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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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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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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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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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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27화

DUMMY

[보안서]


“보안서? 보안서가 뭣이다냐?”


20일 아침 열 시, 강철수를 필두로 한 군인들은 읍사무소 자리에 '보안서'를 설치하고 '여수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수군거렸다.


“간밤에 총소리가 또 나더니, 경찰이랑 군인들이 붙어먹은 게 아니었나 보군.”

“나팔 소리도 아주 요란하던데?”

“이게 다 무슨 일이여, 정말.”


저벅, 저벅.


방탄모를 손에 든 강철수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지현성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곳은 이제 우리 여수 인민들을 도울 인민위원회이자, 보안서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요?”

“인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지요. 쌀도 나눠 드리고, 부정 축재자들에 대한 공정한 재판도 이뤄질 것입니다.”


강철수의 말에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쌀? 쌀을 준다고?”

“이자로 또 덤터기 씌우는 것 아니야? 맨날 하던 짓처럼.”

“뭐가 어때! 일단 쌀을 준다는데! 쌀 구경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 얼른, 얼른 주쇼!”


타다닥!


멀리서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매우 간절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전부 비쩍 마른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쌀! 이곳으로 오면 쌀을 준다고 방마다 써 있던데, 쌀은 언제 주는 거요!”

“이곳으로 오라고 했잖수!”

“얼른, 얼른!”


분위기가 점차 과열됐다. 지현성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두 손으로 분위기를 누르듯 움직였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삼 일 후에 다시 오시면 인민증과 함께 쌀을 드릴 겁니다.”

“삼 일 후? 지금 당장 굶어 죽게 생겼어!”

“옳소! 우리는 지금 쌀이 필요하다고!”


그때 강철수가 앞으로 나섰다.


척.


“인원과 쌀의 양을 정확히 파악해야 ‘공평’하게 쌀을 나눠 드릴 수 있습니다.”


강철수는 일부러 ‘공평’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공평하게?”

“삼일 후에는 얼마를 준다는 거야?”


강철수는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강철수가 간절해 보이는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정중한 어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지금 드릴 수 있지만, 23일에 지급될 쌀보다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삼 일 후에 다시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받으시겠습니까?”


턱.


정리되지 않은 흰 수염을 목젖까지 늘어뜨린 노인이 강철수의 팔을 잡았다.


“삼, 삼 일 뒤에 다시 오면 틀림없이 쌀을 주는 거요?”

“그러겠습니다. 이 약속에 목숨을 걸 수도 있습니다.”


강철수는 분명한 목소리로 인파 사이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니 삼 일 뒤, 23일 낮에 다시 오십시오.”


강철수는 ‘23일’을 중얼거리며 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현성이 강철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보여 줄 게 있으니까 안으로 들어가지.”


보안서 안은 아직 정비되지 않아 단촐한 모습이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틈을 두고 드나들었다. 강철수는 지현성을 따라 제일 깊숙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탁.


강철수는 지현성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든 채 훑었다. 서류에는 열 명의 이름만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내일 보안서 앞뜰에서 치러질 인민재판에서 처형할 이들의 명단이다. 이들은 모두 경찰, 미군정과 결탁한 우익 놈들이고, 전부 부당한 수를 써서 부를 축적했다.”

“그렇군요.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강철수는 머릿속에서 명단에 쓰인 이름과 미리 조사했었던 정보를 대조해 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도 일치했다. 그것을 확인한 강철수가 명단을 돌려주려던 그때, 지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공개 처형할 예정이고, 자식들도 모두 포박해서 보게 할 예정이지.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식들을 왜요?”


지현성이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물어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야 교육을 위해서지.”


꾸깃.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강철수가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종이가 그대로 구겨졌다. 강철수의 미간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아비를 처형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교육이란 말입니까?”

“그래야 제 아비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보고 배우고, 경각심을 가진 채 자라겠지. 그리고, 그리 해야 아비의 죄를 함께 뉘우칠 것 아니냐. 그 부로 호의호식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니.”

“그렇다면 재산 몰수와 처형으로 충분한 일입니다. 굳이 어린아이들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될 광경입니다.”


강철수와 지현성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지현성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강철수를 쏘아보았다. 두 남자의 각자 다른 분노가 방 안에 휘몰아쳤다.


“김의준, 우리가 왜 친일 청산을 못 했는지 알고 있지 않나? 죄가 있으면 죄를 묻고, 공이 있으면 상을 주어야 한다. 이처럼 기준이 뚜렷해야 민족정기가 바로 설 수 있는 거야.”

“그것은 옳은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교육이라 빙자하는 일은 그저 공포정치일 뿐입니다. 그런 정치로는 인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공포로는 건설적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쾅!


“김의준! 아무리 너라도 이건 당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다!”


지현성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강철수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삿대질하는 지현성을 응시했다.


“남로당은 나의 당이 아닙니다. 그러니 의견을 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민들의 자유로운 해방을 위해 연대하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일개 권력을 위한 게 아니라, 해방 말입니다.”


강철수의 목소리는 고요했으나 그 안을 채운 노여움은 간과할 수 없는 크기였다. 지현성이 그 살기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 그래! 너는 네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 당을 이용했지.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 이 여수에서, 이곳에서 이제 와 네가 자유로울 수 있을 듯싶으냐? 이미 너는 엮이고 말았다. 너 때문에 근민당 또한 엮일 테지.”


강철수는 그 순간 지현성의 말에서 명백한 투기와 질시를 느꼈다. 그것은 지금 이 대치보다도 훨씬 더 오래 묵은 감정이라는 것도.


‘무엇 때문이지? 역시 근민당을 걸고넘어지는군. 서울에서 처리하고 오기를 잘했어.’


“근민당 역시 탈당한 지 오래입니다. 출병을 막기에 적합한 곳이 이곳이었던 것뿐입니다.”

“김의준!”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닥쳐라! 한마디만 더 한다면 가두겠다. 아무리 너라도 위대한 당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어.”


쾅!


강철수가 대답하기도 전 지현성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강철수는 눈썹을 찡그렸다. 여전히 구겨진 명단을 쥔 채였다.


‘그 사이 새 지령이 내려온 건가?’


*


다음 날 21일, 부역자들에 대한 재산몰수령이 내려졌다. 인민재판 역시 이뤄졌다. 강철수의 극렬한 반대와 강철수의 의견에 동조한 몇 명으로 인해 부역자들의 직계 가족일지라도 열세 살 이하의 아이는 처형 현장을 보지 못하도록 조치 되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래?”

“재판? 무슨 인민재판을 한다는데?”


사람들은 여기저기 붙은 방을 보고 보안서에 모였다. 그들의 얼굴에 보기 드문 흥미가 있었다.


보안서 앞뜰에 강철수의 결연하고 힘찬 목소리가 뻗어나갔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역사의 한 순간에 있습니다. 바로 인민해방의 순간입니다.”


좌중이 전부 강철수에게 집중했다. 강철수는 다양한 얼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새기려 노력했다.


“우리 인민위원회에서는 과거 일본 놈들한테 빌붙어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군 친일파와 우리 민족은 굶어 죽거나 말거나 대련(다롄)이나 향항(홍콩)으로 우리나라 쌀을 내다 파는 모리간상배들의 은행예금을 동결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할 것입니다.”


강철수가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시민들의 얼굴에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희망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과 결탁해서 부정하게 차지한 적산가옥을 재조사해서 정당한 연고권자에게 되돌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승만이 단선단정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경찰을 비롯한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소탕할 것입니다.”


작았던 수군거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돌려줘?”

“우리 집을 돌려준다고?”

“아이고, 어머니!”


몇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도 했다. 강철수는 잠시 시간을 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항간에는 경찰을 잡으면 현장에서 처형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만, 그건 낭설입니다. 앞으로 경찰은 물론 어떠한 반동분자라도 반드시 보안서에서 엄밀히 조사한 후에 처리할 것입니다.”


강철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군인들이 맨발 차림의 열 명을 끌고 나왔다. 평소 금칠을 하고 다니던 것과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 자신들을 착취하던 친일파와 당 간부들을 본 시민들이 바닥의 돌을 던지고, 모래를 긁어모아 뿌렸다.


“이 개자식들!”

“친일파 새끼들!”


휙!

퍼억!


오래 묵은 분노를 이 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었으나 시민들은 입을 모아 속에 담고 있던 화를 풀어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돌이 반, 부역자들을 맞히는 돌이 반이었다. 강철수와 군인들은 잠시 동안 그들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읍! 읍읍!”

“으븝!”


재갈을 문 채 포박당한 부역자들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챘다. 손에 돌멩이를 든 노인이 그 모습에 치를 떨며 입을 열었다.


“말을 하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지? 그게 우리가 평생 느낀 기분이다.”


퍽!


노인이 던진 돌은 정확히 그가 원하던 곳을 맞히고 떨어졌다. 힘이 없는 팔로 던진 돌은 그닥 큰 타격을 주지 못했으나, 노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을 바라보던 강철수가 군인들만 알아챌 정도로 고갯짓했다.


끄덕.

척, 척.


총을 든 군인들이 앞으로 나와 총을 겨눴다.


탕!

탕, 탕!


처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부역자들이 총성 한 번이 지날 때마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시민들은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아주 찰나라고 생각했다. 사는 평생이 괴로웠는데, 그에 반해 아주 찰나라고.


*


투두두두두!


“이, 이건 또 무슨 소리래?”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는데?”

“종이? 뭐라고 적혀 있는데?”


종이를 집어 든 시민이 실눈을 뜨고 한 글자씩 읽기 시작했다.


“투··· 투항.”


하늘이 시끄러웠다. 세 시경, 국군이 비행기로 뿌린 투항 권고문이 떨어졌다.


*


똑, 똑.


“들어오십시오.”

“김, 김의준 하사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강철수는 손을 뻗어 권고문을 받았다. 강철수가 김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념을 가진 이들은 전부 일괄적인 반응을 보였다. 몽양의 최측근이자, 김인국의 아들을 대하는 그 반응들 중 대표적인 것은 기가 바짝 든 목소리였다. 어김없이 연이어 들려왔다.


“시내에 온통 떨어져 있습니다! 당장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명령만 주십시오!”



툭, 툭.


권고문을 살핀 강철수가 책상을 천천히 검지로 두드렸다. 강철수 자신도 모르게 어느샌가 생겨 버린 습관이었다. 김인국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할 때마다 하던 습관과 똑같았다.


툭.


손가락이 멈추고, 한참만에 강철수가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내일모레, 인민들에게 이것을 주워 오는 만큼 쌀을 더 지급하겠다 이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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