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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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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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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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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0,769

작성
22.05.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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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글자
12쪽

#017 두 번째 투자

DUMMY

"그럼 끊는다."

"예. 들어가세요, 이모."


난 전화를 끊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파쇄물 뒤에 뭔가가 쓰여 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가 추론된다.


다 써 불필요해진 종이를 이면지로 썼거나 혹은 급히 무언가를 써야 했거나.


이미 정보의 내용을 확인한 난 그 종이가 이면지로 쓸 만한 건 아니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급히 썼다는 건데······.'


뭘까. 대체 뭔 내용일까.


갑자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에 가서 확인해도 되지만 당장 할 일이 없는 나.


난 이종사촌 중 동생 쪽에 전화를 걸었다. 애들은 발신은 못 해도 수신은 가능했다.


"여보세요."

"성준아, 진혁이 형인데. 어제 너희들이 맞춘 종이에 뭔가 쓰여 있다고?"

"예. 이것저것 쓰여 있었어요. 막 대부분이 숫자들이었는데."

"글자는 없고?"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이내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뭐더라. 매수? 맞아. 매수. 매도!"

"매수매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난 들뜬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그게 전부야?"

"가운데도 뭐라 쓰여 있었는데, 그건 우리가 안 맞춰봐서 몰라요."


맞다. 그것은 내가 맞췄었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 사촌 동생에게 말했다.


"혹시 지금 집이니?"

"예. 이제 막 집에 왔어요!"

"그럼 형 방에 가서 뭐라고 쓰여 있나 보고 가르쳐 줄래?"

"예!"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이어졌다. 이어 내 집 문 여는 소리도.


조금 있으니 스피커 폰으로 전환했는지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형광등에 비춰봐야 해서 좀 걸려요."

"그래."

"한 묶음씩 말할게요."


그렇게 나온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마한실업

매수 100만

10월 23일 금요일

14시 20분

매도 8,600 / 8,900


잠깐 멍하니 그 단어들을 조합한 난 후다닥 주식 앱을 켰다.


조그마한 화면 위로 특정 종목의 시세가 눈에 들어왔다.


『 마한실업 현재가 : 7,000원 』




***




"그럼 바쁜 듯하니 이따 회식 때마저 이야기합시다."

"예, 그러시지요."


박 대리가 물러가고, 시간을 한 차례 확인한 김 부장이 한 차장을 불러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 차장이 뛰어와 그 옆에 섰다.


"우리 쪽 물량 얼마나 남았나?"

"거의 다 털었습니다. 5% 약간 못됩니다."

"그래?"


턱을 쓸던 김 부장이 다시 한 번 시간을 체크했다. 그는 증권 뉴스 탭을 한 번 슥 살피고는 물었다.


"마한실업 오늘 기사 올라오기로 한 거 맞지?"

"예. 아까 점심 먹기 전에도 확인했습니다. 정확히 10분 남았습니다."

"그럼 다들 잠깐 메신바이오는 멈추고 그곳에 집중한다."


김 부장의 지시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차트와 매매창을 전환했다.


한 차장이 스마트폰을 열어 몇 차례 손을 움직인 뒤 물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제 얘기한 대로 그냥 짧게 털고 가자고. 매집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그렇군요. 아쉽네요. 크게 먹을 수 있는 종목이었는데."

"별수 없지. 늘 계획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니."


마한실업은 두 달 전부터 공들인 종목이었다.


정보를 받아 바닥부터 끌어올려서 꾸준히 매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메신바이오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매집에 차질이 빚어지고, 별도리 없이 짧게 털기로 계획을 변경한 그들이었다.


"자, 다들 준비해."


한 차장을 제외한 직원들의 다소 긴장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부장이 주식 프로그램 시간과 스마트폰 시간을 교차로 확인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긴장 속, 사무실 직원들의 눈이 모니터 화면에 완전히 집중되었다.




***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보았다. 14시 20분까지 남은 시간은 이십여 분.


매수 주문 창으로 이동했다.


워낙에 급한 상황인지라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기본적인 분석이니 기술적인 분석이니 따질 상황이 아니었고, 어떤 회사인지조차 검색할 시간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것을 찾아볼 시간에 다른 고민을 하는 게 나았다.


'풀로 살 것이냐, 아니면 반만 살 것이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본 마한실업이라는 회사.


이 종목이 맞나? 오늘 움직이는 게 맞긴 한가?


불확실함으로 인해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 계속 갈등이 생겼다.


어떤 기사가 뜰지도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시간만 째깍째깍 흘러갔다. 그러나 그 고민은 이내 끝을 맺었다.


'저들을 믿는다면 풀 베팅이 맞다.'


옆 사무실이 어떤 자들인가.


5,000원짜리 메신바이오를 20배가량 띄워 판 무지막지한 놈들 아닌가.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가만 멈춰있던 내 손가락이 탄력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한실업 950주를 7,000원에 매수 하시겠습니까? ]

[ 확인 ]


전날의 종가가 6,800원이었으므로, 매입 단가 7,000원은 대략 전날 대비 +2.9% 정도에 매수한 것과 같았다.


이제 매수를 했으니 다음을 고민할 차례였다.


남은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 내 마음은 착 가라앉아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떤 거지?'


눈을 감았다. 사촌 동생의 곤란해하던 상황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 형. 근데 이거 글씨를 못 알아보겠어요. 6인지 9인지 헷갈려요.


아까 통화를 할 때, 사촌 동생은 내게 매도 단가를 두 개를 가르쳐 주었다.


8,600원, 8,900원.


누구 글씨인지는 몰라도 급하게 휘갈겨 쓴 탓인지, 마치 3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써놓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6인지 9인지 헷갈리는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즉 매도를 8,600원에 할 것이냐, 아니면 8,900원에 할 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나였다.


'문제는 8,900원이 상한가를 넘어서는 가격이라는 거지.'


만약 9라고 썼다면 오늘 상한가를 찍고 월요일까지 가는 시세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마한실업의 호가창을 지켜보았다.


아직까진 별다른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소소하게 몇십 주씩 거래되며 위아래로 흔들 뿐.


'그냥 5%를 덜 먹을까?'


그럼 깔끔하긴 한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만 더 생각을······.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옆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박 대리가 돌아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난 허겁지겁 호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문이 열리고 박 대리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여어. 최 기사. 뭐하나?"

"아, 잠시 친구 녀석이랑 톡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좋지. 근데 아까 옥상 내려올 때 뭔가 다급해 보이던데,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그 미약한 변화를 눈치챈 건가? 나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도균이 놈을 팔아먹었다.


"별거 아닙니다. 친구가 급하다며 심부름 알바 좀 해 달라 해서 말입니다."

"최 기사, 알바도 해?"

"예. 월급으로는 좀 빡빡해서 종종 휴일에 용돈벌이 합니다."

"그렇군."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박 대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몸을 바짝 밀착하며 내게 방긋 웃은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말로는 오늘 회식 있다는데. 최 기사도 참석할 거지?"

"죄송합니다. 저 선약 있습니다."

"웬만하면 취소하는 게 어때? 직원들 다 참여하는데 최 기사 혼자만 빠지는 건 아니지."


미안하지만 지금의 난 회식에 관심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 따로 해야 할 일도 있고.


"죄송합니다. 제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 아들이 아쉬운 감정을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나 여자 여럿 울렸을 그 표정에도 내 온통 관심사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 쏠려 있었다.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자, 어느덧 예정된 시간 14시 20분이 도래했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다급한 상황에,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순간적으로 홱홱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본 마한실업 차트······.'


연중 최저가까지 갱신하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1차 상승과 눌림. 이번에 오르면 2차 상승.


제대로 작전이 걸렸다면 강하게 뽑아 올릴 수 있는 종목이었다. 그렇다면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8,900원이다······!'


머릿속이 확 시원해졌다. 물론 아직 찜찜함은 남아 있었지만.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난 게임을 켜는 박 대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




진혁이 화장실로 달려가는 그 시각.


사무실에서는 살얼음 걷는 긴장감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 부장은 옆에서 가만 상황을 지켜보고, 대신 한 차장이 지휘 자리에 서서 일일이 점검하고 지시를 내렸다.


"자자, 준비들 해. 1분 전이야. 매도 팀 한 번에 때려. 지정가 알지?"

"예. 8,600원에 지정가 매도하겠습니다."

"주가가 추가로 밀리면 매수 팀 8,100원부터 물량 쌓고."


직원들의 대답이 이루어지고, 일순간 찾아온 적막 속에서 한 차장의 마지막 지시가 떨어졌다.


"그 후 다시 올라가면 남은 물량 일제히 털어버리는 거야. 자, 대기!"


모든 점검이 끝났다. 남은 시간은 10초.


'10, 9, 8······.'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긴장 속, 기사가 뜨며 주가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김 부장이 마우스를 움직여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 ······대주주 지분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발표했다. 마한그룹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재무상태도 양호하고······ ······그룹 차원에서 전기전자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져······ 』




***




후다닥 화장실에 들어가 좌변기에 앉은 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 마한실업 +30.00%, 예상 체결가 8,840원 (상한가) 』


정적 VI가 발동하면서 2분간의 생각할 시간이 추가로 주어졌다. 상한가에는 무려 700만 주의 잔량이 실려 있었다.


'예상대로군. 근데 이거 상당히 센데.'


물론 예상 체결가는 거짓된 물량이다. VI가 풀리는 순간이 진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너무 많은 매물이 쌓인 상태였다.


저들이 털어야 하는 물량은 100만 주인데, 현재 상한가 잔량은 700만 주였다.


'이거 더 먹을 수 있는 거 아냐?'


욕심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상한가에 일부 정리하려면 마음이 흔들렸다.


분명 뒷면에는 8,900원이라고 쓰여 있었지.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8,900원을 기준으로 팔겠다는 것일 뿐, 그걸 최댓값으로 팔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 가격부터 팔겠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묘하게 그런 자기 확신이 들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에, 매도 주문 위에 올린 손이 덩달아 흔들거리고. 시간은 어느덧 흘러 체감상 20초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손을 슥 밑으로 내렸다. 그런데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러고 보니 방금 박 대리······ 사무실 갔다가 바로 돌아왔는데.'


그럼 지금 옆 사무실은 바삐 돌아간다는 이야기 아냐?


대체 왜?


잠시 멈추었던 내 손이 빠르게 액정 화면을 두들겼다.


주식 앱 위로 알림 창이 슥 올라왔다.


[ 마한실업 950주를 8,600원에 매도 하시겠습니까? ]


작가의말

文pia태양님 1000골드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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