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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님의 서재입니다.

음영잔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임제
작품등록일 :
2012.05.15 07:19
최근연재일 :
2012.05.1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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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7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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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7

DUMMY

붉은 기운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기운의 의지인지, 자신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몇 번의 굴곡을 지나 다시 단전(丹田)으로 돌아오기까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내부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감각을 열었다. 한 자, 두 자…… 자신의 기가 천천히 주위 공간을 지배해 갔다. 일 장 정도까지 확대되자 더 이상 나아감이 없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 경계선에서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기운, 봉천우였다. 봉천우도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기운은 잔잔한 호숫가에 물결이 일듯 부드럽게 흔들리며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봉천우가 익히고 있는 화산파 내공심법의 특징이리라. 서서히 기운을 거두고 갈무리를 했다.

교육대에서 겪은 진전은 단지 신법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었다. 육전호 자신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내력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시전하기조차 힘들었던 유운검법의 후반부 삼 초식도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한참 모자랐지만 어느 정도는 봐줄 만하게 펼칠 수 있었다.

호흡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간 지 오래. 방안은 어두웠으나 사물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침상 위에 앉은 채로 천천히 검을 뽑아보았다.

스르릉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새하얀 검신이 귀기(鬼氣)를 발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 검에 피를 뿌리고 스러져간 이들의 혼(魂)이 스며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천천히 운기를 하며 기운을 불어넣자 검신에 희미한 파동이 생겼다.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낼 날카로운 기세였다. 그때였다.

“육전호!”

조장 계응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벌써 시간이 된 것이었다.

황급히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 봇짐을 들어 방문을 나섰다. 모두들 봇짐을 짊어 메고 복도를 나서는 중이었다.

“가자!”

육전호는 조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섰다.

아홉 명의 조원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얼굴을 굳힌 채 걸었다. 청석위로 달빛이 부서지는 연무장을 가로질러 행랑채를 지나고, 몇 개의 전각 사이를 거쳐 몇 명의 경비무사들이 서 있는 작은 암문(暗門) 앞에 이르렀다. 경비무사와 익숙한 모습으로 수신호를 주고받던 조장이 일행을 돌아보았다.

“내가 선두에 선다. 자춘이가 후위에서 신입 조원들이 뒤쳐지지 않도록 신경 써라.”

원자춘이 번들거리는 눈빛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하거나 추적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니 일차 휴식처까지 신속히 이동한다. 중간에 휴식은 없다.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등 쓸데없는 흔적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각별히 정숙을 유지하도록 한다.”

조장의 속삭이는 듯 나지막한,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병이 조그만 문을 열자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잠시 살피던 조장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뒤를 이어 하나 둘 조원들이 암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가 점점 가까워져 오자 심장이 요동을 치며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앞에 서 있던 봉천우가 암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재빨리 그 뒤를 따라붙었다. 달빛 아래 희끗희끗 보이던 봉천우의 신형이 검은 숲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육전호도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조원들이 태이산을 넘어 한 시진을 달리다 잠시 휴식을 취한 곳은 이름도 모르는 십여 호 가량의 촌락을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는 퇴락한 사당이었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만을 골라 달리기를 나흘. 도착한 곳은 안휘성 육안현(六安賢) 인근 야산이었다.

조원들이 은신한, 잡목이 우거진 숲 아래로는 한 채의 고풍스런 장원이 있고 그 주위로는 몇 채의 민가와 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

수확할 시기가 된 듯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던 육전호의 귓가에 조장 계응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보이는 장원이 우리가 이용하는 거점 중 한 곳이다. 감시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다 어두워지면 잠입한다.”

봉천우가 경계를 자청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육전호는 긴장이 풀리면서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림맹을 떠난 후 나흘 내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까닭이었다.


혜아가 자신의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정위군에 입대 하던 때, 겨우 아홉 살의 어린 애였던 혜아가 이제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혜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잡았던 손을 내려놓았다. 왜? 혜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하지만 이미 웃음기가 사라진 혜아는 절정의 경공을 펼치듯이 스르르 뒤로 물러났다. 마음은 다급했지만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혜아야 무슨 일이야? 멀어져가던 혜아가 입을 열었다.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전호, 그만 일어나.”

“혜아야…….”

눈을 뜨자 봉천우의 무심한 얼굴이 코앞에 있다. 옆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이었다.

“괜찮아?”

처음으로 봉천우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빛이 쏟아질 것만 같은 밤이었다. 다른 조원들은 보이질 않고 봉천우와 원자춘만이 육전호의 곁에 있었다.

“다른 조원들은 이미 장원으로 들어갔어. 우리만 남았지. 그래 잘 놀았나?”

옆에서 빈정거리는 원자춘을 바라보는 봉천우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육전호는 황급히 봉천우의 팔을 잡았다.

“저 때문에 늦어진 것 사과드립니다.”

원자춘은 육전호가 고개를 숙이자 못 본 척 성큼성큼 잡목 숲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봉천우와 함께 달렸다.

좁고 어두운 논두렁을 바람처럼 내달려 장원의 뒷담으로 접근했다.

조그만 뒷문이 열려 있고 경계를 서는 무인이 원자춘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육전호 일행이 들어서자 장원의 머슴으로 보이는 촌부가 다가와 안내를 했다. 몇 채의 건물을 돌아 잘 꾸며진 정원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조장 계응걸이 다가왔다.

“왜 늦은 거야?”

“육전호 저놈이 꿈속에서 계집질을 하는지라…….”

“흰소리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


육포와 말린 떡으로 겨우 허기만 면하던 배를 오랜만에 요리다운 요리로 채우고 뜨거운 물에 목욕도 했다.

이슬을 맞으며 잠깐잠깐 청하던 눅눅한 잠자리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푹신한 이불로 바뀌었다.

이미 옆 침상에서는 봉천우와 소응박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을 닦아내며 코를 고는 소응박을 보고 있자니 단 며칠간의 이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육전호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시 꿈속에서 본 혜아의 모습에 잠이 오질 않았다.


육혜미, 육전호의 여동생이었다.

아홉 살 이후의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나이가 열다섯 살이니 꿈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 성장해 있을지도 몰랐다. 무당산 근처에서 만났던 고향 친구의 얘기로도 혜아의 미색이 뛰어나 무창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귀엽기만 하던 혜아가 여인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는 어머님의 모습도 보고 싶었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는 형과 형수도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때 무당산을 내려와 가족을 만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왔다. 친구에게 자신을 만난 것을 함구해달라고 부탁했기에 고향의 가족들은 자신의 소식조차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한참을 이런저런 상념에 뒤척거리다 머리맡의 검을 집어 들고 방문을 나섰다. 한차례 땀이라도 흘리고 나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각을 돌아, 들어올 때 봐두었던 조그만 공터로 향했다. 전각 모퉁이 어둠 속에서 경계를 서던 무인 하나가 육전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쉭 쉬익!

공터에는 먼저 온 객이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장 계응걸이었다.

아무래도 운기행공이나 하다가 잠을 청해야 할 듯싶었다.

육전호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봐 육전호.”

돌아보니 계응걸이 검을 거두고 있었다.

“제가 방해가 된 듯합니다.”

“아냐, 나 끝났어. 그리고 내가 있을 땐 자리를 피하지 않아도 돼.”

계응걸이 어둠 속에서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아무렴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자네가 낭인 출신인 내게서 훔쳐 배울 만한 무공이 있겠나?”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손을 들어 육전호의 말을 가로막은 계응걸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자춘이가 얘기하던 계집질이 뭐야?”

뜬금없는 질문에 육전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대충 사정설명을 하자 계응걸도 허탈한 듯 웃는다.

“나도 고향집에 열일곱 살짜리 딸이 하나 있지.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여름이야. 휴가를 내서 찾아가봤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서인지 날 어색해하더라고…… 후우…… 하지만 이 생활도 이 년만 있으면 끝이야. 돈 욕심에 오 년 재계약을 했었는데…… 충분하리만큼 돈도 모았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농사나 지으며 살 생각이야.”

“…….”

계응걸의 눈빛이 어둠 너머 멀리 무언가를 바라보듯 아련해졌다.

“난 이만 가볼 테니 열심히 하라고.”

천천히 걸어가는 계응걸의 뒷모습을 보며 육전호는 그가 그의 바람처럼 무사히 살아남아 고향으로, 딸아이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먹고 자며 무공을 수련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장원 밖으로는 나갈 수도 없었고 장원 안에서도 제한된 구역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나마도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오로지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초초함과 지루함에 지친 조원들의 짜증이 늘어갈 무렵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지는 해를 바라보던 송석구가 벌떡 일어났다.

“왔다!”

붉은 석양을 배경 삼아 전서구 한 마리가 장원으로 날아들었다.


그날 밤.

조원들은 모두 조장 계응걸의 방에 모여 있었다.

“수성(水城)에서는 개방의 도움을 받을 것이니 소면도귀(素面刀鬼) 양만백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성에서 장강으로 가는 배를 탈 계획이라 하니 객점에서 하룻밤을 유숙할 거야. 문제는 패천문(覇天門)의 일급무사로 짐작되는 두 명의 호위무사야. 이들 셋을 상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객점이란 좁은 공간에서는 우리의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워. 그렇다고 벌건 대낮에 나루터에서 상대할 수도 없고…….”

계응걸의 고민이 깊어졌지만 육전호는 강호경험이 없었기에 곧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자의 무공수위가 궁금했다.

“그 소면도귀 양만백이란 자의 무공 수위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순간, 조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제히 육전호에게로 날아와 꽂혔다. 무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패천문이 어디에 있는 방파요?”

봉천우의 태연한 질문에 육전호에게로 향하던 뜨거운 시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육전호와는 달리 봉천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 하나하나를 마주 보아 갔다. 원자춘과는 유난히 오랫동안 눈을 맞추었다.

“험! 험!”

계응걸이 곤란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하긴 화산파의 적전제자쯤 되면 구주사도천(九州邪道天)을 구성하는 아홉 개의 하늘 중 하나쯤은 모를 수도 있다. 설령 패천문이 항주(杭州)의 밤거리를 지배한다 해도.

하지만 뒷배가 없는 평범한 무사가 강호의 거친 칼밥을 먹으면서도 소면도귀를 모른다면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귀신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종이처럼 얇고 폭이 넓은 도(刀)를 휘두르는 양만백을 알면서도 당한 무림의 고수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기에.

계응걸은 열심히 패천문과 소면도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도 믿고 뒤를 맡겨야 하는 조원이요, 동료였다.

“시간이 없으니 우선 수성으로 간다. 거기서 그들의 예상되는 이동경로를 정확히 파악한 후 적당한 장소와 방법을 정하자. 일각 후에 출발한다.”

두견새도 피를 토하며 울다 지친 밤, 어둠에 잠긴 장원의 뒷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검은 인영이 하나둘 빠져나와 뒷산으로 사라졌다.


수성현(水城縣).

호구수가 그리 많지 않은 작은 현이었지만 소호(巢湖)로 이어지는 물길은 곧바로 장강으로 나갈 수 있기에 안휘성을 오가는 상인들이 뱃길을 이용할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소호로 향하는 나루터 인근은 객점과 주루 등으로 항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언제부터인가 나루터에서 어슬렁거리던 두 사내가 계집을 끼고 술이라도 한 잔 하려는 모양이었다. 발걸음이 근처의 홍등가로 향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잘나가는 건달이라도 되는 듯 연신 길거리에 침을 뱉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몇몇 홍등가의 여인들이 들뜬 듯 달콤한 목소리로 그들을 청해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들은 척도 안하고 주적주적 걷기만 할 뿐이다. 거리 끝에 있는 싸구려 주점 앞에서 잠시 옥신각신하더니 합의가 된 양 사이좋게 들어가는 모습이다.

“어서 옵쇼!”

콧잔등에 쥐똥만한 점을 달고 있어 순박하게 보이는 점소이가 눈웃음을 치며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어, 그래. 방 있냐?”

“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연신 허리를 숙여대며 앞장선 점소이가 두 사내를 안내한 곳은 주점 이 층의 맨 끝 방이었다.

두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방에는 이미 여러 사내들이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이틀 전, 육안현(六安賢)의 장원을 떠나온 계응걸과 조원들이었다.

이곳 주점도 무림맹 외원의 정보단체인 은월각에서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알아봤어?”

“네, 내일 항주로 가는 상인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아침 첫 배도 이미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육전호의 얘기를 들은 계응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나루터에서 일을 치르기에는 눈이 너무 많고…….”

“으흐흐, 평위야. 휴가받으면 여기 한 번 오자. 의외로 물이 괜찮은 것 같다.”

육전호와 함께 나루터 사정을 탐색하러 갔던 등오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듯 부르르 떨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들이 정말…… 상대는 소면도귀와 패천문의 일급무사 둘이다. 그런 놀음은 임무를 마치고 살아 돌아간 후에 해도 늦지 않아.”

계응걸이 화가 난 듯 입을 열자 좁은 방안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잠시 후 두 명의 사내가 더 들어섰다. 소면도귀 일행이 묵고 있는 객점으로 탐색을 나갔던 원자춘과 담무원이다.

“어때?”

계응걸의 물음에 담무원은 곤란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찍 저녁식사를 하곤 셋이 한 방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아마도 내일 아침 출발할 때까지는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젠장…….”

계응걸이 답답하다는 듯 침묵을 지키자 원자춘이 나섰다.

“예전에 호북신마(湖北新魔)의 목을 취했을 때처럼 배 위에서 기회를…….”

“안 돼.”

계응걸이 원자춘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그때는 그놈 혼자였어, 그리고 황하였기에 가능했지만 여긴 소호채(巢湖寨)의 구역이야. 자칫 장강수로연맹(長江水路聯盟)의 신경을 건드렸다가 그들이 구주사도천과 손이라도 잡는 날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져.”

계응걸의 고민이 깊어감에 따라 조원들의 곁눈질과 침묵도 길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호위무사와 소면도귀를 객점 밖으로 끌어내면 되는 겁니까?”

아무 말 없이 젓가락질만 열심이던 소응박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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