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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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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973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2.28 19:00
조회
11
추천
3
글자
11쪽

321. 북빙신궁 - 2

DUMMY

건물 안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거대한 마을이 하나 숨어있었다. 내가 있는 마을보다 몇 배는 더 큰 마을. 심지어 극북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마을보다도 더 큰 마을처럼 보였다.


“여기가 북빙신궁이다.”

“궁이 아닌데요. 그냥 마을이지.”

“마을이 곧 궁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온기가 곧 벽이니까.”


사람의 온기가 곧 벽이라. 뭔가 철학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말 그대로인 거 같았다. 차디 찬 북쪽의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건, 사람의 따스한 온기뿐이겠지.

두령 노인은, 말없이 그저 묵묵하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난 마을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아니, 애초에 두령의 손녀를 살려줄 생각도 없었다. 만약 손을 다친 이가 두령의 손녀인 것을 알았다면, 결코 소생을 뿌리진... 그래도 뿌리긴 했겠지만, 어쨌든! 이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니,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거야?! 도대체!


“왜 멍하니 서 있나?”

“더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나도 뒤에 일행들도.”

“밤이 된 산은 무척 무서운 데.”

“산이 저를 더 무서워 할 겁니다.”


마을 어귀에서 멈춰선 나와 일행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는 두령의 일행들. 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정말 괜찮겠나?”

“용건만 간단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난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두령. 내가 뭐 실수라도, 혹은 실례되는 행동이라도 했었나?


“제가 무슨 실수라도...”

“용건은 내가 아니라 대협이 있을 텐데. 아닌가?”


맞는 말이다. 용건이 있던 쪽은 나였다. 그런데, 내 용건은... 창조교를 마교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목적은 날아간 거 같은데...


“그... 그러니까, 세율은 너무 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어... 이게 이렇게 쉽게 결정이 난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걸로 무지하게 말싸움을 벌인 거 같은데...


“그렇게 해주신다고요?”

“그래. 해 준다고, 대협이 원하는 대로.”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때는 꼭 뒤에 구린 조건이 따라붙는다. 언제나 그랬고 예외는 없었다. 부자지간에도 형제지간의 거래에도 조건이 붙는 세상에 공짜라니. 말이 안 되지.


“대협, 대협의 이름이 뭔가?”

“주변 사람들은 현과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오, 그래. 현과장 대협.”


현과장 대협이라... 뭔가 조금 어색한데.

이렇게 내가 이름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갑자기 그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옴짝달싹 못 하게.


“왜 이러십니까?”

“세율도 건드리지 않고, 마교를 세우는 것도 용서하지.”


마교라고? 지금 마교라고 그런 거야? 이건 지금까지 듣던 이야기 중 제일 반가운 소리인데.


“내 손녀와 결혼하게.”


잠깐,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결혼? 지금 결혼이라고 말한 거야?


“결혼이요?”


난 그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래 북쪽의 혹독한 추위에 내 귀가 어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매서운 바람소리가 그의 목소리와 섞여서 희한하게 들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결혼이라니, 갑자기 결혼이라니!


“이 사람은 제 남편인데요.”


여희도 두령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갑자기 내 앞으로 나와 나를 막아섰다.

젠장 진자 결혼이야기였잖아. 아니,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저기요. 저는 누구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세율을 올리는 수밖에.”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세율을 올리든 내리든. 난 몰라. 난 이제 정말 몰라.”


난 가볍게 두령의 팔을 뿌리친 뒤, 그대로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리 쉽게 보낼 수는 없다!”


갑자기 날 막아서는 두령. 심지어 광귀도 내 앞을 막아섰다.


“아니, 광귀 씨. 당신은 그쪽에 서면 안 되지 않아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현 대협.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걸까. 적어도 이렇게 길을 막을 거면, 그 이유라도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말을 해줘요. 말을. 왜 어쩔 수 없는지. 왜 길을 막아야 하는지!”


내 절규와 같은 외침에도 우물쭈물 대는 두령과 광귀. 그렇게 우린 깊은 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마을 어귀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정원의 정자.

그 고즈넉한 정자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진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끊어지지 않았다.


“뭘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그때였다. 정원 입구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목소리. 정풍 가씨의 셋째, 진돈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정원으로 들어와 진자의 곁에 살며시 앉았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비열함. 마치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 마냥, 그는 천천히 진자의 심기를 살피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라, 진돈. 내 좋은 기분을 방해하지 말고.”


진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옅어졌다. 기분 나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만 갔다.


“둘째 형이 실수를 크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실수? 하긴 했지.”

“그렇죠? 제가 그 실수를 만회할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는 능청스럽게, 조금 더 진자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 싸늘한 시선으로, 잡아먹을 것처럼 그를 노려보는 진자. 진돈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왜 그러지?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아, 아닙니다. 형님. 미, 미끄러졌습니다.”

“벌써 서리가 앉을 시기인가? 시간이 참 빠르군.”

“그, 그렇죠? 형님? 예, 그렇고 말고요.”


아직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진돈의 목소리. 그러나 그는, 진자의 작은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을 눈앞의 상대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형님, 다른 명문 세가로부터 힘을 빌려오는 건,”

“곽가 놈들이나 등가 놈에게 손을 벌리라는 말이냐?”


진자의 목소리가 옅게 떨렸다. 차가운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분노. 그의 얼굴을 본 진돈은, 그제야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제, 제가 경솔했습니다!!”

“눈치도 없는 것이 머릿속도 비어있구나. 너도 그 버러지 잡것처럼 죽고 싶은 거냐?”


진돈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어렴풋이 잡것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죽은 막내를 말하는 거겠지.


“둘째는 일을 알아서 척척 잘하는데. 너와 네 동생은 왜 그 모양일까. 내가 우스운 모양이지?”

“아,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내가 우습지 않다는 놈이 지금 나에게 말을 걸고 있네?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가야 정신을 차릴 건가?”

“당장 사라지겠습니다!”


진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줄행랑치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갑자기 그를 불러세우는 진자. 진자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예, 형님.”

“걸어서 나가게?”

“예...?”

“걸어서 나갈 거냐고.”


진자의 목소리가 건넨 의미는 극히도 단순했다. 걸어서 나가지 마라. 아무리 눈치가 없고 머리 회전이 느린 진돈이라도 그 뜻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번 눈앞에서 본 광경이었으니까.


“혀, 형님 못난 동생 먼저 자리를 뜨겠습니다.”


작별 인사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어서 정원을 빠져나가는 진돈. 진자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등 뒤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살기. 진돈은 그 살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기고 또 기었다. 대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저기요. 진짜 춥거든요!”

“옷을 껴입으라니까!”


여희가 춥다는 핑계로 자꾸만 내 곁으로 달라붙는다. 가뜩이나 심각한 이 상황에서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명문 귀족 출신의 아가씨라, 분위기를 못 읽는 건가?


“우리는 중혼을 허락한다. 그러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


그런 그때, 두령이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중혼? 뭐 일부다처, 일처다부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난 그냥 가겠다니까! 이 뒤의 일들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시라고요.”

“대협도 당사자다. 그 마을에서 먹고 자고 할 거 다 하지 않는가.”


내가 입 밖으로 꺼냈던 말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올 줄이야. 하지만, 난 결코 결혼 따위는 생각조차 없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시라도 빠르게 원더랜드로 돌아가는 일. 이렇게 이 땅에 눌러앉아 행복하게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저도 제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제 앞길을 막으려 하신다면, 어쩔 수 없어요. 힘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나는 그들에게 내 의지를 보일 겸, 가슴에서 은화를 꺼내 들었다. 모습이 중식도이긴 하지만, 은빛 화염은 충분히 위협이 될만한 요소니까.


“은빛 화염이라니... 신기(神器)인 건가?”


북빙신궁의 두령은 내 손의 은화를 뭔가에 홀린 듯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게다가,


“진짜... 아름답네요. 이런 빛을 내뿜는 칼이라니...”


여희도 감탄하며 은화를 바라보았다. 잠깐, 여희는 은화를 본 적이 있지 않나? 아닌가? 다른 세이브에서 보여줬던 건가? 너무 많은 불러오기 때문에 기억이 꼬였다. 이거 아무래도 「세이브 포인트」는 함부로 쓰면 안 될 거 같은데.


“아무튼! 난 갑니다! 여희, 갈 준비해.”

“네! 갈 준비!”


내 말에, 그녀는 다시금 날 꽉 끌어안았다. 아니, 준비를 하라니까 왜 날 끌어안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돌아갈 채비를 하라니까, 왜 날 끌어안아?”

“난 서방님만 있으면 되니까!”


답답하다. 답답해.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게 된 걸까? 내가 뭘 어떻게 잘못한 걸까. 「세이브 포인트」를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조금 전에 다짐했지만, 단 1분도 지나지 않아, 「불러오기」가 간절해 졌다. 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 격하게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


“자, 이제 객잔으로 돌아가죠!”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그저 헤벌쭉 미소를 짓는 여희. 그래, 참자, 참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차원문의 위치가 나올 날이.




그렇게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산 짐승들이 내 주위로 다가와 길을 안내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놀래 칼을 휘두른 살수도 있었지만, 이내 동물들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호랑이와 시라소니를 보더니.


“대, 대협! 대단하십니다!”

“신화경은 동물들과도 교감이 가능하군요!”


그들은 동물들과 다정한 내 모습에 연거푸 감탄했다. 사실, 내가 동물들과 친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난 키토 님과 리코 님을 섬겼던 집사였으니까.


“이 친구들이 객잔까지 안내해 줄 거니까. 빨리 갑시다. 체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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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342. 현과장의 결단 24.01.17 20 3 12쪽
341 341. 악인들의 집회 - 2 24.01.16 16 3 12쪽
340 340. 악인들의 집회 +2 24.01.15 19 4 11쪽
339 339. 사이비가 아닌 게 아니 것이 아닌가? ... 이게 맞아? 24.01.14 13 3 11쪽
338 338. 난입 24.01.13 13 4 11쪽
337 337. 교리 - 2 24.01.12 16 4 12쪽
336 336. 교리 +2 24.01.11 15 4 11쪽
335 335. 배신 24.01.10 15 3 11쪽
334 334. 믿을 수 있는 사람 24.01.09 20 4 11쪽
333 333. 거지굴 - 4 +2 24.01.08 16 4 12쪽
332 332. 거지굴 - 3 24.01.07 22 3 11쪽
331 331. 거지굴 - 2 24.01.06 15 3 11쪽
330 330. 거지굴 - 1 24.01.05 22 4 11쪽
329 329. 이동 객잔, 동동구리모! 24.01.04 14 3 11쪽
328 328. 현과장의 꿍꿍이 - 2 24.01.03 17 3 11쪽
327 327. 현과장의 꿍꿍이 24.01.02 19 3 11쪽
326 326. 호떡이 싫다고? 24.01.01 11 3 11쪽
325 325. 분열 - 3 23.12.30 12 3 11쪽
324 324. 분열 - 2 23.12.30 13 3 11쪽
323 323. 분열 23.12.29 9 3 11쪽
322 322. 북빙신궁 - 3 23.12.29 14 3 11쪽
» 321. 북빙신궁 - 2 23.12.28 12 3 11쪽
320 320. 북빙신궁 23.12.28 14 3 11쪽
319 319. 아!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 2 23.12.27 14 3 11쪽
318 318. 아!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23.12.27 11 3 11쪽
317 317. 집착남 등장 - 2 23.12.26 11 3 12쪽
316 316. 집착남 등장 23.12.26 14 3 11쪽
315 315. 창조교 - 2 23.12.25 1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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