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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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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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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0.06.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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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6화

DUMMY

그리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되었더라?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나나가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꿈에 나온 것은 백면이었다. 그가 이름을 직접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남자는 백면이었다.

나나가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집안 한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냄새가 이끄는 대로 나나가 거실을 지나 도착한 곳은 다이닝 룸이었다.

“···백면이 꿈에 나왔어.”


곧 나나를 보더니 그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려던 조이의 표정이 물이 얼 듯이 굳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정적이 이어지자 아기용 식탁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던 아이가 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그 경적소리 같은 울음에 몸을 흠칫 떨었지만, 나나는 여전히 백면이 말한 것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


“우선 기억이 나는 건?”

“···백면이 오랜만이라고 말했던 것 정도.”


영월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뒤에 있는 도진도 이마를 짚는 것이, 이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조이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도진은 나나와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고 줄곧 고뇌로 가득 찬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와 맞지 않게 봄날의 달빛이 계절의 신록과 섞여 양실의 창문을 눈부시게 통과하고 있었다. 두 벽면을 가득 채운 창문 너머로 안뜰이 보였다. 붉게 물든 홍가시나무들이 곱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딴 생각하지 말고.”

“···네.”


나나는 어째선지 혼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불만이 되어 영월을 보며 눈을 흘겼지만 두 사람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닿지 못한 눈동자를 위로 향하게 하여 나나는 다시 회상하기 시작했다.


‘네가 월계······ 이유.’

‘알려줄게.’


백면이었다.


“월계에 대해 뭘 알려준다고 했던 것 같아요.”

“···됐다.”


체념한 듯한 영월이 나나의 옆 의자를 빼내어 앉더니 몸을 앞으로 당겼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나나가 몸을 더욱 의자에 등을 기대니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영월이 더욱 의자를 당겼다.


“네? 갑자기 왜 다가오시···”

“직접 보는 것이 낫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그리 마음을 먹은 영월이 안경을 벗었다. 짙고 탁한 노랑이 밝은 빛을 반사하여 더욱 투명하면서도 굳건하게 나나의 시선을 담아냈다. 그의 가려진 왼눈을 처음 본 나나가 당황하여 어버버 말을 이을 틈을 찾으려고 들자 영월이 먼저 선수를 쳤다.


“벗어라.”

“네?!”


왈카닥 퍼붓는 소나기처럼 들려온 영월의 명에 놀란 나나가 비명에 가까운 대답을 던졌다. 그러자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도진이 덩달아 놀라 그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안경 말이다.”

“아···.”


역시 싸가지가 없구만. 나나는 그리 생각했다. 다짜고짜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러는 것이 불쾌했지만 분위기로 보아하니 자신이 성을 낼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왜요?”

“너의 꿈을 내가 봐야겠으니 그러는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을 온전한 기억으로 바꾸는 것이지.”


반사적으로 내쉰 한숨에 영월의 코와 입을 가린 스카프가 살랑거리며 물결쳤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말을 끝마친 그가 나나의 안경으로 직접 손을 뻗었다. 안경의 금테가 테이블의 대리석과 부딪히는 소리가 불안의 촉발제가 되어 나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나를 보면 된다.”


나나의 오른눈과 영월의 왼눈이 마주쳤다. 꿈을 기억으로 바꾼다고? 꿈은 그렇다면 꿈 자체만으로는 기억이 아니었단 말일까? 나나가 그 질문을 다시 곱씹을 때 즈음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니까 널 위해서 말하는 거기도 하지.”

“무슨 소리야?”


백면이 심상하게 웃어 보였다.

소금이 살갗을 스치는 듯 가볍고도 어딘지 따끔한 느낌이 들어 그를 주시하는 나나의 두 눈은 초점을 한 번 잃어야 했다.


“백나나.”

“······.”


백면이 대뜸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주 느리게. 그리고 그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시간은 더 느리게 흘렀다.


“26살.”

“······.”

“서울에 거주 중이며 웹디자인 회사 리스튜디오에서 근무 중.”

“···뭐?”

“4월 30일 토요일에는 강남에 있는 제이웨딩홀에···”

“야, 그건 내 이야기잖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나나가 바닥을 찌르듯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그에게 따졌다. 그러자 백면이 웃음을 참으려는 듯이 입술을 맞대며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맞아, 이건 너지.”

“난 장난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겠지.”

“······.”


나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냐는 암묵적인 논질이다.


“난연(赧然) 가장 끝에 있는 월촌(越村)으로 가. 그곳으로 가면 알 수 있게 되겠지.”

“뭐?”

“고여명. 그 사람의 이름.”

“···그게 다···.”

“너한테는 비밀이 더 통하거든.”


백면이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이 갑자기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것은 영월이 되었다. 의식을 되찾은 나나의 시야에는 무표정에 가까운 진중함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영월이 제일 가까이에 있었다. 날은 달로 인해 여전히 밝았다. 유리창에 부딪힘 하나 없이 그 모든 빛이 손을 뻗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햇빛처럼 강렬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미지근하고 부드럽게 달빛이 그들에게 닿았다.


“일부러 그런 것인가요?”


서로 마주보기만 하는 세 시선이 침묵을 초래하자 도진이 제일 먼저 물었다.


“그렇다.”

“···그렇군요.”


영월의 대답에 그런 그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대답했다. 그 낮아진 목소리는 씁쓸한 그의 심정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네가 가야겠군.”


영월이 이번에 바라본 것은 나나였다. 희미했던 꿈이 이제는 너무 뚜렷한 기억이 되었다. 이 생경한 경험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나나가 눈빛으로도 적절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영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상체를 돌려 도진을 불렀다.


“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데리고 가도록 해라.”

“···네.”


영월이 그렇게 양실을 먼저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음에도 나나는 그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가만히 영월이 있던 빈자리만을 향해 시선을 물고 늘어졌다.

관찰은 아니었다. 눈을 감기에는 그렇게까지 세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나 씨?”

“······.”

“나나 씨, 괜찮아요?”


기다리던 도진이 마지 못해 그 빈자리를 채우는 동안에도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러나 눈썹이 가늘게 떨리지는 않았다. 이 생소한 경험이 가져다준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으므로.


“응. 신기해.”


드디어 초점을 되찾은 나나가 도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도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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