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초과근무중

주식하는 청소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24,581
추천수 :
12,780
글자수 :
190,769

작성
22.05.22 07:05
조회
9,739
추천
355
글자
12쪽

#013 깨달음

DUMMY

"부장님. 정말 이렇게 1년을 버텨야 합니까?"


한 차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짬뽕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셨다. 그릇을 탁자에 탁 내려놓은 그는 불만 섞인 말을 이어 쏟아냈다.


"이제 음식도 마음대로 시킬 수 없으니 진짜 미치겠습니다."


다른 사무실 직원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조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때 가만 음식을 먹던 김 부장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 차장, 그리고 자네들. 회장님에게 찍히고 싶어?"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고요. 그저······."


변명을 하려는 한 차장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김 부장의 표정이 꽤 무서웠던 탓이다.


"가만 보면 자네들 선을 넘는 것 같아. 지금 저분이 누군지 몰라? 천지분간이 안 돼? 쫓겨나서 이 구역에 다시는 발 들이기 싫어?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한방에 훅 가고 싶은 건가?"

"······."

"그런 거 아니라면 알아서들 조심해."


한 차례 지나간 태풍에 장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달그락 달그락.


한동안 음식 먹는 소리만이 조용히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건 식사가 끝이 날 때까지 이어졌고, 김 부장이 다시 입을 연 뒤에야 비로소 숨통이 탁 트였다.


"한 차장. 저쪽 사무실 넓히는데 설계도는 아직인가?"

"설계까지 필요 있겠습니까."


한 차장의 손가락이 기둥과 기둥 사리를 가리켰다.


"저쪽부터 쭈욱 해서 이쪽 기둥 안쪽으로, 벽을 만들면 될 것 같은데요."

"흠. 그래도 좀 좁지 않나?"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잠시 눈대중을 잡아본 김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둥 밖으로 선을 그어."

"꼭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그래 봤자 저곳에서 매일 게임만 할 텐데요."

"한 차장, 이 사람아. 회장님 아들분이 저 방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하루 종일 이곳에 있으면 어쩌겠나?"


그걸 가만 상상한 한 차장과 다른 직원들이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느니, 아예 저쪽을 확 넓혀서 이쪽에 오고 싶은 마음이 아예 안 들도록 하는 게 나았다.


"······생각만 해도 오싹하네요."

"내 말이. 여하튼 공사 철저히 시키고. 괜히 일 잘못해서 나까지 눈치 보게 하지 말고."

"참 부장님도. 그 성격에 결국 모든 일 다 일일이 체크하실 거 아닙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다소 풀어지자, 한 차장이 다리를 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진짜 문제입니다, 부장님. 이제 최 기사 눈치도 봐야 하고. 이거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 차장 말에 동조라도 하듯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합세했다.


"그러니까요. 늘 같이 붙어있으니, 최 기사가 무슨 말을 할지 조심스럽습니다."

"군대로 치면 지휘관 운전병 같다고나 할까요."

"솔직히 막대하기가 힘들어진 건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김 부장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해. 대신 불필요한 트집 잡지 말고. 특히 한 차장."

"제가 뭘요?"


억울하다는 듯 한 차장이 김 부장을 쳐다보았다. 김 부장의 한쪽 눈썹이 위로 슥 올라갔다.


"최 기사 편을 들을 이유도, 편들 생각도 없어. 자네가 왜 유독 최 기사를 갈구는지 내 알고 있으니 변명 안 해도 되고. 다만 내가 쭉 지켜보고 있단 걸 명심하게."


한 차장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김 부장의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그래 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둘 텐데."

"최 기사가 그만둔다고 그리 말했나?"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자기도 모르게 실언한 것을 깨달은 한 차장이 말을 버벅였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쏟아낸 실수를 도로 주웠다.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젊은 친구가 뭔 청소 일을 계속하겠습니까? 그저 좋은 직장이 생기면 언제든 나갈 것 같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가?"


이 상황이 불편한 한 차장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근데 부장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회장님 아들 박 대리 말입니다. 정말 이 일을 안 물려받으려나요?"


이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 중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박 회장과 그 아들의 관계가 어떠한지.


박 대리는 그 아비의 길을 가기를 전면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회장님과 생각이 다르니, 혹시 회장님 유고시 회사가 통째로 공중분해 되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됩니다."


그리고 그건 한 차장뿐만 아니라, 그 휘하에서 움직이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걱정이었다.


걱정과 궁금증이 혼재된 얼굴. 한 차장과 다른 직원들의 표정을 한번 슥 훑어본 김 부장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허 참 이 사람아. 뭘 그리 쉬운 문제로 걱정을. 좀 더 멀리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을."

"예?"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야. 보고 듣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 사람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네. 만일 회장님이 당장 유고하시면 이 회사는 누가 이끌겠나?"

"일단은 아들이 맡겠지요."

"그래. 시간이 지나 다른 뜻이 있어 그만둔다 해도, 한동안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걸세. 그러다가 결국 자연스레 회장 자릴 이어받게 되는 것이고."

"정말 그리되겠습니까?"

"하핫. 그렇대도. 이제 다 먹었으면 일들 시작하라고. 김 대리는 최 기사보고 여기 정리하라 하고."

"네, 부장님."


그때였다. 김 부장의 말에 곰곰이 고민에 잠겨 있던 한 차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김 대리를 붙잡았다.


"김 대리. 청소 사무실엔 내가 갔다 올 테니까 자넨 오후 준비해."

"아, 예. 알겠습니다."


옷매무새와 입가를 정리한 한 차장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 청소 사무실로 나아간 그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한 차장의 질문에 박 대리가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집 음식 잘하는데요? 종종 여기서 시켜 먹읍시다."


한 차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요리라도 한 것처럼 어깨와 허리에 바짝 힘을 주었다.


"최 기사."

"예."

"사무실 쪽 식사 다 끝났으니까 청소 시작하고."

"알겠습니다."


무슨 청소시키는데 방문까지?


평소라면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편한 박 대리가 있으니 더더욱.


평소와는 다른 한 차장의 행동과 분위기에 난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다.


무슨 꿍꿍이가 있나?


"저어······ 그럼 여기부터 할까요? 아님 저쪽부터 할까요?"

"무슨 소리. 당연히 이쪽부터 치워야지."

"예."


순식간에 치울 수도 있지만 천천히 그릇들을 치운다. 책상 위는 반들반들 광이 나게끔 정리한다.


그 사이 한 차장은 박 대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박 대리님. 저희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곳에 머무시기에는 사무실이 너무 비좁은 것 같습니다."


한 차장은 본인의 말에 힘을 실으려는 듯 작은 청소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박 대리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그래서 일단은 이쪽 벽을 넓히는 공사를 이번 주말에 하기로 했는데······ 그냥 저쪽으로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하긴. 나 하나 때문에 공사까지 하는 건 그런 건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근데 벽 공사까진 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쓸 몇몇 도구만 넣으면 되는데."

"그거 넣으면 꽉 찰 겁니다. 아마 움직이기도 불편하실 거고."


박 대리가 다시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확실히 비좁긴 하네."

"일단 그럼 이곳에 지내시는 걸로 알고 공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금만 넓히는 걸로 하죠."

"아뇨. 칸막이 공사가 더 넓어진다고 해도 공사하는 데는 어차피 거기서 거깁니다."


한 차장이 박 대리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내 귀에는 다 들렸지만.


"주말 동안 제가 책임지고 최대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 보겠습니다."


이야. 저 인간 진짜······. 사회생활은 저리하는 것이구나.


그동안 내가 저걸 못해서 한 차장한테 찍힌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청소 사무실을 나서며 난 고개를 흔들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난 엉망이 된 원형 탁자 앞에 서서 늘 그렇듯 의례적인 말을 던졌다.


"음식 치우겠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음식을 다 먹고 각자 자리에 앉아 집중하던 직원들이 하나같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닌가?


그로 인해 난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최 기사."

"수고 좀 해."


뭐야. 갑자기 내게 왜 이렇게 관심들을 가져?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내 등짝엔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서일까? 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달그락.


'아차. 소리 내면 안 되는데.'


그릇을 만지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그릇이 탁자에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


사무실에서는 늘 정숙 또 정숙을 교육받았다. 초창기 몇 번 작은 소리를 내 그걸로 한 차장으로부터 한참을 갈굼 당한 적도 있었다.


당시 다른 이들은 그걸 당연히 여기고 지켜만 봤고, 그중 몇몇은 그걸 보며 즐기기도 했다.


난 죄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런 날 한 차례 돌아보고는 다시 본인들의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


전혀 개의치 않는 그 모습들에 내 눈은 나도 모르게 휘둥그레졌다.


'······정말 뭐지?'


아침 인사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 이번 작전 보너스가 진짜로 상당한 모양이구나.'


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받으면 저럴 수 있는 건지······.


돈을 통해 자비라는 덕목을 대성한 그들을 약간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난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배달하는 이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한쪽에 잘 정돈해 놓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김 부장이었다.


"최 기사."

"예."

"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네만."

"말씀하십시오."

"회장 아드님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 최 기사가 잘 좀 챙겨주었으면 하네."

"제가 뭐 챙기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눈치 보기도 바쁜데."


그러나 김 부장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았다. 난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불편하시지 않게 미리미리 챙기겠습니다."

"그래. 눈치 빠르게 알아주니 참으로 고맙군. 그리고 하나 더."


김 부장의 표정이 한껏 진지해졌다. 어쩌면 지금 이 말을 하기 위해 날 따라 밖으로 나온 것일 지도 모르겠다.


"사무실과 직원들에 대해 좋게 전달했으면 하네. 될 수 있는 한 안 좋은 얘기는 삼가주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아······.


"최 기사가 말을 잘못 전하면 직원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네.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걸세."


예. 이제야 알겠네요.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잘 대해주는 이유를 말입니다.


보너스 때문에 인사를 받아주고 실수를 눈감아주고 그런 게 아니었군요. 나와 함께 있는 박 대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 거였는데.


특히 한 차장.


그 인간이 어찌 달라졌나 했다.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생물이거늘.


사람은 쉽게 선해지지 않는다.


저들에겐 난 그저 밑바닥 인생. 자신들의 쓰레기나 치워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예. 당연히 그렇게 해야 지요.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안 좋은 건 제 선에서 잘 끊겠습니다."

"고맙군."


고마워 할 것 없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식하는 청소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입니다 22.06.15 1,289 0 -
35 #035 단톡방 첫 매매 +10 22.06.13 4,927 222 13쪽
34 #034 단톡방의 목적 +4 22.06.12 5,079 216 11쪽
33 #033 의견 조율 +6 22.06.11 5,453 223 12쪽
32 #032 모양새 +5 22.06.10 5,684 233 13쪽
31 #031 가일수 +6 22.06.09 6,041 241 13쪽
30 #030 회원 모집 +10 22.06.08 6,354 250 12쪽
29 #029 제안 +9 22.06.07 6,619 249 11쪽
28 #028 명단 +6 22.06.06 6,996 274 12쪽
27 #027 변화 +5 22.06.05 7,144 298 11쪽
26 #026 단톡방 +11 22.06.04 7,334 296 12쪽
25 #025 종잣돈 +10 22.06.03 7,545 315 12쪽
24 #024 입질 +9 22.06.02 7,613 308 11쪽
23 #023 자업자득 +10 22.06.01 7,806 330 15쪽
22 #022 녹음 기록 +9 22.05.31 7,785 317 12쪽
21 #021 만년필 +11 22.05.30 7,859 341 14쪽
20 #020 뜻밖의 수확 +9 22.05.29 8,105 325 12쪽
19 #019 휴일 +6 22.05.28 8,227 335 11쪽
18 #018 부탁 +5 22.05.27 8,434 323 12쪽
17 #017 두 번째 투자 +9 22.05.26 8,565 314 12쪽
16 #016 착수 +7 22.05.25 8,708 333 11쪽
15 #015 복구 +7 22.05.24 9,102 338 11쪽
14 #014 움틈 +6 22.05.23 9,260 350 11쪽
» #013 깨달음 +8 22.05.22 9,740 355 12쪽
12 #012 권력 +14 22.05.21 9,971 371 11쪽
11 #011 파쇄물 +10 22.05.20 10,329 376 12쪽
10 #010 회장 아들 +9 22.05.19 10,708 365 11쪽
9 #009 손님 +10 22.05.18 11,065 386 12쪽
8 #008 수익 실현 +8 22.05.17 11,558 395 14쪽
7 #007 의심 +9 22.05.16 11,570 424 11쪽
6 #006 종토방 +8 22.05.16 12,172 405 12쪽
5 #005 투자 +10 22.05.15 12,507 420 12쪽
4 #004 초석 +10 22.05.14 13,585 518 12쪽
3 #003 한 차장 +14 22.05.13 14,931 597 11쪽
2 #002 서류 뭉치 +15 22.05.12 15,616 775 11쪽
1 #001 우연한 사건 +25 22.05.11 20,144 962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