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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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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12.1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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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23화

DUMMY

턱!


최정혁이 강철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최정혁은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강철수의 예상대로 최정혁은 아까보다는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여태 네가 했던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어깨 위에서 느껴지는 최정혁의 손이 서늘했다. 밤공기는 무겁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강철수가 수풀 앞으로 다가갔다.


바스락.


“밤이 될 때까지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걸 보면 한동안은 안전할 듯싶습니다. 그래도 이동은 해야 합니다.”


잠시 말을 고른 강철수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이제는 총소리도 멈췄고요.”


최정혁은 일부러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동지들한테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어?”

“··· 이 산을 넘기만 하면 그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피해 보려 했으나 결국 원점이다. 최정혁은 강철수에게 누가 말을 전해 준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미간을 찌푸린 최정혁이 강철수보다 먼저 수풀을 젖히고 동태를 살폈다.


“나와. 근방에 느껴지는 기척은 없다.”


휘익!


동굴을 벗어나자마자 날카로운 바람이 볼을 할퀴었다.


‘따귀를 맞는 기분이군.’


다시 굴 입구를 가려놓은 강철수가 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산을 올랐다. 빛이라고는 구름에 가려 희미한 달빛이 전부였다. 희미한 표식들이 끊길 만하면 나타나며 지속되었다.


‘네 번째 표식. 곧이겠군. 할머니가 다섯 번이면 된다고 했으니까.’


“한 번만 더 찾으면 됩니다.”

“그래. 생각보다 시간은 걸리지 않았네.”


아직 주변은 어두웠다. 그림자조차 어둠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간혹 짐승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저벅, 저벅.

바스락.


“그나마 겨울이라 밤이 더 길어서 다행인가.”

“그래서 이곳은 더 불행일지도 모릅니다.”

“어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게?”


새벽, 마지막으로 남은 표식을 발견한 강철수가 빛이 들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해가 길어지는 게 두려워진다는 사실이요.”


*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나무를 부러뜨린 흔적이 가득한 숲에서 강철수와 최정혁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시야가 탁 트였으나 개운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멀리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마다 익숙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여기 어디쯤에 있을 텐데.”


둘은 바위 근처에서 동지들이 숨겨 둔 군복을 찾아 꺼냈다. 최정혁이 상의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어제 같은 결정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라.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 그 일에, 이 일에 네 잘못은 없어.”


강철수는 깊은 구덩이를 파 옷가지와 노파가 주었던 주머니를 묻었다. 마치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인민의 목숨을 구명해야 하지만 그것이 모두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늘 최선의 수를 찾아야 해.”


슥.


환복을 마친 최정혁이 앞서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는 늘 그 수를 찾고 있으니 걱정 마라.”


모자 밑으로 보이는 눈빛을 햇빛이 가려 읽을 수가 없었다. 강철수가 군모를 깊이 눌러 썼다.


다시 아침이었다.


*


“정혁!”

“김의준!”

“다들 무사했군!”

“무사하다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다시 만나 다행입니다. 걱정했습니다.”


강철수와 최정혁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하산로를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동지들과 마주쳤다.


“둘이 언제 올까 싶어 매일 아침 이곳을 정찰했다네. 나머지 셋은 막사에 있어.”


그들은 막사로 둘을 안내했다. 그렇게 동지들이 머무르고 있는 막사로 가기 위해 지나던 중이었다. 중간에 마주친 토벌대원 하나가 턱 멈추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어이, 거기.”


‘젠장.’


하필이면 산 아래서 동지들이 이야기한 놈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아주 지독한 새끼가 있어. 정융철이라고. 사람 죽이는 일을 장난처럼 생각하는 놈이다.’


동지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배성훈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아니. 너 말고.”


휙, 휙!


정융철이 손에 들고 있는 채찍으로 강철수와 최정혁을 번갈아 가리켰다.


“못 보던 얼굴인데?”


강철수와 최정혁이 등 뒤로 은밀하게 손짓을 교환했다. 강철수는 최정혁의 수신호를 확인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정융철에게 대답했다.


저벅.


“저희는 서울에서 온 후발대 중 일부입니다.”

“후발대? 후발대는 보름 후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는데?”

“정 주임님께 급히 드릴 이야기가 있어 저희 둘이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강철수는 정융철이 눈썹을 들썩이자 곧바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분께서 보내신 말씀입니다.”


정융철의 눈빛이 일순간 바뀌었다.


“감히 내 시간을 뺏은 주제에 시답잖은 이야기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는 돼 있겠지? 내 막사로 가지.”


강철수와 일행들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정융철의 막사는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일반 막사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막사 앞에서 정융철이 고갯짓했다.


“너희 둘의 말은 정확히 일치해야 할 거다. 거기, 너부터 들어와.”

“예.”


정융철이 최정혁을 채찍으로 가리켰다. 최정혁은 남은 이성을 끌어모아 고분고분 정융철의 막사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정혁이 금세 나왔다.


“들어오라 하십니다.”


이어서 강철수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강철수는 등을 보이고 선 정융철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분이 전한 말씀이라는 게 뭐지?”

"그분께서는 현 사태를 염려하고 계십니다. 모쪼록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전하시면서 정 주임님께 이 서신을 전달하라 하셨습니다."


강철수는 품 안에서 밀봉된 봉투를 꺼냈다.


척.


정융철이 여전히 뒤돌아 있는 채로 오만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강철수는 속으로 욕지기를 뱉으면서 봉투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휙!


"흐음?"


강철수는 정융철이 매서운 눈으로 편지를 뜯어보는 모습을 관찰했다. 작게나마 그의 당황을 읽을 수 있었다.


‘동지들의 말처럼 쉽게 볼 놈은 아니군.’


방수가 가능하도록 밀랍이 꼼꼼히 발린 봉투는 정융철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이 서신은 실제로 정융철의 몫이었다. 그들이 제주로 오기 직전 김인국이 구해 준 것이었다. 정융철이 한 번에 편지를 찢어 내용을 확인했다.


찌익!


강철수는 사냥을 앞둔 맹수처럼 정융철의 뒷목을 노려보았다.


*


강철수가 정융철의 환심을 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육지에서 파견된 미군정 경찰들도 믿을 수 없으며, 제주 경찰들조차 빨갱이라고 불신하던 정용철이 편지를 가지고 온 강철수에게는 이례적인 신뢰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식사 시간마다 강철수는 특별 대접을 받았다.

다른 토벌대원들에게는 배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나 강철수는 매번 푸짐한 음식들을 가지고 막사로 돌아왔다. 방금 끓인 듯 피어오르는 김이 따뜻했다.


“다들 드세요.”


탁.


“오, 오늘은 백숙이네. 닭은 또 어디서 났대, 저놈들이. 배급받는 것도 없는데.”

“너는 무슨 놈이 그러냐?”


최정혁이 질린다는 얼굴로 익숙하게 백숙 다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최정혁은 대답이 없는 강철수를 바라보았으나 강철수는 무감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뭐가 말입니까?”

“저 개새끼를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그것도 한 달도 안 돼서.”

“멋대로 착각하게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착각이냐고?”


다닥다닥 모여 닭을 한 조각씩 붙잡고 있던 동지들이 강철수의 입에 신경을 기울였다.


“저 치는 제가 간부와 연줄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쪽에서 짐작하는 이가 누구인지 쉬이 잡히지 않아서 그대로 오해하게 두었습니다. 그전에 처리해야죠.”


최정혁을 포함한 장정 넷이 한꺼번에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최정혁이 닭다리를 뜯으며 피식 웃었다.


“크흠. 뭐 틀린 말은 아닌데, 틀린 말이네.”

“의준의 연줄이 단단하기는 하지. 저놈이 믿는 요쪽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

“선생님은 잘 계시려나 모르겠군.”


청년들이 각자 한마디씩 덧붙였다. 배성훈이 마지막으로 뱉은 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김인국은 김의준의 아비였으니 다들 강철수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슥.


최정혁이 태연하게 남은 다리 하나를 뜯어 강철수에게 건넸으나 강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께서는 괜찮으실 겁니다.”

“그럼. 당연한 이야기지.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 계획은?”

“매일 밤 아홉 시에 정융철의 뒷막사로 여인들이 끌려갑니다. 저는 그때를 노릴 생각입니다. 동지들은 언제가 적합한 것 같으십니까?”


강철수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그는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온몸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최정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의준, 의식적으로 기운을 죽여. 우리와 있을 때는 괜찮다고 해도 괜한 의심을 산다. 정융철은 기민한 놈이야. 조금의 틈도 줘서는 안 돼.”

“매일 밤 살아서 나온 여인이 없습니다.”


강철수의 눈빛이 음울했다. 강철수는 정융철의 막사가 있을 천막 너머를 바라보았다.

정융철은 꼭 부하들에게 살인을 강요했다. 남자든 여자든 한 번 끌고 온 자는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부하들에게 떠넘기거나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에게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라는 명령을 빈번히 반복했다.

그러나 강철수에게는 망을 보라 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배려라도 된다는 것처럼.


“매일 사람들이 죽습니다. 어린아이, 소녀, 기혼자, 임산부, 노인을 가리지 않고 죽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이들은, 인민들은 떨고 있을 겁니다. 죽음이라는 공포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까.”


강철수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화를 뱉어내고자 하는 호흡이었다.


“더는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자들입니다. 저놈들을 볼 때마다 치미는 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곧 봄이니,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소식에 의하면 곧 일이 터질 것입니다.”


최정혁은 강철수가 유독 고문 문제에 남들보다 첨예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유는···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래. 그럼 사람들에게는 내가 연락을 넣겠다. 오늘 밤에 바로 연락하도록 하지.”


최정혁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겨울에서 봄이 되기까지 강철수와 동지들은 마을에 남아 있는 남로당 사람들과 연락을 취했다. 제주는 남로당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남로당 일원입니다.’


강철수는 근민당을 위해 탈당하였기에 명백히는 과거의 일이었고, 최정혁을 비롯한 학생연맹의 간부들은 박헌영에게 버림받았으니 더 이상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철수는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정국이 심상치 않았다. 곧 유채꽃이 흐드러지는 4월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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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眞路
    작성일
    21.12.20 12:59
    No. 1

    나아가는 바는 없고 아프기만한 시대를 나열할 뿐이고 무엇을 위한 나열인지 보이지 않고 보일때까지 보자니 답답하기만하고 철수의 힘도없고 정의로도 보이지 않는 주제는 그저 아플 뿐이니 보기힘드네요

    찬성: 13 | 반대: 1

  • 작성자
    Lv.81 붉은단풍
    작성일
    21.12.21 22:12
    No. 2

    댓글에 공감합니다..그저 보기불편할뿐이고 아무런 힘도없고 그냥 무모하고 이념만쫓는.. 별로네요

    찬성: 5 | 반대: 1

  • 작성자
    Lv.89 내꺼아님
    작성일
    21.12.25 16:26
    No. 3

    하산..
    그냥 대하소설을 쓰세요.
    가볍게 읽으려고 왔다가...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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