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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중

주식하는 청소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24,290
추천수 :
12,780
글자수 :
190,769

작성
22.05.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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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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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글자
17쪽

#001 우연한 사건

DUMMY

인생을 살다 보면 세 번의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다른 두 기회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린 건지, 아니면 아직 안 나타난 건지.


다만 확실한 건, 그중 하나는 확실히 잡았다는 것이다.


- 타임지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투자자.

- 시장의 마법사.


"그 외에도 수많은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고 계시는데요."


인터뷰를 하는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한때는 크게 실패해 청소부 일까지 하셨다면서요?"

"예, 그랬었죠."

"혹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인생을 뒤바꿀만한 기연 혹은 우연한 사건이라던가?"


은은한 조명 아래, 남자의 시선이 사무실 한쪽 끝을 향했다. 그곳엔 네모난 기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연한 사건이라······.'




***




매일 아침 나는 우리 회사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 도착해, 남들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게 바로 내 일이었다.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밤새 차가워진 서늘한 냉기가 볼에 와 닿았다.


새하얀 인테리어. 평이한 책상들과 그 위에 자리한 여러 전자기기들.


사무실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다가오고, 그 안에서 난 팔을 걷어붙이며 힘차게 소리쳤다.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우선 간밤에 쌓인 미세먼지부터!


좌에서 우로 슥슥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좌우를 살펴 전자기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했다.


십여 일만 지나면 어느덧 출근한 지도 두 달이 되는 나. 청소부는 직함에 비해 육체적으로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내 아침 일과는 이러했다.


7시 30분까지 출근한다. 그런 뒤 각종 전자기기부터 점검을 한다.


사실 전날 퇴근 전에 이미 청소와 점검을 마친 상태이지만, 아침에 한차례 더 재점검을 해야 했다.


그런 뒤 쌀쌀한 날씨를 대비해 전열 기구를 미리 돌려놓으면 끝.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8시기에,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모든 것들이 세팅해야 하는 게 핵심이었다.


"이 짓도 갈수록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것 같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닦으며 두 번, 세 번 점검했다. 특히 한 차장의 자리를 유심히 살핀 난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평소보다 1분가량 빨리 끝난 건가?"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봤다.


회사의 아침 복도는 아직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나 곧 하나둘 런웨이를 걷듯 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타날 것이다.


난 청소도구들을 치운 뒤 복도에서 대기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서늘한 공기에 충분히 식힐 즈음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사십 중반의 남자가 지나쳐간다. 머리를 뒤로 깔끔히 넘긴 그는 김문수 부장. 이 회사의 제일 높은 직급이다.


그는 늘 다른 이들보다 이렇게 제일 먼저 출근하곤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다음은 삼십 후반의 남자. 살짝은 깐깐하게 보이는 이 사람은 한상철 차장. 이곳의 실세 중 실세였다.


그 뒤로도 한 명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모두가 출근을 한 걸 확인한 난 곧바로 옆 자그마한 청소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 일은 이걸로 끝. 지금부터 점심시간까지는 일종의 자유시간이었다.


간이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스마트폰을 열었다.


도균이 : 야 오늘 밤에 술 한잔 뙇?

나 : 나 내일도 출근이거든?

도균이 : 아 그랬지 그래서 일은 좀 할 만하냐?

나 : 글쎄


난 잠깐 고민하다 액정 화면을 두드렸다.


나 : 직원이 나 혼자라는 게 좀...


'그것만 아니라면 참 좋았을 텐데.'


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벽 너머로 이런저런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외로운 내 손가락이 조금 더 분주해졌다.


난 스마트폰을 벗 삼아 이리저리 시간을 때웠다.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웹툰, 웹소설을 보며.


혼자 있는 시간을 빠르게 보내는 데에는 이것들만 한 게 없었다. 그때 한 차례 폰이 진동했다.


『 삼선짜장3 삼선짬봉3 볶음밥2 잡체밥2 리산술1 탕수육 중 』


"오늘은 중국집이네."


외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난 곧바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중국집이 이쪽이었지?"


살짝은 이른 점심. 아직은 한산한 도로를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넜다.


중국집에 들어가자, 사장님이 날 알아보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 주었다.


"어. 청년! 어서 와."

"안녕하세요."


나는 받은 문자 내용을 보며 음식을 주문했다.


"오늘도 포장해 가는 거지?"

"예, 사장님."

"이 많은 걸 다 들고 가다니. 그냥 배달로 시키지 왜 매번."

"하핫. 회사 규정이라서요."


그랬다. 아직까지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긴 한데, 배달 음식은 항상 찾아오는 것이 이 회사의 규칙이자 전례였다.


'배달하는 사람들을 못 믿는 건가?'


뭐 잠깐 의아함은 들지언정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맛있게 좀 부탁드릴게요."

"단골에 귀한 손님인데 당연하지. 걱정 말게!"


사장님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계산대에 제일 가까이 있는 탁자에서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음식들이 만만치 않네.'


내 입장에선 몇 번을 고심한 끝에나 시켜 먹을 만한 고가의 음식들.


오늘 만이 아니다. 매일 다른 메뉴를 시키지만, 고가 음식은 늘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회사 복지가 좋은 건가?


"음식 나왔네, 청년!"

"아, 예."

"자주 오니까 만두는 서비스로 두둑이 넣었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려. 맛있게 먹고. 오늘도 파이팅!"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난 포장된 음식들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은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를 좀 지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길을 건너 5층짜리 상가 건물로 되돌아간다.


"오늘은 뭐 먹을까?"

"국밥 먹자, 국밥."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잠깐 기다리며 머리를 들어 올렸다. 건물 위로 '청담빌딩'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청담빌딩. 이곳 5층이 내가 일하는 회사가 있는 곳이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유통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돈은 꽤 많이 버는 건 확실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 난 사무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했다. 그리고는 옅은 숨을 내뱉으며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음식 도착했습니다."


고요한 사무실. 그 적막 속에서 늘 그랬듯이 원형 탁자로 다가가 음식을 위에 올렸다.


랩 포장 하나하나 일일이 오픈하고, 그 위에 젓가락을 하나씩 올려놓고.


언제든 곧바로 먹을 수 있게 세팅을 마쳤을 때, 저 멀리서 부장의 크나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차장! 파쇄 할 때 커피잔을 파쇄기 위에 올려놓지 말라고! 떨어지면 그 밑에 콘센트 있잖아?"


부장의 강한 어투에 불만스런 말투가 이어졌다.


"아, 알아요! 한 번도 떨어진 적도 없는데, 거 잔소리는!"


아니, 아까까진 웃고 떠들더니만 왜 이 박자에 그래? 불안한 눈으로 한 차장을 바라본 난 다시 한 번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기, 식사 왔습니다. 식사 하세요."


식사가 제대로 왔는지 이곳 직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누군가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들고 온 음식들을 확인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 내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오늘 밥은 맛있게 해달라고 했어?"


나타났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오늘은 대낮부터 마실이라도 나간 모양이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내 옆에는 한 차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 사장이 직접 신경 써 했답니다."

"그래?"


군만두 하나를 집어먹어 보는 한 차장. 그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더니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맛있게 해달라고 해서 온 거야? 응? 겁나게 딱딱하잖아?"

"저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면 잘해야지. 가만 보면 최 기사는 말뿐이야."


그 뒤로 이어지는 십여 분의 잔소리. 아니 갈굼.


면전에서 속사포로 쏟아지는 말의 홍수에 머리가 멍해진다.


그 재난이 끝이 나고 청소부 사무실로 돌아올 때쯤엔, 내 몸은 벌써 하루를 끝낸 것 마냥 녹초가 되었다.


'후우. 군대에서도 이리 힘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귓가로 한 차장의 잔소리가 앵앵 울린다. 의자에 몸을 실자, 자연스레 내 시선이 천정을 향했다.


- 가만 보면 최 기사는 말뿐이야. 그래서 어디 일이나 제대로 하겠어?


새하얀 백열등에 시야가 뿌예진다.


"······그만둘까?"




***




"오늘 회식할 거야. 참가 가능한 인원들?"


부장은 한 명 한 명 인원들을 체크했다. 다 확인한 그는 청소를 하고 있는 내게도 물었다.


"최 기사?"

"아닙니다. 저 오늘 약속 있습니다."


눈치 없이 따라가는 일은 없다.


내 대답을 들은 부장은 고갯짓 한 번 없이 옆을 지나갔다. 오늘 하루 부장이 내게 건넨 말은 그게 전부였다.


부장만이 아니다. 일을 위해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모두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흔한 인사 한마디도 없었고, 설령 말을 해도 모두 직설적인 단답형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 최 기사, 청소.

- 최 기사, 음식.

- 최 기사, 볼펜. 복사지.


이러한 사실은 순간순간 일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뭐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을 할지 모른다. 배불렀다고. 일이 편하니 허튼소리 하는 거라고.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지금까지 참고 버텨왔으니까.


'근데 더는 아닌 것 같아.'


몸을 수그려 바닥에 버려진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구깃구깃 구겨져 바닥을 뒹구는 그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 자존감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청소부라는 것이 그렇지.'


남들이 흘린 걸 대신 치워주는 삶. 저들에게 난 그저 실패한 인생일 뿐이었다.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자.'


대신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 맡은 일을 철저히 하고 좋은 마무리를 짓는 거다.


유종의 미······ 뭐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고, 두 달밖에 견디지 못한 나 자신을 위로하는 마지막 결심.


그래서일까? 기분이 한결 편해졌다.


회식이 있어서 그런지 분주한 분위기 속에 서서히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김 부장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한 차장, 진작 좀 할 것이지. 쯧쯧. 항상 그래. 미리미리 준비하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야."


한 차장은 이렇다 할 말대꾸 없이 묵묵히 서류를 파쇄 했다. 마치 반항하는 그 심리를 대변이라도 하듯, 커피는 파쇄기 위에서 흔들흔들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한 차장.


이 회사에서 내게 제일 관심이 많은 인간. 그러면서 동시에 내 퇴사에 제일 큰 일조를 한 인물.


평소에는 무시와 단답형으로 일관하지만, 뭔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내게 곧장 달려와서 일장 연설을 해대는 악덕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일을 못하는 걸로 뭐라고 하면 그래도 인정한다. 그러나 대체로 트집을 잡는 방식은 아까 점심식사 때와 비슷했다.


- 최 기사. 표정이 왜 그따구야?

- 오늘 음식은 왜 이렇게 맛이 없지? 음식 시킬 때 맛나게 좀 해달라 안 해?

- 아 펜이! 잘! 안 나오잖아, 짜증나게! 새로 하나 사와, 빨리!


다시 떠올려 봐도 스트레스 받는 과거들.


그렇게 의도치 않게 고통을 받으며 청소를 하는데 돌연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청춘아 돌려다오-


한 차장의 스마트폰이다. 파쇄기 속에 마지막 용지가 들어가는 것을 본 그는 걸음을 옮겨 자신의 폰을 집었다.


"네, 부장님. 이제 막 끝났습니다. 지금 내려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한 차장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꾸가 없는 무안함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난 묵묵히 청소에 열중했다.


까똑. 까똑.


'누구지? 이 시간에?'


확인해본다. 불알친구였다.


도균이 : 오늘 시간 있음 퇴근 후 한잔 콜?

나 : (오케이 이모티콘)

도균이 : 자주 가는 딸랑 호프 어때

나 : 알았어 나도 곧 끝나 그곳에서 보자고


약속이 잡히니 손길이 더 빨라졌다. 그렇다고 대충하진 않는다. 난 일일이 걸레질해 모서리 구석구석까지 신경 써 가며 닦았다.


'이리해도 내일 아침에 또 잔소리하겠지. 청소가 개판이라고.'


속으로 한 차장 욕을 해대며 파쇄기 뚜껑을 열었다. 비우려고 보니 통속이 조금 밖에 차 있지 않았다.


'그냥 내일 비울까?'


약속도 있겠다, 그러자. 결정을 내린 내 손은 어느새 뚜껑을 닫고 있었다. 그러고 일어나는데 무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파쇄기 옆에 자리한 한 묶음의 서류 뭉치.


그곳은 파쇄하기 위해 서류를 올려놓는 자리였다.


'한 차장 그 인간 회식한다고 정신이 없고만. 지나 잘할 것이지.'


속으로 투덜대며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파쇄 하려는데, 파쇄기 전원은 이미 끈 상태다.


"······."


잠깐 고민을 한 난 파쇄기 통속에 서류 뭉치를 그대로 집어넣었다.


내일 와서 하자, 내일 와서.


청소는 마무리됐다. 난 놓친 게 없나 다시 한 번 점검을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부르르.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


"아, 새끼. 그새를 못 참고."


청소 가운을 내려놓고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액정화면에 손을 올리는데, 응? 친구 녀석이 아니다.


『 한차장 』


'······뭐지? 별로 수신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나 받지 않으면 내일 또 개지랄을 할 테지. 내키진 않지만 부들거리는 손가락을 옆으로 움직였다.


"예, 한 차장님."

"서류 어떻게 했나?"


급하고 다급한 어투.


순간적으로 쏘아붙이는 어조에, 매일 갑질에 시달린 난 반쯤 얼어붙었다.


"무, 무슨 서류를 말씀하시는 건지."

"파쇄기 옆에 있는 서류 말이야!"


아······. 아까 그 서류?


"어떻게 했어?"

"그 서류······ 파쇄기에 넣었는데요. 혹시 중요한 서류입니까?"

"정말 파쇄기에 넣었어?"

"네."

"그럼 됐고."


뚝. 전화가 끊겼다.


기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난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한참 동안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뭔가 싸한데.'


한 차장과 대화가 잘 마무리 되었지만 뭔가 찜찜한 이 기분.


아, 몰라! 친구 녀석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혼란스런 머리를 흔들며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난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


그 찜찜함의 원인을 찾아냈다. 한 차장과 나와의 대화 사이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간 질문은 서류를 파쇄 했느냐는 것이었을 텐데.'


지금 파쇄 안 했다가는 좆 되겠지······?


한 차장이 파쇄기 통을 열어볼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열어 보게 된다면, 그래서 통속에 서류가 덩그러니 통째로 들어가 있는 걸 알게 된다면······.


- 이 새끼, 이거 2% 모자란 새끼 아냐? 너 문맹인이야? 어디 아프리카에서 옥수수 따다 왔어? 파쇄기가 무슨 쓰레기통인 줄 알아? 엉?


······어휴. 소름이 돋네. 빨리 파쇄하자, 파쇄 해.


귓전에 벌써부터 그 인간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만 둘 때까지 갈굼 당할지도 모르니 그런 일은 사전에 차단하도록 하자.


파쇄기 전원을 올렸다. 드르륵. 기계 가동 소리.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십여 장쯤 되어 보이는 서류를 둘로 나누고, 파쇄할 요량으로 양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조금 전 한 차창의 급박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서류이길래 그러지?'


호기심에 슬쩍 서류를 훑어봤다. 첫 장 제일 위로 별 5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오. 중요하긴 중요한가 보네. 별이 5개?'


흥미가 샘솟았다.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보았다.


"오."


사락. 사락.


"응?"


사락사락사락.


"어어?"


이게 뭐야······?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눈과 몸이 나도 모르게 가늘게 떨렸다.


다음 장, 또 그다음 장을 넘기는 내 손은 점차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똑.


서류 위에 떨어져 내린 물방울.


나도 모르는 사이,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걸 닦으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오로지 서류를 넘기며 훑어보는 일에만 집중할 뿐.


떨림이 거세어진다. 이내 흥분으로 변모한다.


『 종목명 : 메신바이오 』


파쇄 될 운명이었던 10장의 종이.


그리고 그것을 구한 나.


그건 내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본 작품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 이름, 집단,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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