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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님의 서재입니다.

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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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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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2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5.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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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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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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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 시국사범 (4)

DUMMY

박종훈.. 그래.


처음 들었을 때부터 왠지 나도 전생에서부터 아는 놈 같았다.


이 새끼는 바로..


하.. 맞다.


나는 이 시대의 순수한 청년들이 어떤 부침 속에서 어떻게 이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인들로 자랐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나는.


그들이 어떤 행보를 보이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다 각자의 신념과 입장에 따라.. 는 지랄이고.


냉정하게 말해, 너나 할 것 없는 그 끈적한 권력욕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 있으니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소위 재야에서 노동운동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도지사 출신의 김만수가 그랬고.


절절히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타는 갈증을 노래했던 시인 김지상이 그랬다.


지난날의 영광과 치열함이 무색할 정도로 다른 길을 갔던 그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조차 이유가 있었다. 그나마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유가.


그게 나와도 너무 잘 맞는 천박한 이유여서 쪽팔리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비난할 수 없었지.


하지만 박종훈. 너는 아니다.


너는 최소한 22살 박종천의 죽음에 의리를 다했어야만 했다.


그의 죽음이 아무리 시대 탓이고, 그놈의 반제국주의 반파쇼, 민족 민주화.. 니미, 썅. 뭐가 이렇게 길어!


어쨌든, 니들 말대로 그 투쟁을 위한 숭고한 헌신이었다면 더더욱.


그 원흉들과 붙어먹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임마. 이런 건 목숨 같아서, 하나를 잃으면 그냥 전부를 다 잃는 거야. 이 병X 새끼야.’



하.. 자꾸만 욕이 튀어 나온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기억이 나네. 내가 이번 생에서 그 친구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넌 우상우라는 친구가 이한율 얘기하면서, 우리 둘은 선택권이 없다던 그 말을 잊지 말아야 했어.


나 같은 깡패 새끼도 그 정도 의리는 있거든? 썅.. 있나? 있겠지.


나는 진이 빠졌다.


아마도 이게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정확하게는.. 후.. 김주혁, 니가 가고 싶었던 길이었겠지.


나는 지금 저 새끼나 우상우 이상으로 너에게 의리를 지켜야 할 타이밍이고.



“종천이 얘기는 신문에서 봤다. 나도 이 지경인데.. 괜찮냐, 너?”



녀석은 내가 이런저런 상념으로 말이 없자, 당연히 박종천 군 때문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새끼가 지금, 지도 눈깔이 시뻘게 가지고는 누구를 위로한다고.. 하, 그래도 꼴에 선배다?’



생각조차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나도 끌려갔었어. 남영동. 종천이 흔적 치우느라, 하루 만에 풀려났지만.”


“안다, 네 하숙집 그렇게 된 거 봤거든. 그래서 몸은 괜찮고?”



녀석의 표정이 진심 그 자체다. 미안함과 걱정만이 가득한 얼굴.



“난 괜찮아. 다행히 한 바퀴밖에 안돌아서. 전기 공사 쳤던 뒤꿈치만 조금 욱신거리는 정도?”



나는 그들의 언어로 답을 했다.


이 당시 학생운동의 대부분이 민청련(민주화운동 청년연맹)과 연관이 있었고.


초대 민청련 의장이었던 태근이 형님이 구속된 것도 수배중인 박종훈과 마찬가지로, 한국대의 비공개 지도조직 민추위(민주화 추진 위원회) 사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행됐던 태근이 형님의 고문사건은 이미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자 전설.


우리는 자연스럽게 고문에 대해 그런 표현들을 쓰고 있었던 거다.



“그래? 그래도 몸 잘 챙기자. 종천이, 종천이 몫까지..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녀석이 운다. 의연한 척 하느라 소리는 그저 울먹이는 정도지만, 이미 얼굴은 눈물범벅.



‘썅노무 새끼가 뭐가 이리 멀쩡해? 게다가 왜 질질.. 에이,ㅆ..’



너무 반듯해서 더 화가 난다. 새끼.. 기왕이면 그 눈빛 그대로 늙을 것이지.



“내 걱정은 마. 그보다 형은 이제 어쩔 건데? 종천이 때문에 남영동은 물론이고 안기부까지 발칵이야. 뭐, 그래서 당분간 대놓고 하는 감시는 좀 덜 하겠지만. 뒤에서 따는 덴 장사 없잖아.”



그랬다. 뭐 하나라도 더 터지면 군부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대놓고는 아니어도 숨어서 수배자들을 쥐 잡듯이 연행해 갈 거다.



“흠.. 일단, 신국당(신국민주당) 당사로 가자. 거기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봐야지. 아, 참. 넌 어쩔 건데? 아니, 그보다 이건 다 뭐냐? 이러면 어딜 가도 무사통과긴 하겠다만. 대체 이걸 다 어디서..”



지 코가 석자면서 걱정해 주는 건 고맙다만.. 새끼, 말이 길다.



“어, 그냥. 뭐.. 그럼 신국당 당사로 간다. 난 원래 가려던 곳이 있어서.”


“어? 훗. 그래. 일단 그리로 가자.”



궁금하기도 하련만, 나의 엄청난 변화에도 녀석은 더 묻지 않았다.


아직까진 녀석도 순수했고, 이 시절의 청년들은 이렇게 사람을 믿었나보다.



“근데, 주혁아. 그게 뭐든.. 우리 변하지는 말자.”



녀석은 나의 차와 복장에 대해 그 정도로 끝냈고.



‘조금 변하는 거 정도야, 뭘..’


“그래. 형도.. 아니,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선은 넘지 말자.”



나는 녀석의 미래에 대해 그 정도를 보탰다.


그리고 나는 녀석을 그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으로 그의 젊음에 대한 도리를 다 했다.




***




신국당 당사 앞에서 구입한 전국 도로교통 지도를 들고, 물어물어 경북 경주으로 향했다.


그곳에 내가 전생에서부터 한 번 쯤은 꼭 다시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가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도착한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혐오시설이라는 말에 떠밀려 한적했다.



- 경주 교도소-



지랄. 이름표 한번 참 크다.


나는 접견 신청을 하고 잠시 기다렸다.


물론, 엉망진창인 시골 길을 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책을 뒤지며 달려온 값은 받아야겠기에.


신청서 밑에 50만 원짜리 다발을 숨겨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숨긴다고 숨겨질 부피는 아니었지만, 그건 교도관들의 몫이니까.


접견 신청을 한 뒤, 채 10분이나 되었을까?


주말에는 접견이 안 된다고 거품을 물던 교도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월에 4번. 회당 10분. 동일인 연속접견 불가 방침은 어차피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아..그러니까, 후배님이시라고..”



나를 마중 나온 건 무려 교도소 소장이었다.



“아, 예. 그냥 후배고요.. 여기..”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차에서 가지고 온 신문을 덮어 300만 원을 밀었다.



“어, 흐.. 흠! 원칙상, 이런 특별 면회는 변호인들이 판사의 재가를 얻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저.. 근데,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신지.. 에잇! 아닙니다. 일단, 만나 보시지요.”



세상에 너무 친절하시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새천지 교회 형제님인 줄 알았네.



“아, 저.. 그리고 접견하는 건..”



나는 소장에게 귓가를 가리켰다. 혹시라도 엿들을 생각이라면 그러지 말라는 경고였다.



“아, 예에~ 예.”



역시나 찰떡 같이 알아듣는 우리 소장님.


나는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100만 원짜리 다발 하나를 더 건네줬다.


그랬더니, 소장이 번쩍이는 금이빨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그가 나를 안내한 곳은..


흠. 돈이 좋긴 좋다.


무려 자신의 집무실인 소장실이다. 거기다가 어디서 가져 왔는지, 나름의 술상까지 봐뒀다.


비록 음료수 병에 담긴 소주와 소소하게 말린 포들이 전부였지만. 경험 상, 교도소에서 이 정도면 명나라 사신 접대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기다리는 내게 얼마지 않아 기다렸던 그 분이 들어왔다.


근데, 왜 저런 모습일까? 염병.




***




‘하.. 86년의 그 모습은 내 착각이었나? 망할, 볼만하긴 무슨..’



다리를 절면서 힘겹게 소파에 앉는 형님의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하긴, 고문이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양반이 그 추운 옥사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 들었으니.



“누구십니까? 내 기억에는 없는 후배 분이신데.”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


더불어 형님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끈기와 약하지만 분명한 적의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곳에 차려진 술상과, 이 시간의 접견.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양을 한 내가 문제겠지.


나는 형님이 나를 살피는 것만큼이나 물끄러미 형님을 바라봤다.


다행히 눈빛만큼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 눈빛이다.


비록 몸의 회복속도는 쫓아오지 못해도, 몸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던 의지의 조각들은 찾아낸 걸까?


만약 그렇다면.


평생을 안고 살았던 지독한 고문의 후유증까진 아니더라도, 우선은.. 우선은 그걸로 됐다.



‘쩝, 그나저나 형님이 나를 믿지 않으니, 어쩐다..’



나는 문득 전생의 나와는 별로 상관없던 술상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차분하게 형님의 종이컵에 술을 따라 올렸다.


형님이 말없이 그 잔을 바라보다가 몸을 기울인다.


형님이 잔을 드는 사이. 내가 형님을 향해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대 산악부(민주화 추진위원회의 암어) 배후로 구속되신 건데, 현 집행부 간부를 몰라보시면 안 되죠. 선배님.”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신뢰와 존경을 담아 속삭였다.



‘형님. 저 태춘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라는 말은 꾹 참고.



그런데 순간, 멈칫하며 물러앉는 형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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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 6월 항쟁 (7) 23.05.25 172 6 9쪽
32 31화 6월 항쟁 (6) 23.05.25 163 6 10쪽
31 30화 6월 항쟁 (5) 23.05.24 169 5 9쪽
30 29화 6월 항쟁 (4) +2 23.05.24 175 6 9쪽
29 28화 6월 항쟁 (3) +4 23.05.23 181 6 9쪽
28 27화 6월 항쟁 (2) 23.05.23 189 7 10쪽
27 26화 6월 항쟁 (1) +1 23.05.22 195 8 9쪽
26 25화 6월 10일 (5) 23.05.22 202 8 9쪽
25 24화 6월 10일 (4) 23.05.21 193 7 11쪽
24 23화 6월 10일 (3) +1 23.05.21 210 7 12쪽
23 22화 6월 10일 (2) 23.05.20 202 8 11쪽
22 21화 6월 10일 (1) 23.05.20 228 8 10쪽
21 20화 아! 이한율!!(6) +1 23.05.19 227 7 9쪽
20 19화 아! 이한율!!(5) +1 23.05.19 221 7 10쪽
19 18화 아! 이한율!!(4) +3 23.05.18 224 7 9쪽
18 17화 아! 이한율!!(3) +4 23.05.18 225 7 10쪽
17 16화 아! 이한율!!(2) +1 23.05.17 232 6 9쪽
16 15화 아! 이한율!! (1) +4 23.05.17 262 7 9쪽
15 14화 태풍 속으로 (5) +2 23.05.16 272 8 9쪽
14 13화 태풍 속으로(4) +3 23.05.16 271 9 9쪽
13 12화 태풍 속으로(3) +1 23.05.15 266 8 11쪽
12 11화 태풍 속으로(2) +1 23.05.15 273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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