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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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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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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10.1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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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36화

DUMMY

흑석은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지 않냐고 눈짓으로 나나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마다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 하나의 일이 그 진상을 간단히 드러낼 수는 없는 법이다. 나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우선은 펜을 다시 들었다.


“뭐라고 쓰면 돼요?”

“아무거나 쓰면 되겠죠. 원하는 걸 쓰세요.”


도중에 하품하며 대답하는 흑석을 보니 그의 눈은 약간이지만 충혈되어 있었다. 주변의 눈가 역시 퍽 어두워서 간밤이 그에게 달콤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누구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요.”


허리를 살짝 구부려 자신의 이름 석 자 ‘백나나’를 쓴 나나는 펜을 내려놓고 종이를 들어 흑석에게로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후 바로 돌아섰다. 이 집을 나서려는 것이었다.


“그거로 뭘 어쩌려는 거예요?”


아직 그를 보낼 수 없었던 나나는 기어코 질문으로 그를 잠시 붙잡았다. 고개를 돌린다거나 상대방이 있는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리지 않은 흑석은 등을 보인 상태로 멈추었다.


“당신의 필체를 따라 쓰려는 것이겠죠, 아마도.”

“아마도?”

“그래서 녹수를 속일 생각인가 봅니다. 이 이상은 묻지 마세요. 그것이 모두에게 좋을 테니까.”

“어째서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들을 떠안아야 했던 지난번과 다르게 나나는 현재 발생하는 문제로부터 자신이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 월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흑석은 이미 방을 벗어나 그녀로부터 꾸준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


“다쳤니?”


평소와 다른 모양새로 꾀죄죄한 흑석의 몰골을 보아하니 그가 어딘가에서 다쳐서 왔다는 것을 초영은 알 수 있었다. 옆으로 다가와 물으니 흑석은 한 발자국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올 줄 알고 기다린 거야?”


못마땅한 감정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으니 초영은 다시금 그의 옆으로 붙어 섰다.


“아니. 산책 중이었는데 감이 온 거지.”

“한가롭게 산책이나 하고 있다고?”


두 눈을 손바닥으로 문지른 흑석이 이번에는 두 발자국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나름의 작전을 생각 중이었거든.”

“작전?”

“그래. 야담의 입을 열 작전 말이지.”

“갑자기 야담은 왜?”


초영은 포기하지 않고 집념으로 재차 흑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세 발자국 멀어지려고 할 흑석에 대비해서 아예 그의 팔을 붙잡고는 팔짱을 끼었다.


“왜 이래?”


질색하며 떨어지려 몸부림을 쳤지만, 흑석은 제 얼굴을 아예 있는 힘껏 바깥으로 들이미는 초영에 의해 적당히 움직이다 멈추어야 했다.


“알겠으니까 손 좀 놔!”


억지로 고개를 돌린 바람에 몸이 불편해진 흑석이 애원하자 초영은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혀를 찼다.


“네가 저걸 봐야 손을 놓든가 하지, 그렇지 않겠어?”

“저거? 그게 뭔데?”


그제야 흑석은 자신들이 있는 곳보다 더 높은 지대에 여러 사람의 형체가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에 초영은 바로 그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저 네 명을 말하는 거야?”

“그래. 오늘 새벽에 여기에 도착한 것 같아. 그게 아니더라도 어젯밤이기는 하겠지. 처음엔 죽었나 싶을 정도로 놀랐는데, 다가가 보니 그냥 기절한 것 같았거든. 그런데 흔들어 깨우려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뭐였는데?”


흑석은 초영에게 붙잡힌 팔을 간신히 빼내었으나 다시 그녀에게 팔의 자유를 내어주어야 했다. 한숨을 쉬니 초영이 아무렇지 않은 투로 더 당당하게 답했다.


“그냥 잠든 거였어.”


놀라 잠시 말을 잃은 흑석이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깨워야 하는 거 아니야? 잠을 자더라도 안에서 자게 둬야지.”

“그게 아니지. 작전을 세우려면 쟤들이 여기에 있어야 하거든.”


초영은 턱을 들어 네 명이 마치 바람이 불지 않아 뒹굴지 않은 낙엽처럼 얌전히 드러누운 곳을 가리켰다.


“어쩌려고?”


흑석이 물었다.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게 우선의 작전이고, 혹시 모르는 상황을 생각해서 내가 이 근처를 산책하는 게 저 애들의 안전을 위한 거지.”


초영은 자신의 말을 심드렁하게 듣는 흑석의 낯빛을 살피다가 난데없이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다쳤냐니까?”

“어, 좀.”


부정해보았자 어차피 대화가 더 길어질 거라고 생각한 흑석은 아주 짧은 대답과 함께 그녀의 말을 긍정했다.


“만나고 온 거지?”

“응?”


계속해서 들러붙던 초영이 이번엔 자신이 먼저 팔짱을 풀고 두 걸음 정도 멀어졌다. 도리어 더 놀라고 만 흑석은 다음에 초영이 할 말을 궁금해하며 귀가 더 솔깃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녹수든 황호든 누구든 말이야.”

“······어, 그랬지.”


심살내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는 초영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져 그만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너라도 우선 다 털어놔 봐.”

“나라도? 그럼 나 말고 또 만난 사람이 있단 거야?”

“몰라. 하지만 그렇겠지. 왜냐하면 저 애들도 황호든 녹수든 아무튼 그 애들을 만나러 가긴 했던 거니까.”

“무슨 소리야 대체?”


자신이 없던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리면서도 섣불리 짐작하고 싶지 않은 흑석이 한쪽 눈썹을 매만지며 놀란 심정을 스스로 다스렸다.


“이게 다 너희가 멋대로 행동하기만 해서 그래. 만날 때마다 설명해야 하고, 또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성인(聖人)이라니. 정말 한심하다니까.”

“야담과 다른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거야 모르지. 며칠이 꽤 되었고, 그동안에 들은 소식은 아무것도 없단다.”


초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고민하더니 이내 인상을 구겼다.


“그러니까 너부터 먼저 전부 말하란 말이야. 알겠니?”

“······나, 나는, 그러니까 나는,”


흑석은 돌연히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왜 그래?”


발걸음을 느릿하게 하며 그에게서 멀어지던 초영이 제자리에 서며 굳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흑석이 바지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초영을 향해 팔을 뻗었다.


“이게 뭔데?”


구겨진 자국이 상당한 종이를 받은 초영이 그것을 조심히 펴내었다. 거기에는 아까 전에 나나가 자신의 이름을 새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황호한테 부탁을 받은 거야.”

“황호한테서? 황호를 만난 거야?”

“그래. 그리고 나는 아마도, 나는 아마도······.”


흑석은 다시 사고가 정지된 사람처럼 했던 말을 반복했다.


“죽었을지도 몰라.”


나나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야 그의 두 눈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된 초영은 그가 많이 피곤해진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역시 예감했던 게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네.”


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서둘러 드러내지 않기 위해 덤덤하게 이야기해보았다.


“이번에야말로 모두 숨기는 것 없이 모두 말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너만 그런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게 아닐 테니까.”


또한 새로이 드는 직감에 대해서 고백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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