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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님의 서재입니다.

음영잔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임제
작품등록일 :
2012.05.15 07:19
최근연재일 :
2012.05.1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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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5.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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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0

DUMMY

군관과 함께 뇌옥을 나와 거대한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군막 사이를 지나 성문을 통과하자 커다란 전각 한 채가 정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창을 든 경비병들이 있는 곳을 통과해 전각의 출입문에 도착하자 군관이 육전호를 돌아보았다.

“위지휘사께서 너를 불러오라 하셨다.”

말을 마친 군관이 전각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휘장들이 길게 늘어진 복도를 지나자 넓은 대청이었다. 그 한가운데 커다란 장방형의 탁자가 놓여 있고 한 중년사내가 앉아 있었다. 화려한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갑옷을 걸쳤는데 적당히 통통한 체구였으며 강렬한 눈매를 지닌 사내였다.

육전호가 군관의 뒤를 따라 탁자의 앞쪽으로 다가가자 중년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너인 줄 짐작했다. 어서 오너라.”

육전호는 자신을 반기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낯익은 인물이었다. 정위군 시절 유세명 대장군 휘하의 여러 참모들 중 하나였던 건원필이었다.

“이놈, 그새 나를 잊은 게냐?”

육전호가 말문을 열지 못하자 건원필의 목소리가 커졌다.

“위지휘사 영감을 뵈옵니다.”

“크흠……”

육전호가 포권을 취하며 하며 예를 올리자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는 건원필이었다.


육전호가 유세명에게 사사로이 무공을 사사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군진에서의 유세명은 공사 구별이 철저했다. 휘하의 참모들 역시 그러했다. 그 때문에 밤늦게 대장군의 숙소를 드나들던 육전호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참모들이 많았다. 건원필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정위군에 막 입대하던 초기의 몇 달간이었고 그 후 전쟁이 격화되면서부터는 늘 최전방이나 적 후방에만 주로 있었기에 그를 볼 기회가 없었다. 가끔씩 사정이 허락되어 유세명을 찾아 갈 때도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니 건원필의 얼굴을 보는 건 대략 육 년 만이었다.

“너와 동료들의 진술서는 읽어보았다. 무림맹에 있느냐?”

“네.”

“병부상서께선 네가 군문에 남길 원하셨다 들었다. 알고 있었느냐?”

“병부상서라 하시면……?”

“어허, 모르고 있었느냐?”

“……”

건원필이 혀를 찼다.

육전호가 군문을 나설 무렵, 유세명이 오군도독부의 도독이 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 후로는 별다른 소문을 듣지 못했기에 소문대로 도독이 되었으리라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 병부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양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병졸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찻잔 두 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육전호는 건원필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가 하려던 얘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군문을 나설 무렵, 유세명은 육전호에게 후군도독부 휘하 백호소(百戶所)의 백호 직위를 권했었다.

비찰대에서 다섯 해 동안 세운 전공이라면 백호의 직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학(道學)과 병서(兵書)를 배우고 정식으로 출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앞날이 밝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유세명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집안 형편을 돌보기엔 백호 직위의 급료가 턱없이 적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건원필이 탁자 위에 놓인 서류뭉치를 뒤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월객잔의 사건을 주변의 위소에 알렸는데 오늘 새벽에 오초령의 위소에서 전령이 왔다. 야음을 틈타 오초령을 넘으려던 마적 몇을 붙잡았는데 활을 휴대했다는구나. 그래서 그들을 인수해 올 군사를 보냈다.”

“아마도 저희를 습격했던 혈사대의 잔당일 겁니다.”

“그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너희 일행의 진술도 그렇고, 소월객잔에 묵고 있던 상인들의 진술도 그러하니…….”

“그럼 저희는……?”

“너희는 그들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 해, 대략 이틀 정도면 될 것이다.”

“일행 중에 위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그래?”

육전호의 얘기를 듣던 건원필이 대기하던 군관을 바라보자 군관이 고개를 숙이더니 곧 대청 밖으로 물러났다.

한참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빈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육전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곳으로 잡혀올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북방의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나 이곳은 이족들의 분란이 횡행하는 탓에 늘 전시상태인 곳이다. 더구나 민가에 큰 피해가 있었고 거기에다 국법으로 엄히 금하고 있는 활까지 쓰였으니 혐의를 벗지 못한다면 살아서 이곳을 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네…….”

서로의 근황을 물어 볼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니 대화의 틈은 깊고도 넓었고 시간은 더디게 흘러만 갔다.


정오 무렵, 육전호가 전각을 나서자 군관과 병사 몇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안내한 곳은 진흙벽돌로 벽을 쌓은 여러 개의 건물 중 한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쪽 벽을 따라 긴 침상이 놓여 있고 조원들이 눕거나 혹은 앉아 있었다.

“전호, 어찌된 일이냐?”

계응걸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정위군 시절 제 상관이었던 분이 이곳 위소의 지휘사로 계시더군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이봐 전호, 돈은?”

원자춘은 빼앗긴 전표가 걱정인 모양이었다. 육전호가 뒤를 가리켰다. 병사들이 들고 온 일행의 소지품들을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잃어버린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시오.”

병사들을 지휘하던 군관이 말을 마치자 일행들이 자신의 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육전호는 그런 조원들을 뒤로 하고 누워 있는 섭평위에게로 다가갔다. 봉천우가 옆자리에 앉아 섭평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군의가 왔었다. 조금 전에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어.”

“어떻습니까?”

“간신히 고비는 넘겼지만 거동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아.”

“어쩌죠?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데.”

육전호와 봉천우가 고민을 하는 사이, 오단서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가 마차를 구해볼 터이니. 난주에 가면 우릴 반겨줄 곳이 있어.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치료하면 무림맹으로 복귀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야. 상부에는 내가 직접 보고하겠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육전호와 봉천우가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하자 오단서가 손사래를 치며 돌아섰다. 소월객잔에서의 일과 뇌옥에서의 하룻밤이 그의 성정에 변화라도 준 것일까.


건원필의 배려로 군막에서 이틀 밤을 보낸 뒤 오단서가 임대해 온 마차를 타고 일행은 난주로 향했다. 또 다른 마적들의 습격이 있을지도 몰라 대비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사흘 만에 난주에 무사히 도착했다.

오단서가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난주 상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백가장(柏家莊)이었다. 거대한 장원들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에서도 그 규모가 단연 돋보이는 곳이었다. 오단서의 영호장과는 많은 교류가 있었는지, 오단서와 일행이 불편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주었다.

풍림원(風林園)

여러 개의 방을 갖춘 별채과 정원을 둘러싼 작은 숲이 아름다운 곳으로 백가장을 방문하는 귀한 손님들을 위한 곳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늘 허름한 숙소를 면하기 어려웠던 육전호 일행이 그 풍림원에 짐을 풀었다.

젊고 아름다운 시비들이 수발을 들고 백가장의 이름으로 초빙한 의원이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치료를 한 덕에 섭평위와 소응박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무공을 수련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던 육전호는 조원들과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난주의 곳곳을 집 나간 개 마냥 이리저리 쏘다녔다. 백탑산에 올라 백탑사를 구경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저잣거리의 서점을 뒤져 도가의 경전이나 시문집을 샀다. 대장간에 들러서는 진열된 병기 하나하나의 가격을 물어보면서 자신들의 검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유자작하면서 보낸 십여 일이었다. 섭평위가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회복되자 다시 무림맹이 있는 낙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넉 달 전, 겨울을 알리는 첫 눈이 내리던 날 낙양을 떠났지만 돌아가는 길은 봄이 완연했다.


“어이, 전호. 원로원에서 자네를 찾는다는군.”

“네?”

육전호는 자신의 숙소를 청소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계응걸이 처음 보는 사내와 함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옥양자께서 부르신다니 어서 가보게.”

“알겠습니다.”

급히 깨끗한 무복으로 갈아입고 원로원에서 왔다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옥양(玉陽)은 무당 출신으로 무림맹의 원로원 소속이면서 육전호의 사부인 옥허의 사제였다. 하지만 육전호도 소문을 들어 원로원에 옥양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무당과 얽힌 불쾌한 기억이 많았던 탓에 이번에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육전호와 건원필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는데 그 부분을 전부 지우고 새로 관계를 설정하다보니 이후의 글들도 수정할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오래된 글이다보니 어릴 때 썼던 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수정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래전, 처음 글을 쓸 때 생각했던 글과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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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9

  • 작성자
    Lv.35 사류무사
    작성일
    12.05.06 22:59
    No. 61

    음 전 좋아 보이는데요 ...

    물론 건원필이 갑자기 나왔다고 생각 할수도 있겠지만.
    본문에도 있듯이 지금은 전시상황 같아서 .. 조금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
    일단 처단하고 보는게 군문의 설정이 맞다고 보는데 ..
    거기에 육전호 일행은 ... 활을든 무리 가 잡혀서 .. 혐의없음 이 인정되였고 그사건이 위소의지휘사 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 건원필이 ..육전호 이름을 보고 .. 어 .. 오군도독부의 병부상서 가 총예하던 .. 육전호 이런연결이 되면 .. 건원필 로썬 당연히 육전호 를 빼주고 .. 또한 나중에 이사건으로 병부상서 에게 잘보일 필요성이 있으니 왠떡이야 할것 같은데요 ... 사건흐름이 좋아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pr*****
    작성일
    12.05.07 07:53
    No. 62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12.05.07 12:46
    No. 63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5.09 05:04
    No. 64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문문링
    작성일
    12.05.10 10:18
    No. 65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크레이온
    작성일
    12.05.12 12:11
    No. 66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領天華
    작성일
    12.05.14 19:15
    No. 67

    감사합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화일박스
    작성일
    12.05.16 14:52
    No. 68

    무당과의 관계도 잘 풀려야 할텐데 말이죠.. 명문이 명문이 이유는 명문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그렇지 못한 인물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12.05.18 12:07
    No. 69

    건필하세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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