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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벽벅벅

이번 생은 미국에서 시작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하얀벽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4.11 16:03
최근연재일 :
2024.05.20 12:05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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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글자수 :
109,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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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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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교수, 연극, 그리고 자신

DUMMY

이왕 온 김에, 노래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나 찾아볼까.

물론 밴드 동아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강의를 선택하겠지만 말이다.


“준!”


···벌써부터 환청이 들리는 걸까, 예준은 귀찮은 피터가 찾지 못하도록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예준은 강의 티켓을 고르고 있는 학생들 곁으로 다가가지 않은 채, 유심히 지켜봤다.

주로 고르는 것은 예체능 쪽인데, 인문계열이나 친환경이란 수상한 강의를 고르는 학생도 여럿 보였다.


‘공예디자인’

‘실기 음악’

‘모델’

‘스포츠’

‘무용’


특별하게 예준의 시선을 잡아끄는 강의가 없었다.

그나마 작곡에 도움될만한 강의는 실기 음악 하나인데, 말이 실기 음악이지, 여러 악기를 대여해서 가져온 것으로 보아, 첫날 수업은 연주와 관련된 듯 싶었다.


‘연주도 좋긴 한데.’


강의를 하기 위해 찾아온 교수인지, 강사인지 정체 모를 사람이 너무 젊어보여, 고려하게 만들었고, 선택은 조금 미루기로 한 채, 예준은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모두 듣고 싶은 강의로 서둘러 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행된 강의 시간, 예준을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배우고 싶거나 알아가고 싶은 강의를 골라, 그곳으로 향했으며, 예준은 지나다니며 수업을 엿들었다.


“디자인은 참으로 아름다운 학과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눈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우···”

“학생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점을 알려드리면, 굳이 클래식 악기가 아니어도 실기 음악에 지원할 수 있···”

“스포츠는 모든 인류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축구부터···”


예준은 그들의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학교에서 듣는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모두 연극이나 공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주신 거라 생각한 탓에, 눈물이 나오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연극영화학과 조교 리처드 스미스입니다. 스밋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연극이라, 예준의 인생엔 전혀 조예가 없는 장르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어쩌면 노래와 연결할 수 있을 지도,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조교는 입 다물고 뒤로 갈 수 있도록.”


조교라고 소개한 여인이 바로 옆에 있는 중년 남성을 설명하려고 했더니, 남성이 안경을 들어올리며 말하자,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나는 스미스 조교.


“난 연극영화학과 교수 장 티에노입니다. 우리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저와 만날 수 있겠죠.”

‘장 티에노?’

‘설마! 뮤지컬 작가 장 티에노 선생님?’

‘선생님! 팬이에요!’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환호하자, 그는 머쓱한 듯, 다시 안경을 검지로 들어올리며, ‘시끄럽군요.’라고 말하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우선, 제 강의를 듣기 전에,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군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걸까, 학생들이 기대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또한 뜻밖의 소리에, 예준 또한 그쪽으로 시선이 향해있었다.


“···연극? 재미 없습니다. 하지 마세요.”

‘에?’

“재능 없는 사람이 해봤자, 재능 있는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인문계열 강의나 들으십시오."


강의를 신청한 학생들의 안중 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에, 살짝 발걸음을 옮겨, 강의실이라고 주어진 작은 공터로 들어간 예준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스스로 알려줄 강의가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교수가 얼마나 될까? 소수일 것이다.

···일단 외모도 나이가 들어보이고, 학생들이 모를 수 없을 정도면, 꽤 유명한 사람이란 뜻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다른 강의 들으러 가란 뜻입니다. 그쪽 세 사람은 특히 말이죠.”


티에노 교수는 꽤 떨어진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모습을 숨기고 있던 세 사람을 정확히 짚어냈다.


‘저거 진짜 미친 놈이네.’

‘퉤.’

‘인기 많다고 수업을 거부하네, 저거 완전 미쳤어.’


라고 중얼거린 학생 3명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물론 살벌한 경고와 주의를 받았음에도, 대부분의 학생은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모진 말을 듣고도 남았다는 건, ···연극영화과에 관심을 충분히 가졌다는 이야기로 연결 지을 수 있다.

···장 티에노는 주머니에서 꺼낸 낡은 빗으로 앞머리를 옆으로 빗어넘기며, 천천히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런 말을 듣고도 남은 학생들, 진짜 멍청한 겁니다.”

‘풉’

‘갑자기 우리가 멍청해?’

‘정말 웃긴다.’

'멍청해도 좋아요!'


학생들의 이야길 들은 장 티에노는 다시 한번 검지로 안경을 들어올린 후, 말했다.


“조교, 이리 나오도록.”

“네!”

“지겹도록 들은 연극에 대한 정의를 알려주도록 하세요.”


연극에 대해 그의 애제자인 조교 스미스가 설명하길, 연극이란 여러 가지라고 답했다.

사람들의 이야기, 삶을 한 편의 짧은 영상, 혹은 사람들 앞으로 나와, 공연을 보이기도 하며, 때론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말했다.


“그게 끝?”

“설마요. 교수님, 연극은 대중의 생활 속에 가장 중요한 예술로 자리 잡고 있답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 뮤지컬 등이 있죠.”


영화와 뮤지컬, 예준은 기억을 되짚어봤다.

다양한 삶을 살아왔지만, 영화와 뮤지컬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간 음악과 퍼포먼스, 연기에 대해선 별 호기심이 없었다.

어찌보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을 횟수로 나누면 2회, 4번째 삶에선 그의 자아가 또렷하기 전, 어렸던 부모가 그를 버렸고, 홀로 보육원에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살아갔다.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병행하며.’


그 끝은 좋지 못했다.

어떻게든 모아놓은 2천만원 남짓의 돈을 써보지도 못한 채, 화물차량에 치여,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번째 삶에선 가장 잘할만한 일을 찾았고, 움직였다.

치타의 삶을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달리기에 미쳤던 그 삶.

나름 즐겁기도 했고, 4회차에서 가지지 못했던 부유함을 얻을 수 있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


환호받지 못한, 행복하지 못한 삶.

질병으로 시닳릴 때, 그 누구도 곁에 있지 않았던 외로운 삶.

···그래서 예준은 연극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이 변명 또한 핑계일 지 모른다.

형편이 안 되서, 시간이 없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 또한 핑계의 일환일 뿐.


'그저 관심이 없었다.'


가 정확할 것이다, 결론은 이번 생엔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 목표였다.


‘연극이 중요한 예술이라고?’


예준은 콧바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 중요한 예술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인데 말이야.’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한 것보다 가족을 통해 아주 오랫동안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식사를 나눈다는 게 얼마나 큰지 저들은 모르고 있다.

아마도 예준과 생각이 비슷하려면, 그는 최소한 인생 2회차는 되야하지 않을까.

그런 예준의 시선을 알리 없는 장 티에노, 조교인 스미스에게 물었다.


“조교는 최근에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가 있습니까.”

“···전 캠프 페스티발이요.”

“그건 1992년도에 나온 영화 아닙니까. ···우리 학과는 희망이 없군요. 담당 조교의 눈이 엉망이었을 줄이야.”


그녀는 비꼬는 티에노의 말에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교수님 강의를 듣고 있는 지도 모르죠.”

“아하하.”


스미스 조교는 티에노 교수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태연히 답하며, 학생들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나 교수님한테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도 좋아요. 단, 쓰리사이즈, 남자친구 유무는 안 됩니다~”


농담섞인 물음에, 많은 아이가 손을 들었고, 그들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해주던 스미스의 눈에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소년, 예준을 발견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을 보여주고 있는 ‘동양인’꼬마.


‘아시아인인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에 대해 호기심이 있던 스미스.

반면, 주목과 관심을 좋아하지 않는 예준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친 순간.


‘와우···’

‘뜨겁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티에노 교수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감상을 받았고, 예준은 집 근처에서 빵을 굽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거기 끝에 있는 학생!”


갑작스럽게 입을 뗀 티에노.

아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예준을 발견하곤 놀란 눈치였다.

아무도 그의 존재감을 깨닫지 못했으니.


“뮤지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학생에게 도리어 질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예준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스미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요. 고개를 돌린 동양인 학생.”

“···예.”


저 시선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예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속을 알리 없는 조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학생! 뮤지컬이 궁금해서 티에노 교수님 강의를 들으러 온 거죠?”


가방을 뒤적이며, 수업 파일을 꺼내놓은 티에노 교수의 시선도 예준에게 향했다.

예준의 모토는 가능하면 아이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누리는 것이었다.

뚜렷한 몇 분야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부모님이 좋아 할만한 과목은 잘해야 하거든.


“···궁금해서 왔습니다.”


물론 이왕 주목 받은 김에, 궁금한 몇 가지를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예준이 솔직히 답했다.

그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예술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후후후, 뭐가 궁금했을까, 상당히 궁금하네요?”


예준은 자신을 콕짚은 조교가 아니라, 그 옆의 사람에게 물었다.


“···교수님, 연극이 정말 세상에서 아름다운 예술이 맞습니까?”


작지만 귀를 사로 잡는 목소리, 동굴에서 나지막이 울려퍼진 듯했다.

스미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대학 관계자들은 그리 생각했다.

동양인이라는 점을 빼면 소년은 확실히 남다르다고.


기죽지 않고, 당당히 시선을 잡아끄는 저 기세는 또래의 학생들에게서 볼 수 없었으니까.


“재밌군.”


저 소년은 지금 자신에게 도전하고 있다고, 티에노가 생각할 때, 스미스는 중얼거림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평소 재밌다는 말을 해본 적 없던 교수가 재밌다고 대답하다니, 세상이 반쪽날 일이다.


“···보편적으론 세상에서 아름다운 예술이란 표현을 쓰기엔 부족하지 않죠.”

‘보편적.’


연극은 세상에 공통된 단어나 다름없다, 언어를 모르더라도 극장에 올라간 이들의 표정, 손짓, 목소리에 한 마음이 될 수 있으니까.


“물론 연극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예준은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티에노의 지적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의 아내도 연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닌, 슬픈 예술이라고 하니까요.”


한 마디로 입장, 견해의 차이라는 뜻이었고, 예준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자신을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듯한 뉘앙스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교수님께선 재능없는 사람에겐 시간 낭비라고 이야기하셨죠.”

“예. 그랬습니다.”


그래서일까, 평소와 다르게 예준이 뾰족하게 질문했다.

반 면, 자신이 했던 말을 되풀어가는 예준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장 티에노.

보기 드물게 그가 결혼반지를 만지며, 소년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네가 판단해봐라, 여기에 있는 애들 중에, 네가 말한 재능 있는 아이가 있냐고 또 다시 이어진 예준의 도발.

머리는 차게 식었지만, 입은 거침 없었다.

분명 잠을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두고, 베개를 때릴 것이다.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주말 동안 비축분을 마련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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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미국에서 시작이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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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버스킹 24.05.20 13 2 10쪽
21 21. 푸른바다(끝) 24.05.17 25 2 11쪽
20 20. 푸른바다(2) 24.05.14 33 2 11쪽
19 19. 푸른바다(1) 24.05.13 31 3 12쪽
18 18. 여름방학의 시작 +1 24.05.08 36 3 13쪽
17 17. 더 플라워(수정) +1 24.05.07 54 3 12쪽
16 16. 더 플라워 24.05.03 59 3 12쪽
15 15. 밴드부의 자존심 +2 24.05.02 64 3 10쪽
14 14. 둘째날 24.04.30 79 2 12쪽
13 13. 도전(2) +1 24.04.29 89 3 11쪽
12 12. 도전(1) 24.04.26 100 3 12쪽
11 11. 연극과 청춘 24.04.25 118 4 11쪽
10 10. 나에게 주고 싶은 말이란 대본 24.04.24 129 3 11쪽
9 9. 어쩌보다니 연극(2) 24.04.23 143 4 11쪽
8 8. 어쩌다보니 연극 24.04.22 160 2 11쪽
» 7. 교수, 연극, 그리고 자신 24.04.19 183 6 12쪽
6 6. 여름 캠프(상) 24.04.18 194 5 11쪽
5 5. 한국에서 온 소년(수정) 24.04.17 231 7 11쪽
4 4. 음악과 생선 24.04.16 225 6 11쪽
3 3. 옥상(수정) 24.04.15 248 6 10쪽
2 2. 미국 생활 24.04.12 302 7 10쪽
1 1. 시작 24.04.11 377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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