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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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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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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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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7. 신으로서, 인간으로서 30

DUMMY

“그렇게 신경 쓸 거 없어. 나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하아~ 코르, 넌 조금 뻔뻔해질 필요가 있겠다. 미안해하지 마. 타인은 사실 네가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잘 몰라. 네 죄의 크기를 결정짓는 건 네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지야.”

“그... 반대 아냐? 반성 안하면 오히려 더 화를 낼 것 같은데...”


미나는 그 흔들림 없는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우린 언제나 제 죄를 고백하는 이에게 돌을 던지지. 관련된 어떠한 사정도 모른 채, 딱 상대가 미안해하는 만큼만 비난해.”


그것은 마치 어떤 신념과도 같아 보였으며 미나가 자기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나를 통해 대신 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좀 더 당당하게 나가. 그래서 네가 뭘 어쩔 거냐면서 되물어. 그들은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하여 너를 헐뜯을 거니까. 네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누가 감히 너를 비난할까.”


그 신념은 내게 조금 슬프게 다가왔다.

미나가 유피를 동경하게 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가장 그 일에 신경을 쓰는 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만약... 내가 진짜로 잘못한 거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해?”

“코르, 너는 진정으로 죄가 있다고 믿니? 아니, 말을 정정할게. 진정으로 타인에게 널 용서하고 말고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 끝에 해소되는 건 결국 너의 알량한 죄책감일 것이며 그 끝에 주어지는 건 고작 보잘 것 없는 자기만족일 뿐이야.”


그 날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신념을 들은 날이었으며 처음으로 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버텨내고 있는지 여과 없이 전해들은 날이었다.


내가 유피를 알게 되었듯, 미나를 조금이나마... 감히 이해했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시리우스 씨라고 했죠? 그 모습인 상태에서 다시 검을 소환할 수 있나요?”


미나는 이후, 내게서 시선을 떼고 시리우스를 향해 눈을 빛내며 질문을 퍼부었다.


“아, 그건 안 됩니다.”


아직도 프레이야의 환생이 남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동공으로 지진을 표현하던 시리우스는 자신에게 물음이 돌아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왜죠? 지금 인격을 형성하는 건 지혜의 뱀의 흐름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일 테니 단순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라면 불타는 뱀의 흐름을 탄 세피로트만으로도 충분할 텐데요? 역시 출력 부족? 검일 때는 둘로 나뉠 수가 있다고 했으니까 불타는 뱀의 흐름에 드라우프니르의 술식을 섞은 건가? 아홉 개로 증식하진 않았으니 조금 다를지도...”

“죄송한데, 제가 그쪽 방면으론 무지해서... 그보다 너무 가까이 붙지는 말아주시겠어요?”


마침내 시리우스의 천적이 나타났다.

만약 미나의 질문이 칼이었다면 이 모든 질문을 받은 시리우스는 난도질되어 지금쯤 다진 고기가 되었으리라.

더군다나 아직 프레이야의 환생이라는 미나의 존재가 많이 껄끄러운지 시리우스의 하얀 얼굴은 점차 검게 죽어갔다.


연금술에 대한 것은 시리우스 역시 아는 것이 적었기에 이런 질문들은 뒤로 갈수록 전생의 자신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항상 프레이야에게 안 좋은 이야기,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만 하던 시리우스도 이번만큼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실만을 전해주고자 노력했다.


“하하...”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미나는 세상 모든 것이 무가치해지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하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안타까움이 들게 하는 여린 한숨을 자아냈다.


“괜찮아?”

“응, 괜찮아. 그저... 이걸로 확실해졌을 뿐이야. 나는 프레이야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환생일지언정 다른 신이라는 게... 내가 남자여서 그럴 수 있지만 성향이 너무 달라...”


그 모습에 엘레나와 미나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조금 그려지는 것 같았다.


‘프레이야의 모습을 바라는 엘레나와 그저 자기 자신이고 싶어 하는 미나.’


만약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던 존재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분명 상처받겠지. 많이 속상할 거야.’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인 존재라면 그렇겠지. 분명 그러하리라.


‘목소리’ 또한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오랜만에 내 생각에 공감해왔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가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을 알고, 그 모습을 기대한다면... 이를 알아채는 순간, 기댈 곳을 잃은 존재는 무너지고 만다.


‘어떤 말을 해줘야 좋을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줘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적어도 나보다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은 목소리에게 삶의 지혜를 물었지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는 더 이상의 조언을 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면 이 자체가 조언이었을까?


나는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언젠가 시리우스에게도 해주었던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화해하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그... 있잖아. 미나, 한 사람의 존재는 그 기억 자체로 표현할 수 있어서 기억이 다르다는 건 다른 사람과 다름이 없대.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전생의 우린... 그저 영혼만 같은 타인이잖아?”


내 위로에 미나는 가만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뒤에서 시리우스가 나에게 엄지를 날렸다.

나도 마주 엄지를 들까 생각했다가 어깨가 흔들릴까봐 눈빛만을 보냈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평화롭게 흘러갔다.


***


오늘 아침은 시리우스가 나를 깨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나가 나를 깨우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라, 일어나 있었네? 시리우스 씨가 깨운 건가요?”

“그게 제 일 중 하나니까요.”


미나는 어째선지 시리우스를 향해 선망의 시선을 보내왔다.


‘시리우스가 객관적으로 봐도 멋있긴 하지. 물론 진지할 때만...’


시리우스는 아직 미나의 존재가 거북한 것인지 내 뒤에 딱 달라붙었다.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남자가 그러니 무척 모양 빠졌다.


“우후후! 이럴 줄 알고 내가 아침을 3인분을 챙겨왔지.”


미나는 그 모습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손수 끌고 온 조식이 담긴 카트에서 여러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코르, 요즘 신들은 다 이렇게 격의가 없는 건가요?’

‘나도 잘 몰라. 그러니까 나한테 물어봤자 얻는 건 없을 거야.’


나도 나 이외의 다음세대들은 항상 시종들이 24시간 붙어 다니며 밥도 누가 먹여줘야만 먹는 그런 호화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 예상했기에 시리우스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해 고민했다.


“코르, 나는 암컷이든 수컷이든 물고기는 맛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그러던 중 미나가 갑작스레 말을 걸어온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마침 오늘 아침은 생선구이였다.


‘암수구분이 되나...?’


자세히 보니 각 생선의 모양이 약간 달랐다, 하나는 배가 불룩한 게 알이 든 게 분명했다.


“난 알 좋아해서 암컷 먹을래.”


손님에 대한 배려인지 미나는 내게 선택지를 넘겨주었고, 나는 옳다구나 하고 받아 곧장 포크로 통통한 배를 갈랐다.

그러자 안에 따끈따끈 고소한 알들이 가득 찬 게 보였다.


“으, 으읏!”


그런데 미나의 반응이 영 심상치 않다.


─덜컹!


갑자기 미나가 사라졌다.

뒤로 넘어간 의자만이 그 자리에 누군가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으음... 왜 저러지? 미나도 사실 이게 먹고 싶었던 걸까?”


내가 눈치가 없었나하고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시리우스를 바라봤지만 시리우스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글쎄요?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던데 화장실이 급했던 걸지도 모르죠.”

“화장실은 이 방에도 있잖아.”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띄웠다.


그리고 복도에선...


─다다다다!


누군가 신발의 밑창으로 대리석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 임신플레이라니! 나, 나도 아직 못해본 건데!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미나의 오해는 한동안 풀릴 줄을 몰랐다.


***


이곳은 이집트의 어느 저택.

영원한 겨울이 찾아왔음에도 이곳의 정원은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여 마치 파라오의 별장을 보여주는 듯 했다.


“다음은 저게 먹고 싶구나.”

“네. 케빈 님.”


식탁 위에 차려진 찬의 수는 자그마치 1088.

중국 황제가 먹었다는 1088첩 반상이 펼쳐진 곳 위에서 의자에 앉은 이가 주위의 시종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렸다.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란 말이다. 쯧.”


그의 혀 차는 소리에 어딘가 여성스러운 외모의 시종의 기가 죽는다.


불합리.

부조리.


당최 1088개의 음식 중에서 턱짓으로 가리키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찌 맞출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시종은 구태여 입을 열지 않고 더욱 깊숙이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케빈 님.”

“너... 이름이 뭐지?”


갑자기 이름을 묻는 그에 시종은 잠시 몸을 떨다 약간의 기대를 담아 답했다.


“라이라고 합니다.”

“라이(Lie)...? 그래 라이.”


신께서 자신의 이름을 곱씹자 시종의 얼굴엔 묘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산만한 걸 넘어 무례하고, 무례한 걸 넘어 주제를 모른다.”


기대가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남자가 감히 나의 이름을 부르지 말란 말이다. 부를 거면 토트 님이라 불러라. 그조차 아니면 다음세대 님이라고 부르던가.”


이에 라이라는 이름의 시종은 눈을 감고 주먹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물론 이 행위는 케빈에게서 어떠한 관심도 살 수 없었다.


“케빈 님, 아아~”

“그래.”


이 얼마나 편파적인 존재인가.

같은 반찬을 여인이 건네주면 군말 없이 받아먹으면서 사내가 가져다준 것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밉기로 따지면 미운 다섯 살 저리가라다.


“케빈 님, 뭐 더 하시고 싶은 거 있나요?”

“없으면 저희랑 놀아요.”


-까르르르.


그 모습에 지금 방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또 한 소리를 듣고야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시종들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고 방 안에는 시녀들과 케빈만이 남았다.


“야! 신입, 너도 눈치껏 빠져.”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한 라이라는 시종을 좀 더 경력이 긴 듯한 시종이 직원 휴게실까지 끌고 갔다.


“후~ 좆같다.”

“참아. 대신 봉급이 세잖아.”

“돈만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버텨야 해.”


그들은 방음이 잘 된다고 수십 번도 더 확인한 직원 휴게실에서 열심히 신에 대한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불시에 그가 찾아올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땀내 나는 남자들이 있는 곳은 질색이라며 근처에도 오지 않았으니까.


“존나 부럽네. 지금쯤 방안에서 잔뜩 즐기고 있겠지?”


리버스에 속한 직원들이라면 모두 다음세대에 대한 신앙심을 주입하기 위해 정신교육을 받았기에 이런 무례는 잠꼬대로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이들에게 있어 신에 대한 인식은 운 좋게 신으로 태어난 어떤 것에 불과했다.


“신은 정력도 좋나보네. 아아, 어머니 왜 저를 신으로 낳아주시지 않으셨나요.”


이들은 모든 3급 헌터, 다음세대만이 될 수 있는 특급 헌터의 특권 중 하나인 소집령에 의해 강제로 징발되어 모인 이들이었다.

소집령에 따른 보수는 보통 따로 지급되지 않지만 이 일은 봉급을 일당으로 따로 쳐줬기에 하루만 하고 그만두는 것도 가능함에도 한 달 정도 일을 하면 꽤 넉넉한 양의 포인트가 쌓였기에 이렇게 진득하게 남아있는 이들도 많았다.


“신입, 힘들지?”

“예... 생각보다 힘드네요.”

“좀만 참아. 우리한텐 관심도 없어서 갈구는 일 같은 것도 없으니까. 네 이름도 금방 잊어버릴 거야.”

“잊는... 다고요?”


그 모습에 라이라는 이름의 시종은 뭔가 아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내가 친한 시녀한테 들은 이야기긴 한대 의외로 건전하게 논다던데? 아직 동정이란 소문도 있어.”

“병~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신의 아이를 낳으면 바로 팔자가 피는 거라고.”

“그치?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뭔가 이쪽 관련해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고는 하던데.”


서열 6위,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환생인 그는 코르의 생각처럼 호화로운 삶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것도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음담패설과 다름없는 막말에 무언가를 아는 듯 신입은 말을 더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 이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어이! 신입! 진짜 관두게?! 지금 시기에 여기만큼 좋은 일자리도 없다고!”

“야, 그냥 가게 둬. 저런 애들이 한둘이냐?”

“하지만...”


더 이상 라이도, 시종도 아니게 된 그는 빠르게 절차를 밟아 저택을 빠져나왔다.

다음세대의 거처라기엔 보안이 너무도 허술한 담장을 지나자 그곳에는 그를 기다리는 차량이 있었다.


“원하는 건 얻으셨습니까?”

“아아, 확신을 얻었지. 내 복수가 정당할 것이라는 확신.”


세상에는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은 누군가의 이정표이자 등불이라고, 모두를 이끌겠노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빛나는 사람만이 있지 않다.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며 이런 빛나는 사람들보단 어둡고 칙칙한 사람이 더욱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 아주 어두운 사람이 있다.

빛이 누군가를 이끈다면 이 자는 누군가를 빨아들인다.

마치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라도 되는 양, 주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고 중독시켜 한 번 걸리면 감히 자의로 빠져나갈 수조차 없게 만든다.


아마 그래서일 거다.

마치 목줄 풀린 광견 같은 이 거짓말쟁이를 이토록 많은 사람이 따르게 되는 까닭은.

당장이라도 제 목을 조를 듯 광기에 차있음에도 그를 왕처럼 떠받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아, 복수를 이루고 명예를 되찾아 나는 비로소 인간이 되리라.”

“뜻하신 바를 이루시길. 우리 개미들의 왕이시여.”


복수란 오직 복수귀(復讐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니.

복수란 인간이 그 존엄을 되찾고자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일이니.

복수를 끝마쳐야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돌아가자. 나의 조국 알바니아로.”


***


“그런데 미나, 나랑 대련할 때 세이드를 왜 바로 사용하지 않은 거야? 만약 처음부터 그걸 썼다면 난 너한테 손도 못 대고 졌을 텐데.”


어느 정도 미나와 친해졌다는 생각에 나는 대련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꺼냈다.

아무리 상호동의하에 벌인 대련이었다지만 친구를 때렸던 건 크게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도 익힐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뭔가 페널티라도 있는 거야? 아무 대가 없이 그런 힘을 쓴다는 건 아무리 우리 전생의 모습의 힘이라 해도 너무 사기적이잖아.”

“간단해보이지만 이것도 조건이 많아. 부작용도 있고 말이야. 전생의 인격을 불러오는 거라서 그 방대한 기억에 현재의 내 자아가 매몰될 위험도 있어. 그래서 안전장치를 잘 설정해야해.”


역시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전생의 자신을 불러온다는 세이드도 약점이 존재했다.

하긴, 만약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면 서열 1위는 유피가 아니라 미나가 했으리라.


“안전장치?”

“우선 목표설정. 세이드를 언제까지 유지시킬지, 불려나온 전생의 자신에게 무엇을 시킬지 등을 정해야 해.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게 조건이 충족될 만큼 간절해야 하거든. 그때 나는 코르 너를 무척 이기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이겨달라는 목표 설정과 동시에 대련의 승리라는 종료 설정도 끝낸 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임에도 파고들면 꽤나 까다로운 부분이 많았다.


“다음으론 전생의 내가 움직이는 동안 현재의 난 잠이 들어야 해. 그래서 내 전생이 세이드 상태에서 활동하는 건 꿈처럼 어렴풋이 기억되지. 하지만 말 그대로 어렴풋이라서 실력 향상에는 큰 의미가 없어. 코르, 너의 대련을 받아들인 건 나 나름의 강해지고 싶다는 향상심도 있어서였는데 이걸 쓰면 의미가 없어지잖아? 그래서 그 대련은 코르 네 승리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말한 거야.”


뭔가 미나는 많이 쿨했다.


“어, 다 먹었네? 그럼 이따 봐. 수업 잘 듣고~”


미나는 빈 접시가 담긴 카트를 끌고 방을 나갔고, 방에는 다시 나와 시리우스 단둘이 남게 됐다.


“시리우스, 미나와 엘레나 둘의 관계 이대로 괜찮은 걸까? 둘의 관계, 굉장히 위태로워 보여.”


내 물음에 시리우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을 겁니다. 그녀는 이미 미나 군을 선택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아?”


나보다 똑똑한 시리우스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일까?

정말이지 확신에 찬 어조였다.


“만일 엘레나가 프레이야로서의 미나 군만을 진정으로 바랐더라면 다음세대의 세이드가 전생을 불러오는 것임을 알았을 때 이미 말했을 겁니다. 현재의 너를 버리고, 전생의 당신, 진짜 당신이 되어 그 모습을 영원토록 유지해 달라고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뭔가 조금 무섭네...’


그건 마치 지금의 너는 필요 없으니 사라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게 들렸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난 마음에 안 들어. 그래도 이름은 불러줘야지.”

“알아서 해결하겠죠. 아무리 친구라지만 더 끼어드는 것은 실례입니다. 그럼 바로 오늘의 수업을 들으러 가볼까요?”


엘레나가 그의 사이즈에 맞춰 보내준 여자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시리우스는 뭔가 묘하게 즐거워보였다.

나는 그 옆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만약 내가 세이드를 익히게 되면 너 괜찮겠어? 내가 로키가 되어버리는데?”

“괜찮겠죠? 괜찮을 겁니다. 괜찮아요.”


북유럽 신화의 대표 악역 로키.

세이드가 설정한 목표를 최우선적으로 행동하고 목표를 이루면 자동으로 풀린다지만 내 전생이 악신으로 손꼽히는 로키라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짝!


“악! 왜 때려!”


그때 시리우스가 내 등짝을 때렸다.

이제 시리우스에게 걸어둔 제약이 거의 사라져 이런 행위도 가능했다.


“두려워 마세요. 주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믿음. 자기 확신입니다.”


아무래도 ‘힘을 내’ 내지는 ‘정신 차려’라는 의미로 때린 것 같다.


“알았어... 그런데 너 손 왜 이렇게 매워?”


그런데 너무 아프다.

셔츠를 벗은 맨살을 맞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등이 홧홧했다.


“많이 아팠나요?”“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순순히 엄청나게 아팠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뭔가 지는 것 같아 최대한 대범하게 넘겼다.

이후 우리는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긴 유머라도 되는 양 즐거이 나누며 엘레나가 기다리고 있을 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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