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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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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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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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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
8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5화

DUMMY

여운형은 묘한 얼굴로 강철수를 바라보았다. 강철수는 이번에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 아시면서도 그자를 곁에 두셨던 겁니까?”


여운형이 뒷짐을 지고 여명을 바라보았다.


“때로 어떤 진실들은 묻어 두는 게 나을 때가 있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은 순간들이 온다네. 바로 이 몽양의 목숨 같은 일들 말이지. 나는 줄곧 생각해 왔어. 이 여운형이의 목숨은 덤이구나. 이 아름답고 불쌍한 내 나라를 위한 덤이구나. 내 것이 아니구나.”

“···.”

“사람들은 자꾸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실패하면 다른 방향을 들고 오지. 그리고 늘 같은 결론이라네. 도망가자.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런데 자네가 보기에 내가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듯싶은가? 내가, 이 몽양이 내 육신을 버릴지언정 이 나라를 내팽개칠 수 있을 성싶은가?”


강철수는 가만히 몽양이 응시하는 여명을 향해 눈길을 두었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라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라네. 나라고 왜 두렵지 않겠어. 하지만 이 공포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무섭고, 두려운 일은 이 조국의 분단이네. 조국의 허리를 가르려는 그들에게 굴복해 의지를 잃어버리는 내 스스로가 더 두렵다네. 저들의 위협과 탄압에 굴종하는 나 자신을 볼 수가 없네. 용서할 수도 없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지독한 모순이 엉킨 인간, 그게 바로 이 몽양일세.”

“선생님.”

“나는 이 조선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 죽을 때까지 목숨을 다해야지. 죽어서까지 내가 누군가의 동력이 될 수는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지.”


몽양의 목소리에는 한없는 슬픔과 고뇌가 있었다. 한 사람이 일생을 바쳐 한 고민과 인생이 있었다.

강철수는 마땅히 할 대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 그가 입을 여는 것은 기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비단 나뿐이겠나. 의준 자네의 아버지와 또, 철수 자네의 아버지 모두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네.”


강철수의 눈빛이 여명 속에서 흔들렸다.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비록 파벌 싸움에 지쳐 임정을 떠났으나 자네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지. 자네 아버지는 나보다 더 먼 곳을 본 거야. 내가 버티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고자 애썼다네.”


강철수는 묻지 않았다. 아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이었음에도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몽양이 전해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육신 대신 이름으로만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강철수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사인은 ‘콜레라’였으니까.

여운형은 더 말을 잇는 대신 강철수를 바라보았다. 강철수는 지금이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겁니까?”


여운형이 강철수의 등을 두드렸다.


“자네가 걷고자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는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나.”


어느새 아침이었다.


“한때 자네 아버지의 곁에서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으로서 말이야.”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946년 겨울이 지나고 1947년 봄, 5월 24일 구인민당, 신민당, 근로대중당, 해방동명을 통합한 여운형의 ‘근로인민당’이 창당 소식을 알렸다.

강철수는 천도교 강당에서 연설하는 여운형을 바라보았다. 여운형의 힘 있는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우리 근민당은 첫째, 미ㆍ소 양국에 공정불편한 정책을 취하며, 둘째, 민족통일을 기초로 한 신흥국가로서 표현되어야 하며, 셋째, 봉건적 생산관계의 철저한 소탕과 개인적 창의를 허용하는 민주주의적 신경제체제를 수립하며, 넷째,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계승 발양합니다.”


짝, 짝.


강철수로부터 시작된 박수 소리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강철수는 여운형의 뒤에서 박수를 치는 백남운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운형의 끈질긴 설득 끝에 백남운은 근민당의 부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


사람들의 엄숙한 환호 끝에 창당식이 끝났다.


며칠이 지나, 새로 마련했으나 새 것은 아닌 근민당 사무실에 강철수, 김인국, 여운형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고자 했다. 강철수가 완고한 표정으로 주장했다.


“우리 근민당은 남로당에 대립하는 중간좌파의 노선을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준, 남로당과 대립하기만 하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네.”


몽양의 말에 김인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몽양 선생의 의견도 맞는 이야기야. 오히려 인민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어.”


김인국과 강철수는 근민당을 위해 얼마 전 남로당을 탈당한 참이었다.

여지껏 완고하게 모든 당의 제안을 거절하던 김인국의 첫 입당 소식은 파란을 가져왔다. 홀로 입당한 것도 아니고, 김인국이 그의 아들과 함께 남로당에 입당했다는 소식은 여운형, 백남운이 없는 치명적 결함을 메워 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김인국의 목적은 오로지 정치 경험이 전무한 강철수의 기반을 쌓기 위해서였다.


‘이때는 물러서야 할 때다.’


김인국은 남로당 안에서 강철수에게 정치를 가르쳤다. 강철수는 반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여운형이 믿고 의견을 물을 수 있을 정도의 사내가 된 것이다.


“좌우합작을 위해서는 남로당의 협조가 꼭 필요해.”

“선생님. 그들은 좌우합작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치기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김 선생님과 남로당에 있을 때 보고, 느낀 것입니다. 박헌영은 좌우합작을 할,”


쾅!


그 순간 아래층에서 큰 소음이 들렸다. 강철수가 몸을 벌떡 일으켜 문을 열었다. 계단 아래서 비명이 난무했다. 건물 입구부터 시작된 불길 때문에 연기가 자욱했다.

강철수는 쓰러진 인영들을 연기 속에서 발견했다. 연기를 뚫고 까만 복면을 두른 괴한들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았다.


휘익!

탕, 탕!


“여운형을 찾아라!”

“으아악!”

“김인국 그 자를 발견하는 즉시 처리해!”


상황을 알리기 위해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붙들고 계단을 올라오던 남자가 강철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김의준 동지! 어서 선생님들을 모시고 피해야 합니다!”

“위! 위층이다!”

“방해하는 놈들은 전부 죽여라!”


남자의 외침을 들은 복면 괴한들이 일제히 모여 달리기 시작했다. 강철수에게 소리친 남자가 계단을 막아서고 총을 겨눴다. 금방 동지들이 뛰어와 계단 앞을 지키고 섰다. 동지들과 괴한들의 총격전이 이어졌다.


탕!

피슉, 탕!


“윽!”

“으아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생님들이 탈출하실 때까지는 막아야 한다!”


강철수는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근 후 김인국과 여운형에게 물에 적신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들은 대답 없이 강철수가 건넨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이미 밖의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습격입니다.”


비명과 외침, 연기가 문 너머에 있었다. 강철수는 침착하게 올려진 물건이 얼마 없는 책장을 옆으로 옮겼다.

여운형의 곁을 지키며 이런 상황을 이미 몇 번 겪어 본 터라 놀라울 정도로 평정을 유지했다. 강철수가 책장 뒤에 숨겨져 있던 허리까지 오는 작은 문을 열었다.


“뒷 건물의 지하로 이어진 문입니다. 얼른 가셔야 합니다. 밖의 인원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탕!


총소리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여운형과 김인국이 문 너머로 사라지고, 강철수는 있는 힘을 다해 책장을 당겨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쿵.


음습하고 캄캄한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면서 강철수는 형과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멀리서 흔들리는 불빛이 보였다. 김인국은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항상 라이터를 지니고 다녔다.

작은 불꽃에 어룽지는 그림자들을 보며 강철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하물며 분노도 아니었다.


‘선생님이시구나.’


강철수가 계단을 가늠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두 지도자는 함께 강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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