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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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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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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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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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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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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47화

DUMMY

“학식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면 그건 조금 어려울 텐데······.”


달목은 난감해진 기색을 감추려다가도 못내 삐질삐질 곤란해진 속내를 모두 드러내며 도진의 이야기에 흐린 대답을 내놓았다. 요컨대, 도진은 찾아온 모든 이들을 우선 안으로 들였다. 더불어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나나까지 붙잡은 데는 좀 전에 달목의 이름을 낙락하게 부른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백면과 시집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으나 그리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했다. 그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그 누구도 얻지 못해서였다. 그러므로 도진은 이제까지 정안수라는 자를 만나서 있던 일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연에서 우연히 스쳤던 일은 오히려 이야기를 더 번거롭게 만든다는 판단하에 그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결론은 그가 자신들이 백면의 다음 내생을 만나면서 어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직까지도 백면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전해 들은 달목은 가장 난감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는데 이 까닭은 그가 도진에게 대답한 것에서 출발하게 된다.


“어째서요? 믿음을 그냥 심어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믿음을 주관하신다면서.”


나나가 물었다. 거실에는 모든 사람이 모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들어찼지만, 태강은 나나의 방문 앞에서 쭈그린 자세로 나나가 도로 내려놓은 캔버스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기에 무리에서 떨어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를 제외한 모두는 원을 그리는 모양새로 둘러앉아 백면의 내생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각자 나름의 시름에 잠겨 있었다.


“배움과 앎을 통해서만 믿는 이들에게는 그 배움과 앎을 위한 계기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나 양.”


그녀로부터 한 자리 건너서 앉은 달목이 대충 비스듬히 나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다리를 외로 꼬고 앉은 초영과 근엄하게 허리를 펴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무거운 눈빛으로 맞은편짝을 노려보는 야담이 아직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게 어려운 건가요?”

“그렇습니다. 형편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믿음의 계기는 보통 인간이 스스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인간에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지요.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보조만 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속으로 슬쩍 그에 대한 흉을 보려던 나나는 이미 그 계획을 들켜버림에 따끔하도록 아픈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양쪽 귀를 찌르는 물음과 대답을 끝으로 정적이 찾아오자 도진이 목을 가다듬는 것으로 다시 대화에 첫머리를 달았다.


“계기라고 한다면······ 시집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초영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화색이 도는 얼굴로 도진과 달목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그 시집이 사실은 백면이 지은 거라고 하면 분명히 좋아할 거 아니야. 원본까지 구할 정도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야. 너희가 말한 문제도 해결될 거고. 오히려 자자신이 백면의 내생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어.”


야담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의견에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 백면이 썼다고 해서, 그 증거가 없을 텐데 성인의 이름을 걸고 해도 자신이 백면과 관련이 있는 존재란 걸 믿지 않았던 자다. 무슨 수로 그 지은이가 백면이란 걸 믿게 할 거지?”

“그건 그렇지만, 혹시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롭게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새로 찾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초영은 바로 대답하며 동의를 구하는 눈길을 달목에게 던졌다. 달목은 이를 급히 회피하며 무표정과 무답으로 일관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초영이 더운 가시 같은 눈짓을 다시 보내도 따끔해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나저나 되게 의외지 않아?”


어느새 태강이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홀로 우뚝 선 채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함에 그 어떤 동요도 없이 그는 예사롭게 천연덕스러운 말투를 유지했다.


“백면이 시를 직접 쓰다니 말이야. 흑석도 시에 관심을 둔 지 엄청 오래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백발 할아버지가 되어도 사춘기 반항아 같던 백면이 그런 문학적 감수성은 어떻게 가지게 된 걸까?”


그러면서 그는 나나의 방이 있는 곳을 향해 상체를 돌렸다.


“게다가 백나나는 그림을 그리고. 정말 의외라니까?”

“그거 칭찬이에요?”


나나가 따져 묻자 태강은 고개를 으쓱거리며 나몰라라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얄미워 나나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다물었다.


“칭찬인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확실히 욕은 아니야. 신기해서 그러지.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태강이 야담과 초영을 쳐다보았다. 먼저 답한 것은 초영이었다.


“그렇기는 해. 그렇다고 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 멋대로 살아서 남는 게 시간이었던 애인데 취미로 뭔들 하고 싶었겠지.”

“그건 그래. 그나저나 백나나 너는 저걸 들고 나가서 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거야?”


어쩐지 화제가 묘하게 자신을 향해 길을 트는 것 같아서 불안해진 나나가 뜸을 들이며 그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대답 또한 더디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싶어져서요.”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태강은 잠자코 듣더니 언짢은 콧숨을 내쉬었다. 이에 야담이 그녀의 말에 맞받아쳤다.


“흑석이 좋아할법한 대답이군.”


자칫 무안해질 수 있는 위기에서 야담의 호응은 꽤 많은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런 상황이 낯선 나나가 입술을 오므리며 눈썹을 치켜떴다.


“도구도 없는데? 붓도 없이 그릴 수 있어?”


이에 곧 수긍하려고 하는 고갯짓을 보이다가 태강이 대뜸 순전한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그가 좀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작자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며 나나가 투덜거렸다.


“살 생각이었죠.”

“어디에서? 이 근처에 그런 거 파는 데도 있어?”


듣고 있는 이들의 정신이 사나워질 정도로 태강은 물음표를 달고 있는 말만을 연달아 꺼냈다. 원래는 이런 질문이 가급적 나오지 않기를 원했으므로, 지금의 순간에 아예 묵언하고 싶은 만큼 나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몰라요. 찾을 생각이었어요. 모르면 물으면 되는 일이고.”


이것으로 자신에게로 꽂힌 관심이 일단락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나는 태강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 도진의 얼굴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대오(大悟)한 사람처럼 번득한 눈빛으로 검지를 들었다. 그는 허공을 가리키며 좋은 수가 떠올랐음을 표정 변화로 알리는 것이었다.


“찾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이 백면의 내생이라는 것을 믿게 할 계기를요. 아마도 확실할 겁니다.”

“뭔데?”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초영이 몸을 앞으로 당기며 두 귀를 활짝 여는 것은 물론이고, 야담 역시 처음으로 자세를 흩트리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달목 역시 얼굴을 움직여 도진과 그 뒤로 보이는 나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논문을 쓰신다면 분명히 시에 대한 해석도 하실 겁니다.”

“그렇겠지?”


초영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시를 읽고 이해하시는 데에 있어 백면과 연관을 지어 생각하시도록 하는 겁니다.”

“수록된 작품들이 무슨 내용인 줄을 알고? 여기에 제대로 읽은 사람이 있긴 하니?”


그녀는 이번에는 도진의 말에 의구심을 가지고 물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달목 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돕는다니요?”


초영이 입을 꾹 다문 대신에 잔뜩 긴장한 얼굴의 달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도진은 그 태도를 가뿐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계획에 확신을 갖은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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