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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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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3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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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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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0.06.15 16:33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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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10화

DUMMY

진짜로 잡혀 온 것은 아닐까.


나나는 이 음산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안 되어있는 지하로 내려온 것이 영 못마땅했다. 평온한 표정의 도진을 보아하니, 그런 의도로 데려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이럴 때일수록 그쪽 사람들은 더 침착하다던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대개 그런 이미지였다. 그가 모르게 나나는 뒤에서 그를 살짝 흘겨봤다.


“이 방이에요.”


도진이 문을 열며 방을 가리켰다.


지하에는 이 방을 제외하고도 복도 끝에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방은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된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색의 문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당장 궁금한 것부터 해결하였겠지만 이곳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하루 만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말이 되는 일을 겪은 탓에 나나는 후에나 그 하얀 문에 관해 물어보자고 다짐했다.


“나무?”

“줄기를 자른 거지만요.”

“이건 왜 보여줘?”


문을 열자, 방안은 그녀의 기대 이상으로 넓었다.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거대한 진열대 하나가 그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그 안에는 낡기도 낡았으며 속이 많이 썩은 듯이 보이는 나무줄기들이 토막 난 채로 쌓여 있었다.


흡사 썩은 나무가 모여 견고하게 뻗은 하나의 제단을 이룬 형상이었다.


“나나 씨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죠.”

“먼저 알려주고 나서 그런 말 좀 하면 안 돼?”

“크흠. 미안해요.”


사람을 궁금해 미치게 하는 곳이었다, 월계라는 곳은. 아직 하루밖에 안 되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까닭에 그녀 내면에 있던 욕심과 용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욕심과 마주한 것은 그녀의 의심이었고 또 그녀의 용기와 마주한 것 역시 의심이었다. 욕심과 용기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그 거리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이기도 했고 비명과 비슷한 소리이기도 했다.


“여기 보이는 나무들은 다 천일(天一)나무예요.”

“천일나무?”

“이건 세계에는 없는 나무, 월계에만 있는 나무죠.”

“그래서 천일이야? 월계에만 있다고 해서?”


진열대 유리로 다가간 나나는 그곳에다 입김을 불었다. 그리곤 자신이 입김을 분 그 자리에 눈을 가까이 댔다.

유리에는 김이 살짝 서린 탓에 그녀의 시야가 살짝 흐려졌다.


“아뇨. 정말 하나밖에 없어서예요.”

“여기에도?”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놀란 나나가 뒤를 돌아 그를 본다.


“예. 정말 하나밖에 없는 나무예요. 그것도 이 심연도에만.”

“그게 백면과 무슨 관련이 있어?”

“있죠. 이제부터 나나 씨가 왜 월계로 와야 했는지 이야기해줄게요.”


도진은 그녀에게서 거둔 시선으로 진열대 속에 머물러 있는 제단을 바라보았다.


“12성인은 죽어도 다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건 기억하죠?”

“응.”

“그럼 그들은 다시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나는지, 혹시 생각해봤나요?”

“12성인도 결국 사람이라며. 그럼 사람 뱃속에서 태어나는 거 아냐?”

“아뇨. 원래 그게 맞지만, 이번엔 나나 씨가 틀렸어요.”


나나가 자연스레 그와 함께 진열대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마주한 유리에는 긴장한 둘의 모습이 얼핏 비추어졌다.


“성인들은 이 나무에서 태어나요. 오로지 천일나무에서만요.”

“······.”

“그들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이름을 갖고. 그리고 결국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에요.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모든 생의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도 있죠. 이 천일나무가, 12성인의 부모이자 결국 그들 자신인 셈입니다.”

“부모이자 결국 그들 자신···.”


나나가 반사적으로 도진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이 천일나무는 100년에 한 번씩 썩어 사라지는데 말이죠. 그럼 12성인의 피를 나무가 있던 자리에 뿌려, 새로운 나무가 다시 자라게 해야 해요.”

“···이제 놀라울 것도 없네.”

“여긴 월계잖아요.”


체념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도진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럼 우리의 피가 필요하다 그거야? 백면 대신으로.”

“아뇨. 백면의 피는 필요하지 않아요.”

“12성인의 피가 필요하다며.”


도진이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성인들의 피는 암실이라는 곳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들도 결국 죽게 되는 운명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 없을 때를 대비해서 다들 자신의 피를 그곳에 모아둔 것이죠. 그리고 백면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해요.”


그가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입을 닫았다가 열었다.


“대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눈물? 어째서 백면만 다른 거야?”

“그건 정말 나도 알고 싶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어디까지나 나도 그의 내생이기에 자세히 몰라요.”

“백면의 눈물은 보관되어 있지 않아?”

“물론, 보관되어 있다고 해요.”


도진은 갑자기 방의 문을 열더니 복도로 나가 그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자신을 따라나서자 그는 복도의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하얀 문을 가리켰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후에 물어볼 생각이었던, 그 하얀 문이었다.


“저곳, 백면의 방에 말이죠.”

“······.”

“하지만 열 수 없어요. 백면의 능력이 작용하고 있거든요.”

“능력?”


둘은 복도를 걸어 하얀 문 앞에 도달했다.


“모든 것을 소용없게 만드는 능력. 그 능력이 일종의 결계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열 수 없다고 해요.”

“아까 우리가 만난 태강은? 그 사람은 기적을 주관한다며.”

“그렇죠. 하지만 이 결계를 원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더 컸나 봐요.”

“마음이 더 컸다고?”

“여길 봐요.”


무릎을 구부려 앉은 도진이 문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가까이서 보니 그곳에는 아주 많은 흠집이 나 있었다. 무엇으로 내리치기라도 한 것인지 푹 패인 부분도 있었다. 도진은 그 부분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이 문을 열려고 했던 흔적이에요. 무려 다른 성인들이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열 수 없었죠. 성인은 마음의 크기에 비례하는 힘만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을 도울 때도 그 인간의 마음의 크기에 비례하는 도움을 주죠.”


나나는 그렇다면 그런 건 신이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들은 애초에 인간이었다.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나는 그런 인간.


그녀는 도진이 어루만진 문의 패인 부분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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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 김성진
    작성일
    20.11.03 21:26
    No. 1

    이번화는 기억에 남는게 없네용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11.03 21:44
    No. 2

    죄송합니다. 무한정 주어지는 백지가 아님을 명심하고 더욱 공부해서 긴장감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정이 불가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따끔한 지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Vacheron
    작성일
    21.04.29 23:35
    No. 3

    초반에 나나의 욕심과 용기가 일치한다는 표현이 나왔었는데, 이번엔 욕심과 용기가 멀어졌다는 표현이 나오네요. 전자는 하고자 하는 것을 진행하는 의지라고 생각했는데요, 후자는 어떤 의미인 건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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