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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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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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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682

작성
20.07.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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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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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15화. 아버지의 과거 2

DUMMY

1522년 겨울. 로도스 섬, 지중해 동부.


카이론과 헤어진 안토니오가 다시 대회의장로 돌아오기도 전에 항복은 결정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술탄의 성향을 잘 아는 기사단은 지금이라도 섬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고심 끝에 최종 결정을 내린 릴라당은 회의를 해산하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공식적인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성내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섬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갔지만 동요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엘레네, 혼자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가족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마친 안토니오는 밤이 깊어지자 홀로 집 밖을 나섰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뒤 횃불이 밝혀진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간 그는 오스만의 함대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루 위로 올라갔다. 망루 밑으로는 달빛이 부서지는 지중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배가 아티스로군.”

성벽 아래를 주시하던 안토니오의 눈 앞에 마침내 검은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배는 해안과 맞닿은 절벽 아래, 절묘하게 가려진 해저동굴 틈에서 등장했다. 카이론이 말한 그리스도의 검은 뱀, 아티스였다. 달빛 정도가 비추는 밤바다는 어둡긴 하지만 아예 캄캄한 수준은 아니었다. 덕분에 망루에 엎드린 안토니오의 시야에도 선체의 움직임이 조금씩은 들어왔다.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온 아티스는 북쪽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선수를 돌렸다.

“아니, 저건!”

그때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오스만의 진영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서 대기중이던 수십 척의 함선에 등불이 밝혀진 것이다. 그들 중 서너 척이 아티스를 추격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 배들은 오스만 해군의 흔한 군선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일단 투르크 인들이 모는 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그 뿐만 아니라 함선 모양도 독특했다. 상어처럼 미끈한 선체와 무수하게 달린 노들은 오로지 속도를 내기 위해 건조된 배 같았다. 이들은 순식간에 아티스와의 간격을 좁혀 나갔다. 달아나던 아티스도 추격자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빠르게 속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추격선들을 따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으음.”

안토니오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동안 많은 해전들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빠른 추격전은 처음이었다. 어느새 함포의 사정거리까지 뒤쫓아간 추격선들은 더욱 맹렬하게 노를 저었다. 그야말로 절체 절명의 순간이었다.

- 콰과광!

갑자기 아티스가 선회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대포를 발사하였다. 푸른 섬광을 내며 날아간 포탄은 선두에 선 추격선의 뱃머리를 정확하게 타격하였다. 뜻밖의 포격에 피격된 함선은 화염에 휩싸이며 그대로 멈춰 섰다. 추격자들이 포탄의 위력에 당황한 사이 아티스는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들은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저건 또 뭐야? 이러다 완전히 포위 되겠어······”

안토니오는 북쪽에서 추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배들을 발견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오스만 해군에서 주력 함대로 운용중인 푸스타 급의 소형 함정들이었다. 그들은 아티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촘촘하게 늘어섰다.

“제발······”

안토니오는 아티스가 잡히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맨 뒤에서 쫓아오던 가장 큰 함선이 선두로 치고 나왔다. 어서 달아나도 모자를 판에 아티스는 또다시 속도를 늦췄다. 퇴로를 봉쇄하고 기다리는 오스만 군함들을 뒤늦게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추격자들의 대장선이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 쿠구궁!

마침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이들은 곧바로 대포를 발사하였다.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포탄은 다행히 아티스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 대신 찢어질 듯한 마찰음과 함께 선미 쪽 해수면을 제대로 강타하였다. 그로 인해 생긴 물보라는 목표했던 선체를 앞뒤로 크게 흔들었다.

“망할! 서둘러라!”

대장선에 탄 누군가가 안토니오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고함을 질렀다.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이 일제히 갑판 위로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된 거지?”

안토니오는 자기도 모르게 망루에서 벌떡 일어섰다. 뜻밖에도 포탄에 빗맞은 줄로 알았던 아티스가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움직여! 배가 가라앉는다!”

오스만 측 지휘관은 아티스를 격침시킬 생각까진 없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가라앉고 있는 배를 끌어올리기 위해 갈고리를 던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추격선들도 이 갈고리 인양 작전에 합류했다. 하지만 구출작업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아티스의 매끄러운 선체에는 갈고리를 걸만 한 구조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허둥지둥 대는 사이 어느새 아티스는 반쯤 가라앉아 버렸다.

“빌어먹을! 모두 멈추고 배를 뒤로 물려!”

결국 대장선의 지휘관이 작업 중지를 명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검은 배는 거짓말처럼 바다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이럴 수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던 안토니오는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 앞에서 너무도 순식간에 카이론의 배가 격침된 것이다. 멍한 눈빛으로 바다를 응시하던 그의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그냥 배만 가라앉았을 뿐이잖아······”

밀려드는 허무함을 떨치지 못한 안토니오가 현실을 부정하였다. 그의 말처럼 배가 침몰했다고 해서 선원들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에서 빠져나왔다고 해도 지금은 구조선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그는 다시 망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다에는 이미 오스만의 군선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그들 역시 아티스의 선원들이 탈출하진 않았는지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색해보아도 더 이상의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캄캄한 바다 위에 흩어진 부유물만이 이곳에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알릴 뿐이었다. 안토니오는 참담한 심정으로 현장을 지켜보았다.

“엇!”

그때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스만의 군선들이 모두 몰려간 사이 소형 갤리선 한 척이 섬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 배는 적들의 눈을 피해 해안선을 따라 조용히 북서쪽 방향으로 진출했다. 다행히 아무도 새로 등장한 이 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린이 탄 배로구나.”

안토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론의 말대로 자신의 딸은 따로 탈출시킨 것이다. 안토니오는 멀어져가는 배의 뒷모습을 두 눈으로 끝까지 좇았다. 그것이 로도스 섬에서 카이론 부녀를 본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오랜 상념에서 빠져나온 안토니오가 따스한 눈길로 카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회고를 모두 들은 카린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 네 아버지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그 누구보다도 깊은 우정을 나눴어. 게다가 우리에겐 특별한 공통점도 있었지. 그건 바로 우리 둘만 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점이었다. 기사단 내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였어.”

안토니오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때도 너의 가족은 아버지와 너, 둘뿐이었다. 그 곳에서도 너의 친어머니는 없었어. 그녀가 너를 낳고 다음 날 숨을 거뒀다고 들은 게 내가 아는 전부란다.”

그는 카린에게 너무 늦게 말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겐 그녀가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게 끝인가요?”

카린은 기다려왔던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친어머니가 죽었을 거라는 건 오래전부터 예상했기에 크게 감흥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의 최후가 너무도 허망했다. 그동안 품고 지낸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이게 끝이구나. 하지만 중요한 건 아내가 죽은 뒤에도 네 아버지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로도스 섬을 탈출하는 순간까지도 널 지키고자 했어. 그러니 너도 아버지를 잊어선 안된다. 나 역시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카린을 위로하는 듯하던 안토니오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포기하지 않았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카린의 눈이 커졌다.

“그게······ 나도 아티스가 침몰하던 그날 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네 아버지가 남긴 이 돌의 파란 빛도 점점 희미해지다가 결국엔 이 정도만 남게 되었지. 그런데 말이다. 단 한번, 이 돌이 밝게 빛난 적이 있었다. 여기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일 거야.”

안토니오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카린의 눈빛이 다시 뜨거워졌다.

“그렇게 하루 정도 빛나던 브로치는 또다시 빛을 잃어갔지. 하지만 그때 난 느꼈다. 카이론이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직접 보셨다면서요?”

의아해진 로카가 반문했다.

“그래, 봤다. 이 두 눈으로 똑똑해 봤지. 물론 그 배가 바다 속으로 사라진 건 맞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시체를 본 것은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이 스스로 빛나는 돌과, 노와 돛도 없이 움직이는 배를 놓고 봤을 때, 그와 관련된 일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쩌면, 어쩌면 그가 아직 어딘가에서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계속 나를 괴롭히는구나.”

안토니오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정말 그럴까요? 그럼 왜 저나 영주님을 다시 찾아오지 않는 거죠?”

만감이 교차하는 듯, 카린의 눈동자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 생긴 희망이 뒤엉킨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더군다나······”

안토니오는 말을 하려다 잠깐 망설였다. 카린은 초조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건 그가 가진 신비로운 물건들 때문일지도 몰라. 이처럼 빛나는 돌 같은 거 말이다.”

그는 브로치를 들어 햇빛에 비췄다. 일정하게 일렁이는 불빛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난 카이론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서쪽의 리스본까지 사람을 보내 그의 흔적을 찾았지. 하지만 끝내 더 알아낸 사실이 없구나. 이제 남은 것은 너의 몫이다. 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든 여기서 멈추든 모든 결정은 너의 판단에 맡기겠다. 나는 이 곳을 떠나게 되면 카이론도 내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작정이다.”

안토니오는 비장한 표정으로 브로치를 카린에게 건넸다.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구나.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너의 곁엔 우리 가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카린은 두손으로 브로치를 감싸듯이 받았다. 목걸이와 함께 아버지가 남긴 유이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희미한 불꽃이 일렁이는 광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로카.”

안토니오의 시선은 다시 아들을 향했다.

“스스로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네가 이 성의 주인이다. 적들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 영지의 주민들이 잘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너의 첫번째 임무이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잘 보살피는 것은 너의 두번째 임무이다. 조만간 빅토르가 돌아오면 전체 대신 회의를 열겠다. 그때까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영주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아들을 다그쳤다. 로카는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토니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순 없었다.

“할말이 끝났다. 모두 나가 보거라.”

아이들을 내보낸 안토니오는 집무실을 나와 정원으로 내려섰다. 창문 곁에 선 엘레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혼자 밖으로 나온 카린은 성에서 해지는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떡갈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갑작스럽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라 머리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품에 넣어둔 브로치를 살며시 꺼내 보았다.

“······이 돌이 빛이 난다고?”

광석 내부의 불꽃은 카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미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 불빛이 마치 자신이 품고 살아온 희망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그래도 아직 꺼지진 않았잖아.”

늘 씩씩한 성격 답게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기로 했다. 브로치 곳곳에 낀 먼지가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지만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카린, 여기 있었네?”

그때 석양을 등지고 로카가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풀섶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둘은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로카.”

한참만에 카린이 로카를 불렀다.

“이거, 네가 맡아줬으면 해.”

카린은 들고 있던 브로치를 불쑥 내밀었다.

“이걸 왜?”

로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카린을 쳐다보았다. 카린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버지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데려가 준다고 약속 했잖아. 그러니 이 나침반 같은 건 네가 보관해줘.”

로카는 다행히 그녀의 기분이 괜찮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그럴까? 좋아! 이 브로치로 꼭 너의 아버지를 찾아내 볼게. 나만 믿어!”

“하하하, 맨날 나만 믿으래.”

카린은 로카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울려 퍼지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마지막까지 불타오르던 태양도 노을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있잖아······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실까?”

밀려드는 어둠과 함께 카린의 얼굴도 다시금 어두워졌다. 로카는 그녀의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글쎄, 음······ 살아 계시지 않을까? 적어도 침몰된 그날 밤에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이 돌이 다시 빛날 수가 없을 테니까.”

로카는 나름의 희망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카린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붉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날 보러 왔으면 좋겠어. 악당들을 모두 물리치고 말이야.”

카린은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로카, 그런데 혹시 네가 사정이 안되다면······ 그러니까 네가 영주님이 되고 바빠져서 여력이 안된다면······ 나와 했던 약속을 꼭 안 지켜도 괜찮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로카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허황된 일이기도 하니까.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이제 와서 찾는다는 게······ 그리고 난······”

카린은 계속해서 말을 하려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카린!”

로카가 섭섭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아니야.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참, 축하가 늦었네? 네가 새로운 영주님이 된다니 정말 기쁜 일이야!”

카린은 얼른 화제를 바꿔 로카에게 축하를 건넸다.

“글쎄, 이게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휴.”

로카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걱정하지마.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 너를 좋아하니까. 난 네가 지금 영주님만큼 잘 해내리라 굳게 믿어!”

카린은 흐뭇한 표정으로 로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우린 또······ 각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겠지?”

그녀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는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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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화. 환란의 시간 1 20.07.29 4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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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아버지의 과거 2 20.07.08 5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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