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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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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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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1
추천수 :
105
글자수 :
253,130

작성
21.09.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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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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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4)

DUMMY

근 한 달 정도 시간이 더 흘렀다.


충격에 몸 져 누웠던 무수의 어머니와 형수가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았고, 무수의 허벅지도 움직이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졌다.


커다란 집에 썰렁하기만 했던 공간들은 근처 전, 답을 매수하며 장작과, 곡식들이 채워지면서 이에 상응하는 식솔들로 채워졌다.


본격적인 여묘살이를 준비하던 무수는 담이와 춘호를 불러 세웠다.


담이 앞에 놓인 노비문서를 확인 시키고는 불태운 무수였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어디든 떠나라는 소리를 했다.


담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형의 얼굴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더는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무수의 판단이었다.


완강히 거절하며 울고불고 하던 담이는 춘호의 손에 이끌려 나갔고, 무수는 어머니와의 인사를 끝으로 산속으로 향했다.



여묘살이는 무수에게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죽은 자에 대한 삼년 동안의 지극할 정도로 예를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지난날을 뒤 돌아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아성찰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누구한테 밥 한번, 빨래 한 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매일 같이 무심코 받아왔던 일상적인 모습들이 후회로 밀려왔다.


죽은 형과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음에 후회와 미련이 가슴 한구석을 잘라내고 싶었다.


형수와 조카, 어머니가 자꾸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친구들, 지인들, 주위에 모든 사람들···, 계속된 과거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과 행동들이 떠오르며 통곡의 눈물과 번뇌는 한 동안 계속되었다.


내부에서 정신과 힘겨운 싸움이 진행될 무렵 외부에서 적이 찾아왔다.


49제를 치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었다.


칼날 같은 바닷바람은 잔인할 정도로 무수의 살을 파고들었고, 피폐해져 있던 정신 상태는 죽음에 이르는 신체적 고통을 안겨주며 극심한 병마에 시달렸다.


건강한 육체는 정신을 맑게 한다고 토굴을 파기 시작하며 겨우 안정을 되찾았고, 반년 정도 지나서야 토굴이 완성되며 산속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한가해 보이는 산중생활이지만 부지런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올리는 조석상식,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오는 이름 모를 잡초들, 무성해지는 나무,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또한 다가오는 여름은 물론이거니와, 겨울도 대비해야 했다.


중요한건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잡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극심했던 번뇌 또한 몸속에서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지 조용해졌다.


이년이란 시간이 더 흘러갔다.


힘겨운 여묘살이는 고향 하동으로 형의 묘를 이장하며 끝마쳤다.


커다란 봉분 아래 작은 봉분이 봉긋 올라 있었다.


처음부터 고향에 묻혀야 했으나, 바다를 보고 싶어 했던 정인수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 주자는 무수의 간곡한 부탁에 힘겹게 외지에 가서 여묘살이를 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지내려던 가족들을 뒤로하고 다시 아버지의 시묘(侍墓)살이를 시작했다.


정인수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후회와 미련에 예를 다하고 싶다는 무수의 강한 일념에 가족들은 반대를 할 수 없었다.


서걱, 서걱,

휘쉬작, 휘쉬작,


강한 여름 햇살을 아쉬워하던 늦가을에 강렬한 햇살이었다.


관리가 된다고 한들 식솔에 의해 관리되고 있던 봉분이 제대로 관리될 일이 만무했다.


무수한 잡초들이 낮게 베어지며 차츰 정돈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예를 갖춘 후 봉분에 술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아버지···.”


무수의 작은 흐느낌이었다.


“학문에 힘을 쏟는 문인이 되시라는 말씀, 아버님의 뜻이 뭔지 잘 알기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바닥에 술을 뿌리던 무수가 자리에 앉아 술 한 모금 들이키며 봉분을 뒤로 한 채 먼발치에 보이는 마을 풍경아래 정리가 안 된 작은 봉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버님의 뜻에 따라 형님과 글공부에 매진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길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버님.”


남은 술을 목에 털어 놓고는 시선을 다시 아버님의 봉분을 향했고 나지막한 음성이 계속됐다.


“제가 글공부 시작한지 한해쯤 뒤부터 이곳저곳에서 소문이 난무했고 절간처럼 조용한 집안 분위기에 그 동안 가까웠던 마을 분들이 하나둘씩 피해 다니는데 뭔가 있나 싶었습니다.”


후우후!


한숨을 길게 내쉰 무수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울어져간 가세에 되지도 않는 글공부를 이제는 막내까지 해대는 턱에 그마져 남아 있던 곡간은 비어져갔고 처분할 논, 밭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양반족보까지 팔려고 알아보러 다닌다고···, 동네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더군다나 식솔도 절반가량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이에 어머님 혼자서 집안 살림을 꾸리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자리를 일어서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곱게 손으로 매만지며 말아 올렸다.


“유약한 형님, 남한테 험한 소리 하지 못하는 어머님만으로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고 이를 바로 잡고자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고, 아버님의 뜻은 뒤로 미뤄야만 했습니다.”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마무리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대문을 활짝 열어 젖혔고, 식솔들을 다그쳤고, 꼬박꼬박 물을 길어다 날랐고, 땔감을 캐다 놓아야만 했습니다.”


소매를 걷어 팔뚝에 걸어 놓고 갈고리 모양의 기구를 들어 봉분을 쓸어 잡풀을 제거하며 혼잣말이 계속됐다.


“입 하나가 줄자 그나마 조금씩 낳아지더군요.”


피식~!


지난 과거를 회상하니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절간 같던 집안에 생기가 돌았고, 주인 없이 길 잃은 개가 마당에 들어와 돌아다니며 짖어대자 아버님처럼 성을 내면서 빗자루를 들고 개를 쫒아 다니시더라고요. 어머님이 말이죠. 후후.”


잡풀을 쓸어 놓고는 잠시 허리를 피고 봉분을 바라보았다.


“성질이 아버님을 닮아서 그런지 역시 저한테 무인의 피가 끓고 있던 모양입니다. 지는 거 싫어했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했습니다. 말을 타고 온 사방 돌아다니며 활을 쏘아대며 짐승을 잡아댔고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골목대장 역할을 하다 보니 잘된 건인지 잘못된 건인지 잘 모르겠지만 형님보다 먼저 한양에 가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퍽이나 웃기기도 하것다.”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인기척도 없이 한참을 무수를 지켜 본 모양이었다.


“사지 멀쩡한 허수아비 장남 수발도 모자라 한 집안에 기둥노릇하며 고생이란 고생 다하다 어렵게 별시 합격한 막내 앞길 막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제는 아버지까지! 저승에서 아버님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그렇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논두렁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끊임없이 조잘대던 꼬맹이를 말이다.


아랫동네 권씨 가문의 무남독녀 권은아, 언제부터인지 무수 옆에서 사사건건 참견하며 지칠 법도 한데 온종일 떠들어 대며 무수의 귀를 간지럽히다 울다 웃던 꼬맹이.


모처럼 아버님과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고개를 돌릴게 뭐있나 싶었다.


아버님의 봉분은 정리됐고, 형님 것은 다음이다.


눈길도 주지 않던 무수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왔으면 왔다고, 어디 가면 어디 간다고, 내가 뭐 오라버니를 잡아먹기라도 해! 왔으면 왔다! 왜! 말을 안 해주냐고!”


고즈넉한 산속에서 한기를 가득 품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애꿎은 새들의 날갯짓을 만들며 무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꼬맹아···.”


몸을 돌린 무수의 말문이 막혔다.


몸집이 작고 주먹만 한 얼굴에 두 눈이 절반을 차지할 것 같았던 꼬맹이가 맞나 싶었다.


커질 대로 커진 키는 그렇다 쳐도 쏙 들어간 볼 살에 두 눈은 빨려 들어갈 것처럼 크고 맑았다.


무수뿐만 아니었다.


권은아도 놀랄 표정이었다.


무수의 수척해진 얼굴에 어딘가 야윈 몸, 옷 사이로 비친 목덜미의 꿈틀거리는 구릿빛의 근육과 올라간 옷깃 아래로 팔뚝에 난 잔 근육들, 무엇보다 깊어진 미간의 주름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지 전 보다 차분하고 진중해 보였다.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시선을 고정시킨 두 사람이었다.


뭔가 야릇한 분위기에 백정이나 가지고 다닐 법한 커다란 칼을 매만지던 권은아의 수행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돌려댔다.


“꼬맹아.”


“꼬맹이 아니거든.”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를 반쯤 죽이며 반문을 했다.


쑥스러운 모양새였다.


시선을 떨구었고 두 손을 앞에 모으며 꼼지락 거리던 권은아였다.


“몰라보겠구나, 저잣거리에서 만나도 못 알아 볼 정도야, 미리 연통을 못한 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춘호가 활시위를 당기는 것 보다 더 빠르게 훅 들어오는데 피할 방법이 없었다.


들려진 고개로 무수를 바라보던 권은아의 볼에 수정구슬이 미끄러져 떨어지다 턱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눈물이란 게 사람을 작게 만든다.


손을 내밀어 닦아 주고 싶었다.


“오라버니 보는 게 즐거웠고, 같이 있으면 든든했고, 행복했다는 것을 한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뒷모습에서 발견한 이후부터 불안했고, 초조했고, 계속해서 눈물만 나오는데···.”


시선을 돌리기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무수를 쳐다보며 눈물방울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큰 눈을 힘겹게 껌벅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내 가슴 한편에서 오라버니를 찾게 되고 기다리는 날 발견하게 됐고, 한양에서 느닷없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었는데 큰 오라버니의 상여를 붙잡고 절뚝거리며 오열하는 오라버니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뒤에 숨어서 울기만···.”


흑흑흑.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어대기 시작한 권은아였다.


손을 내밀었고, 품에 권은아를 안았다.


작은 떨림이 몸을 통해 전해오자 등을 다독인 무수였다.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무수의 옷깃에 얼굴을 파묻고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고 한없이 어린 꼬맹이인줄만 알았다.


올해 나이 21살, 꼬맹이가 될 리가 만무했지만 무수의 기억 한편에는 그냥 꼬맹이였던 것이다.


훌쩍 지나간 3년이 늘 그렇듯이 누구에게는 짧은, 혹은 긴, 그리고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무수의 두 손이 권은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고 두 눈이 마주쳤다.



* * *



경복궁 안 중궁전


자시(오후11시~오전1시 사이)를 지나가고 있을 무렵 외마디 외침과 함께 인기척이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김한진 내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느 틈인가 다가와 몸을 웅크리고 귀 기울이며 숨을 죽이던 시종과 시녀들이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전하.”


“으흠···, 들어 오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두 명의 시녀와 김한진 내관이 허리를 숙이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흐트러진 머리카락, 창백해진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던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내고는 허리를 세우며 몸을 일으키고 있던 조선의 왕 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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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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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3장 귀신을 보는자(8) 21.09.29 89 2 11쪽
19 제3장 귀신을 보는자(7) 21.09.29 91 2 12쪽
18 제3장 귀신을 보는자(6) 21.09.28 94 2 12쪽
17 제3장 귀신을 보는자(5) 21.09.28 101 2 11쪽
16 제3장 귀신을 보는자(4) 21.09.27 104 2 11쪽
15 제3장 귀신을 보는자(3) 21.09.27 109 2 12쪽
14 제3장 귀신을 보는자(2) 21.09.24 119 2 11쪽
13 제3장 귀신을 보는자 21.09.24 122 2 12쪽
12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7) 21.09.23 134 2 11쪽
11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6) +1 21.09.23 126 2 12쪽
10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5) 21.09.23 131 2 12쪽
»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4) 21.09.22 150 2 12쪽
8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3) 21.09.22 160 1 10쪽
7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2) 21.09.22 177 2 11쪽
6 제2장 정기룡 이름을 얻다. 21.09.19 220 1 12쪽
5 제1장. 임진전쟁(5) 21.09.19 225 4 12쪽
4 제1장. 임진전쟁(4) 21.09.19 236 5 11쪽
3 제 1 장 임진전쟁(3) 21.09.18 281 4 11쪽
2 제 1 장 임진전쟁(2) 21.09.18 404 5 13쪽
1 제 1 장 임진전쟁 21.09.18 603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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