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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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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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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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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6화 6월 항쟁 (1)

DUMMY

의기충천. 한 바탕 큰일을 치러낸 직후였지만, 변함없는 전두안의 목소리에 사목관의 분위기가 한없이 무거웠다.



“본인은 어떤 경우라도 불법과 폭력 그리고 선동으로 우리의 공동체 자체를 파괴하는 사태를 용납할 수 없으며, 정치권 밖에서 폭력으로 혼란을 조성하는 일은 평화적 정부교체를 방해하는 행위로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단호히 대처할 것입니다.”



사목관의, 아니 국민들의 이런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전두안은 끝까지 우리의 모든 저항을 철저하게 짓밟겠다고 협박했고, 노태후는 반드시 내각제 합의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빈 깡통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리곤 무려 1시간 동안 임성운의 사회로 조연남, 조영필, 이선이, 정수나 등의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재꼈단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어,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어.. 저마다 누려야할 자유가 언제나 넘쳐나는 곳..”



라디오 앵커가 정수나의 ‘오! 대한민국’에서 그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며, 그래서 감개무량하기 짝이 없다며 호들갑을 떤다.



“쳇! 이건 완전히 해볼 테면 어디 한 번 해봐라, 네요.”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마음을 유세춘 위원이 기가 막힌 듯 뱉어냈다.



“저들로서도 이젠 그냥 밀어붙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제풀에 꺾이길 바라는 게 전부일 겁니다. 그나마 믿는 구석이 있다면 계엄일 텐데..”



광주 때의 트라우마 같은 걸까? 계엄에 대한 나의 언급에 어르신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도 그렇고, 국내외 상황 자체가 광주 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니까요.”



민통당 수뇌부의 분석처럼, 객관적으로 계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에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국을 읽고 판단하는 통찰력만큼은 그들 또한 누구보다도 탁월한 분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 그보다.. 선생님들. 제가 나가면서 주위를 끌 테니, 지금 이 흐름대로 남은 범국본 선생님들을 마저 모셨으면 합니다.”



나는 어른들이 안도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제안을 했다.


12시의 성명 발표 이후, 움직임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에 전경들의 경계태세가 조금은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퍼퍼퍼퍼벙! 퍼벙! 퍼벙!”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먼 최루탄 소리가 더 바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성명 발표에 고무된 시청 인근의 시위대들이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서울 대성당을 과도할 정도로 촘촘하게 둘러쌌던 다수의 병력들이 속속 그쪽으로 충원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아직은 병력이 많네. 자칫, 자네가 위험해 질수도 있어.”



박형기 목사님의 말에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신부님들 얘기 들으셨잖아요. 이제 여섯 분만 더 진입하시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 판국에 잡혀도 젊은 제가 잡히겠습니까? 연로하신 우리 어르신들이 잡히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어른들을 안심시켰다.


12시의 발표 이후, 나의 제안에 따라 종탑에는 번갈아 가며 성당 주위를 살피는 젊은 신부들이 있었다.


수시로 올라가서 내 눈에 들어오는 범국본 분들의 진입을 도울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을 눈 삼아 내가 전경들의 이목을 분산시켰기 때문이었으니까.


사목관의 사람들도 그런 나의 용의주도함을 모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엔..



“타다닷! 쾅!”



방패 벽이 가장 약한 곳을 찾아 담장 위에서 뛰어내리며, 내 온 몸을 포탄삼아 등으로 부딪혔다.



“자, 잡아!!”



저들이 무너져 당황하는 사이. 최대한 저들과 ‘나 잡아봐라’로 시간을 끌며, 봉쇄선을 흩뜨려놓았다.


거추장스러운 방어구들을 잔뜩 착용한 저들은 나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미끼로 전경들의 이목을 돌리고, 모여 있던 여섯 분의 범국본 관계자들을 성당 내로 진입시켰다. 그리고.



‘6시 본 대회는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저 때문에 역사의 시계가 좀 더 빨라진 것 같아서요.’



좀 더 정신없게 출몰하며, 전경들의 혼을 빼기 시작한 시위대에 힘입어 나는 봉쇄의 허를 찔렀다.


그건 전경들이 밀집한 시청까지의 최단거리를 그들이 시위대에 동요할 때마다 생기는 빈틈을 이용해 내달리는 것이었다.


서울지방 국세청 남대문 별관 옆을 지날 때, 문득 성당으로 진입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던 영국대사관이 생각났다.




***



몇 시간 전.



‘여기서 뭐 합니까?’


대사관의 경비 병력은 피했지만, 어쩌다 딱 마주친 그 사람.


내가 한율이를 안아 올리던 그 시점에도 도와줄 생각보단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던, 로이탑 통신 한국지사 사진부장 정태운 기자였다.



‘기자님이야 말로, 여기서 뭐 하십니까?’


나는 긴장됐지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저야, 뭐.. 저희 본사가 영국이다 보니..’



그의 몸을 밀치며 함께 몸부터 숨겼던 내게 그가 건넨 말이다.


그는 정부당국의 보도통제를 풀 방법을 찾기 위해 대사관에 들린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괜찮습니다. 기자님은 안타까워도, 그렇게 진실을 알리는 게 기자님 일 아닙니까.’



여기까지 얘기 했을 때였다.



‘아, 저.. 그러면 기왕 오신 김에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12시 쯤, 이곳 성공회 종탑에서 범국본이 중요한 성명을 발표할 겁니다. 제가 그것 때문에 지금 성당으로 들어가려는 건데.. 기록해주시고, 알려주십시오. 지금 서울 대성당은 완전히 고립됐습니다. 누군가는 이 성명을 국민들에게 알려줘야만 합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정태운 기자에게 두 눈을 이글거렸다.


어차피 범국본의 주요 인사들에게 단체로 눈도장을 찍는 것이 내 계획이었지만, 거기에 보태 역사에 없는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길 기회였으니까.


고맙게도 보다 좋은 앵글을 위해서, 저 국세청 남대문 별관의 옥상을 선택해 준 건, 정태운 기자의 빛나는 직업정신 덕이었다.




다시, 현재.



“타다다다다다..”



시청 쪽을 향해 달리는 내 발소리가 경쾌했다.


어차피 6월 항쟁은 거리에서 이기고, 제도 정치에서 패하는 역사.


그렇다면 제도 정치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 하나씩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가는 나의 뜀박질이 결코 헛되지는 않으리라.




***




“그쪽! 그쪽에도 백골!”



누군가가 소리치면 학생들은 그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퍼버버벙! 퍼버버버버벙!”


“척!척!척!척!..”



골목마다 시위를 위해 나온 학생들로 대만원인데, 전경들은 쉴 새 없이 최루탄을 쏘고, 백골단을 풀어 학생들을 연행하느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투탕.. 푸쉬..”



손으로 던지는 사과탄은 이제 던지면 던지나 보다 할뿐,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렇게 롯데와 신세계 백화점 뒷골목에서 새어나오는 최루 가스들이 대로까지 뿌옇게 잠식할 즈음.


대로로 진출하려는 일부 학생들을 향해 기존의 최루탄과는 격을 달리하는 굉음이 터졌다.



“콰과과과쾅! 콰과과과과쾅!!”



페퍼포그. 최루탄 발사차량.


저 괴물 같은 놈은 한 번에 64발의 지랄탄을 하늘로 쏘아댄다.


게다가 땅으로 떨어진 지랄탄은 눈으로 쫓기도 힘들만큼 미친 듯이 바닥을 몸부림치며 가공할 만한 최루가스를 내뿜는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안 보이 자욱한 연기가 죽음처럼 사방으로 깔렸다.



“켁! 케겍.. 콜록!콜록!콜록..”



학생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기침을 해대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다.


하지만 아직은 초여름이고, 그나마 낮이어서 다행이다.


덥고, 습하고, 이슬이나 안개가 낀 상황이면, 지랄탄의 최루가스는 흩어지지도 않고, 온몸에 들러붙는 살상무기와 같기 때문이다.


저 망할 것들을 겪어본 사람들이 군대의 화생방 훈련에 다소 실망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다.



“헉.. 헉.. 카악! 퉤!”



누군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 옆으로 몸을 숨기며, 코를 훔치고 분비물을 뱉었다.



“주혁아!”


‘읭? 누구..’



나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그 학생을 유심히 바라봤다.


복면 아래로 휴지를 덧댄 마스크를 다시 귀에 거는 학생.


눈 밑으로 치약을 발라 최루가스를 버티고 있던 학생은 연대 총학생회장 우상우였다.



“나다. 우상우.”


“어, 형님. 어떻게 여길.. 아, 한율이는요?”


“한율이는 김창수 대장하고 다른 학우들이 잘 지키고 있어. 어머님도 그 옆으로 병상 하나 잡아서 쉬시도록 했고.”


“그래도 형님은 거기 계셔야..”


“그래. 알아. 나도 원래는 그 쪽에 있었어. 근데, 의장님이 연행되는 바람에..”



우상우가 얘기하는 의장이란 아마도 서대련(서울지역 대학생 대표자 연합)의 이원영 의장일 것이다.


고범대 출신의 전 통일부 장관, 4선의 제 1야당 전 원내대표가 되는 그 친구 말이다.


나는 그제야 우상우의 주위를 둘러 봤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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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설계된 엔딩 (2) 23.05.26 151 5 9쪽
34 33화 설계된 엔딩 (1) 23.05.26 164 5 9쪽
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9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4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9 7 10쪽
»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5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1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2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5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11 10화 태풍 속으로(1) +1 23.05.14 318 10 11쪽
10 9화 시국사범 (5) +3 23.05.14 318 9 11쪽
9 8화 시국사범 (4) +1 23.05.13 323 8 10쪽
8 7화 시국사범 (3) +2 23.05.13 337 11 10쪽
7 6화 시국사범 (2) +1 23.05.12 356 10 11쪽
6 5화 시국사범 (1) +1 23.05.12 417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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