만히 있으려 해도 저들이 형제님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살얼음 같은 내 상념들이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러운 신부님의 목소리에 사라져 간다.



‘아, 참..’



고맙다. 이런 것들로 머리 복잡한 거, 정말 싫다.


그리고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빽이 누군지는 좀 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후후.. 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죠. 신부님이 성당에서 만.들.어. 주신 제 빽은 아직은 좀 더 제가 필요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나가야 하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일들도 있을 것 같네요.”



신부님이 나의 담담한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자신의 발표와 이를 나르는 신문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길 국민적 분노와 열망이 내 빽이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형제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언제든 피할 곳이 필요할 땐, 찾아오세요.”



신부님이 답하고, 이번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차피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도망쳐 올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은 신부님 빽이 제일 든든하니까요.”



나는 공손하게 김승운 신부님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곤 정문을 향해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는데..



“아, 저.. 저쪽으로..”



그런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부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돌려 세웠다.



“네? 아, 아하.. 넵. 감사합니다.”



내 차례인가? 나는 잠시 이유를 몰라 신부님의 의중을 살피다가, 이내 그 뜻을 이해하곤 민망하게 웃었다.


그저 가벼운 장난처럼 뒤돌아선 나에게, 정문 반대편으로 눈여겨봐야지만 알 수 있는 험난한 길이 보였다.




***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종철이를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쟁취! 호헌철페! 독재타도!..”



경찰관 2명으로 축소 조작하여 꼬리를 자르려던 신군부의 도덕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새롭게 밝혀진 진실 앞에 여론은 폭발했고, 야당과 재야운동권은 고문 살인 은폐 조작을 규탄하는 대규모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5월 27일 향린교회에서, ‘민주 헌법쟁취 범 국민운동본부’, 약칭 범국본이 결성되어 그간 분열되어 있던 민주 세력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범국본은 6월 10일, 신군부의 정민당(정의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 날에 맞춰, 박종천 고문치사 사건 은폐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였다.


각 대학에서도 시위의 열기가 불붙어 5월 말, 학생들이 뭉쳐 종로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시위에는 이전과 달리 일반 학생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뿐만 아니라 종로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드러누워 집회를 하다 경찰들이 체포하려 하자, 시민들이 항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사랑하는 동생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후배였습니다. 저도 아버지 어머니라 불렀던, 부모님들의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착하고,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 네! 종천이는, 종천이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 박종천 열사여. 아! 박종천 열사여!! 종천이는 열사가 되었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저 독재의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 그 잔인하고 참혹한 고문의 공포 속에서! 사무치게 외로워하고! 절절하게 그리워하며! 종천이는 열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 그가 우리에게 부치지 못한 그 편지의 내용을! 그건 아마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였을 겁니다. 당신이.. 아니, 우리가 필요합니다!! 였을 것입니다!”



나는 모든 시위의 한복판에서 쉼 없이 마이크를 잡고, 쉼 없이 소리쳐 증언했다.


내 목이 쉬고 터져, 결국에는 피를 토할 때까지, 그 순간 순간만큼은 진심에 진심을 다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포효는 이제 시작된 6월의 복판에서 거대한 태풍과 함께 공명하기 시작했다.




***




“계엄이라켔나?”



1987년 6월7일 오후.


일촉즉발로 6월의 용광로가 끓어 터지기 직전이었다.


YS 김영산의 목소리가 민통당(민주통일당) 총재실에서 묵직하게 울렸다.



“네. 그 자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겁니다. 이미 광주에서 겪어봤지 않습니까?”



훗날, 4선에 장관까지 역임하게 되는 YS의 최측근 김동룡의 대답이었다.


범국본 회의에 참석하기 전, 의견과 일정을 조율하던 민통당의 확대 최고위(최고위원회) 자리였다.



“흠. 아니오. 못할 겁니다. 광주 때와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다릅니다. 우선..”



이번엔 민추협 창립당시 DJ 김대종을 대신해 공동의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김상연이었다.


그가 가택연금으로 참석치 못하는 DJ의 자리를 한 번 더 대신하고 있었다.


DJ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55번째 가택연금이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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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15 동백부
    작성일
    23.05.16 09:53
    No. 1

    재밌게 잘 봤습니다. 흥미로운 시대물이네요. 저도 공모전에 참가 중인데요.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제 글도 읽어봐 주시고 도움 될 만한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한산(韓山)
    작성일
    23.05.16 21:02
    No. 2

    감사합니다. 지금은 너무 낡은 얘기가 되버린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픕니다만, 우직하게 한 번 써보려고요. 작가님도 건필하시길 바라면서, 지금 보러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as*****
    작성일
    23.05.17 18:46
    No. 3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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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8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4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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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0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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