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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베어의 곰굴

EX급 귀농 라이프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공모전참가작 새글

캡틴베어
작품등록일 :
2024.05.11 21:02
최근연재일 :
2024.06.16 13:1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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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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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5
글자수 :
415,080

작성
24.05.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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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3
추천
79
글자
19쪽

15화

DUMMY

15화




팔목에 새겨지는 짙은 보랏빛의 상처.


그건 황보 코퍼레이션이 자랑하는 강화 팔찌를 사용한 사용자들의 최후와도 같은 것이었다.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이며, 상흔이다.


황보 코퍼레이션은 자회사의 헌터들을 강화 시키겠다며 헌터 강화 프로젝트를 만들었었다. 사실 이 이전에도 각 기업에서 엇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었던 적은 제법 많았다.


그중에는 들어가는 자원과 돈, 시간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것들이 태반이었고, 어떤 것들은 효과가 있긴 했으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황보 코퍼레이션의 강화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것은 강화 팔찌, 그리고 부스팅 알약이었다.


이걸 먹고 차기만 하면 어떤 헌터던 자신들 자신들이 원래 가진 기량의 몇 배나 강해진다는 것이 황보 코퍼레이션의 설명이었고, 그들은 이걸 자신들이 선택한 일부 헌터들에게만 제공한다고 공표했다. 그야말로 황보 코퍼레이션 입사자만 누릴 수 있는, 그중에서도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혜택이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


“몸은 좀 어때.”


“······.힛. 나 이렇게 세워 둘 거예요?”


래 짜식아 아가씨를아가씨를 밖에다 세워두면 어자자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하하하 하하하! 정수아 씨. 제가 아주 팬입니다!”


참 나, 분위기 좀 잡으려는데!

내가 미처 감상에 빠지기도 전에 추영광이 그 큰 덩치로 마치 간신배처럼 손을 비비며 정수아를 우리 집 안으로 안내한다.


“얌마 이거 내 집이거든?”


“새키는, 네가 그러니까 아직 솔로인 거야 쁘라더. 나처럼 해야 토끼 같은 자식도 생기고! 응? 딱 그런 거지 좀 모르면 따라 하기라도 해라 엉? 내가 결혼하고 애까지 낳는 동안 넌 뭐했어?”


“······.”


이것만큼은 지독할 정도로 맞는 말이라서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거 아니야 자식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깡촌까지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찾아오는데. 원래 선배선배 하다가 이제?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아씨. 이쪽 방에 아랫목으로 이쪽으로 앉으세요 제가 난방 딱 해 드릴게요. 하하하하!”


“감사해요. 센스가 너무 좋으시네요.”


“하하하하하. 제가 한 센스 하죠!”


어쭈. 둘이서 아주 죽이 척척 맞는 구만?

그리고 영광아, 쟤 헌터다. 네가 주접떨면서 속닥거리는 말들 다 들었을 거야.


“아유 그런데 정말 예쁘시다. 제가 연예인은 처음 봐서.”


“저 연예인 아녜요!”


“아이 그 티비 나오면 다 연예인이고 뭐 그런 그런거지. 아무튼 내가 봤던 연예인들 중에서도 제일로 예쁘시다.”


“너도 그만 좀 해라.”


평소엔 과묵한 편이면서 오늘따라 유난히도 손발과 입이 바쁜 영광이에게 한 소리 했다.


“아이. 내가 너무 신났나? 연예인 처음 봐서 그래요 허허허허. 무튼지 그 뭐, 뭐야? 저기 뭐 나는 그 부추좀 뜯고 있을 테니까 대화들 하세요 두 분.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텐데 보니까 두 분이 직장에서······.”


타악!


눈치는 있어서 나갈 폼을 다 잡아 놓고도 계속해서 말이 끊이지 않는 영광이에 말을 끊을 겸 문을 닫았다.


“······. 네가 이해해라. 여기 사람들은 헌터만 봐도 신기해하거든.”


도시에서야 헌터라는 사람들을 간간히 실제로도 볼 기회가 있지만, 시골에서는 정말 큰 사건사고 터지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 헌터를 만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이 깡촌에 그냥 헌터도 아니고 정수아의 갑작스러운 등장이니, 영광이의 반응이 아주 과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예요. 귀여우신데요? 히히.”


“······.”


저 무식한 덩치가?

어지간한 남자가 봐도 겁먹고 오줌부터 지리게 생긴 추영광이 귀엽다니. 정수아의 남자 취향을 진지하게 의심해 보고 싶다. 수아가 조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선배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고마워해요.”


“······.”


수아가 말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인지는 의례 알 수 있었다. 황보 컴퍼니가 저런 무시무시한 도구들로 헌터들을 착취해 왔음을 이 세상에 터뜨려 버린 건 나다. 속칭 황보 컴퍼니 하급 헌터 착취 게이트.

기사 제목은 일단 그렇게 나갔다.


“오빠 덕분에 산재 적용 받은 사람들도 그렇고요.”


“당연히 그렇게 되야지.”


어차피 그들의 치료비와 보상금이라고 해 봐야 황보 컴퍼니의 덩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소액들이다. 그걸로 그 사람들은 인생이 바뀐다.


“그래서. 너는?”


크게 부연 설명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정상적으로 회사 생활, 사회생활 중이었다면 늘 눈코 뜰세 없이 바빴을 정수아가 날 찾아 이 시골까지 내려왔다는 것.


“선배 혹시 농장에 일꾼 안 필요해요?”


“······.”


정수아가 무척이나 재미난 이야기라도 한다는 듯 웃으며 머리칼을 넘겼다.


“몸은 좀 어때.”


“······.”


멍청한 녀석.

정수아는 애초에 황보 컴퍼니의 그 불온한 도구들을 쓰지 않고도 A급 헌터였다. 심지어 그녀의 특이성 때문에 S급에 준하는, 준 S급 헌터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도구 따위에 눈이 갈 필요도 없는 실력자였단 소리다.


그런데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는가.


‘선배들의 빈자리를 자기가 채우겠다고······. 미련한 녀석.’


어떻게 하겠는가.

나 역시 어쩌면 그녀가 이런 결과를 맞게 한 원인 중 하나일지 몰랐다. S급 헌터였던 내가 던전 속에선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폐인이 되버린 공석.


‘유숙형이나 다른 사람들의······.’


믿고 따르던 이의 빈자리는 나만 느낀 것이 아니다. 정수아에게도, 어떤 방법을 써서든 채워야 할 빈자리를 남긴 것이다.


사장은 그 빈틈을 아주 교활하게 잘 파고든 거고.


“막내야······.”


“······. 이제 성좌님이 제가 싫으신가 봐요. 저 같은 아이랑 놀기 싫어지신 건지, 요즘엔 연락이 없으세요.”


“······!”


한참이나 바닥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정수아는 고개를 들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무척 재미난 농담이라도 했다는 양.


너무나도 큰 일 이었다.

그녀가 준 S급이라고 불리었던 이유는 그녀를 선택한 성좌의 힘 때문이었으니까.


정수아가 성좌를 잃는다는 것은 헌터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었다.


“하아······. 황보유중 이 개자식을······.”


사장은 이 모든 결과를 예측했으면서도 그녀가 하급 헌터들 처럼 팔찌를 차는것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부추기기까지 했겠지. 그리고 결과가 이거다. 성좌에게 버림받자 회사에서도 찍어낸 것이다.


덜컹!


“아이 수아씨 혹시 이런 거 드시나? 내가 막걸리랑······. 어라, 분위기가 왜 이래?”


좀 진지한 토크 좀 하나 했더니.

바로 맥을 끊고 들어오는 영광이가 방문을 발칵 열곤 막걸리가 담긴 검은 봉지와 이런저런 식재료가 담긴 봉지들을 펼쳐놓는다.


“영광 오빠가 없으니까 분위기가 죽어서 그렇잖아요.”


“네?? 영, 영광 오빠 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또 분위기 메이커인 내가 빠져서 이렇게 돼 버린 건가? 야. 짜식아. 너는 여성분 계시면 이렇게 저렇게 재밌는 얘기도 좀 하고······.”


오빠란 소리에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 추영광이 슬슬 내 옆구리를 찌르며 타박을 한다. 잘 (?) 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정수아를 꼬시기는커녕 죽상을 만들어 놨으니 탓하는 것이다.


“그래. 밥이나 먹자.”




* * *




“흠. 어디, 기대를 한 번 걸어봐도 되려나?”


옹알 옹알?


주방에 몰려든 정령들이 내가 뭘 하나 구경을 한다.


[ 맑은 피 부추 ]

여신의 축복을 받은 최상급 부추다.

>음양오행< 해독과 해혈, 정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내가 하는 건 의외로 평범한 요리들이었다. 싱싱한 부추가 유독 많이 들어간다는 거만 제외하면 말이다.


“아마 이 녀석 덕분이 아닌가 싶은데······.”


부추!

그것도 여신님이 내린 종자로 심어서 길러낸 부추였다.


시골로 내려와서 갑자기 좋아진 몸, 그 비밀 중 하나는 이 특별한 작물들을 먹어서가 분명했다. 특히나 유력한 후보는 이 부추!


“얌얌오행!”


[ 스킬 ‘얌얌오행’ 이 적용됩니다! ]

[ 음식에 들어간 작물의 ‘음양오행’ 옵션이 극대화됩니다! ]


내가 손을 뻗으며 스킬을 외치자 잠시 내 손에서 뻗어나간 무지갯빛이 음식에 아른거린다.


옹알 옹알

옹알 옹알!


자기들도 돕겠다는 듯이 음식을 향해 손을 뻗으며 뭐라고 외친다.


“그래그래. 고마워!”


물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을 테지만, 문자 그대로 고사리만 한 손으로 애쓰는 게 귀여워서 칭찬까지 해 줬다.


“음식 다 됐다! 먹자!”


마당의 평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정수아를 불렀다.


정수아는 추영광과 함께 텃밭을 쏘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꺄! 진짜 귀엽다 너네!”


“뀩!”

“꽉!”


정수아의 관심을 빼앗은 것은 작은 샛노란 새끼 오리들이었다. 녀석들의 정체는 물의 중급 정령 운디네를 모시는 미니언들. 하지만 겉보기엔 정말로 작고 귀여운 오리 새끼들로만 보였다.


“흙 만졌어?”


정수아의 손에 흙이 묻어있다.


“네. 뭐라고 해야 할까? 흙에서 참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막 포근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게······.”


아마 정수아의 눈에도 정령은 안 보이는 거 같다. 내 눈에는 지금 그렇게 말하는 정수아의 앞 머리칼을 잡고 올라가 그녀의 정수리 위에 올라타고 낄낄거리는 땅의 정령 단발이가 보인다.


단발이가 정수아가 텃밭의 땅을 칭찬할 때마다 마치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듯이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 끄덕여 보인다.


맞지 맞지!

이 언니가 뭘 좀 아네!


라고 하는것만 같다.


“좀 이상하죠? 히히.”


“······. 뭐. 서울 촌놈 치곤 제법이네.”


“뭐예요~. 선배는 엄청 시골 사람인 거처럼 말하네!”


그렇게 평상으로 가니, 영광이가 아주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부러운 눈빛으로 본다. 왜 저러냐. 아, 수아가 팔짱을 꼈구나.


“씁. 자. 먹어 볼까?”


밥상 위에는 부추로 차린 음식들이 한 가득이었다.

부추 전은 이제 기본이고, 탱탱한 오이에 부추를 넘치도록 담은 오이소박이, 일전에 담아두어 맛이 잘 든 부추김치, 그리고 오늘의 히트작. 부추비빔밥이 대미를 장식한다.


“쌀도 이번에 수확한 쌀이야. 진짜 맛있을걸?”


나도 아직 밥맛을 보기 전이었기에 못내 기대가 됐다.


꼴깍!


영광이가 넘기는 침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비빔밥에 고추장, 그리고 코리안 트러플 오일이라 할 수 있는 참기름을 휙휙 둘러 슥삭슥삭 비벼주면······.


“맛있네.”


비빔밥 본연에 충실한 맛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강화 작물은커녕,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배양 쌀에서도 맛볼 수 없는 깊은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밥알.

참기름이 살며시 이게 맛있는 음식이다~ 라는 냄새를 풍겨 줄 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치아에 으스러지는 밥알의 알알이 풍기는 고소한 맛!


계속해서 씹으면 계란 후라이, 밥과 혼연일체 되어 함께 씹히는 부추가 자신의 존재감을 뿜뿜 자랑한다. 매콤한 끝맛은 반쯤 녹아버리듯 한 밥알의 은은한 단맛과 함께 다음 입을 확 당긴다!


“오우~! 쒸빨 이거지! 와우!”


엄청나게 오바하며 입에 연신 밥을 퍼 넣는 영광이나.


“와, 이, 이거 뭐예요? 이게 지금? 선배 백화점 다녀오셨어요?”


“백화점은 무슨. 넌 이런거 백화점에서 먹어 봤냐?”


“아, 아뇨??”


정수아는 두 눈에서 지진이 날 지경으로 진심으로 놀라는 게 보였다.

A급 헌터로 살면서, 각종 TV CF까지 나가던 정수아니 이 세상 맛있는 것이란 건 어지간해서 다 먹어본 참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눈앞의 부추비빔밥은 맛의 충격이었다.


그것도 고작 시골 농장에서 소박하게 키워낸 작물들일 따름인데!


“진, 진짜로 맛있어요 선배!”


“이거 팔아도 된다니까?”


“맞아요 선배!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팔아도 되겠어요!”


아니, 나는 팔 생각이 없는데 왜 자꾸 너희가 팔라고 하고 그래.


“쯧쯧. 그러니까 너희는 하나만 알고 둘이 안 된다는 거다. 이걸 팔아버리면 우리 먹을 게 없잖아?”


“······!”


내 말에 비빔밥을 담은 숟가락을 저마다 입에 넣고 있던 정수아와 추영광이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두 눈이 땡그랗게 변한다.


“그래. 이 세상엔 돈보다 훌륭한 가치가 있지 브라다!”


“선배, 저 절대로 팔면 안 돼요. 알겠죠?”


어쭈. 아주 우리 집을 밥집으로 삼을 생각인가 보다.


언제는 팔랬다가 또 절대로 팔지 말랬다가 하며 음식은 금방 동이 났다.




* * *




“응······. 하윽······. 윽······. 하아······.”


그날 밤.


제갈이준의 집에서 묵어가기로 한 정수아는 사랑방에서 이불을 덥고 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고열로 시달리는 것 같았지만, 제갈이준 조차도 모르는 새 혼자 앓고만 있었다.


“하윽······.”


온몸을 파르르르 떠는 정수아.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헌터인 그녀가 이토록 앓는다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반쯤 뜬 정수아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갈색의 원피스를 입은, 아주 작은 사람 같은, 단발머리를 한 요정 같은 존재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옹알 옹알

옹알 옹알?


그 요정같은 존재가 무어라 물었지만 정수아는 대답하지도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옹알 옹알!


단발이는 마당으로 달려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팀장님을 비롯한 물의 정령들, 레몬을 비롯한 바람의 정령들, 불의 정령들과 나머지 땅의 정령들 역시 속속들이 몰려들었다.


“꽉.”


하급 정령들이 정수아를 둘러싼 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를 때, 지엄한 물의 중급 정령인 운디네가 등장해 그의 고고한 백색 날개를 정수아 쪽으로 살며시 펼쳤다.


우웅······.


열이 나는 정수아의 몸을 순수한 물의 기운 그 자체가 감쌌다. 끙끙 앓는 정수아의 몸이 잠시 파란색 빛으로 살며시 빛을 냈다.


순식간에 정수아의 상태는 상당히 좋아져 보였다.


이제는 새근새근 잠에 빠진 정수아의 머리맡에 단발이가 남아 그녀를 계속 지켜보았다.




* * *



“응?”


아주 이른 새벽.

눈을 뜬 정수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음······. 아우 머리야······. 지금이 몇 시······. 응???”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정수아가 화들짝 놀랐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 어라? 이게······???”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정수아의 왼쪽 손. 그것에 연결되는 왼쪽 손목. 그 손목에 보기 싫은 흉물로 자리한 보랏빛의 상흔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 어라?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겁이 나는 현상이었다.


정수아의 팔찌 같은 보랏빛 흉터 중 일부가 마치 지우개로 그어서 지워낸 듯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상처로 만든 팔찌에 이가 빠지기라도 한 모양새였고, 그 부분의 살은 원래 정수아의 고운 피부로 돌아가 있었다.


“······.하.”


정수아는 들이켰던 숨을 뱉으며 웃었다.

기가 막히단 너털 웃음이었으나, 이건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신체의 일부가 돌아오는 경험은 생경한 것이었다.


그 순간, 정수아의 눈빛이 변했다.


“······. 침입자인가?”


정수아는 지체 없이 자신의 검을 챙겨 들고 기척을 느낀 쪽으로 향했다.


이 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자신이었으니 누굴 부를 필요도 없었다. 헌터로서 폐인이 된 이준 선배를 자신이 지켜야 했다.


“······! 당가?”


화들짝 놀란 정수아가 기마자세를 깊게 다잡으며 호흡을 만들었다.


제갈이준의 밭에 남들의 눈을 속이고 침입한 여자.


날카로운 히메컷, 짙은 보랏빛의 아이라인, 세련된 옷매무새의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평범한 여자처럼 보였지만, 정수아가 보기엔 무시무시한 힘을 내포한 헌터였다.


“사장이 결국 선배에게 자객을 보냈구나. 그런데 어째서 당가가 직접 개입하는 거지?”


“······. 뭐라는 거야 당신?”


이준의 밭에 몰래 숨어들었던 여자, 당미미가 허리를 펴며 도통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네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선배의 털끝 하나라도 손대려면 날 먼저 쓰러뜨려야 할 거야!”


“아 정말 성질나게. 내가 어딜 봐서 당가 사람이라는 거야?! 다들 왜 보자마자 그래?!”


정수아의 검이 휘둘러졌다.


채채채채챙!


청아한 보름달 아래로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불꽃이 흩날린다.


“······.뭐 내가 당가 사람이 맞긴 한 데. 아이씨!”


본능적으로 암기를 출수했던 당미미가 민망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S급 헌터?”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 정수아가 경악했다.

마나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제갈이준을 죽이기 위해서 S급을 보내다니!

정수아의 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히야아아앗!!”


정수아가 기합을 외치며 당미미에게로 빛살처럼 쏘아 들어갔다.


“아 진짜! 모르겠다. 내가 먼저 한 거 아니다?!”


피이이이이잉!!


당미미의 손끝에서 매서운 기세로 공회전하는 표창. 당미미의 일격 필살의 스킬이 암기에 실렸다.


어지간한 S급 헌터라도 즉사시킬 수 있는 암기 출수 스킬이 막 발동되려는 참이었다.


정수아의 실력으론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밀리면 저 암살자는 제갈이준을 죽이러 갈 것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히야아아앗!!”


정수아가 검을 치켜들며 기합을 외쳤고,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얼음의 대지마저 녹여버릴 것 같은 화염이 정수아의 검에서 불길의 폭풍이 되어 치솟았다.


동시에 주변의 인근 헌터들에게 한 줄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 헌터 정수아의 요청에 의하여 성좌의 힘이 일부 현신합니다. ]

[ ‘영원한 처녀 수호성인’ 의 성전의 힘이 정수아에게 부여됩니다. ]


창연히 빛나는 불의 검.

그리고 정수아를 준 S급 헌터라고 불리도록 만들어준 그녀의 성좌가 돌아왔다는 증거가 펼쳐지고 있었다.


“······. 잔다르크? 너, 너 설마······!”


당미미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킬 역시 완성되었다.


“히야아아아아앗!!”


둘 중 하나만 발휘되어도 어지간한 몬스터나 헌터는 살아남을 수 없는 스킬들!


두 사람의 힘이 격돌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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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1 24.06.01 2,405 63 15쪽
43 42화 24.06.01 2,414 62 12쪽
42 41 화 +1 24.05.31 2,569 66 13쪽
41 40화 24.05.31 2,621 6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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