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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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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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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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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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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0 뜻밖의 수확

DUMMY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 여인이 웃으며 다가온다.


보험설계사 강유진이었다.


"오랜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수수하지만 기분 좋은 향기가 느껴지고, 귓가를 즐거이 간질이는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를 변화시키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공사하신다더니 여기에 계셨구나."


올라오면서 사무실 공사하는 걸 봤나 보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예. 그런데 설계사님은?"

"일 보고 옥상에서 커피한잔하려고 왔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에 든 커피를 들어 보였다.


"근데 평일과는 뭔가 달라 보이네요."


토요일이라 그런지 옥상은 한산했다. 아니, 옥상 위에 있는 이라고는 나와 설계사뿐이었다.


"5층은 무슨 공사를 하는 건가요?"

"벽 공사입니다. 제 쪽 사무실을 넓히는 공사입니다."

"어멋. 청소 사무실을 넓힌다고요? 왜요?"

"새로 사람이 왔는데 제 쪽에서 근무를 하는 모양입니다."

"음? 그럴 이유가 있나 보죠?"


보험 설계사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것 같다. 좁은 틈새를 순식간에 파고들어 온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자꾸 말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바······ 난 작전을 바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잠잠하지만 묵직한 톤이 내리깔리고, 내 뜻을 알아챘는지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 더는 질문을 쏟아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최 기사님. 제가 불편하신가요?"

"······아닙니다."

"싫은 건 아니죠?"

"그럼요. 얼마나 봤다고 좋고 싫고 하겠습니까."

"흐음. 전 최 기사님이 거리를 두는 것 같은 기분인데······."

"아닙니다."

"그렇군요. 역시 제가 잘못 느낀 거겠죠?"


정신을 차린 순간 난 어느새 그녀에게 꼬박꼬박 대답해주고 있었다.


이 흐름대로라면 아까의 상황을 반복하게 될 것 같아 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날 웃으며 관찰하던 그녀는 관심을 내 손 위로 옮겨탔다.


"근데 뭐하고 계셨어요?"

"그냥 뉴스 검색도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간 때우고 있었습니다."

"아, 폰멍 중이셨구나. 그런데 최 기사님은 직장 외에 다른 하시는 것 없나요?"

"예."

"요샌 투잡이 대세잖아요. 쓰리잡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전 아직입니다."


사실 도균이 녀석 통해 알바하니 나도 투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반대로 그녀는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강유진이 손가락 두 개를 펴보았다.


"전 두 개. 투잡이에요."

"설계사 일, 쉽지 않다고 하던데요."

"알아요, 무슨 말씀인지. 육체적인 일은 아니고······ 저 소액으로 주식해요."

"주식이요?"

"네. 요새 주식 안 하는 사람 없잖아요?"


하긴. 주부도 매매하고, 어린아이들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시대다.


얼마 전 진 원장 말에 따르면, 중학생 아들 친구도 주식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 기사님도 하시죠?"

"전 안 합니다."

"엥? 왜요? 다들 하는데?"


······일단 대답 대신 물음을 던졌다.


"그럼 설계사님은 주식으로 수익이 나십니까? 다들 마이너스 손실이라던데."

"주식 안 하신다면서 잘 아시네요."

"주위에서 얼마 잃었네. 얼마 날렸네. 다들 그럽니다."

"맞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잃었다고 봐야겠죠. 통계도 그리 말을 하니."


그러나 말은 그리해도 강유진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근데 저는 수익이에요. 많이는 못 벌었지만."


수익이 난다고? 에이. 어쩌다가 한두 번이겠지.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걸까? 강유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저 이래 봬도 수익이 꾸준히 나거든요."

"······정말입니까? 수익이 꾸준히 나신다는 분 처음 봅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혹시······ 눈앞에 있는 이 여자도 작전 세력의 일원은 아니겠지?


순간 그런 의심이 들었으나 이내 털어버렸다.


나 같은 사람한테 작전 세력이 뭐 하러 붙겠는가?


"수익이 난다고 하니 안 믿기시나 보네요. 후훗. 근데 아까 말했다시피 대단한 건 아니에요. 소소하게 벌어요."

"겸손하시군요. 다들 잃는 시장에서 벌고 있다는 게 어딥니까. 제 맘대로 움직이는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번다는 게 쉽지 않죠."


내 대답을 끝으로 연속되는 대화가 끊겼다.


특별히 말을 잘못한 것 같지는 않고. 한참 후에서야 그녀의 말을 듣고 대화가 왜 끊겼는지 알 수 있었다.


"전 최 기사님과 달리 생각해요."

"예?"

"저는 주식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말에 동조하지 않아요. 규칙 없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각 종목은 움직이는 패턴이 존재하거든요."


패턴이라······.


"또 주식 시장에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어요. 아니, 존재해요. 예를 들면, 외국인, 기관투자자······. 제일 큰 손이죠. 요새는 연기금까지. 그 외에 작전 세력들도 있을 거고."

"들어본 것 같습니다."

"소그룹으로 움직이는 조막손도 있죠."

"많이 아시네요."


강유진이 볼을 긁적였다.


"많이 안다고 하기보단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다 듣는 얘기에요. 특히 종토방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요."

"종토방? 그게 뭡니까?"

"종목 토론방이에요.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곳이랄까?"


그러며 강유진이 내 눈치를 살짝 엿보는 게 느껴졌다.


뭔가 나에게 접근한 의도가 있나?


순간 의심이 들었으나 이내 훅 털어냈다. 나 같은 사람한테 빼먹을 게 뭐 있어야지.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곳에 제대로 된 정보가 있습니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공짜로 가르쳐 줄까. 돈을 벌 수 있는 고급 정보를.


강유진이 내 대답에 작게 웃으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요. 누가 가르쳐 주겠어요."

"음? 어쩌다 한두 번 그곳에서 정보를 얻는다면서요."

"아.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네요. 음······ 정보라기보단 매매를 할 때 도움이 되는 걸 가르쳐줘요."


알쏭달쏭한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강유진이 설명을 구체적으로 덧붙였다.


"예를 들면, 어디서 청산해야 할지 잘 모를 때 그곳에 가면 대충 알 수 있어요. 얼마 전에 메신바이오라는 종목도 그런 식으로 고점에 정리했어요."


메신바이오?


내 놀란 표정에 그녀는 자랑이라도 하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안 보이던 아이디가 순식간에 많아져요. 대부분 찬티에요. 그 내용을 읽다 보면 전혀 팔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핵심이에요."


강유진이 검지를 치켜들고는 눈에 힘을 줬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나와야 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시는 것도 많고······. 그럼 그 메신바이오? 라는 주식으로 많이 버셨겠습니다."


내 입에 발린 말에 강유진이 검지와 중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조금요. 15% 정도 벌었어요. 최근 들어 가장 큰 수익이기도 하고요."

"15%······. 진짜 대단한데요? 은행 금리가 2%도 안 되는데."


칭찬 세례에 강유진의 얼굴에 웃음이 만발했다.


"소액으로 하는데도 수익이 꽤 짭짤해요."

"대단하군요.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주식에 대한 자기 철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에이. 왜 그래요. 너무 띄우신다."


그래도 싫진 않은 모양이다. 손사래를 치는데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어머멋. 근데 나 좀 봐. 지금까지 저 혼자 무슨 주접을 떤 거래요. 주식도 하지 않으시는 분께······ 제 자랑만 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주식은 하지 않지만 나름 배움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하신 말씀이 꼭 주식 시장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특히 원칙을 지키시는 모습에서 수익이 나는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정말요?"


내 립서비스가 통했나?


조금씩 올라간 강유진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 끝에 다다라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동네에서 최고 고수신 것 같습니다."

"후훗. 최 기사님 사람 띄울 줄 아시네요."

"전 진심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솔직히 기분은 좋네요. 근데 이 동네 진짜 고수는 따로 있어요."


그녀는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들을 사람도 없는데 자그마한 손을 입가에 대고는 소곤거렸다.


"저희 보험사 직원 중에 김진희라는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주식으로 돈을 진짜 많이 벌어요."


김진희?


순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는데, 한 차장이 만나는 내연녀 중 하나의 이름이 김진희였다.


"그렇게 잘합니까? 설계사님 표정을 보니 상당한 고수신가 봅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본인이 가진 주식을 처리할 때 보면 귀신이에요. 끝자리 매도하는 걸 보면 저와는 차원이 다르다니깐요."


난 내 꿈과 계획이 탄력을 받는 걸 느꼈다.


예상치 못한 휴일 출근. 이후엔 한 차장 추격 실패.


그로 인해 허탈한 마음이 그득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 차장 애인의 정보를 듣게 될 줄이야.


'······좀 더 알아보자.'


"매도를 진짜 잘하시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최고가에 매도를 할 수가 있지."

"믿기 어렵겠죠."

"예. 어쩌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근데 농담이 아니고, 그 언니가 정리하면 늘 최고가 근처예요."

"주식엔 숨은 고수가 많다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내가 놀랍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자 강유진이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양손을 입 주변으로 모아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어요. 그 언니, 상당히 고가에서 사는 것 같아요. 고점 매도하는 실력을 보면 매수도 저보다는 실력이 나아야 하는데."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 물어보세요."

"설계사님은 그분과 주식 정보를 공유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그분 매매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십니까?"

"아, 그거요?"


강유진이 배시시 웃는다.


"그 언니 가끔 기분 좋으면 매수한 종목을 얘기해줄 때가 있어요. 정말 가끔이지만. 비밀이라면서 나한테만 가르쳐줘요. 아니다. 가르쳐 준다고 하기보단 살짝 운을 띄운다고 해야 하나?"


그녀의 말에 의하면, 김진희라는 여자는 감정이 밖으로 잘 드러나서 수익이 나면 통통 튀는 게 보일 정도로 표시가 난다고 했다.


"눈치껏 알아차린 후 매수하고 기다리면 그다음 매도는 아주 쉬워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흥미롭네요. 설계사님같이 매매하면 왠지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벌 것 같기도 합니다."

"후훗. 최 기사님도 한번 도전해 보세요!"

"근데 전 실력도 없고, 주위엔 고수라 칭할 만한 사람도 없어서······."


난 옥상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날 보던 강유진이 입을 열려다가 닫으며 머뭇거렸다.


"최 기사님."

"예."

"개미들이 주식으로 수익 내기는 어렵잖아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저 사람마다 유예의 시간이 다를 뿐.


"근데 의외로 우리 주변에 숨은 고수가 많아요."


나는 그 말을 인정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최 기사님 주변에도 있을지 몰라요. 어쩌면 직장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죠."


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원위치시켰다.


그러자 날 정확히 직시하는 강유진 설계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말속에 어떤 의도가 숨겨있음을 직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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