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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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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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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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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DUMMY

도진이 돌아오지 않은 지 벌써 사흘째다. 이제는 그의 안위에 대한 걱정보다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일의 꾀를 궁금해하게 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나는 팔짱을 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애초에 도진을 걱정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충격을 안겨주었을지언정 그것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밤을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백면이 뭐라도 한마디 해줄까 싶어서 밤마다 숙면을 청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조이가 수면에 좋다고 하는 차를 어젯밤에 건네주었는데, 의심치 않고 그것을 냅다 받아 들어 방으로 돌아온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잠에는 제대로 들었으나 너무 깊이 잠들어버린 것인지 백면은 꿈에 나오지 않았다.


“하긴 일리는 있지.”


나나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얼마 전에 안수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전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줄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결국에는 그녀에게 베푼 것은 의심에 기반하는 친절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날에는 거절을 당했다는 쓰라린 심경을 조이에게 제일 먼저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 누구도 안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은 내지 않았기에 감정 고백은 금방 시들어버렸다. 그렇게 문제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 일은 없지.”


무작정 몸을 던져 침대에 엎어져 누워버린 그녀는 괴로움에 굵직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뒤로 안수는 좀처럼 나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한적한 시간대에 한적한 거리를, 한적하게 걷고 있기에 다소 한가로워 보였던 그는 일류대학의 문학부 교수이기 때문에 시간 조율이 자유로웠던 것일 뿐, 교사 안에서는 노상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할 만큼의 일정을 소화하는 학자였던 것이다.

나나는 눈을 감아 그날 이후 그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애처로운 자신의 일정도 생각해야만 했다. 정안수를 아예 만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없군요.’라든가 ‘제자들과 면담이 있어서.’와 같은 변명으로 대화는커녕 만남부터 차단하고 드는 중년 앞에서 청년은 어쩔 도리가 없었을 뿐이다.

여명을 만났을 때와 다른 난관이 펼쳐져 있었다. 고여명에게 필요했던 것은 행복이었다. 그 잃어버린 행복을 돌려받게 되었을 때 마침내 백면은 다음 내생에게로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안수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믿음일지도 모른다. 지식의 범위도 우선 믿음을 바탕으로 하겠지. 그렇다면 그에게는 더욱 믿음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황에서 정안수는 자신이 백면의 내생이라는 것을 전면으로 부정하기만 한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연배가 한참 높은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은 일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백나나! 아, 안에 있나?”


밖에서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퍽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음성에 소스라치게 반응한 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뜬 눈으로 반응하였다.

제 이름이 불린 것은 깜빡 잊은 채 강도가 든 것인지도 모른다고 겁을 먹었을 때 상대가 자신의 신상을 밝히었다.


“수상한 사람은 절대 아니고 그 저번에 한 번 만난 적 있는 흑석인데······ 안에 있, 있나요? 생각이 다 들려서 분명히 여기에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혼자서 갖은 말하며 헤매이는 저 자가 실은 저번에 만난 적이 있는 흑석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나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하였다.


“뭐예요?”

“아······ 용건이 있어서요.”


흑석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나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재차 물었다.


“무슨 용건이요? 그나저나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기척도 없이.”

“문을 여는 건 아주 쉽거든요.”


실제로 그는 대충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으로만 이렇게 남의 집에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그의 표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이잖아요.”

“그렇긴 해도 같은 방법이라도 때에 맞게 쓰면 도둑질이 아니라 방문길인 거죠.”


흑석은 눈짓으로 방안을 넘어보았다.


“안으로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아니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은데.”


나나는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몸을 틀어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실례.”라는 인사로 예의를 갖추어 들어온 그는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방의 전체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대뜸 퉁명하게 말을 걸었다.


“방에 펜이 하나도 없네요?”

“펜이요? 갑자기 그건 왜요?”

“필요하니까 그러죠.”


그 이유도 언급하지 않고 아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흑석이 뻔뻔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나나는 우선 정말로 펜이 주변에 없는지 스스로도 방을 관찰했다. 정말로 펜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구르던 찰나에 우습게도 흑석은 자신의 때가 탄 회색 재킷 안주머니에서 펜 하나를 꺼냈다.


“아니, 본인이 가지고 있었으면서 왜 물은 거예요?”


어이가 없던 나나는 다소 사납게 그에게 따졌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건 좀 힘들게 만든 거라서.”

“······그럼 다른 데 찾아보고 올게요.”

“괜찮아요. 지금은 좀 급하니까 그냥 이걸 쓰도록 하죠.”


손바닥을 내밀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친 흑석은 자신의 콧등을 두어 번 긁더니 이번에는 바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흰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역시 지금은 좀 급하니까 종이도 이걸 쓰도록 하죠.”


사이드 테이블에 펜과 종이를 올려두자 나나가 그쪽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이건 왜 들이미시는 거예요?”

“이게 용건이라서 그렇거든요. 펜 좀 들어보겠어요?”

“펜이요?”


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흑석을 올려다보았다. 둘은 그리 크지 않은 탁자를 앞에 두고 서로를 난처하게 쳐다보게 되었다.


“뭘 좀 써줬으면 하거든요.”

“뭘 쓰는데요? 제가요? 왜요?”


흑석이 하나를 답하면 나나의 질문은 둘이 되고 또 셋이 되어버리게 된 것이다.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서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흑석은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단어를 골라서 문장을 만들어야 했다.


“황호가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황호요? 황호라면······ 그럼 없는 성인을 찾은 거예요?”

“네, 뭐, 찾은 거긴 한데 찾아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황호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러니까 필적 좀 빌려줘요.”


나나는 왠지 모르게 급해진 마음에 펜을 우선 쥐었다. 그런데 자신의 필적을 내어주려니 왜 이것을 내어주어야 하며, 어떻게 내어주어야 하는지 그녀의 의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깐만요. 나도진이랑 다른 사람들이 찾으러 간 건 어떻게 되고 그쪽에서 찾아왔단 거예요? 그리고 제 필적은 왜 필요하며 또 어떻게 빌려주는 건지······ 지금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잡은 펜을 다시 내려놓았다. 흑석은 그 모습에 한숨을 쉬더니 이내 목을 가다듬었다.


“이상하게 듣지는 말아요. 나도 휘말려서 크게 다칠뻔했으니까.”

“다칠뻔했다고요?”

“그래요. 내가 만든 그 공간 이동이 가능한 거울 말이에요. 그걸 그대로 복제해버린 거울에 이끌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혔었거든요.”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처럼 두 팔을 위로 들어 제 몸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왜 하필 내가 첫 번째였던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억울하긴 한데 아무튼 황호가 찾아와서 살았거든요. 그리고 황호가 말하기를 백나나 당신의 필적을 빌려오라고 하네요. 나는 지금 시키는 대로 와서 당신한테 부탁하고 있는 거예요.”


작가의말

135화는 12시 전에 갑자기 접속이 안 되어서

17일이 아닌 18일인 오늘, 하루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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