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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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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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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69

작성
22.06.0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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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25 종잣돈

DUMMY

늦가을. 공기가 다소 차가워져 손이 시렵기 시작한 계절.


사무실 안은 봄날과 같이 따스했다.


박 대리와 게임을 한지도 어느덧 5일째.


그와 난 게임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자유로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큼 꽤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박 대리 모니터 화면 위로 [ 승리 ] 표시가 떠오른 걸 확인한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4시가 된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 갔다 오라고."


하루일과를 마감하는 청소 일.


그러나 조금은 특이한 광경이 벌어졌으니······ 상사는 일을 대충대충 하라 지시하고, 청소부는 실제로 그 대충을 실행한다.


모르는 이가 보면 고개를 갸웃할 만큼 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난 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능숙하게 직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간단히 청소한다. 이후엔 파쇄기 통을 비운다.


이리 해두면, 퇴근 전 한 차장은 마지막 서류를 파쇄할 것이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출근해 그걸 가방에 챙기기만 하면 되었다.


제아무리 한 차장 그 인간이 눈치 백단이라 해도, 쓰레기에 불과한 파쇄물에서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할 것이리라.


'좋아. 청소는 끝났고.'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도구들을 정리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변기 위에 앉은 난 스마트폰을 열어 오늘의 종목을 바라보았다.


『 진연실업 +30.00% (상한가) 』


진연실업. 기자재 유통회사다.


오랜 역사 속에 꾸준히 수익을 내는 상사로, 기본적인 분석으로 비추어봐 탄탄한 재무 구조를 갖추고 있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다만 재무구조야 그렇고, 문제는 가격 동향이었다.


종합주가지수가 하락하며 이 종목 또한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고, 쭉 빠지다 이제야 반등을 모색하는 구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현재 상한가.


옆 사무실의 저점 매수는 이미 이루어졌고, 나온 정보로는 이번이 N자형 상승 3파동으로 고점을 찍고 도로 밀릴 시세였다.


시초가 갭상승으로 진입이 늦는 바람에 오늘은 8%로 수익률이 다소 낮았지만, 거래일로 익일인 월요일에 목표가에서 청산한다면 약 20%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종목이었다.


이미 몇 차례 저들과 함께 움직인 경험 때문인지 고가에서 매수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고, 베팅은 풀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 건 붉은별 하나짜리였지.'


아직까지 별의 색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개수의 의미는 이제 알았다.


별이 많을수록 베팅기간과 보유기간이 길어지고, 예상 수익률은 올라간다.


이번 주는 내내 파쇄물에서 별 하나짜리만 나왔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아무튼 오늘도 계좌는 플러스! 수익!'


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변기 물을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물 만난 고기마냥, 내 계좌는 나날이 상승 곡선을 그려나갔다.




***




청소 사무실에 두 사내가 앉아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드린다.


두 사람은 마치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로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게임을 하는 도중이었다.


우우웅-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7시가 다 되어간단 의미였다.


"뭐야, 벌써?"


본인 폰을 톡톡 두드려 시간을 확인하는 박 대리.


다행이도 적절한 순간, 상대편이 항복을 하며 게임도 끝을 맺었다.


모니터 위로 큼지막하게 [ 승리 ] 표시가 떠올랐다.


"으자자자! 최 기사, 그럼 여기까지 하고 끝내자고!"

"예."


오후 7시. 박 대리가 정한 게임 약속 시간이었다.


그러니 응당 여기까지 해야 하는 게 맞건만, 난 그를 흥미로운 얼굴로 가만 바라보았다.


'진짜 연구대상이군.'


보통 게임 좀 즐기는 이들의 패턴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연장 또 연장하는 것이다.


그에 최소 1시간은 연장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주 내내 박 대리는 그 시간을 칼같이 지켜주었다.


"오늘도 전적이 좋구만!"


게임 전적을 본 박 대리의 탄성이 이어졌다.


흐뭇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


"괜찮습니까?"


사실 오늘 승률은 별로였다.


마지막 게임이 승리로 끝나면서 6전 3승 3패였다.


그러나 박 대리의 기뻐하는 표정으로 볼 때 평상시의 결과가 어찌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최 기사 잘하는데?"

"과찬이십니다."

"내가 폐나 끼치지 않았나 모르겠구만."

"그럴 리가요. 방금 전 전투도 한 건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한타도 승리하고."


난 겸손 모드를 취하며 박 대리를 띄워 주었다.


물론, 무지성 아부가 아닌 철저히 사실만을 가져와 말 그대로 칭찬.


그래서일까? 박 대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맨날 깨지다 보니 어떤 때는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이기겠다는 도전 정신도 생기고 그랬는데······ 오늘은 짜릿했어. 처음이야. 역시 이기니까 재밌구만. 도와줘서 고맙다."

"고맙긴요. 팀워크가 좋은 거였습니다."

"하핫. 그래그래."


박 대리가 어깨동무를 하고는 넉살 좋게 웃었다.


'참으로 볼 때마다 특이한 인물이야.'


순식간에 사무실 직원들을 경직하게 만드는가 하면, 하늘정원에서는 진 원장의 어마어마한 수다를 가만 들어주고.


게임에 임할 때는 자유분방.


가볍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씩 이야기하는 인생관을 들어보면 과연 삼십 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말 그대로 카멜레온과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어느 것이 그의 진면목일까.'


어찌 됐든 손은 거의 다 풀렸다. 오랜 기간 방치해 잊어버렸던 게임 감각도 다 회복했고.


그럼에도 난 내 실력을 반 이상 감추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나오는 것보단 서서히 드러내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최대한 박 대리와 발맞춰서 움직이자.'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 최 기사!"

"예. 들어가십시오."


집 근처까지 바래다준 박 대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모퉁이에서 오늘의 한 끼를 구매한 난 찬찬히 원룸 건물 계단을 올랐다.


늘 그렇듯 이모네 집 초인종을 누르고 그 앞에 서자, 이종사촌들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누구세요?"

"형이다."


후다닥 문을 열고 나와 내 손에서 피자와 치킨을 뺏어가는 아이들.


"이거도 가져가야지."


주머니에서 기프트 카드를 빼 든다. 둘 중 동생 쪽이 다가와 그것을 낚아채 간다.


그리고 대신 내 손에 놓아주는 갈색 서류 봉투.


슬쩍 안을 보자, 거의 다 복원된 서류 한 장과 맞춰지지 않아 굴러다니는 파쇄물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훌륭하네."

"그럼요. 누가 한 건데요!"

"그런데 너희들 이거 한다고 막 공부도 안 하고 그런 거 아니지?"

"에이. 저희 약속 잘 지켜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어쩌다 보니 도움을 받게 되었지만, 아이들을 이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내심 들어 마음이 무거운 나였다.


"퍼즐 맞추는 시간에만 하는 거야. 덜 맞춰도 형이 맞추면 되니까."

"네, 형!"

"알겠어요!"

"그래. 치킨 피자 맛있게 먹고."


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내 등을 이종사촌 중 동생이 두드렸다.


"형! 오늘 치 서류 주고 가야죠!"

"아, 맞다."


파쇄물을 건네주고 작별인사.


"그럼 내일 보자."

"예, 형!"


계단을 올라 옥탑방 내 휴식처로 들어간다.


집에 도착하니 8시. 틈새 하나 없는 빡빡한 스케줄로 일주일 내내 돌아가는 데에도 피곤함보다는 흥이 났다.


난 곧바로 책상에 앉아 복원된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는 아직 미완성된 부분을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서서히 맞춰져 가는 서류.


하루 종일 일하고 매매하고 게임하고. 이후엔 깨알 같은 글씨를 맞춰 눈이 당겨도 이리 흥이 나는 이유.


아마 그건 계좌에 찍혀있는 돈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런 내 흥을 돋워 주는 알림이 울렸다.


『 입금 170만 원 / 한성물산(청담동지점) 』


서류를 복원한 난 바닥에 드러누웠다.


'······옛 생각이 나는구만.'


월급날까지 일주일 남짓 남았을 때는 항상 돈에 찌들었는데.


그저 먹고 일하고 먹고 일하고 그리했을 뿐인데, 통장 잔고가 0원에 가까워지는 그 갑갑함이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과 같았다.


열심히 일은 하는데 늘 호주머니는 텅텅 비었고, 몸은 나날이 피곤하고.


그러나 이젠 다르다.


주식 계좌에 돈이 불어나면서 마음이 풍족해졌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을 가져와 그 기록을 가만 읽었다.


---

<매매일지>

종목명 : 수익률 / 수익 / 계좌현황


메신바이오 : 50% / 240만원 / 670만원

마한실업 : 20% / 160만원 / 830만원

호무상사 : 25% / 200만원 / 1030만원

미스터레드 : 30% / 300만원 / 1330만원

KX벅스 : 15% / 190만원 / 1520만원

진연실업 :

---


'매매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볼 때마다 힘이 나는 매매기록.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피곤이 싹 사라지고 눈이 생동생동 해졌다.


'이거 완전 눈으로 먹는 강장제구만.'


힘을 충분히 충전한 난 그걸 덮어 한쪽에 잘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원을 끝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준비해야지.'


하는 만큼 수익으로 돌아온다.


나는 컴퓨터를 켜 그것을 분석하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서류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그때 문득 폰이 울렸다.


"예, 어머니."

"어. 진혁아. 요새 도통 연락이 없어서······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생각나 연락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아들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서울 생활 하고 있어요."

"직장 생활은 괜찮고? 힘들지 않아?"

"예. 직원들도 다들 잘 대해주고 다닐 만합니다."

"그래그래. 참으로 잘 된 일이구나."


말투만 들어도 날 얼마나 걱정하는지 느껴지는 어머니.


그랬기에 청소부 일을 한다는 것은 일체 함구했다.


그건 이모부부도 모르는 일이다.


청소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할지 상상이 안 됐기에······ 오히려 부모님께 마음의 짐을 올려놓는 것이라는 생각에.


"밥 거르지 말고.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하고."

"예. 그럴게요. 어머니, 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우린 괜찮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넌 네 일만 생각해."


문득 마음이 아팠다.


아니, 언제나 부모님을 떠올릴 때면 그런 것 같다.


서울 생활에 잦으면 2-3개월. 늦으면 1년 명절에 찾아가는 것이 다였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달라지시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종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건드려서는 안 돼. 다음 해 농사를 짓는데 종자 없이는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아무리 식량이 없기로서니 종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돼.'


가끔 옛 드라마에서 보면 나오던 대사다.


종잣돈.


현재 내 증권계좌 잔고는 1520만 원이다. 월요일이 되면 대략 1800만 원이 찍힐 것이다.


지금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둬야, 향후 일이 편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옳은 일일까.


부모님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닌데, 크게 벌고 나면 잘해 드린다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벌써 2년 가까이 부모님께 용돈을 못 드린 상태다.


드리고 싶어도 통장 잔고가 늘 바닥이었던 지난날.


'······이제는 보낼 때가 됐어.'


약간의 여윳돈이 생긴 지금. 어찌 보면 건들어서는 안 될 종잣돈이지만,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날 키워주신 은혜를 이제는 조금씩 갚아나갈 때라고.


통화가 끝이 나고 스마트폰 액정을 두드렸다.


보안카드 입력까지 끝이 나자 폰이 한 차례 부르르 떨고, 난 어머니께 문자를 남겼다.


『 어머니. 약소하지만 용돈 좀 보냈어요. 마을 어르신들 따라 병원 가서 물리치료도 받으시고, 아들 자랑도 하고 그러세요. 』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장부를 꺼내 그 위에 슥슥 기입했다.


『 부모님 용돈 -100만원 』


작가의말

주인공의 매매일지 수익률과 금액은 적당히 반올림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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