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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벽벅벅

이번 생은 미국에서 시작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하얀벽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4.11 16:03
최근연재일 :
2024.05.20 12:0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894
추천수 :
87
글자수 :
109,484

작성
24.04.24 12:36
조회
128
추천
3
글자
11쪽

10. 나에게 주고 싶은 말이란 대본

DUMMY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 위처를 증오한다거나 미워할 만큼, 마음이 있지도 않았던 예준은 별말 하지 않고, 그녀가 꺼낸 대본을 받았다.


“···이젠 무시야? 허! 망할 동양인.”


그나저나 ···두께가 제법 된다, 대본을 집필한 작가의 노력이 엄청났으리라.

대본을 한 장 넘겨보았다.


‘나에게 주고 싶은 말.’


작품의 의도라고 적힌 문구에 독특한 문장이 쓰여있어, 몇 번을 곱씹어보았다.


“듣기 좋네.”

“···뭐?”

“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위처와 기가 찬 표정의 요한을 앞에 두고, 예준은 대본을 읽어갔다.


‘그날의 기억이 꼭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깃속 나오는 주인공은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 한 친구였다, 다른 아이와 다르게 낯을 가리고, 말을 많이 더듬지만, 굉장히 친절한 남자였다.’

‘그 친구에겐 나와 같은 소중한 친구가 둘이 더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로 인해, 일찍 생을 떠났다.’

‘그로 인해, 자책하며 긴 시간을 혼자 방에서 보냈던 친구의 이야길 들으며,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경험이 담긴 내용, 그 속엔 단순한 후회만 담겨있을까?

후회 말고도 어떤 감정이 담겨있을지, 기대가 된다.

작가의 이름은··· ‘폴 워커’


‘제자구나.’


티에노 교수의 것을 가져오리라, 호언장담했던 위처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


대본을 받고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시간, 그 시간 동안 배역을 정하고 대사를 연습하여, 이따 저녁 먹기 전에 5분 동안 학생과 교수 앞에서 보여야 했다.


“음, 난 뭐가 좋을까.”


메건은 자신이 맡을 배역을 고민하는 듯 했고, 그 모습에 위처가 뾰족한 목소리로 답했다.


“넌 아무거나 해도 상관 없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넌 정말 잔인한 혼혈년이야.”


메건은 잔인한 언행에, 실망 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위처와 같은 반이었기던 스필버그는 알고 있던 사실을 마주해서인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위처 양, 자꾸 시비 걸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해.”

“···무지한 미국인들은 정말이지. 쯧, 잘 들어. 배역은 나중에 정해도 상관 없어.”


그녀의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메건은 화를 꾹 참고 기다렸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어. 5분간 연극을 보여줘야한다고, 5분 동안 대본에 있는 내용을 모두 보여줄 수 있어?”

‘낭독이라면 몰라도.’

‘그건 힘들지.’


요한과 스필버그가 수군거리자, 메건도 고개를 저었다.


“5분간 보여줄 장면에 나올 배역을 연습하는게 맞다는 거야. 그전에 그 장면부터 정해져야겠지만.”


그러면서 위처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예준을 보며, 입꼬릴 올렸다.

굉장히 비열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하지만···


‘기분이 풀렸나보네.’


그녀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예준이 똑같이 입꼬릴 올려보이자, 입술을 깨문 위처가 고개를 돌렸다.


“어, 어떤 장면을 보여줄 건데?”


조용히 있던 스필버그가 말을 더듬으며 질문했고, 위처는 대본 45페이지를 열어보이며, 거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주인공에게 큰 시련이 닥친 장면부터 연습할 생각이야.”


45페이지엔 바로 전날 친구를 맺은 옆집 남학생이 아무런 전조 없이 자살했다는 유서를 접하며, 평범하지 않은 소년에겐 불행이 시작된다는 내용과 함께 ‘불안장애’라는 장애가 있었고, 자살한 남학생을 과대해석하여, 자신 때문에 자살한 것 같다고 자책하는 과정이 적혀 있다.


“주인공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


대사가 많고 중심을 오랫동안 서야하는 배역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조에서 가장 연극에 관심이 많은 위처, 다른 곳에 관심이 가 있으나, 배역을 선정한다는 말에 손을 든 요한, 그리고 메건에게 잘 보여줄 기회라 생각한 스필버그.

그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메건은 ‘이 역할은 남자가 더 어울려.’라고 말했고, 예준은 입꼬릴 올렸다.


“배역엔 남녀가 중요치 않아. 멍청한 혼혈년아.”

“···자꾸 말끝마다 혼혈 년이라고 하는데, 위, 위처 양, 내 이름은 메간 제니퍼라고!”


그녀의 말을 콕 짚어 수정하라고 토를 달지만, 위처는 신경쓰지 않았다.

배역에서 가장 많은 대사와 연극의 혼을 요구하는 ‘에반’역은 꼭 자신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연극을 더 잘아는 사람 있어? 없잖아.”

“그, 그거랑은 상관 없지! 연극을 모르더라도 할 수, 순 있어.”

“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돼지 비계 덩어리야. 뇌에도 살이 꽉꽉 찬 모양이네.”

“위처 양, 방금 말은 사과해.”

“뇌, 뇌에 살이···”


상상치 못한 단어에 스필버그가 충격에 잠겼다.

동시에 지나치게 공격적인 위처의 언행에 화가 난 메건이 인상을 쓰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찰싹!

그녀의 손등을 때리며, ‘사과할 이유도 없고, 너희 같은 미국인에겐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라고 뾰족하게 답했다.


“미, 미국인이 어때서?”

“우리가 위처 양한테 실수한 거라도 있어? 왜 그렇게 공격적인 거야?”

“···아주 단단히 돌았어.”


말을 잘 열지 않던 요한마저 질렸다는 표정으로, 위처에게 ‘돌았다’고 말했다.


“허, 미국인이라고 같은 미국인을 옹호하네. 그래서 너희가 그 모양인거야! 연극은 장난이 아니라고!”

“너 말투가 정말···”


라고 소리치자, 주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예준이 속한 조에서 실랑이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던 티에노 교수가 다가왔다.


“무슨 소란입니까?”


어린 학생들이 모이다보면 다툼이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조장으로 뽑힌 여학생의 말투는 묘했다.

다툼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범위를 넘어서 분쟁을 일으킬 법했기 때문이다.

차마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없던 위처를 대신해서 메건이 이야길 전해주었고, 티에노 교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교, 교수님 오해입니다.”


티에노 교수를 마주한 위처의 얼굴이 창백해진 건 기분 탓일까.

평소 존경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그가 속한 대학으로 가는 게 꿈이었던 위처.


“뭐가 오해입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며, 검지로 안경을 들어올리며 위처의 눈을 쳐다보자, 얼굴을 숙이는 위처.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인종차별 발언과 공격적이고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언행을 늘어놓았으니.


‘뿌린대로 거둔다지.’


인종차별과 오롯이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위처를 옹호해줄 조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없었을 터였다.


“연극에 관해서 토론을 벌이던 중, 견해의 차이가 있었을 뿐, 큰 소란은 아닙니다. 교수님.”


가장 모욕적이고 무시 받았던 예준이 나서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티에노 교수도 귀와 눈이 있던 지라, 대강 상황은 깨달은 듯 했지만,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저렇게 이야길 하니, 더 따지긴 힘들었다.


“그렇군요. ···토론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도 너무 공격적인 말투는 보기 좋지 않습니다. 위처 양.”

“···네.”

“그래도 발표 시간이 기대되는 군요.”


라고 말한 티에노 교수가 등을 돌려, 본인의 자리로 향했고, 곁에서 조원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쟤 정말 미친 놈 맞지?’

‘이, 인종차별 발언을 듣고도 편을 들어줄 줄이야. ···도, 동양인은 겸손이 필수라고 하던데, 대단해.’

‘···정말 어른스럽다.’


예준은 속삭임을 흘러넘기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표정의 위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평소 가지고 다니던 어머니가 생일선물로 직접 만들어주신 손수건을 건네며, ‘한 번더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자, ···결국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끄, 끄윽.”


그리곤 힘겹게 ‘정말 미안해’라고, 그녀의 진심 어린 눈물 섞인 사과에, 예준은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필버그는 눈을 크게 떴고, 요한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미스에게, 메건은 얼굴을 붉혔다.


*


사과 이후, 배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선 큰 문제가 없었다.

주인공 배역인 ‘에반’을 성별이 다른, 주인공 자릴 욕심냈던 그녀가 할 수 없으니, 요한과 스필버그 두 사람 가운데, 연극에 관심을 보였던 스필버그가 맡기로 했다.


“단, 연기는 내가 직접 알려줄 거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위처가 그의 연기 지도를 맡겠다 나섰고, 다음 배역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메건은 ‘에반’이 짝사랑하는 ‘소피아’라는 여성 배역을 맡았으며, 요한은 ‘에반’을 비롯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담임 선생인 ‘홀스’라는 인물을 맡았다.


“담임 선생님이라, 재밌겠네.”


연극에 진심이었던 위처가 ‘홀스’란 인물은 대머리기 때문에, 머리까지 확 밀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분위기는 나빠지지 않았겠지만.


“위처 양은?”


‘에반’의 자칭 친구 역할을 하고, 그의 인지도를 이용하여, 자신의 ‘블로그’를 홍보하는데 악용하는 빌런에 가까운 ‘버디’를 맡았다.

스스로 빌런이 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요한과 스필버그는 ‘잘 어울리겠다’고 말했다.


“예준은 정신과 상담 의사 역할은 어때?”


그리고 예준에겐, 묘하게 얼굴을 상기시킨 위처가 ‘닥터 시리’를 추천했다.

‘닥터 시리’는 에반의 정신과 상담의사이자, ‘에반’이 부모보다 크게 의지하는 존재였다.

대사가 적은 만큼, 자살한 친구의 역할 또한 맡아달라는 권유에, 예준은 대답 대신 목을 긁적였다.

얼떨결에 연극 강의를 듣게 되었고, 정말 우연히 교수가 내려준 과제를 이름도 몰랐던 학생들과 조를 이루어, 연극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지.


“···기묘하네.”


라고 중얼거린 예준이 고갤 끄덕이자, 배역 정리를 끝마친 조장 위처가 손을 짝! 마주치며, ‘연습하러가자’고 답했다.


‘회복이 빠르네.’

‘그러게, 여자라 그런가?’

“···두 사람은 그게 속삭이는 거야?”


요한과 스필버그가 아주 작게 투덜거렸고, 갈등을 일으킬 법한 발언을 내놓은 스필버그와 위처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게 속삭이는 거냐며, 미간을 찌푸린 위처.


“그만, 그만. 이번엔 교수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찾아오실 거야.”

“미, 미안.”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메건이 나서자, 스필버그가 말을 더듬으며, 위처에게 사과하긴 했다.

영혼이 다소 없어보이는 사과였지만, 조금 전 일이 있어서인지 받아준 위처.


“어떻게 연습하면 되는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자, 위처가 검지를 보이며, ‘장소부터 옮겨야지.’라 답했다.


“장소?”

“···여긴 다른 애들도 같이 사용하니까, 굉장히 시끄럽고 집중도 안 되잖아. 장소부터 찾자.”


정말 꼼꼼이 연습할 장소를 수색하기 시작한 위처가 조원을 데리고 멈춘 곳은 ···조금 전 예준이 점심을 먹었던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였다.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제 필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재미 없는 부분도 많을 거고, 찰지게 때리는 부분도 부족하다시피 할 겁니다...

그래서 댓글 창을 닫아두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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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푸른바다(2) 24.05.14 33 2 11쪽
19 19. 푸른바다(1) 24.05.13 31 3 12쪽
18 18. 여름방학의 시작 +1 24.05.08 36 3 13쪽
17 17. 더 플라워(수정) +1 24.05.07 54 3 12쪽
16 16. 더 플라워 24.05.03 59 3 12쪽
15 15. 밴드부의 자존심 +2 24.05.02 64 3 10쪽
14 14. 둘째날 24.04.30 79 2 12쪽
13 13. 도전(2) +1 24.04.29 89 3 11쪽
12 12. 도전(1) 24.04.26 100 3 12쪽
11 11. 연극과 청춘 24.04.25 117 4 11쪽
» 10. 나에게 주고 싶은 말이란 대본 24.04.24 129 3 11쪽
9 9. 어쩌보다니 연극(2) 24.04.23 143 4 11쪽
8 8. 어쩌다보니 연극 24.04.22 160 2 11쪽
7 7. 교수, 연극, 그리고 자신 24.04.19 182 6 12쪽
6 6. 여름 캠프(상) 24.04.18 194 5 11쪽
5 5. 한국에서 온 소년(수정) 24.04.17 231 7 11쪽
4 4. 음악과 생선 24.04.16 225 6 11쪽
3 3. 옥상(수정) 24.04.15 248 6 10쪽
2 2. 미국 생활 24.04.12 302 7 10쪽
1 1. 시작 24.04.11 377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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