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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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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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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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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0,769

작성
22.06.0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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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24 입질

DUMMY

현재 시각 4시.


30분 후면 청소가 시작된다. 계획하고 기다렸던 그 순간이.


"최 기사."

"예."

"지금 4시 맞지?"


그렇다고 대답하자 박 대리가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자."

"어딜 말입니까?"


박 대리가 슥 카드를 빼 들었다.


무슨 뜻인가 하여 그를 올려다본즉 박 대리의 검지가 위 천장을 가리켰다.


아, 옥상?


"예. 금방 사 들고 가겠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 때와는 달리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박 대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한 중년인과 이야기 중이었는데, 하얀 가운과 벗겨진 머리가 멀리서도 한눈에 확 들어오는 게 진 원장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진 원장은 입가에 침이 튈 정도로 열심히 무언가를 설파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오. 최 기사. 간만이오."


박 대리와 진 원장이 마주앉아 있는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는다.


가볍게 인사하고 남아있는 빈 의자에 앉자, 나로 인해 잠시 끊겼던 얘기가 다시 이어졌다.


"박 대리는 내가 볼 때 주식을 잘하는 것 같소. 그래서 그런데, 어렵겠지만 조언 좀 부탁드리오."

"글쎄요. 주식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손절하는 건 어떠십니까?"

"그게 쉽지 않더군. 손실을 보고 있는데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 현재 -18%인데."


음. 아무래도 메신바이오 주식 얘기 중인 모양이었다.


'청산을 못 할 줄은 알았지만······.'


막상 확인하게 되니 조금은 안쓰럽고 답답한 마음.


"이렇게 밀리다가 FDA 3상 실험 성공이라는 뉴스라도 나면 날아갈 것 아니오? 성공할 것 같아서 오늘 장중에 추가 매수했는데······ 더 떨어질까 불안해."

"원장님 말씀은 어느 날 주식이 폭등할 것 같아 더 사셨단 말씀입니까?"

"그렇다오."

"근데 막상 추가 매수하고 났더니 추가 하락해서 불안한 마음이신 거군요."

"그것일세. 딱 내 심정이 그것이오."


박 대리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상념에서 빠져나온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럼 제가 제시 하나 하겠습니다."


진 원장이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도 잠시, 이내 매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떤 답변이 나올까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메신바이오 주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직 상승할 것 같습니다."

"헛? 사실이오?"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원장.


박 대리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만일에 말입니다. 만일에."

"아······ 만일······."

"그런 상황에 제가 추가 매수를 권유하면 어떠십니까. 생각이 있으십니까?"


진 원장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연한 소릴!"

"흠······. 그런가요? 그럼 이번엔 다른 쪽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이것도 만일입니다."


박 대리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올라왔다.


"메신바이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폭락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가지고 계신 주식을 다 팔라고 한다면, 그리하시겠습니까?"

"그건 좀······."


진 원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 팔지."

"그 말은······ 원장님께서는 가지고 있는 주식이 무조건 올라야 되는 거군요."

"그렇소."


말을 뱉고 나서야 박 대리 의중을 파악하듯 그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거 주식이 쉽지 않구만."

"그동안 수익이 마이너스라고 들었습니다."

"흠흠."

"그럼 이제껏 매매를 메신바이오처럼 하셨을 테고."


진 원장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박 대리가 진지한 얼굴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원장님. 제가 팁 하나 드리겠습니다."


팁? 진 원장의 눈이 빛을 발했다.


"매매함에 있어 전반적인 것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내가 어떤 매매 습관이 있는지. 그 습관이 잘 된 것인지. 손실을 보는 습관이나 매매 방법 같은 건 없는지 말입니다."

"아, 예에······."


메신바이오 관련 방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엉뚱한 얘기가 나오자, 다소 실망한 듯한 목소리가 진 원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시무룩해진 진 원장의 얼굴에 돌연 활기가 띠었다.


"그럼 이건 어떻소? 내 지난주 스팸 문자 같은 걸 받았는데······."


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에 박 대리의 눈이 끔벅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 원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주부터 메신바이오 주식이 폭락할 거라면서, 혹시 가지고 있으면 정리하라는 문자를 받았소. 에이. 그때 조금 손해 보고 있을 때 정리할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 단톡방 초대하면서 오는 문자 말이오. 주식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렇게 오더란 말이지."


그러면서 문자 내용을 보여주는 원장. 가만 보니 내가 보낸 문자다.


"아, 그거 말입니까? 저도 많이 옵니다."

"오. 박 대리도 오시오?"

"하루 서너 통 넘게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럼 있잖소. 단톡방을 어떻게 보시는가."


이제는 단톡방으로 넘어가 조언을 구하는 진 원장.


"글쎄요."


잠깐 생각을 한 박 대리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본인들이 그렇게 주식에 대해 잘 안다면 직접 투자해서 벌면 되지, 사람들을 끌어모을까요? 전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렇지. 하긴. 믿을 게 못 되긴 하네."


그러나 스스로 그리 말하면서도 그 말에 확신이 없는 듯 진 원장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박 대리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 100% 다 실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중에도 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하핫. 내 말이 그 말이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지금 이 문자를 보낸 이는 아주 잘 아는 양반 같더란 말이지. 아주 고수 냄새가 나, 주식 고수 냄새가!"

"그렇습니까? 음. 그럼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영 이상하면 바로 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러면 되겠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살짝 들어가서 메신바이오 주식에 대해 물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 같고요."


기어이 원하는 대답을 받은 진 원장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더 들어본들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문득 시간을 확인해본즉, 어느덧 4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시간이 표시돼 있는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박 대리에게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 먼저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최 기사. 어서 가봐."

"네. 그럼 말씀들 나누십시오."


그렇게 옥상 문을 향해 나아가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날 불러 세웠다.


"최 기사 잠깐."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본다. 진 원장의 손끝이 커피 잔과 휴지를 가리키고 있다.


"부탁하네."

"······예."


인상이 약간 일그러지는 박 대리의 얼굴을 뒤로한 채 나는 그것들을 집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안쪽에 푹 쑤셔 넣었다.




4시 30분.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도구를 챙겨 가만 자리하자, 곧 스마트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 청소 』


그럼 시작해볼까?


드르륵.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최대한 직원들 불편하지 않게 조심조심. 그러나 빠르게.


그렇게 한참을 청소하는데 약간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최 기사, 게임 시작했나?"


아무래도 내가 게임하는 게 별로인 모양이다.


"박 대리님은 게임하고 계시고, 전 5시 퇴근 시간까진 일에 집중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시선이 변화한 걸 느끼며 다시 청소를 재개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직원들의 개인 휴지통을 비우고. 사이사이 걸레질.


의자에 앉아 있는 직원이 번거롭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 없도록 그 부분은 피하면서 원하는 멘트도 한 번.


"나머지는 내일 아침 깨끗하게 닦아 놓겠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파쇄기 앞.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유지될진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바짝 당길 수 있을 때 당기는 게 좋으리라.


"최 기사, 대충해."


멀리서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시선은 파쇄기에 닿아 있었다.


예! 대답 후 재빨리 통을 빼 들고, 신속하게 뚜껑을 열어 탈탈 털어낸다.


그걸 보고는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무는 김 부장.


'이제는 이 일로 뭐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숙련된 청소부의 실력을 두 번씩이나 보여주었으니.'


김 부장의 시선이 모니터로 이동했다.


상황이 끝난 걸 느낀 난 쓰레기봉투들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내일 나올 파쇄물에는 어떤 정보가 들어있으려나.




***




"안녕히 가십시오!"

"어, 그래. 최 기사 수고."


5시 땡 하자마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북적북적. 사람들이 퇴근을 한다.


답례가 돌아오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너 아들로 인한 의도적인 친절이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받다 보니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청소 사무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게임 삼매경에 빠진 박 대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왠지 불편한지, 부장을 포함 전 직원은 곧바로 퇴근길에 올랐다.


다 퇴근하고 난 이후의 고요함.


다시 한 번 사무실을 스윽 둘러보며 문단속은 잘했는지, 전원은 켜져 있지 않은지 확인한다.


문제가 없는 걸 다 확인한 난 마지막으로 파쇄기로 다가갔다.


슬쩍 그 옆을 살펴본즉, 아쉽게도 오늘은 아무런 서류뭉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첫날 같은 요행을 바라는 건 무리겠지.'


슥 통을 열어본다. 한 장 분량의 파쇄물이 다소곳이 쌓여있다.


'내일 보자, 복덩아.'


나는 파쇄 통을 다시 조심스레 밀어 넣고 밖으로 나왔다. 청소 사무실로 돌아가자 박 대리가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다 끝났어?"

"예. 사무실 소등까지 전부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시작해보자고."

"네, 시작하시죠."




***




공간 한가운데로 놓인 탁자. 그곳을 빙 두른 소파들.


문 너머로 미약하게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탁자 위로는 잔과 술들이 늘어져 있다.


한 차장이 술잔을 기울이고는 작게 투덜거렸다.


"참······ 회의를 이곳에서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은 회장 아들 때문에, 불편해서 룸살롱으로 나온 김 부장과 한 차장이었다.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던 김 부장이 시선을 떼고는 눈을 꾹꾹 눌렀다.


"역시 다들 우리와 생각이 같군."

"그렇습니까?"

"어. 여의도 쪽도 그렇고, 다른 사무실도 그렇고. 전부 동일한 전망이야. 종합이 무너질 거로 보고 있네."


어쩌면 메신바이오 공매도도 그 일환인지도 몰랐다.


"아마 정책주는 이 하락이 끝날 즈음 모양을 잡겠지."

"그럼 그때까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 빠지면 3파 하락이야. 내리 두 달은 쭉 빠질 거고, 그 기간 동안 본사 쪽도 크게 움직이진 않을 거네."

"그 말씀은······."


종합 차트를 다시금 살펴본 김 부장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앞으로 두 달간은 단타로 움직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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