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5,594
추천수 :
33
글자수 :
501,682

작성
20.08.11 17:13
조회
48
추천
0
글자
16쪽

44화. 배신의 대가

DUMMY

1535년 가을. 샤르퀴 섬, 지중해 남부.


바로스의 계산은 시간이 갈수록 어긋나고 있었다. 라 골레타 공방전에서 궤멸 당할 줄 알았던 바르바로사의 무리가 대부분 살아남아 도망친 데다 투르구트마저 알제로 무사히 퇴각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게다가 알제로 향해야 할 신성 동맹 연합군이 더 이상의 군사행동없이 해산해 버린 것도 악재였다. 전투시작과 동시에 튀니스 남쪽의 샤르퀴 섬까지 달아났던 바로스는 연이어 전해진 우울한 소식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빌어먹을!”

계획대로라면 살아남은 바르바리 해적들의 마지막 남은 구심점으로 떠올라야겠지만 지금은 그저 쫓기는 신세일 뿐이다. 그는 이제 배신에 대한 보복이나 걱정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무하마드, 다른 소식은 없나?”

“네. 특별한 소식은 아니지만 바르바로사가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갔답니다. 이제 전권을 위임받은 투르구트가 식구들 단속에 나서겠지요. 아마 가장 먼저 우리의 행방을 쫓을 게 분명합니다.”

무하마드는 최대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노력하며 대답하였다. 그동안 배 탈 일이 거의 없었던 그는 흔들리는 갑판에 적응하지 못하고 얼굴까지 노래졌다.

“끙······”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바로스는 인상만 구겨졌다. 졸지에 사방이 자신을 쫓는 적들로 둘러 쌓인 것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일단 사르데냐 방면으로 나가보자.”

약탈을 해야만 먹고 사는 해적들의 특성상 이런 상황에도 어쩔 수 없이 바다로 진출을 해야만 했다. 그들이 가려는 사르데냐 섬은 튀니스의 북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섬으로 투르구트가 있는 알제와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생각보다 고요하군.”

오랜만에 바다로 배를 띄운 바로스는 코를 벌름거렸다. 연합군의 대토벌을 피해 해적들이 모두 숨어버렸는지 그 번잡하던 바르바리 해변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덕분에 그의 함대는 별다른 방해없이 순조롭게 샤르데냐 섬의 남쪽 바다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 바로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안락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젠장! 그들이 나타났어!”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뜻밖에도 투르구트의 대선단이 수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바로스 함대의 출현 소식을 접하고 알제에서부터 맹렬하게 쫓아온 터였다. 바로스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망할! 속도를 최고로 올려서 계속 전진해!”

당황한 바로스가 큰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러나 투르구트가 자랑하는 쾌속선의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사십여명의 노예들이 구령에 맞춰 노를 저어 대는 통에 두 함대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혀졌다. 추격자들은 어느새 바로스의 깃발이 보일 정도로 바짝 따라붙었다.

“바로스! 배를 멈춰라!”

투르구트의 잇따른 경고에도 바로스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화가 난 투르구트는 포격을 지시하기 위해 깃발을 꺼내 들었다.

- 콰과광!

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뱃머리에 장착된 선수포에서 굉음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발사된 포탄은 목표물을 스치듯이 지나쳐 바다 표면에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미친 거 아냐?”

자신의 기함인 팔리스 호를 겨냥해 실제로 포탄이 날아오자 바로스는 화를 참지 못했다. 아무리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한때는 함께 전장을 누비던 사이가 아니던가.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시미터까지 뽑아 들었다.

“기분은 이해하지만 우린 여기서 멈춰야 돼.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다간 모두 바다에 가라앉을 뿐이야.”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켈리가 가까스로 바로스를 만류하였다. 대선단을 이끌고 온 투르구트와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워낙에 전력이 열세였다.

“하······ 모두 정지! 배를 멈춰!”

마침내 팔리스 호에서 백기가 올라갔다. 대장선을 좇아가던 바로스의 다른 함선들도 일제히 속도를 줄였다. 배들이 멈춰 서자 투르구트의 대선단은 바로스의 함대를 둥글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대형 갤리선 한 척이 유유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왔다. 뱃머리에는 본거지를 토벌 당한 해적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말쑥하게 차려 입은 투르구트가 서 있었다.

“어이, 바로스! 쥐새끼처럼 어딜 그렇게 도망가나?”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도망가긴 어딜 도망갑니까? 돈이나 벌러 가는 거지. 제독님이야말로 피를 나눈 형제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오? 포탄까지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바로스는 이렇게 된 이상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형제였던가? 라 골레타에서 보니 네 놈은 아주 오래 전에 도망치고 없던데?”

투르구트가 비웃었다. 그는 바로스를 이용해 떨어진 자신의 위신을 세울 계획이었다.

“아니 그 일은······”

바로스는 말문이 막혔다. 가장 먼저 달아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패배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게 억울했지만 지금으로선 명분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전투 시작과 동시에 요새를 빠져나온 무리는 바로스 패거리들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소식 들었는가? 대제독께서 말하길 누구든지 자네를 잡는다면 산 채로 가죽을 벗긴 다음에 알제의 부둣가에 걸어 놓으라고 했네. 형제들을 배신하고 달아난 것에 대한 본보기로 말이지.”

투르구트는 여전히 신사적인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그의 오른손은 곁에 선 부하의 석궁으로 향했다. 바로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석궁을 건네받은 그는 시위를 바짝 잡아당겨 화살을 장전하였다. 그리곤 천천히 석궁을 들어올려 바로스를 겨냥하였다.

“아하하, 제독, 우리 사이에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굴 필요가 있습니까? 이 모가지에 두둑한 현상금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오.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면 다음번엔 제독 영감님을 위해 맨 앞에서 싸울 것이오.”

바로스는 겁먹은 것처럼 목을 움츠리는 시늉을 했다.

“현상금이야 내가 걸면 되지. 자네가 말해보게. 바르바리를 배신한 자의 목숨 값은 얼마가 적당한가?”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세 척 밖에 되지 않는 바로스의 함대를 거의 스무 척에 가까운 대선단이 포위하다시피 둘러쌓다. 바로스는 이제 사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 어차피 지금 날 죽여봐야 서로 득 될 것도 없으니 현실적으로 이야기합시다. 제 몸값으로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투르구트가 씩 웃었다.

“이런 판단능력 때문에 내가 널 중용 했었지. 후후. 좋아, 그럼 간단하게 정리하지. 베네치아 금화로 매달 200두카트. 2년 간 성실히 상납한다면 자네의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겠네. 어떤가? 그래 봤자 도합 5천 두카트도 안돼.”

금액을 들은 바로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형님! 내가 무슨 수로 그 많은 금화를 매달 상납할 수 있겠소? 게다가 베네치아의 금화를? 말이 되는 요구를 해야······”

투르구트는 예상대로 바로스가 앓는 소리를 하자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손짓 한번에 부하들이 일제히 석궁을 들어올렸다.

“그래도 네 놈이니까 이렇게 기회를 한번 더 주는 거야. 원래 너처럼 배은망덕한 놈들은 본보기로 삼아 다른 녀석들에게도 교훈을 줘야 되거든. 못하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이야기해.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바로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럼 수락하는 걸로 알고 돌아가겠네. 뭐 따로 이야기 안 해도 알지? 기한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적어도 이 바다에서는 우리 눈을 피해 살아갈 수 없다는 거 잘 알 거야.”

투르구트는 엄포를 놓은 뒤 선실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뒤돌아섰다.

“참, 혹시······ ‘할카’ 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나?”

한번 들으면 잘 까먹지 않는 바로스는 재빠르게 머리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할카라······ 아, 그!’

그는 이내 그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할카는 하심이 자신에게 배신당하고 복수를 운운할 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하심이 다시 나타난 적이 없었기에 그도 슬슬 잊고 지내던 참이었다.

“할카? 그건 뭐요?”

바로스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투르구트의 묻는 의도를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네 놈이 여기저기 많이 다니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네. 우리가 좀 알아봤는데 애초에 신성동맹 연합군의 목표는 알제였던 게 맞았어. 그런데 군자금을 대는 합스부르크 쪽에서 갑자기 목표를 바꿔 달라고 했다는군. 알제가 아닌 튀니스로 말이지. 에스파냐 황제의 입장에선 어딜 공격하든 상관없으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쳐들어간 거고. 그자는 어차피 교황청에 체면치레만 하면 되니까.”

바로스는 투르구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언뜻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게 할카와 무슨 상관이······”

“막판에 막대한 자금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를 움직인 자들이 바로 할카라고 하더군. 그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지만 워낙 믿을 만한 소식통에서 나온 이야기라······”

바로스는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그들이······’

그는 허세 가득했던 하심의 경고가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그들을 모른다고 잡아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자들이군요.”

“아무튼 자넨 처음 들어본다는 거지? 다니다가 새로 알아낸 정보가 있다면 즉각 보고해. 뭐 하는 놈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럼 한달 뒤에 보자고.”


모든 용건을 마친 투르구트는 선수를 돌려 알제로 되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바로스는 한동안 갑판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대장, 대책이 있어? 그 많은 금화들을 어디서 구하냐고.”

답답해진 켈리가 바로스를 채근했다. 켈리의 말처럼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찍어내는 두카트 금화는 어지간한 곳을 노략질해서는 구하기가 힘든 화폐였다. 가장 만만한 이탈리아 남부 전체를 탈탈 털어도 나오지 않을 물건이기도 했다. 투르구트는 이 참에 바로스의 콧대를 완전히 눌러 놓을 심산이었다.

“가만 좀 있어봐. 방법을 생각하고 있잖아!”

괜히 짜증이 난 바로스는 애꿎은 켈리에게 역정을 냈다. 돈도 돈이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부하들의 신뢰가 깨어지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알다시피 해적들 사이에서 의리를 지킨다는 건 더러운 돼지우리에서 깨끗한 구두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쌓아 올린 그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그 때 해적들 사이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우람한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파올로, 무슨 일이야?”

쭈뼛쭈뼛 바로스에게 다가온 자는 뜻밖에도 파올로였다. 그는 아직 열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덩치만큼은 여느 성인들 못지않게 컸다. 푸줏간을 하던 아버지의 장대한 기골을 물려 받은 덕분이었다. 라 골레타 공방전이 시작되고 튀니스가 혼란에 휩싸이자 그에게도 선택을 해야 될 순간이 다가왔다. 이미 잃을 게 없던 그는 장고 끝에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준 바로스의 곁에 남기로 했다. 어차피 튀니스에 더 머물다간 장사는커녕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그로선 바로스를 따라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후 샤르퀴 섬까지 따라온 파올로를 바로스는 꽤 기특하게 여겼다. 어쩌면 자신을 배신한 조반니에 대한 반동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때문에 파올로는 팔리스 호의 요리담당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이것이 그가 지금 이 갑판 위에 서 있게 된 과정이다.

“저, 그······ 두카트 금화 말입니다.”

파올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두카트 금화. 바쁘니까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바로스는 뜬금없이 나선 파올로를 귀찮은 듯 쳐다보았다.

“혹시 이런 모양의 금화가 맞나요?”

파올로는 오래 전 하심에게서 받았던 금화를 품에서 꺼내 보였다.

“아니, 이게 어디서 난 거야?”

바로스는 타란티아 출신의 시골 촌뜨기가 어떻게 이런 금화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이 금화는······”

파올로는 금화가 손에 들어온 과정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향을 배신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이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이 금화는 제가 타란티아에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준 거에요. 도시의 지리를 알려 달라면서 그 보상으로 내게 준 거죠. 그가 누구인지는 아마 대장님도 잘 알 거라 생각됩니다.”

파올로는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잔뜩 낮춰 말했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바로스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그에겐 이런 금화가 많은 듯했어요. 일이 잘되면 또 하나 준다고 저에게 약속했거든요.”

파올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심정으로 과거를 털어놓았다. 바로스는 정색을 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이야기 안 했다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이제 와서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바로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긴히 드릴 부탁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파올로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확신이 있었다.

“무슨 부탁?”

“제가 교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로스는 늘 굼뜨게만 보았던 덩치 큰 요리사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야망이 느껴졌다.

“교역? 그 말은 곧 내 돈을 너에게 투자하라는 말인가?”

“······”

파올로는 바로스를 설득할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바로스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손을 저었다.

“네 놈을 어떻게 믿고 투자를 하나? 고향도 배신하고 온 놈인데. 가서 저녁 식사나 준비해. 할카인지 뭔지 그들에게 돈이 많을 거라는 건 네가 말 안 해도 내가 잘 알아. 다만 그 돈을 어떻게 받아낼지가 고민인 거지.”

“꼭 할카가 아니더라도 두카트 금화를 구할 방법은 많습니다. 저를 알렉산드리아로 데려가 준다면 꼭 방법을 찾아낼 게요.”

바로스는 오늘 따라 집요한 모습을 보이는 파올로의 얼굴을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주변에 둘러선 그의 부하들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바로스는 왠지 모르게 이 이탈리아 소년이 싫지는 않았다. 몸이 굼떠 해적으로는 하등 쓸모가 없지만 자신을 잘 따르는게 마음에 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해적이다. 교역은 내가 좀더 생각을 해볼 테니 일단 물러가 있어.”

목소리를 누그러뜨린 바로스는 파올로를 타일러 내보냈다. 끝까지 그의 요청을 승낙하지 않은 바로스는 잠시 후 무하마드를 불렀다.

“넌 지금 배 하나를 차출해서 카이로로 가야겠다. 가서 할카가 어떤 놈들인지 알아봐. 가능하다면 그 하심이라는 자가 어디 있는지도 찾아보고.”

바로스의 얼굴에선 투르구트에게 보인 비굴한 생쥐 같은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특유의 야심만만한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카이로? 그자들을 찾아내서 뭘 어쩔 셈이야?”

켈리는 바로스의 지시가 황당했다. 거액의 상납금을 마련하려면 당장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간까지 돈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투르구트는 더 이상의 아량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어쩌긴. 찾아가서 상납금을 받아내야지. 우리가 이지경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놈들 탓이니까. 그들은 보통 조직이 아니야.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군사력은 없는 대신에 엄청난 재력을 가진 게 분명해.”

바로스는 아직 이렇다할 계획도 없이 할카에게서 돈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카이로는 나일강변에 있는 도시라 우리 배로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육로로 가야 될 텐데······”

갑작스러운 명령에 무하마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일단 알렉산드리아로 가면 되겠네. 아냐 아냐, 기다려봐. 이럴 때가 아니지. 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바로스는 다소 흥분한 모습으로 뱃머리에 올라섰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 배의 주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44화. 배신의 대가 20.08.11 49 0 16쪽
44 43화. 위험한 거래 2 20.08.10 72 0 14쪽
43 42화. 위험한 거래 1 20.08.07 80 0 18쪽
42 41화. 탐험가 발레리오. 20.08.06 58 0 16쪽
41 40화. 사악한 노인 2 20.08.04 50 0 13쪽
40 39화. 사악한 노인 1 20.08.03 68 0 12쪽
39 38화. 괴짜 항해사 2 20.08.01 53 0 13쪽
38 37화. 괴짜 항해사 1 20.07.31 111 0 15쪽
37 36화. 환란의 시간 2 20.07.30 52 0 17쪽
36 35화. 환란의 시간 1 20.07.29 43 0 15쪽
35 34화. 폭풍전야 2 20.07.28 137 0 13쪽
34 33화. 폭풍전야 1 20.07.27 40 0 12쪽
33 32화. 출정식 3 20.07.26 37 0 13쪽
32 31화. 출정식 2 +4 20.07.25 43 1 14쪽
31 30화. 출정식 1 20.07.24 39 1 13쪽
30 29화. 해적 도시 +1 20.07.23 40 1 18쪽
29 28화. 황제의 의뢰 20.07.22 44 0 17쪽
28 27화. 우울한 도시 2 20.07.21 52 0 14쪽
27 26화. 우울한 도시 1 20.07.20 42 1 14쪽
26 25화. 마지막 구출작전 2 20.07.18 40 0 13쪽
25 24화. 마지막 구출작전 1 +2 20.07.17 37 1 16쪽
24 23화. 합리적인 방법 20.07.16 57 0 16쪽
23 22화. 맘루크의 마지막 왕자 +2 20.07.15 43 1 14쪽
22 21화. 불가피한 선택 20.07.14 43 1 17쪽
21 20화. 구출 작전 2 20.07.13 48 1 15쪽
20 19화. 구출 작전 1 20.07.12 45 1 15쪽
19 18화. 불안한 우정 20.07.11 45 1 11쪽
18 17화. 피의 복수 2 20.07.10 45 1 15쪽
17 16화. 피의 복수 1 20.07.09 48 0 16쪽
16 15화. 아버지의 과거 2 20.07.08 52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