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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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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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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7. 신으로서, 인간으로서 29

DUMMY

물론 소녀가 황제에게 가르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만큼 일반적인 교합과는 많이 다를 거다.

소녀경은 천지간의 결합, 음양의 조화에 뜻을 두어 불로불사와 불로장생에 이르는 도(道)의 일종이니까.


“사바나 원로님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있다가 엘레나에게 물어봐.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거든. 내가 사바나 원로님의 수업을 졸업했을 때 내게 떡갈나무로 만든 지팡이도 선물해주셨어. 볼바는 물푸레나무로 지팡이를 만드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켈트 쪽 사람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


주술이나 연금술, 마법 같은 학문은 스승이 졸업하는 제자를 위해 무언가 의미가 담긴 선물을 준다는 모양이다.


미나는 마시던 홍차의 당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곁에 있는 장미 잼을 크게 떠 안에 넣고 휘휘, 저어 마셨다.


“코르도 넣어줘?”

“아니, 사양할게... 옛날에 코코아를 마시다 당이 부족한 느낌에 딸기잼을 한 스푼 넣었는데 먹고 바로 토했던 기억이 있거든.”


내 대답에 ‘목소리’는 자꾸 토하는 게, 먹고 바로 누워서 위산이 역류한 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해왔다.

하부식도‘괄약근’(왜 괄약근이란 말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을 열심히 단련해야겠다는 말도...


나는 당연하게도 이를 헛소리취급하며 무시했다.


“코르, 잠깐 네 검 좀 볼 수 있어?”


미나는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용건을 꺼냈다.


“시리우스 말이야?”


난 별 다른 의심 없이 미나에게 시리우스를 넘겼다.

미나는 시리우스를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역시나... 대체 누가 만든 거지? 세피로트의 나무(The Tree of Sefirot)가 새겨져 있잖아. 꽤 고전적이지만 ‘불타는 검의 흐름’을 제대로 탔어.”

“어...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줄래? 세피로트의 나무는 분명 카발라에 나오는 그거지?”


이럴 때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다음세대와 인간이 받는 의무교육만을 받은 나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코르, 잠깐만. 와! 말도 안 돼! 완전한 세피로트의 나무를 두 그루나 새겼다고?! 그것도 갑옷이 아닌 검에? 심지어 이거 통짜 아르케잖아!”


미나는 시리우스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는지 내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조차 해주지 않았다.

날 쳐다보지도 않고 양해를 구하며 시리우스를 뒤집어 반대쪽 쪽 검면(劍面)도 마저 확인할 뿐이다.


‘설마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곤란하다.


“지혜의 뱀의 흐름은 진짜 어려운 건데!”

“그러니까 설명 좀 제대로 해줘.”


미나는 욕심이 생기기 전에 떠넘기듯 내게 시리우스를 돌려줬다.

손끝에 아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

덕후의 욕망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기에.


“세피로트의 나무는 코르도 좀 알 거야. 카발라의 정수이자 마도공학의 꽃이지. 10개의 세피라(Sephira)와 22개의 길(Path)을 이해하고 이 모든 것을 그려 완성된 물건엔 비로소 ‘세피로스(Sephiroth)’라는 이름이 주어져. 보통 갑옷에 많이 새기기에 기사의 갑주를 부르는 말로도 쓰이지.”

“그러니까 시리우스가 엄청 좋은 물건이란 거지?”


나는 관심분야가 나와서 흥분한 듯 보이는 미나의 말을 더 길어지기 전에 끊었다.


“고작 그 정도가 아니야. 내가 여지껏 본 물건 중에 제일이라고. 코르, 너 나랑 대련할 때 이거 형태도 바꿨었지? 회로를 새겼는데 형태를 고정시키지 않고 자유자재로 바꾼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어. 이건 아마 사바나 원로님도 못할 거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상위 차원에서의 관측을 활용한 건가? 아니면 본질과 실존을 나눠서 각각...”


내가 영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을 짓자 미나는 시리우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주겠다는 듯이 사명감에 찬 표정으로 어디선가 칠판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이게 세피로트의 나무야.”

“아, 이건 만화에서 자주 봤어.”


나무에는 10개의 원과 22개의 원과 원 사이를 잇는 길이 그려져 있었는데 여러 매체에서 이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세피로트의 나무는 생명나무의 다른 이름. 아르케로 이루어진 신의 신체는 관리자가 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서 완성된다는 건 코르도 알지?”


그것이 이전세대의 신과 다음세대의 신의 차이점이라고 들었다.

아르케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의 차이.


“그럼 그게 완성된다는 건... 설마?!”

“맞아. 신의 신체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아발론의 기사들이 삼대세력 중 하나에 속할 수 있었던 거고.”

“그건 좀 무섭다. 인간이 신의 신체를 손에 넣다니.”


이후 미나는 10개의 원, 그러니까 세피라(Sefira)들을 순차적으로 손으로 그었다.

케테르(Kether)에서 말쿠트(Malkuth)까지.


“이게 불타는 검의 흐름이야. 10개의 세피라를 순차적으로 흐르기에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굉장히 효율적이지. 증폭 면에서 여타 회로랑 비교가 안 돼. 출력 면에서도 최고라고.”

“그럼 지혜의 뱀의 흐름은 뭐야?”

“이건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개념인데.”


미나는 이번에 반대로 맨 아래의 말쿠트에서 첫 번째 케테르까지 손가락으로 그었다.

나는 그 순서를 기억했다.


“그냥 거꾸로 가는 거야?”

“지혜의 뱀의 흐름은 10개의 세피라가 아니라 22개의 길을 타고 올라가는 거라 완전한 역순은 아니야. 그래서 이 검에서 두 개의 나무가 공존이 가능했던 거고.”


만약 동일한 경로를 새겼다면 아무리 시리우스라고 해도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깨지거나 아니면 새겨진 술식이 깨지거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깨졌을 거란 미나의 말에 어째선지 시리우스를 두 개 이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게 떠올랐다.


“이 경로는 인간이 ‘신의 지혜’를 찾아 흘러가는 경로이기에 입문(入門)의 경로라고도 불려. 이걸 새긴 세피로스는 성장이 가능해지지.”

“성장이 가능하다니...”


그건 더 이상 단순한 무기가 아니지 않은가.

생체 병기 내지는 생체 무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성장이 가능하단 건 산 자만이 가지는 특징인 법이다.


“또 이건 ‘진정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해서 주로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에고 웨폰들에 이걸 새기는데...”


미나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내게 의심이 가득 담긴 눈총을 쏘아 보냈다.


“코르, 너 뭐 더 숨기는 거 있지? 빨리 불어. 사무엘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설마 나만 따돌리는 거 아니지?”


미나는 언젠가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여 스스로 왕좌에 오른 남자가 코르 곁에 있던 새하얀 미남자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벗의 검이라고 이야기했던 걸 떠올리며 말했다.


“나, 나중에 설명해 줄게.”


사실 이젠 크게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시리우스가 프레이야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아 곧장 소개해주기가 껄끄러웠던 나는 거절의 말을 입에 올렸다.


“흥! 치사하게.”


그런 내 대답에 미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내듯 한껏 볼을 부풀린 채 방을 나갔다.


‘저 무기 아직 미완성이야. 지혜의 뱀의 흐름이 중간에 끊겨 있어. 제대로 정립된 건 말쿠트부터 티페리트까지... 특히 티페리트는 극히 최근에 완성된 것 같은데... 시기로 따지면 나와 만난 이후인가?’


티페리트가 상징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란 걸 떠올리면 참 의미심장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스스로 완성되어가는 무기라니, 전대미문이 아닌가.


‘코르는 이 힘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어. 내 앞발을 태웠을 때 권능의 증폭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것의 진짜 힘은 그게 아니지.’


방을 나가면서도 미나는 자신이 본 그 믿을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사고를 계속했다.


‘흡수. 아니, 순환이려나? 서로 반대되는 경로를 가진 세피로트의 나무를 새기며 힘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했어. 이건 내 망상일 수도 있지만 권능의 공유가 가능할지도 몰라...’


미나는 잠시 코르가 저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를 상상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권능만으로 사무엘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 아니, 그 이상인가? 아~ 질투나. 그냥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코르도 나한테 비밀을 만들었으니까 할 말 없겠지.’


스스로 그렇게 변명해보지만 역시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미나는 복도를 걷다말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코르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오늘 수업도 잘 해. 그리고 아까 못 해준 말이 있었는... 오!”

“이, 이...! 나가!!”


하필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아무리 동성이라고 한들 함께 욕탕을 가는 거라면 몰라도 여자 옷으로 갈아입을 때 타인이 들어오는 것은 코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이, 일단 코르가 있는 데가 원래 내 방인데, 그리고 크게 이상하지는...!”

“알겠으니까 나가라고!”


정확히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베개(시가로 800유로, 한화로 약 108만원.)에 미나는 잽싸게 도망갔다.


***


“그나저나 유피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설마 자기 집으로 돌아갔나? 인사도 없이?”


나는 후다닥, 문밖으로 도망치는 미나를 보며 말했다.

유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대련 이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그가 생각났다.


“뭐, 알아서 잘 지내겠지. 어린애도 아니고.”


유피가 들으면 섭섭해 할 법한 생각을 하며 코르는 오늘의 성교육. 아니, 주술 수업을 위해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하아~ 진짜 변태도 아니고 이게 뭐야.”


하지만 헬리콥터 맘의 최종진화형태와 같은 그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릴 수가 없었다.


“역시... 시리우스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미나도 이제 내 친구가 되었기에 계속 시리우스에 대해 감추고 있기 미안한 것도 있었다.


“시리우스, 미안! 고통은 나누면 반이라고 그랬어. 네가 오늘 받을 고통은 어제의 내가 받은 고통의 절반일 거야!”


그래서 조금 덜 미안한 쪽을 택했다.


“어라? 코르? 아니, 코레 씨? 어라? 어라라라?”


효과는 굉장했다!

여장을 한 나를 발견한 시리우스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옷을 갈아입혔다.

변신을 할 때마다 옷이 새롭게 생기는 그런 편리한 기능이 없기에 시리우스는 알몸으로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는지 순순히 옷을 받아 입었다.


“코르... 아무리 작은 옷이 제 목을 조르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혹시 새로운 취향에 눈이라도 뜨신 건가요?”


다 입고 나서 거울에 비친 제 꼴을 확인했는지 내게 묻는다.


“시리우스, 우린 언제나 함께이지?”

“지금만큼은 거절하고 싶네요...”


그렇게 오늘 수업부터 시리우스가 대동하게 되었다.


“코르 님, 이제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늦으셨... 발드르 왕자- 아니, 공주? 에, 에엑?!”

“오, 서로 아는 사이야?”


다행히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다.

설명할 수고를 덜었다.


“엘레나? 아직 살아있었군요. 반신이기에 오히려 관리자의 영면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가요?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나머지 절반이 인간이 아니라 요정이라 수명이 더 긴 건가...?”


마치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듯 반가운 기색으로 안부를 묻는 시리우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다른 신화에서와 다르게 노화가 찾아왔다.

그렇기에 늘 황금사과를 먹으며 젊음을 유지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설마 이거 때문인가?’


나는 다시 엘레나 선생님의 상태창을 열람한 뒤, 그녀의 비밀을 찾았다.


‘불사의 영액, 암리타(Amrita)...’


인도신화의 신들이 마신 불사를 가져다주는 영약으로 말 그대로 마시는 자에게 불멸을 주는 모든 영약 중에 최고봉에 있는 그것.

조금의 희석도 되지 않은 순수 아르케로만 만들어지는 이것은 그 자체로 생명의 열매와 쌍벽을 이루는 물건이다.


관리자 레테는 힌두교의 신들에게 이를 나눠주어 영생을 살게 하였는데 단 하나, 신이 아닌 아수라가 섞여 이를 먹었다.


그 이름은 스바르바누(Svarbhanu).


태양신인 지고한 빛, 수리야(Surya)와 달의 신인 소마(Soma)가 이를 눈치 채고 관리자에게 이야기해 서둘러 그 목을 베어 냈지만 이미 그는 암리타에 입술을 적신 상태였기에 한정적으로나마 불사성이 부여됐다.


이 불멸을 없애기 위해선 모든 암리타를 없었던 걸로 해야 했기에 관리자는 그를 그대로 두어야했다.

그렇게 스바르바누의 그 잘린 머리는 라후(Rahu)가 되어 자신을 밀고한 태양과 달에 복수심을 품고 이를 쫓아다닌다.


힌두교의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존재이자 관리자의 영향을 받게 되어 그녀의 영면과 함께 윤회의 고리로 돌아가게 된 존재다.


그리고 그가 마신 암리타는 몸 전체로 흡수하지 못하고 머리에만 머물렀다는 라후의 특수성으로 인해 사후에도 남아있었던 암리타, 그것은 마치 크바스를 훔친 오딘이 미처 입 안에 다 머금지 못하고 독수리로 변해 도망치던 중, 몇 방울 흘리고 만 신주(神酒), 크바스처럼 여신 프레이야의 죽음에 절망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엘레나의 입술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바지르(Kvasir): 애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들이 종전을 기념하여 항아리에 뱉은 침으로 빚은 현자.


*크바스(Kvase): 크바스의 어원은 빚은 술을 의미하며 현자, 크바지르로 빚은 신주(神酒)이다.

그는 그 능력을 질투한 난쟁이 형제 퍌라르와 갈라르에게 살해당했고 그 피는 술로 빚어져 마신 자에게 위대한 지혜를 선물해주는 술이 된다.

이 신주(神酒)는 마찬가지로 이 형제에게 부모님을 살해당한 수퉁이란 거인이 이 난쟁이들을 죽이고 가져간다.

그리고 이는 이를 욕심낸 오딘은 그를 설득해 단 세 모금만 마신다 하고 몽땅 입에 담은 뒤 독수리로 변해 도망가며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는데, 이때 몇 방울 흘린 크바스를 마신 사람은 에다를 기록한 위대한 대시인이 됐다.


행운일까?

아니, 그보단 운명에 더 가까우리라.


“둘이 생각보다 친했나봐?”

“저보단 코르, 당신의 전생과 더 친했죠. 가끔 둘을 보면 꼭 부녀사이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다, 당신이 어떻게 현대에!! 분명 죽었는데?! 아니, 그보다 그 우스운 꼴은 뭡니까!”


엘레나는 경악하다 말고 시리우스의 행색을 지정했다.


‘나한테 입으라고 준 옷을 입힌 건데 그동안 날 우스운 꼴이라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 말에 속에서 불만이 올라왔지만 이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맞지도 않는 옷, 그것도 여성의복을 꽉 끼게 입은 시리우스는 진짜 우스운 꼴이 맞았음으로.


“설마 당신의 시체를 아저씨가?! 그러면 진짜로 환생...?”


효과는 굉장했다!

여장한 시리우스를 본 엘레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녀의 눈엔 둘 사이를 잇는 계약이 보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것은 로키와 발드르 사이에 맺어진 인연의 실이 코르와 시리우스 사이로 내려와 개화된 그런 것이었다.


로키가 먼 미래를 대비해 만들어두었을 안배.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코르는 로키 신의 환생이다.


‘마지막 확인을 끝낸다면...’


그럼에도 그녀는 확신에 확신을 기하고자 한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세이드를 통해 전생을 불러올 수 있는지 여부만 확인한다면 된다. 그러면 돼.’


전생엔 영혼이 없었고 현생은 제 눈으로도 그 영혼의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으니까.


“엘레나에게 주술을 배우는 중이었나요? 저는 또 갑자기 새로운 취향이 생겼는데 대놓고 드러내기 부끄러우니 함께 하자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죠.”

“난 지극히 정상이야!”

“코르, 세상엔 정상이 없어요. 모두가 비정상이라고요. 관념적인 의미의 정상이란 그 비정상들을 일렬로 늘여놓고 중간에 있는 걸 뽑은 걸 말해요.”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잊고 만담을 늘여놓는 그 둘을 보며 엘레나는 새로운 가설을 하나 더 떠올렸다.


‘어쩌면... 다음세대의 신은 그저 이전 생의 신들이 환생한 것이 아닌 그저 직책만을 이어받은 게 아닐까? 다른 점이 너무 많아. 아무리 다시 태어났다지만 저 둘이 이렇게 친해지다니.’


모든 다음세대가 기원을 타고난 것만 해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기원은 각종 신화권의 다른 계통의 신들에 쪼개져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수업을 계속하죠. 당신... 아니, 발드르 왕자님도...”

“시리우스라고 불러주렴. 내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이니까.”

“시리우스님도 주술을 배우겠다면 맞는 옷을 드릴 테니 제발 그 남사스러운 옷을 좀 벗어주시겠습니까? 시선을 두기 어렵군요.”

“그, 그럼 나는?!”


애초에 시리우스를 대동한 것이 무슨 이유에서였는가, 고통을 나눠 받기 위해 부른 거다.


“하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내 말에 엘레나는 두통이 인다는 듯 미간을 짚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그렇게 이론 수업만 있는 날에는 여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어냈다.


수업이 끝나고 오후의 자유 시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미나가 찾아왔다.


“코르, 나 왔어! 그런데... 그 남자는 누구야? 애인?”

“아냐!!”


내 격렬한 거부에 평소라면 상처받았다는 티를 팍팍 낼 법한 시리우스가 의외로 조용했다.

나는 자연히 고개를 돌아봤고,


“프레이야가 남자. 프레이야가 남자. 프레이야가 남자...”


효과는 굉장했다!

남자로 환생한 프레이야를 본 시리우스는 혼란에 빠졌다.


‘코르! 남자로 태어났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이내 혼란에서 빠져나왔는지 귓속말로 나를 닦달한다.


‘여자라고도 말 안했어!’


시리우스는 결국 내가 로키와 다르듯이, 미나 역시 전생과는 별개의 인물임을 인정했다.


“그... 속여서 미안! 아, 속인 건 아닌가? 숨겨서 미안. 아무래도 전생이 엮여있다 보니까 쉽게 소개하기가 껄끄러웠어.”


나는 미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뒤늦은 사과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미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맞을 거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온통 눈앞에 있는 이 이전세대의 신에게 쏠려있었으니까.


“헤에-♬”


자신이 고작 시선만으로 철저히 해체되어가는 감각에 시리우스는 잘게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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