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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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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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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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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30화

DUMMY

“미군정? 미군정이 갑자기 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만, 지금 당장 긴급하게 올려보내랍니다. 그, 목숨도 꼭 붙여서 보내라는 전언입니다.”


마지막 말에 군대장은 대놓고 미간을 구겼다. 그가 대충 훑었던 전보를 다시 꼼꼼히 살폈다.


“누구길래 목숨 붙여 놓으라 마라 명령질이야, 어? 미군정 정보부? 정보부에서 왜 이 일에 간섭을 해, 갑자기?”


‘정보부.’


강철수에게는 치가 떨리도록 익숙한 명칭이었다.


‘아니어야 한다.’


기우라 치부하기에는 불안의 출처가 분명했다.


*


며칠 전, 여수가 탈환되던 날이었다.


[휴업]


형제상회의 문에 아주 큰 글씨로 안내가 붙어 있었다. 휴업이라는 말 외에는 기간도, 이유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강태수는 처음으로 가게를 쉬고, 집도 아닌 별채에 틀어박혔다.


쿵.


강태수는 답답함을 한껏 담아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미스터 강. 이번 일은 정말 너무 위험해. 돈으로도, 금으로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거야.”


강태수가 침묵하자 알렉스는 한숨을 쉬었다. 강태수는 유명한 장사꾼이 되었으나 여전히 알렉스를 통해 미군정과 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용산에서 강태수의 파급력은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더 좋았다. 강태수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렉스.”

“미스터 강이 무슨 말을 할지 아는데, 이건 경우가 달라. 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야.”


서울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치고는 여수와 순천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 주축이 김인국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암암리에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여순사건이 전국적인 움직임이 된다면 나라에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찾아올 터였다. 때문에 미군정과 한민당 수뇌부들은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동생을 외면할 수 있는 형은 없어.”

“미스터 강! 설령 김의준이 정말 리틀 강이라고 해도 구할 수 없어. 현재 상황으로서는 사형이 그나마 제일 신사적인 처벌이라고.”


알렉스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렉스의 말에는 걱정과 화가 함께 담겨 있었다. 여수에서 강철수를 빼내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심지어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건 엄연한 반란이자, 국가에 대한 도전이야. 더불어 이번 일은 우리 미국에 대한 도전이기도 해. 군대에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즉결처분이어도 할 말이 없어.”


강태수는 삼 형제가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후회, 분노, 그리고 그리움.


탁.


강철수는 매일 닦아 두어 먼지 하나 없는 액자를 다시 제자리로 올려 두었다.


“알렉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릴지는 몰라도,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은 건 바로 이 상황을 위해서였어.”


언젠가 이러한 상황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이 있었다. 동생의 목숨이 위험할 것 같은 순간 말이다. 강태수는 그동안 남몰래 김의준이 동생 강철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철컥.

끼이익.


강태수는 그냥 서랍처럼 위장해 두었던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금괴와 달러가 있었다. 강태수가 돈이 생길 때마다 바꿔 둔 것들이었다.


“이 정도는 시작일 뿐이야. 나는 몇 배를 더 지불할 용의가 있어.”


알렉스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스터 강, 이번에는 재산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가능은 하다는 말인가, 알렉스?”

“알아는 볼게.”


강태수는 그제야 안도했다. 알렉스는 불가능한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몇 년간 알렉스와 지낸 결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였다. 강태수는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알렉스를 끌어안았다.


“12월에 미군정이 철수하면서 나도 돌아가야 해. 오늘 그 얘기를 하러 온 것이었는데. 자네를 찾아오지 말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군.”

“돌아간다고? 12월이면 금방이잖아!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해, 친구.”


‘알렉스가 곧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르게 떠날 줄은 몰랐는데.’


“알렉스. 자네가 자네의 나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볼 수 없는 건가?”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더더욱 볼 수 없어지겠지.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해 줄까 했는데, 이거 원. 훨씬 더 큰일이 됐군.”


강태수는 알렉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역시 자네는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야.”

“하지만 미스터 강. 이건 나한테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야. 장담할 수는 없어. 지금 리틀 강이 살아 있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고.”


강태수가 어두운 얼굴로 액자 속의 강철수를 바라보았다.


“진압 과정에서 이미 대부분 사살되었다고 보고 받았거든.”


*


덜컹.


흔들리는 군용 트럭 안, 군경들이 포박된 강철수를 보고 수군거렸다. 상처가 썩어 강철수의 몸에서 온갖 악취가 났다. 군경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철수는 정신을 잃은 척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곧 죽는 거 아니야, 이거? 시체 냄새랑 똑같은데.

“빨갱이 새끼가 이 정도면 호상이지.”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런데 이놈은 꼭 살려 보내라고 했다며?”


빈정거리던 남자가 급격히 목소리를 죽였다.


“아니지, ‘이놈은’이 아니지, 이놈만. 나머지는 다 죽였잖아?”

”그러니까. 그것도 윗선에서 말이야. 이거 위에도 빨갱이 숨어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왜? 그냥 죽이면 되는 걸.”

“높으신 분들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뭐 재판? 을 한다던데. 위대한 민주주의 어쩌고 하면서.”

“어차피 사형일 걸 뭐 하러. 염병이네.”


‘재판?’


탁, 탁.


군경들이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웃었다.


“낄낄. 뭐든, 어? 허울이 중요한 거지.”

“위대한 이승만 박사 만세!”

“아니지. 이제는 대통령이시잖아.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 만세!”


덜컹!

쾅!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차가 급격히 흔들렸다. 상처가 눌려 비명이 튀어나갈 뻔했지만, 강철수는 겨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강철수는 반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탈탈.

끼익!


“우린 할 만큼 했으니 가자고, 이제.”


강철수를 태운 차가 미군정에 도착했다. 강철수는 이곳에서 고문 대신 대충 응급처치를 받았다. 재판 때까지는 살려 두어야 한다는 윗선의 명령이 재차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강철수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허락받지 못한 채 가둬졌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서울에 오고 나서도 똑같았다.


끼익.


강철수가 갇힌 독방의 문이 열렸다. 곧이어 들어온 사람이 강철수의 어깨 뒤로 묶인 팔을 붙잡아 앉혔다. 그러더니 귀를 막아 둔 솜을 꺼냈다. 며칠 동안 감각을 속박당하다, 갑자기 소리가 들리자 어지러웠다. 강철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털었다.


‘지금이 며칠째지?’


말없이 치료가 이어졌다. 곪은 것들을 제외하고 상처는 착실히 아물고 있었다. 치료를 받던 강철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귀를 막던 솜을 제거해 준 것부터, 느껴지는 인기척마저 달랐다.


“재판까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합니까?”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강철수의 갈라진 목소리는 형편없었다. 꽤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은 탓이었다. 상처를 소독하던 손이 멈추었다.


“··· 네가 재판을 받는 일은 없다.”


익숙한 목소리. 강철수가 숨을 들이켰다.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던 인기척은 강철수가 익히 알고 있던 기시감이었다. 이어서 눈을 가리던 천이 사라졌다. 강철수의 눈앞에 미군정의 유니폼을 입은 강태수가 있었다.


“!”


생으로 손톱을 뽑는 모진 고문도 이겨내던 강철수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철수야.”


오랜만에 보는 형은 눈빛부터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강철수 그 자신이 변한 것처럼. 시선을 피한 강철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제 이름은 그게 아닙니다.”

“네가 이제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다. 그럼에도 네 몸속에 흐르는 피와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같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강태수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강철수는 그 슬픔을 외면하고 싶었다. 어쩌면 형이 개입한 일이 아닐까 짐작만 하던 일이 결국 사실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엮인다면 아무리 미군정에 줄을 대고 있는 강태수일지라도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시간이 별로 없다. 이제 나가야 해. 곧 이송될 거야. 내가 알아서 하마.”

“형님!”


저벅, 저벅.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죽여라.”


강태수가 서둘러 다시 안대를 씌우고, 이어서 준비해 온 재갈을 물렸다. 혹시라도 강철수가 다른 말을 할까 염려되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읍!”


끼익.

철컹!


“치료는 끝났나? 이송할 시간이다.”

“알겠습니다.”


강태수가 강철수를 잡아 일으켰다. 강철수가 몸을 뒤틀 새도 없이 다시 군용 트럭에 실렸다. 지난번과 다른 점은 아무도 곁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트럭이 서울을 벗어나자 강태수는 차를 세우고 강철수의 모든 결박들을 풀어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형님!”


강태수는 강철수가 뭐라 이야기할 틈도 없이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이후에 강태수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차를 몰았다. 그가 목숨을 걸고 달려온 곳은 트럭이 아니라면 올라오기 어려울 정도의 비포장 도로 사이에 숨은 나루터였다.


“철수야.”

“형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합니다! 이 화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합니까!”


턱!


강태수가 차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강철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북으로 가라.”


평생 입에 담을 리 없다고 생각한 말이었다. 그리 이야기하는 강태수의 얼굴에는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강철수의 눈이 강태수를 담고 있었다.


“북으로 가라, 철수야. 그 여기서는 사형수일 뿐일지 몰라도, 북으로 가면 인민 영웅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형님!”


강철수가 떠나기에는 해결하지 못한 너무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김인국과 학생연맹, 고아원부터 눈에 밟혔다. 강철수의 표정을 본 강태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김인국 선생이라면 저 강 건너편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고아원은 이미 맡아 줄 사람이 있어.”

“··· 형님. 차라리 저와 함께,”


강태수가 강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생각 없다. 너라도 거기서 잘 살아라. 나는 서울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큰형님 곁으로 갈 생각이다. 원래부터 내가 있을 곳은 부여였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이 북인 것처럼.”


강태수는 이번 일을 벌이면서 거의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다. 강태수가 준비해 두었던 나룻배 앞으로 강철수의 등을 밀었다.


“해가 뜨기 전에 가거라. 강 건너편 오두막에서 김인국 선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서둘러야 한다.”


강철수가 뒤를 돌아보는 것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 때까지 강태수는 나루터를 지켰다.

강태수는 또다시 멀어지는 동생을 보며 강물이 흔들리는 소리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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