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눈빛
한편 그렇게 취사병들이 100인분의 짬을 버리는 동안, 강한에겐 손님이 찾아왔다.
따르릉~
어디선가 전화가 울렸다.
“어, 무슨 소리지?”
“근데 우리 중대에 이런 소리로 울리는 전화는 없는데??”
행정반 등에 전화가 있지만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런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손을 드는 강한.
“아, 이거 나한테 온 전화야.”
“아, 그래요?”
소녀들이 납득하고 있는데 강한은 자신의 관자놀이 부분을 검지로 툭 쳤다.
그러니 연결되는 전화.
“여보세요.”
“???”
소녀들은 이제 더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니 전화가 연결되다니, 그럼 관자놀이에 무슨 전화라도 심어놨다는 말인가?
소녀들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강한이 빨리 설명해주었다.
“뇌양자파로 전화를 수신하고 있는 거야. 전화번호는 내 독자적으로 설정해놨지. 이제 이해갔지?”
“??????”
그러자 소녀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뇌양자파로 전화를 받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런데 이미 2010년대 후반에도 그런 양자파를 이용한 물건은 많이 나와 있었다.
심지어 한의원에서도 양자파를 이용한 진단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널리 알려진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미 개념은 있는 상태.
그리고 통신 3사가 아닌데도 개인적으로 의수에 전화기 기능을 합쳐서 따로 전화기 소유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의수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3D프린터를 통해 의수를 제작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의수를 가진 사람들은 전화를 잘 조작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의수에 전화기능이 합쳐진 물건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것도 역시 그렇게 널리 알려진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강한은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어서 고정관념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말하자면 강한이 지금 하고 있는 건 그런 개념들을 합쳐 ‘전화가 없으면서도 뇌파를 통해 뇌에 전화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사실 강한은 딱히 전화 올 데도 없고 있어도 적당히 전화를 훔치거나 대포폰 등 여러 가지 경로로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런 강한이 뇌파로 전화를 받는 이유는 하나였다.
가지고 다니기가 귀찮은 것이다. 강한은 특히나 옛날 사람이라, 목걸이 귀걸이 등도 당연히 안했는데 심지어 시계나 반지 등도 차고 다니지 않았다.
철저한 홀가분함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뇌파로 전화를 받은 것.
그렇게 전화를 받았는데 사실 받기 전부터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경무관인 것이다.
강한이 몇 번 마주쳤던 경무관 말고는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강한은 그대로 잠시 통화를 했다.
“경무관 님?”
“아, 강한 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신 거죠??”
“아, 실은 이번에 엑스라운더스 일로 구치소로 가서 면회를 신청했는데, 강한 씨는 이미 외출(?)한 뒤라고 하더군요.”
“네,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강한이 바쁘기는 바빴다. 어디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몬스터들 때려잡는 중이라.
그 과정에서 잠시 알게 된 소녀들에게 오래된 막사도 고쳐주고 하면서 친해져 같이 노는 중이었는데, 경무관이 전화를 건 것이다.
아무튼 구치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가 외출 중이라고 하니 경무관은 어이가 없었는데, 뭐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 그러려니 했다.
다만 아무리 익숙한 일이라도 어처구니가 없는 건 여전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 뭐 좀 상의할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하죠. 저야 뭐 남는 게 시간이니.”
사형수에게 남는 건 진짜 시간밖에 없다. 돈도 없고 자유도 없으니.
시간도 사실 결국은 사형당하거나 사형당하지 않아도 자연사하니 무한한 건 아니었는데, 다만 강한은 그런 시간 이전에 애초에 구치소 밖을 자유롭게 들락날락 하므로 자유도 제한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돈 뿐인데 돈도 은행 계좌를 뇌양자파로 해킹하면 되니 그야말로 무한.
삼위일체였다. 이건 재소자가 아니다. 무늬만 재소자일 뿐. 그냥 집이 없다고 대충 구치소를 집 삼아 지내는 것인데, 사실 마음만 먹으면 집도 사거나 아예 지을 수도 있었다.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해운대 근처에 집이나 지어볼까······.’
강한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경무관님, 지금 만날까요?”
“예, 지금 어디에 계시죠?”
“저요? 군부대요.”
“예?”
“군부대요. 야쿠르트 버스터들이 있는 곳. 여자애들이 대체복무 하는 곳 아시죠?”
“아니, 알긴 한데······.”
예상을 뛰어넘은 어처구니없는 말에 경무관은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군부대라니.
재소자가 그런 곳에 있어도 된단 말인가? 사실상 군인도 또 다른 이름의 재소자인데.
“재소자가 거기 있어도 되요? 뭐라고 안 해요??”
“아, 이건 저와 여기 중대원들 몇몇만의 비밀입니다.”
“비밀이라고 해도······.”
경무관은 강한과 몇 번 만나봐서 강한의 성격을 잘 아는데, 강한은 절대 비밀스럽게 돌아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대놓고 다니다가 거슬리는 게 있으면 다 부숴버리는데 과연 전생에 대기업 회장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래서 대기업 회장도 할 수 있었던 건가?
아무튼 경무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강한이 입을 열었다.
“경무관님이 여기 오시기는 좀 그럴 테니까 제가 가죠. 그 편이 빠를 테고.”
“네, 그렇겠죠······. 차라리 군 간부나 사병이면 면회 형식으로 가면 되는데 그런 군인도 아닌 사람을 어떻게 대놓고 공식적으로 만납니까.”
그 말 대로였다. 강한은 지금 군인도 뭣도 아닌 단순한 탈옥한 구치소의 재소자.
다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잡아들일 힘이 없고 강한이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놔둔 상태였는데, 실제론 소재는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독재정부라고 해도 그렇게 무능하진 않다. 오히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더 철저하다.
아무튼 전화를 끊은 강한.
“얘들아, 잠깐 다녀올게.”
“어디를요?”
“수원남부경찰서.”
“어? 여기서 좀 멀지 않아요??”
“아니, 금방이야. 그보다 얘들아, 저것 봐라!! 창문밖에 UFO가 나타났다!!”
“어?!”
다급하게 강한이 말하자 전 중대원들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강한이 그동안 뻥을 친 적이 없는데다 이렇게 다급하게 말한 적도 없기 때문. 그런데 UFO는 없었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강한은 사라져 있었다.
슈웅!!
부대에서 사라진 강한은 경찰서 서장 바로 옆자리에 나타났다.
“어이구, 깜짝이야!! 강한 씨 놀랐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다니!!”
“하하, 미안합니다. 이 편이 효율적이다 보니.”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그렇지 너무하잖아요.”
“그래도 날아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좌표가 겹쳐서 경무관 님이랑 나랑 합쳐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면 제가 가구나 벽에 끼이든가. 뭐 그것도 해결방법이 있지만.”
“······.”
경무관이 어이없어 하는데 강한이 방금 한 것은 아공간 전이였다. 쉽게 말하면 축지법이라고 해야 하나?
언뜻 생각하면 그냥 순간이동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축지법의 개념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흔히 축지법이 단순히 엄청나게 빨리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론 달랐다.
현재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의 좌표를 파악한 후, 그리고 땅을 접어서(?) 이동하는 것이 축지법이다. 현대의 워프 개념과 비슷했는데, 워프도 단순히 빨리 가는 게 아니라 그렇게 공간을 접어서 가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광속의 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 중간에는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그건 우주든 지구든 마찬가지였는데, 그렇데 단순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 몸이든 우주선이든 박살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좌표를 찍고 공간 자체를 조작해서 이동하는 것.
그게 축지법이나 워프다. 말하자면 –자로 돼있는 길을 접어서 <자로 만들고, 다시 그 끝부분을 이어서 –자로 만든다. 혹은 삼각형(▽)모양으로 만든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제3의 좌표를 찍어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잇는 것. 이건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관계와도 비슷했는데, 블랙홀이 빨려 들어가는 곳이라면 화이트홀은 나오는 구멍이다.
뭐 실제론 또 화이트홀은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화이트홀을 또 블랙홀이 둘러싸고, 블랙홀은 단순히 빨아들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증발하다 소멸되는 존재라는 것이 양자론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이것도 복잡했다.
하지만 블랙홀을 입구, 화이트홀을 출구, 웜홀을 단순히 그 사이를 잇는 통로라고만 생각하면 말은 통한다. 사실이야 어쨌든 그런 용어로서 치면.
이에 대비하면 블랙홀은 조금 전 강한이 있던 군부대고, 웜홀은 제3의 아공간, 화이트홀은 방금 나온 경찰서의 서장실에 만든 통로다.
사실 이 분야는 아직까지도 이해만 됐지 확실히 검증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또 논리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원래 과학계는 그렇게 기존의 정설을 뒤집고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서 뒤집히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아무튼 서장실에 나타난 강한.
그런데 깜짝 놀라는 서장의 소리를 듣고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서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괜찮으세요?”
“응? 아아, 괜찮아. 하던 일 계속해.”
“그래도······.”
“괜찮다니까.”
이 경찰서의 사람들은 대부분 강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경찰의 장성인 경무관이 굳이 재소자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대충 둘러댔는데, 강한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그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저를 부르다니.”
“그게 후······.”
경무관은 그답지 않게 갑자기 후-하고 한숨을 쉬었다. 계급이 높다고 으스대며 허세만 부리는 게 아니라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각종 범죄와 싸우며 생긴 그의 이마의 주름살이 이로 인해 더욱 짙어졌다.
“이번에 갑자기 몬스터가 연달아 나타났는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네, 제가 모조리 다 처리했으니까요.”
“그렇군요······. 한편 강한 씨가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동안 엑스라운더스가 나타나 또 파괴공작을 했습니다.”
“또요? 하필 이 타이밍에?”
“그들은 병원, 학교, 관공서를 가리지 않고 테러했는데 이번에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사람들의 공포심이 더욱 심해졌어요. 아예 그 때문에 군대를 시가지에 상주시키자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부대를 도심 한복판에 놔두겠다는 거죠.”
“흠······.”
강한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엑스라운더스가 나타났다고? 하필 이 타이밍에? 게다가 아무리 원래는 인간이었던 돌연변이 집단이라고 해도 그들의 인간에 대한 증오는 너무 지나쳤다.
만약 강한이라면 오히려 그런 강한 신체능력을 살려서 몬스터들을 퇴치하고 인간들의 신뢰를 살 텐데, 그렇게 하지 않다니.
지금 몬스터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현재의 독재 정권은 있는 전력 없는 전력 다 쓰는 형편이었다.
심지어 게임에 나오는 로봇 같은 걸 카피해서 거기에 여고생들을 태우고 싸우게 하는 판인데. 아무리 실력 순으로 뽑았다고 해도 여고생들이 싸우는 걸 보는 건 마음이 안 좋았다.
그건 남고생이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경무관은 실로 충격적인 한마디를 했다.
“실은, 이번에 믿을만한 유능한 부하를 시켜 테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그들의 뒤를 미행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지금까지 그들의 행적을 몰랐던 것이 이상하죠. 지난번에 저는 한 놈 잡아서 고문해서 알아낼 생각이었지만······. 아주 독하더군요.”
강한이 사로잡았던 붉은 옷의 남자, 그가 지휘관 격으로 보여 잡은 것인데 결국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강한은 맨 정신에 디스크를 일일이 뽑는 고문을 행했는데 그건 보통 인간이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말하지 않다니.
이 돌연변이 집단 엑스라운더스와 그 일원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강한이라도 그런 고문을 받으면 어지간한 일들은 다 토해낼지도 모른다.
근데 그걸 참은 붉은 옷의 남자. 조직 내에서는 그들을 레드 슈트라 부르고, 일반 행동대원들은 블랙 슈트라 부른다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경무관의 말 한마디.
근데 경무관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강한에게 다가가 귓가에 입을 대고 극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미행의 결과 한 무리의 엑스라운더스들이 정부청사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강한은 흠칫 놀라 경무관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나 경무관은 진지한 눈빛으로 강한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