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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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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1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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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32화

DUMMY

“여보세요.”

[태수? 태수가 맞아?]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수가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곧바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야, 벤자민!]

“벤자민? 오, 벤자민!”


발신자를 확인한 강태수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벤자민은 알렉스의 후임으로, 알렉스가 미국에 돌아간 것에 반해 한국에 조금 더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연락을 조금 더 빨리 하려고 했는데, 일이 많았어.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뭐, 잘 지냈지. 벤자민은? 무슨 일이야?”

[태수, 혹시 알렉스의 말 기억나? 태수가 군인이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말 말이야.]


강태수는 벤자민의 목소리에서 묘한 들뜸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응,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은 왜?”

[국방부에서 나에게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갈 만한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태수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혹시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연락했어. 그들은 영어에 능통한 사람을 찾고 있거든.]


*


강태수는 벤자민의 전화를 받고 난 이후에 고민에 잠겼다. 강태수는 벤자민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전화 한 통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고향에 다시 적응한 참이었고, 여유롭게 지내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태수는 이 생각에 벼락을 맞은 듯했다.


“!”


‘한 달 만에 이렇게 나태해지다니. 이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그가 눕혔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렇게 허송세월 보낼 수는 없다.”


강태수는 잠시 알렉스와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태수, 태수는 사업에도 소질이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군인도 꽤 잘 어울려.’

‘군인? 내가 말이야?’

‘그래. 태수는 늘 확실한 길로 가고자 하잖아. 그게 군인이 가져야 할 움직임이지.’

‘나는 실수를 하기 싫은 것뿐이야, 알렉스. 거창한 이유는 없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휘이잉.


차가운 겨울 바람이 창밖에 휘몰아쳤다. 강태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강태수는 다시 한 번 알렉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태수, 군부는 국가와 존폐를 함께 해.’


강태수는 아침이 되어 해가 밝을 때까지 그 말을 몇 번이고 복기했다.


*


아침이 되어, 강태수는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태수의 시선 끝에는 삼 형제가 찍은 사진 액자가 있었다.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인수가 오랜 시간 기다린 사람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수는 간략하게 강철수가 떠난 일, 그 후로 더 크게 사업을 키웠던 일, 거의 전 재산을 털어 강철수를 월북시킨 일들을 털어놓았다.


강태수가 이야기를 마치자 강인수는 깊은 한탄을 흘렸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언젠가 네가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철수가 잘못된 줄로만 알았어. 하지만 이건···.”

“철수를 북으로 보내고, 어쩔 수 없이 부여로 왔습니다. 저 역시 감시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도망친 것과 다름없겠죠. 목숨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철수를 월북시켜 놓고, 이 목숨을 잃을까 말입니다.”


강태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강인수는 강태수의 미소가 마음 아팠으나 아무런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자신이 동생 태수의 도움을 받으며 좋아하는 농사를 하는 동안 동생은 이러한 일들을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님, 철수는 더 이상 자신이 강철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강철수가 아니라 김의준이라고요. 철수는 그 인생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택하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것들 것 잃었지만 동생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요.”


강태수의 목소리에 점점 다시 힘이 실렸다. 강인수는 자신의 동생에게서 희미한 분노가 새어 나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형님,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힘을 얻기 위해 서울에서 온갖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부정한 방법도 성공을 위해서라면 불사했습니다. 몇 년 동안은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줄곧 외면해 왔던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사업으로는 어떠한 권력도 쥘 수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강인수는 그리 말하는 강태수의 얼굴이 낯설었다.


“어제 저녁, 전화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태수가 눈빛을 바꾸며 액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이건 내가 스스로 도망자라고 인정한 꼴이 되는 게 아닌가.”

“태수야.”


강인수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강태수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해가 뜰 때까지 꼬박 생각했습니다.”


강태수는 형의 눈동자를 분명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군인이 되겠습니다.”

“!”


강인수의 눈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커졌다.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냐, 태수야.”

“사업은 온전히 내 몫으로 둘 수 없습니다. 아니요. 애초에 이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스윽.


강태수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강태수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나는 아닐 거라고,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태수는 알렉스를 떠올렸다. 그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알렉스와 연결된 이들이 떠올랐다. 미군정에 속했던 한국인들은 국군이 창설된 이후에 그대로 자리를 차지했다.

국군이 정식으로 창설되었을 때 알렉스가 이 점을 언급하며 강태수에게 권했었기 때문에, 강태수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군부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명맥을 함께하겠지요. 그래서입니다.”


반면에 강인수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몇 년 전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네 말도 그것과 같은 게 아니야?”


강태수는 분명한 시선으로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강인수는 처음 보는 동생의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단단했으나 차갑지는 않은 시선이었다.


“나라를 빼앗기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정말 이 땅에 더는 우리가 발붙이고 살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강태수는 강인수만큼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오늘 처음으로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알렉스가 처음 권했을 때 그를 저지한 것은 [형제상회]였으나, 형제상회의 강 사장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홧김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강태수가 팽팽한 거실 공기를 누그러뜨리듯 고개를 저었다.


“형님, 지금 세계 정국은 냉전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갈등은 점점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가 않는 길처럼요. 언제 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한국이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왜 굳이 더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는 거냐는 말이야!”


강태수는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그게 지금 우리 가족을, 형님과 저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끼익.

탁.


찌르르르.


바람에 흔들리는 밤 풍경 위로 풀벌레 소리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금세 겨울 바람에 손이 차갑게 얼었다. 강인수는 강태수에게 조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했다. 목숨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강태수는 집 앞에서 불이 꺼진 그 옆집, 그 옆집, 그러고도 펼쳐진 강인수의 논들을 지나 한참을 걸었다.


저벅, 저벅.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갯벌에 발을 디디는 듯한 감각이었다. 강태수가 큰 보폭으로 형이 잠든 집에서 멀어졌다.


휘이잉.


더는 눈앞에 강인수가 일구었을 논이 보이지 않았을 때, 강태수는 폐에 공기가 가득 들어차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한 모금의 숨조차 더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가득 들이쉬고 나자, 턱 막힌 듯했던 것이 뚫리는 것 같았다.


“후우.”


숨은 들이쉬는 것에 비해 더 빨리 강태수의 밖으로 빠져나갔다. 강태수는 제 것이었던 숨을 느끼며 시야의 바깥까지 담으려 애썼다.

저 멀리서 겨울 해가 어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르고 있었다. 벌써 동이 트는 것이었다.


‘날이 밝으면 벤자민에게 연락하고, 서울로 갈 날을 잡아야겠군.’


쏴아아아.


날카롭고 무거운 가을 바람이 강태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태수의 등 뒤에 겨울이라 텅 빈 논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부딪힌 마른 잎들이 파도처럼 소리를 냈다.


슥.


강태수는 그 소리에 뒤를 돌았다.


‘이 수밖에 남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그가 해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웃었다. 눈이 부셨으나 눈은 감지 않았다.


*


며칠이 지나, 대전역.


칙칙폭폭.

부우우우!


쭉 늘어진 기차가 증기를 내뿜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강태수와 강인수의 입에서도 비슷한 입김이 늘어졌다. 강태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강인수는 그런 동생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강태수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기차를 타면 됩니다.”


강태수는 표를 확인하고 정장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강인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우우.


기차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많이 기다렸소?”

“돌아오지 않는 줄 알았어요.”


형제의 옆에서 연인이 애틋한 얼굴로 재회했다. 그들을 잠시 쳐다보던 강인수가 강태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강인수는 자신의 팔에 돌이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툭, 툭.


“무사히 다녀오거라.”

“다녀오겠습니다. 건강히 계십시오. 형님.”

“태수야.”


강인수가 쉽게 동생의 손을 놓지 못했다. 안내원이 손을 나팔로 만들고 소리쳤다.


“열차 곧 출발합니다아!”


강인수가 손을 놓고, 아쉬움을 가득 담아 손짓했다.


“얼른 타거라. 도착하면 전보 보내는 것 잊지 말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꾸벅.


강태수는 마지막으로 깊이 묵례하고 기차에 올랐다.


턱, 턱.


부우우우!


강인수는 강태수를 태운 기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인수처럼 기차역에 남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떠나는 사람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경적 사이를 메웠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기차는 다시 올 것이었다. 강인수가 등을 돌렸다.


*


“태수!”


강태수가 다시 서울에 발을 디뎠다. 마중 나와 있던 벤자민이 강태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벤자민!”

“서울에서 지낼 곳은 있어? 우선 내 집으로 가자.”

“그래, 고맙군.”


털털.


벤자민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둘은 영어로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벤자민, 그동안 별일은 없었고?”

“나야 뭐 늘 똑같지. 군대는 늘 똑같아서 지루한 곳이잖아.”

“하하. 그런 곳에 나를 부른 거라는 말이잖아, 그럼.”


강태수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린 벤자민이 핸들을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만족스러워. 태수와 다시 서울에서 함께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생각보다 연락을 빨리 줘서 놀랐어. 태수가 이번에도 거절하면 어쩌나 겁먹었었거든.”

“하하, 네가 겁이라니. 농담도.”


강태수는 웃으며 벤자민의 금발을 흘긋 바라보았다. 강태수는 미끄러운 발음을 짧게 꺼내 놓았다.


“하지만 벤자민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다시 한 번 거절했을 거야.”

“무슨 말?”

“한국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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