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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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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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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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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
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21화

DUMMY

한편, 강태수는 바닥에 놓인 형제상회의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지만 정갈했던 가게가 공사 현장이 되어 어지러웠다. 강태수는 가게 안 별채에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밖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강,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좋지 않군.”

“어, 알렉스. 왔군. 별일은 아니고, 요즘 꿈자리가 좀 좋지 못해서.”

“악몽 말하는 거지? 요즘 들어 자주 그러는 것 같은데.”


알렉스가 강태수의 맞은편에 앉아 커피 두 잔을 내려두었다.


“리틀 강 때문에 그러는 거야?”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돈을 불렀고, 부는 다시 더 큰 부가 되어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해결할 수 없는 울화가 매일매일 강태수를 좀먹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백 번을 돌아간대도 백한 번 모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알렉스가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것이었다.


“미스터 강, 이 가게를 확장하는 대신 이사를 가는 게 낫지 않아?”


강태수는 혼자 형제상회를 운영하면서 쌀값 폭등 속에서도 꾸준한 가격을 유지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멀리서도 찾아와 쌀을 사 갔다.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한 쌀값이 그나마 민생들의 숨을 트이게 한 것이다.

강태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리를 옮기면 다시 입지를 다져야 해. 아무리 홍보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이 자리에 다른 쌀가게가 들어올 수도 있고. 간판이나 상호 대신 위치로 가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그 문제 때문에 발생할 손실을 생각해 보면 확장을 하는 게 나아.”


금세 냉철해진 강태수의 눈빛을 보며 알렉스가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하. 미스터 강도 이제 사업가가 다 됐군.”

“몇 년 동안 해 왔으니 자연스럽게 요령이 생긴 거지. 그리고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철수가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그 몇 년은 강철수를 못 본 시간과 같았다. 강태수의 눈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알렉스는 강태수가 곧 물을 말을 알았다.


“알렉스, 그보다 내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었나?”

“최근 좌우합작위가 해체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덕분에 알아보기가 수월했지. 정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지 않나.”


알렉스의 억양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정보···.’


툭.


강태수가 내내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들고만 있던 잔을 푸른 유리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조사해 본 바로는 김의준 그자와 리틀 강의 외모가 비슷하다고는 해. 얼마 전에 별세한 여운형도 그랬고, 김인국도 꽤나 신뢰하는 인물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김인국의 아들이 만주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알려져 있어.”

“살아 돌아왔다고?”


알렉스가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그래.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에서 죽었다는 말이 파다했다고 해. 그 덕분에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아. 하지만 몇 년 동안 함께한 자들 중에서도 강철수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다는 자는 없었어.”


*


”분즉도 합필립分則倒合必立.“


소란 후에 수습할 시간도 없이 방치되어 어지러운 방에 누워 강철수가 중얼거렸다.


"나눠지면 쓰러지고 합치면 반드시 일어선다.“


슥.


손바닥을 겹친 채 베고 있던 최정혁이 눈을 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천장만을 응시하는 강철수를 바라보았다. 방 안은 소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수선했지만, 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1944년 새해 아침에 몽양 선생님께서 쓰신 말씀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잘난 척은.“


강철수는 익숙하게 최정혁의 투덜거림을 흘려들었다. 분위기가 어두워질 때마다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강철수는 피식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이 말 하나 때문에 몽양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강철수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정혁은 어느새 모로 누워 있었다. 강철수는 짚을 얼기설기 엮어 진흙으로 고정해 만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시시각각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매일요. 매시간, 매분, 매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무언가를 계속 놓치는 기분이 듭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요.“


강철수가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최정혁은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능청스러운 얼굴로 강철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는 무섭습니다.“

”!“


‘그래도 저놈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온 건 처음인데.’


휘이잉.


헐거운 문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바다 짠내가 코끝을 툭툭 건드렸다. 최정혁이 거칠게 코를 비볐다. 이상하게 코가 시큰거렸다.


”틀린 선택을 하게 될까 봐요. 선생님들은 어떻게 이런 일들을 견디신 걸까요. 이곳에 먼저 온 동지들이 무사할까 걱정입니다. 서울에 계신 동지들도···. 선생님도요.“


탁.


”김의준. 그럴 때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라.“


최정혁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런 말은 영 낯간지러운데 말이야. 몽양 선생님도 네게만은 각별하셨다. 네 이야기를 듣고 계획을 수정하신 일도 몇 번이나 있었잖아. 네 선택은 모두가 믿고 있어. 너를 못 믿겠다면 너를 믿는 선생님들을 믿어라.“


긴말은 아니었으나 최정혁의 이야기가 끝나자 강철수의 얼굴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어느새 아침 햇빛이 창호지에 스며들었다.


”정말 그러면 됩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요?“

”안 될 게 뭐 있냐? 선생님들이 너를 의지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네게 의견을 구하셨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너도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냐. 너를 못 믿겠으면 선생님들을 믿어 달라고. 그 선생님들이 너를 믿고 있는 게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니겠어?“


휘이잉.


”그,“


어느새 둘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철수가 막 입을 뗐을 때였다.


퉁, 퉁.


”이봐요들. 자나?“

”안 잡니다.“


끼익.


소쿠리를 든 노파가 문을 열었다.


”안 잘 것 같았지. 무슨 이야기를 그리 소곤소곤 나눠?“

”잠이 오지를 않아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할망. 글쎄 이놈이 못 자게 하잖아.“


능청스러운 최정혁의 말에 호탕하게 웃은 노파가 소쿠리를 내밀었다. 소쿠리 안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침이요. 도와준 사람들 외면하는 게 워낙 마음이 쓰여야지. 요즘 물질을 못 해서 맛있는 건 못 줘. 별거는 아니고. 지슬(감자)이랑 감저(고구마) 좀 쪄 왔소.“

”지슬? 지슬이 뭡니까?“

”지슬을 모르다니. 자네들 육지 사람들이 맞았구만?“

”감자는 아는데요.“


강철수가 감자는 안다며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 감자(지슬)를 집어 들었다. 소쿠리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방 안에 훈훈함을 퍼뜨렸다.


”아하하!“


내내 음울해 보이던 노파가 처음으로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강철수와 최정혁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자를 쥔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감각이 좋았다.


”감저(고구마)는 안다며? 자네가 지금 집은 건 지슬(감자)이잖아.“

“하지만 감자는 이거잖아요?”


강철수가 한층 더 의아한 얼굴로 감자를 쥔 손을 들어 보였다. 노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감저야? 그건 지슬이요. 육지에서는 지슬을 감저라고 부르나?”

“육지에서는 이게 감자입니다.”

“감자고, 지슬이고 뭐 어때. 어차피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똑같은 건데. 할망이 그러려니 해. 이놈이 좀 고지식해서 그래.”


최정혁이 장난스레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노파가 자연스럽게 맞장구쳤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것도 모자라서 샌님이오?”

“그렇다니까! 내가 아주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야, 가끔씩.”

“자네가 고생 좀 하겠네.”

“아주 고생 중이지. 할망이라도 알아주니까 내 이 답답-한 마음이 위안이 좀 된다.”


툭툭.


최정혁이 과장되게 눈썹과 입꼬리를 내려뜨리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강철수는 정말 조손 사이라도 되는 듯 죽이 척척 맞는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 체하며 감자 껍질을 벗겼다.

손짓 몇 번에 금방 하얗고 포슬포슬한 속살이 드러났다. 강철수가 감자를 먹으려는 순간, 최정혁이 웃으며 강철수의 팔을 잡고 손에 들린 감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아, 뜨거. 후, 후. 할망, 맛있네.”


겨우 감자를 삼킨 최정혁이 노파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강철수가 반 넘게 사라진 감자를 붙들고 허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뜨거운 걸 견뎌 가며 깠더니 홀랑 최정혁의 입으로 들어갔다.


“왜 제 걸 먹습니까!”

“네가 잘 까길래.”

“형이 까서 먹어요!”


억울함에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다시 재회한 후에도 부른 적 없는 호칭이었다. 강철수는 내뱉고도 멈칫했으나 최정혁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하하! 둘이 꼭 친형제 같네.”

“그 말 옛날엔 자주 듣긴 했어. 눈썰미가 좋네, 할망.”

“옛날? 왜 옛날인가. 지금도 아주 똑 닮았는데.”


휙.


최정혁은 반 남은 감자를 아직 당황한 강철수의 손에서 낚아챘다.


“이놈이 잘못을 아주 크게 했었는데, 내가 용서해 준 지 얼마 안 됐거든.”

“용서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보기보다 멋있는 청년이오?”

“그냥 봐도 멋있는 편 아닌가?”


노파가 웃으며 실한 감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는 굳은살이 가득한 손으로 한 번의 지체도 없이 감자 껍질을 벗겼다.


척.


“자, 샌님도 들어야지.”

“샌님 아닙니다.”


퉁명한 대답과는 달리 강철수는 두 손으로 공손히 감자를 받았다.


“아니긴 뭘. 허여멀건한 게 꼭 샌님 같구만.”

“샌님 맞으면서, 무슨.”

“아니라니까요.”


손주뻘의 강철수와 최정혁이 투닥대는 모습은 노파에게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즐거움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웃는 얼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들이 죽었는데 금이 할망은 어떻게 웃을 수 있소? 어떻게!’


이웃의 절규가 그날 후로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웃음이 죄가 되는 날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산속으로 숨어 연명해야 했다.


“할망은 안 드셔? 할망도 새벽부터 바빴을 텐데, 얼른 하나 드셔야지.”


최정혁이 아직 뜨끈한 감자 하나를 내밀었다. 감자를 받아든 노파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래, 할망?”


산발적으로 터지는 총소리는 비명처럼 허공을 찢고, 어제 인사하던 모습이 마지막이 된 이들이 많았다.


타다닥!

쾅!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양소영이 발을 구르며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끙끙거렸다.


“으, 으!”


툭!


“소영아! 무슨 일이냐, 소영아!”


노파는 다급히 손에서 감자를 떨어뜨리고 양소영의 어깨를 쥐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감자가 형편없이 뭉그러졌다.


“무슨 일입니까!”


탕!

털썩.


“아악!”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양소영이 마루에 엎어져 덜덜 떨었다. 발작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소영아!”


맨발로 뛰쳐나간 노파가 양소영을 끌어안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강철수와 최정혁이 서둘러 둘을 데리고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탁!


“빨갱이들을 찾아라!”

“찾아라!”

“찾아서 죽이자!”

“으와아아!”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희열이 있었다. 공포로 점철돼 어지러운 방 안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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