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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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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44
최근연재일 :
2022.06.13 0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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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0,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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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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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11 파쇄물

DUMMY

청소를 마치고 난 후, 김 부장과 쇼핑을 나섰다.


그는 컴퓨터부터 책상, 의자, 심지어 정수기까지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최고의 브랜드. 최신 제품으로.


'앞으로 청소 사무실은 내 사무실이 아니네.'


문 앞에 붙여놓은 청소 사무실 이름표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회장 아들 사무실로 말이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그때 문득 한 가지 의아한 점이 포착되었다.


'근데 왜 두 개씩 사지?'


가만 옆에서 지켜보는데 컴퓨터도 책상도 다 두 개씩 산다. 심지어 모니터는 더블로 맞춰 구매했다.


직감적으로 난 그게 내 것임을 깨달았다.


'아니, 대체 왜?'


아예 살림을 차릴 기세로 구매한 물건들을 보며, 내 머릿속은 뿌연 연기가 들어찬 것 마냥 복잡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한다."


퇴근하고 밤새 고민해 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 고민은 출근을 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평소보다 30분, 아니 50분 일찍 출발한 난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가만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직 회장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상적으로 출근한다는 보장까지도.


일단 상황이 닥쳐봐야 윤곽이 잡힐 듯하니 지금부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걱정을 해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하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지자, 그제야 난 어제 해놓은 안배가 떠올랐다.


"기대하는 만큼 결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들뜬 마음을 품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무실 전원을 켤 새도 없이 내 손은 파쇄기 뚜껑부터 열었다.


"예쓰!"


아주 소량의 파쇄 내용물.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막상 파쇄기 통에 적은 양의 파쇄물이 있자 마음에 흡족함이 올라왔다.


'항상 한 차장 그 인간은 퇴근 전 파쇄 하는 습관이 있었지.'


하루 종일 이곳에서 많은 양의 파쇄용지가 나오지만 그것들은 내게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 양이라면 다르다. 충분히 맞춰볼 수가 있으니까.


'아쉽게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되겠지만.'


근무시간 중간엔 파쇄기 통을 비울 수 없다. 내가 파쇄기 통을 비울쯤엔 이미 모두가 파쇄를 마친 후란 뜻이다.


이 사실을 조금만이라도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하진 말자. 뭐 하다 보면, 어제와 같은 기회가 또 오지 않겠어?'


그렇게 수확물을 건진 난 청소를 시작했다.


전열기를 켜고 사무용기를 준비한다. 컴퓨터 전원 또한 온. 이후엔 책상과 바닥 걸레질까지.


약 30분 만에 그 모든 일을 뚝딱 끝낸 난 이마의 땀을 슥 닦아냈다.


'누군가에겐 이 청소라는 게 하기 싫은 일과 중 하나일 텐데.'


나 또한 그러했다.


남들이 흘린 걸 대신 치워주는 삶.


이곳에서 사람들 앞에 고개를 숙이며 청소를 할 때마다, 실패한 내 인생이 더욱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아 너무 싫었다.


그러나 요 며칠은 청소하는 일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똑바로 펴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깨끗하다. 그걸 확인한 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겠지."


아무튼 일주일 전과 같은 청소를 하고 있지만, 문득 그때와 지금의 난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도구들을 정리한 난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사무실 앞에 자리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밝은 표정으로 김 대리가 나타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최 기사, 좋은 아침!"


웬일이래. 갑자기 답례를?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최 기사, 간밤에 잘 잤나?"

"최 기사, 좋은 하루."

"최 기사···."


한 명도 아닌 전부가 대답해준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손도 들어 주었다.


순간 무슨 상황인가 의아했으나 곧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서류상으로 볼 때 오늘이 작전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기분들이 좋은 건 아마 그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번 일이 끝나면 두둑한 보너스가 나오겠지.'


얼마나 주려나. 천만 원? 이천만 원?


아니다. 이 정도 큰 건이면 1장은 넘게 받을지도.


덜컹.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얼굴에 잔뜩 웃음기가 깃든 두 양반이 나타났다.


이곳의 두 실세, 김 부장과 한 차장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그래. 최 기사, 좋은 아침."


한 차장이 손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청소는 끝났나?"

"네.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런가? 수고했어."


이야. 한 차장도 이렇게 넘어간다고?


갑작스런 직원들의 분위기에 난 어안이 벙벙해졌다.


'돈이 좋긴 좋네. 저 정도로 행동이 확 변하는 걸 보면.'


그냥 평소대로 대해 주지.


저러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데미지가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김 부장과 한 차장은 일반 직급보다 보너스가 훨씬 많겠네.'


이번 투자로 내가 번 돈은 250만 원.


나에게는 상당한 액수이나, 저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내 기분은 꽤 좋았다.


이 회사에 계속 있는 한, 이번 같은 기회는 계속 올 테니까.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파쇄물을 생각하니 저들처럼 나 또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아, 한 사람 더 있었지.'


"좋은 아침입니다!"

"여어. 좋은 아침입니다, 최 기사."


손을 번쩍 들어 내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남자. 그는 회장 아들이었다.


"오늘부터 출근이시군요. 근데 호칭은···."

"박 대리라 부르면 됩니다."

"예? 정말 그렇게 부릅니까?"

"어제 사무실에서 결정 난 일이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을 테니."

"···네. 그럼 박 대리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 숙여 하는 인사에 박 대리가 손을 저었다.


"부탁은 무슨. 참. 김 부장한테 얘기는 들었나요?"

"예. 제 쪽 사무실로 오신다고."

"미안하지만 앞으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미안하기는요. 사무실 결정인데 직원으로서 당연히 따라야지요."

"그래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봅시다."


박 대리가 나를 지나쳐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좋은 아침입니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 또한 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회장 아들인데 뭔가 좀 다르네.'


예의도 바르고 반말 찍찍 싸지 않고.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회장 자제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미지다.


'하긴. 내가 실제로 회장 아들을 본 적이 있나. 저게 정상인지도 모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자.


아침 청소는 끝났고 점심까진 여유시간. 일단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한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이 일을 잘하려면 나 또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


난 이미 수익을 챙겼지만 저들은 아직이다. 마지막 움직임도 포착해 놓으면 언젠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난 메신바이오 종토방에 들어갔다.


"이거 장난 아니구만."


어제는 시초가를 최고점으로 고점 대비 15%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었다.


그래서인지 고점에서 물린 개미들의 아우성이 토론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직 주식을 보유 중인 개미들의 불안함과 기대감이 한데 어우러져 평상시의 10배, 아니 20배 이상의 작성글과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중이기도 했다.


'어제 최대 거래량이 터졌으니 손해 본 개미가 상당했겠는데.'


난 게시글을 쭉 뒤로 넘기며 댓글이 많이 달린 글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 우짜장과 그 패거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

할리갈리 : 우짜장님. 이거 눌림 괜찮은 건가용?ㅠㅠ


우짜장 : 개미가 너무 많이 붙어서 떨구기 위한 일시적인 눌림에 불과합니다. 하루 이틀 쉬었다가 도로 올라갈 것이니 지레 겁먹지 말고 버티기 하세요.


왕서방 : 지금자리 물타기 괜찮?


우짜장 : 물타기는 하되 신중히 하십시오.

---


'여전하네, 이 인간.'


마치 이 분야 최고전문가 마냥 확신에 찬 표현과 거침없는 조언.


사실 그게 전부라면 개미들이 낚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의 글에 적절히 동조하고 분위기를 잡아주는 다른 댓글 알바들이 그걸 가능케 하고 있었다.


---

왕서방 : 1억 추가로 매수 완료


4딸라 : 저도 추매 들어갑니다


호롤롤로 : 형님들 15퍼면 많이 눌렀다 아입니까. 추매 했으니 시원하게 분출해 주십셔!

---


일명 군중 심리.


너도 나도 매수를 하고 있단 생각이 뇌리에 안착한 개미들의 말로는 뻔했다.


마이너스 손실이 찍힌 계좌를 보며 장밋빛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리고는 버티겠지. 어떤 이는 진짜로 추매도 하며.


자신들이 산 티켓이 지옥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인 것도 모른 채.


그것이 안타까워 한마디 댓글을 작성해 주려는 순간, 덜컹. 옆 사무실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빠르게 손을 놀려 종토방에서 뉴스 검색 창으로 돌아왔다. 곧 청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예의 그 회장 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 기사. 뭘 그리 열심히 봅니까?"

"아, 네. 뉴스랑 이것저것 좀···. 근데 벌써 오십니까?"

"음? 내가 이곳에 오는 게 싫은 건 아니죠?"

"아닙니다. 무심코 나온 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앉으시죠."


급하게 일어나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난 그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회장 아들이 웃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인사를 제대로 못 했네요. 혹시 나이가?"

"스물아홉입니다."

"스물아홉? 나보다 여섯 살 아래군요. 앞으로 1년간은 이곳에서 함께 지낼 텐데, 동생뻘이니 말을 낮추어도 되려나?"

"그렇게 하시지요. 저보다 연장자시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저도 편할 것 같습니다."


회장 아들이다. 나이를 떠나, 반말을 한다 해도 나로선 별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 차장처럼 무작정 하대하지 않고 물어보는 걸 보면 첫인상대로 예의가 꽤 있는 사람이었다.


"오케이. 그럼 편하게 할게. 근데 최 기사는 여기서 하는 일이 뭐야?"

"직원들 출근 전 청소하고, 외부인 출입 제한하고. 점심시간에 식사시키는 것과 식사 후 정리. 직원들 퇴근 후에 다시 청소하는 것이 다 제 일입니다."

"으음. 그 일 외엔 다른 건 없고?"


난 천장을 한 차례 올려다본 뒤 다시 시선을 내리며 대답했다.


"가끔 운전도 합니다. 그래서 다들 절 최 기사라 부릅니다."

"아, 그래서 최 기사라 부르는 거였군. 그럼 나도 가끔 운전 부탁해도 되지?"

"예."

"그럼 어디 보자. 아침청소, 외부인 출입제한, 점심 배달과 정리, 오후 청소. 종종 운전까지. 그게 끝?"

"예. 정확합니다."


머리 좋네. 지나가듯 들어놓고 모두 세세히 기억하다니.


그건 그렇고, 난 잠시 회장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보였다.


'낌새만으로 봐서는 어떤 부탁을 하려는 것 같긴 한데.'


대체 뭐지? 무얼 부탁하려는 걸까.


물론, 그가 하는 부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난 들어줘야 한다.


이곳 사무실의 최고 권력을 가진 김 부장. 날 시도 때도 없이 갈구는 실세 한 차장. 이 둘도 굽신거리는 사람 아닌가.


"최 기사."

"네."


박 대리의 입을 바라보며 난 마른침을 삼켰다.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 건가?


"혹시 게임 좋아해?"


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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