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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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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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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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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7.0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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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33화

DUMMY

“믿을 수 없어.”

“맞아.”

“근거도 없는데.”

“맞아.”

“그런데 왜······.”


원하는 소식도 아니었기에 원하는 대답도 들을 수 없던 대화는 덧없게 일단락 지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잠시 밤 산책을 나온 도진이 옆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혼잣말을 할 때마다 나나는 이에 동의하는 추임새를 적절히 끼워넣었다. 그러다 갑자기 엄습해온 기시감에 얼굴을 홱 돌린 그녀가 “야.”라는 짧은 말로 도진을 불러 세웠다.


“예?”

“사람 당황스럽게 너 왜 갑자기 반말이야.”

“···제가요?”

“그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상황에 난감해진 도진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혼잣말인데 말입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듣고 있던 건 아니었다. 나나는 그녀 나름대로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대답했던 것뿐이다. 도진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관찰할 정도의 여유가 그녀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서먹해진 공기가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구나.”라며 혼잣말로 모면하려는 나나를 이번엔 도진이 불러 세웠다.


“생각해보니 불공평한데요?”

“뭐가?”

“나나 씨는, 처음부터 나한테 말을 놨잖아요.”

“···그랬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아직도 둥근 달이 소리도 없이 걸려서 온갖 소문을 만들어주는 빛을 내려주고 있다.

확실히 그러했다. 그것이 이야기가 되어버리니 왠지 조금 민망해서 부정하고 싶지만, 처음 만난 날부터 그에게 말을 놓고 편하게 대한 것은 전부 사실이다.


“그땐 그걸 눈치채지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나 씨가 좀 치사하게 혼자만 말을 놓았더라고요.”

“···네가 편했다는 증거야.”

“칭찬인가요?”

“뭐, 그렇지.”

“편했던 것치고는 좀 많이 위협적이었는데 말입니다.”


나나가 한 마디만 더 해보라는 식으로 주먹을 쥐어 보이자 도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 시작은 엘리베이터 안이었음을 둘은 직감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이후 자신에게 구두를 내어준 그가 떠올랐다. 문득 나나가 고개를 숙여 몰래 그의 발을 쳐다보았더니 여전히 그가 신고 있는 그 구두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내심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슬쩍 눈짓으로 바라본 그의 얼굴에서 오랜 친구의 다정미가 느껴진다.


“너도 말 놓고 싶어?”

“흠······. 잘 모르겠군요. 게다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렇긴 해.”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잘 모르는 사이다. 조이와 친구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직 도진이 몇 살인지도 모른다. 즉, 남남인 것이다. 이 기분이, 이 감정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실은 우리는 하나의 영혼이라는 것의 증거가. 하지만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도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걸 놓치고 몇 걸음 더 앞으로 가서야 멈춰 선 나나가 상반신을 약간 틀어 도진을 바라보았다. 나무 그늘 아래였다. 달의 걸음이 닿지 않은 곳에 빛은 없었기에 그의 모습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나뭇잎이 바람에 간간히 파도처럼 일렁이는 소리가 부쩍 소란스럽다.

이제껏 몰랐던 비밀 하나가 또 들이닥치려는 소리일까? 그 아우성을 내고도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나의 마음은 소란스러워지기만 했다.


“나나 씨.”

“어?”


도진의 목소리가 무겁다, 아니, 사실은 그 목소리를 듣는 마음이 무겁다.


“······정말로 백면의 선택이었을까요?”


역시 비밀이다.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고, 알 수 있을 리 없는 게 비밀이다. 고개를 저을 수도 끄덕일 수도 없이 그저 도진의 얼굴을 읽으려고 애썼다. 어쩌면 상대도 똑같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빛이 충분하지 않았다. 상대가 몇 걸음 건너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마지 못해 그녀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난 몰라.”


아침이 밝았을 때는 이미 집안에 초영은 없었다. 그녀의 행방을 묻기도 전에 주화가 먼저 그 열녀에 대해 더 조사를 하러 일찍부터 나갔다며 언질을 주었기에 두 손님은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머리를 끄덕여야만 했다.


“조금 미뤄주면 안 될까?”

“무얼요?”


간단한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내어준 주화가 양해를 구하는, 안쓰러운 얼굴로 나나와 도진을 쳐다보았다. 어젯밤 불쑥 찾아온 손님들에게 보이는 지나친 예의다. 그럼에도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보아하니 무언가 간곡한 부탁이 있는 듯하다.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들은 나나가 크게 입을 벌렸다 다시 오므리며 대답하자 주화가 한 박자 숨을 들이쉰 뒤 본론을 꺼내들었다.


“사장님한테 말하는 거 말이야.”

“······.”


여전히 식탁에 손 하나 올리지 않은 도진도, 도로 샌드위치를 내려놓고야 마는 나나도 침묵을 지켰다.


“여전히 혼란스럽기도 하고 아직 나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래, 미안해.”

“아니에요, 저희가 사과를 받을 필요는···”


도진이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는 건 자신뿐인지 이상한 죄책감이 들어서 눈치를 살피는 나나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되어버렸네. 여기서 잠시 지내고 있어도 돼. 난 일하러 가야 해서 먼저 갈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객식구들을 사양하고서 바깥으로 향한 주화가 현관문이 바람에 강하게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사라졌다. 저들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인지, 짧은 한숨을 동시에 내쉰 도진과 나나가 자리에 털썩 앉아 앞에 놓인 샌드위치를 물끄러미 본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할 텐데 말이지.”

“···그러게요.”

“근데 넌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도진이 대답 대신에 고개를 돌려 나나의 두 눈을 응시한다. 자신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다.


“설명해줘.”

“설명을요? 어떤 걸···?”


나나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그 직장 내 불화가 뭔지 말이야.”

“예? 갑자기요?”


허를 찔린 듯이 놀란 도진이 왼쪽 팔로 턱을 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뜻이다.


“둘이 화해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당분간 여기 머물 내가 모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렇겠네요.”


방금 전까지 주화의 태도도 그렇고, 일이 우선은 초영의 추리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나 역시 이 사실을 알아두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진 자신도 완벽하게 지금의 사태를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젯밤에 초영이 언급한 ‘그 사람’이 누군지 물어본다는 것을 마음이 어수선하여서 때를 놓치고 말았다.

여명을 언급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살인범을 언급했던 것일까? 주화가 끝까지 숨겼다는 걸 보면 후자 같기도 하지만 확신이 들진 않는다. 혹은 둘 다일까? 도진이 손으로 감싼 쪽의 볼을 씹은 후 나나를 향해 말을 꺼냈다.


“타인의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한다는 건 여전히 꺼림직하지만··· 나나 씨도 알아두어야 하니 이야기할게요. 대신,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같이 뭘 좀 찾았으면 해요.”

“뭔데?”

“여명 씨에 대한 거예요.”


입안 가득 담은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삼키는 나나가 고갯짓을 했다. 그건 전혀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는 표정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최근 크게 아파서 저번에 언급드렸던 분량에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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