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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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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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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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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9화 6월 항쟁 (4)

DUMMY

이날, 마산 종합 운동장에서 치러진 한국 A팀과 이집트 간의 경기는 동시간대 진행된 마산 6.10대회와 맞물려 최루탄 연기가 경기장에 난무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잦았던 시위 탓에 최루탄에 익숙했던 한국 선수들과 관중들은 큰 동요가 없었지만, 이집트 선수들은 어땠을까?


명색이 국제대회에서 경기를 하던 다수의 이집트 선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터진 방송사고 이후, 성난 관중들의 행보였다.


사실 이때만 해도, 국제경기에 객석을 채우고자 관중들을 동원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때문에 가뜩이나 강매에 의해 티켓을 구입하고 자리를 채우던 관중들은 환불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는데..


1천여 관중이 2시간여 동안 그라운드를 점거하고, 일부는 운동장 사무실을 습격해 기물까지 파손하다가, 몰려나오는 2만여 관중과 함께 최종적으로 6.10 대회의 시위대와 합류해버렸다.


아마도 시위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을 것이다.



“인천 쪽도 심상치 않십니다. 그 왜 송갱표씨랑 박진석씨 있잖십니까? 85년도에 대원차 부팽공장 노사분규를 주도했던..”


“하모. 안다. 그 송갱표가 아마도 한국대 기계과 출신이지?”


“야, 맞십니다. 거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가, 넝숙하게 시위대를 규합하면서 현재 시위대의 숫자가 수천을 육박한다 캅니다. 갱찰들이 전담 체포조까지 꾸려가 열을 내고 있다는데, 어데 잡겠십니까?”



보다보다 YS보다 사투리가 심한 사람은 처음 본다. 그래도 두 사람만큼은 편안하겠지.



“몬 잡는다. 그기 다 나라에서 세금 들여가 달랜시킨 우리 인재들 아이가. 인재들.”


‘단련이다. 달랜 아니고, 단련..’



나는 여기저기 바쁘게 보고를 받고 있는 YS의 곁에서 물끄러미 그의 모습을 보며 기회를 엿봤다.



“마, 그라고! 이래 하믄 이거 내가 다 우째 알아먹노? 일단은 큰 사고 아니믄, 대략적인 숫자만 말해라. 아, 글카고.. 지금 서울 시청은 어떻다 카드노? 관건은 아무리 그래도 서울이다. 서울!”



흐름을 읽는 YS의 눈동자가 비상하게 움직인다.


지금 저 머릿속에선 무슨 계산이 돌아가고 있을까?



“7시를 조금 넘긴 지금, 전체적으로 서울의 시위대 숫자는 2만을 조금 넘긴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문제?”



고개를 끄덕이던 YS의 눈매가 가늘어 졌다.


지금 상황에서 문제라면, 필시 누군가가 크게 다쳤거나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또 누가 죽었다는 얘기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최루탄을 쏘던 전경들이 여기저기서 시위대에 잡혀 집단구타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과열된 학생들의 짓 같은데.. 헬멧이나 방패, 최루탄 발사기 같은 전경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무차별적으로 보복을 하는 것 같아서..”


‘읭? 허.. 난 또, 뭔 얘긴가 했네. 괜히 긴장했잖아. 쯧!’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울리지 않게 깡패새끼가 그새 새가슴이 다 되었나보다.



‘가만. 근데, 이건 내가 더 잘 아는 얘기다!’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오면서 한두 군데 그런 상황을 목격하긴 했지만, 함께 있는 시위대가 그걸 가만 두지 않습니다. ‘비폭력.’이나, ‘하지마.’를 외치면서, 자체적으로 자정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염려치 않아도 됩니다.”



나이스한 타이밍에 들어간 내 대답에 YS가 고개를 돌려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어, 우리 국장님 왔나? 그래. 니 성공회 대성당 일은 내 다 들었다. 참말로 장하데이. 아니, 거가 어데라고 그래 들어가 성명까지 발표를 했노? 그, 나중에 들어간 범국본 사람들도 다 우리 국장님이 넣어줬다 아이가. 맞제?”



이 양반은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요샌 그저 나만 보면 싱글벙글이다.



“아, 예. 늦었습니다. 대성당 일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고요.”



그래도 나는 YS의 호의에 성심성의 것 화답을 했다. 어찌됐건 당분간 그는 내게 대단히 중요한 디딤돌이니까.



“아참, 근데 그건 또 무신 말이고? 국장님 니가 거리상황은 우째 알고 있냐 그 말이다.”



YS는 얘기의 맥락과 핵심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그가 그 오랜 정치역정을 헤쳐 온 주요한 무기 중에 하나이리라.



“인천에 송경표씨랑 박진석씨가 있었다면, 서울에는 단연코 김주혁 국장이었습니다. 서울 시내 시위 현장 정보들은 대부분 김국장이 서대련을 통해서 만들어 놓은 연락책들로부터 들어오고 있거든요.”



나를 대신한 누군가의 말에 나와 YS의 고개가 저절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현 민주통일당 총무국장 김무석.


민통당의 창당과 함께 현재의 민통당 당사를 홀로 사다시피 마련한 인물로서, 37세의 나이로 가장 어린 축에 드는 인물이다,


타고난 금수저에 현세그룹 현정원 회장의 외삼촌이자, 그 유명한 캐리어 노룩 패스의 주인공.


훗날, 그는 박통의 딸이 대통령으로 있는 보수여당의 당대표로서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거물 정치인이 된다.


물론 그건 내가 없고, 본래의 역사대로만 진행될 때의 얘기이다.



“우리 총무국장님도 왔나? 그래, 근데 니는 또 그걸 우째 아나?”



YS가 김무석을 바라보는 눈길이 남다르다.


하긴, 작고한 그 아버지 김영주 때부터 돈독한 사이인데다가, YS의 실질적인 자금줄 역할을 했던 사람이니 당연했다.



“총재님도 참. 어떻게 알기는요. 내일 아침 신문 보십쇼. 용칠이 사건 때 알아보긴 했지만, 우리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친구를 들인 것 같으니까.”



김무석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황상, 그는 그의 재력을 업고 지속적으로 언론사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던 같다.


그렇다면, 내가 서울의 거리에서 해온 일들을 모르지는 않을 터.


아마도 그는 우리 연락책들만큼이나 촘촘하게 취재의 열기를 더해가던 신문사들로부터 그 사실들을 주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무엇보다 김무석, 저 친구의 표정이 불길하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힘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내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치아라, 마. 사내가.. 와? 니, 니보다 어린 주핵이가 치받으니까 기분 나쁘나? 몬났다. 참말로..”



이외의 말이었다. 아니. YS의 계산된 말이었을까?


YS는 단숨에 우리들의 관계를 정리했다.



“에이.. 총재님. 기분이 나쁘다니요. 지금 같은 시기에 김국장 같은 인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면서.. 여하튼, 언론사들에서 확인한 사실은 김국장이 성공회 서울 대성당 이후, 망설이던 서울 시청의 시위대를 조직적으로 규합했다는 겁니다. 마땅히 박수 받고, 칭찬해 줘야한다, 이 말입니다.”



YS의 표정이 누그러진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걸까.



“그래, 마. 이 김영산이가 그 정도 인물도 몰라 봤긋나? 잘했다. 다 잘했어! 그라고 느그들은 이 흐름을 잘 보그레이. 이 판은 이제 하나님이 와도 몬 뒤집는데이.”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YS의 눈빛은 딴 세상에 가있다.


오로지 김무석. 저 인간만이 나를 향해 웃고 있을 뿐.


그래. 안다. 너라는 인물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뛰어난 놈인지.


아마도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너는 그 YS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주장을 굳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역사는 바뀌기 시작했고, 나는 그 중심에 있다.



‘넌 그동안 뭘 했는데?’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다음날.


민추협 사무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어차피 단식 중이라,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인류 최대의 난제는 넘어갔지만, 김무석이 예고한 신문기사와 어제 밤사이의 서울 상황이 녹녹치 않았던 탓이었다.



“뭐라꼬? 결국은 아들이 맹동성당에 갇힜다고?!”



역시나 시작은 우렁찬 YS 김영산 총재였다.



“네. 총재님. 어제 밤 9시 쯤, 학생들이 2차 집결지로 결정한 명동성당으로 수백에서 시작한 시위대가 천명 넘게 물밀 듯이 몰려왔답니다. 성당 안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학생들이.. 학생들이 그래도 여기가 ‘해방구’라고 하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지가 감격하는 걸까. 하긴, 이 시절에 누구인들 당연한 거겠지만.



“신부님들이 그랬답니다. 성당은 원래 해방구라고. 그래서 ‘강제 진압은 예수님께 총부리를 들이대는 것과 같으니, 가톨릭교회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라고..”



전하는 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빛이 한없이 불안하다.


밤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게다가 김무석 저 인간은 결국 제 손으로 신문들을 들고 왔다.


그것도 종류별로 골고루 4부씩이나 되는 것 같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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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설계된 엔딩 (2) 23.05.26 151 5 9쪽
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7 5 9쪽
»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4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8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4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0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1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0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4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7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3 8 10쪽
8 7화 시국사범 (3) +2 23.05.13 336 11 10쪽
7 6화 시국사범 (2) +1 23.05.12 356 10 11쪽
6 5화 시국사범 (1) +1 23.05.12 417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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