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5,590
추천수 :
33
글자수 :
501,682

작성
20.07.27 11:28
조회
39
추천
0
글자
12쪽

33화. 폭풍전야 1

DUMMY

1535년 여름. 사르데냐 섬, 지중해.


바로스와 그의 부하들은 처음 상륙했던 해안을 향해 조심스럽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젠장, 이거 낭패로군.”

발걸음을 재촉하던 바로스는 또다시 울창한 수풀이 나타나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전리품을 잔뜩 획득한 것까진 좋았지만 내륙으로 너무 깊이 들어오는 바람에 배로 되돌아가는 길이 매우 멀어졌다. 이 무렵의 지중해는 해적들의 약탈이 극심해지면서 연안에 살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내륙으로 숨어사는 게 흔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바로스의 패거리들 역시 해적질을 위해 원치 않는 원정 길에 오르는 날들이 잦아졌다.

“으악!”

한참을 나아가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후미에서 따라오던 부하의 다리에 꽂혔다.

“이런! 기습이다!”

무리의 가장 뒤에서 엄호하던 켈리가 고함을 질렀다. 앞서가던 해적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어느 쪽이야?”

바로스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잡아내기 위해 고개를 휙휙 돌렸다. 하지만 주변이 온통 수풀로 우거진 탓에 쉽게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숲 속 어딘가에서 또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저쪽이다!”

마침내 적들의 위치를 파악한 바로스가 칼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 댔다. 숨어서 화살을 날리던 이들 역시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각기 다양한 무기들로 무장한 것으로 봐선 이 지역의 민병대가 분명했다. 아마 자신들의 마을이 약탈당한 것을 발견하고 지체 없이 쫓아온 모양이었다. 그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돌격하라!”

각양각색의 민병대 병사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적들에게 덤벼들었다. 기습에 놀란 해적들은 바로스의 지휘에도 불구하고 대혼란에 빠졌다. 그 바람에 마을에서부터 끌고 가던 인질들도 통제 불능이 되었다. 결국 해적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팍! 팍! 팍!

그 순간 민병대의 뒤를 노려 맹렬하게 돌진하는 이가 있었다. 무리의 선두에서 길을 트다 뒤늦게 적들을 발견하고 돌아온 조반니였다. 숲길을 우회해서 달려나간 조반니는 자신을 막아서는 민병대 병사의 팔을 한 순간에 날려 버렸다.

“우와악!”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민병대 지도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앞쪽에서 돌진하던 병사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혼란에 빠졌던 바로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는 부하들을 돌려세워 반격할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또 한 명을 쓰러뜨린 조반니는 거침없이 민병대의 지휘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헉.”

기습을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훈련기간이 길지 않은 민병대이기에 이들의 검술 수준은 높지 않았다. 앞으로 나선 지도자가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조반니에게 나가 떨어지자 민병대 병사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되었다.

“와!”

그사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해적들은 민병대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민병대는 사방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해적들은 이들을 어느 정도 쫓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이 지역 지리도 잘 모르는 데다 놓친 인질들을 다시 잡아 들이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조반니 역시 민병대를 추격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본진으로 복귀했다. 겨우 적들을 격퇴한 바로스 패거리는 그후로도 한참을 걸어 배로 복귀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기함에 올라탄 바로스는 기분이 좋은 지 연신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크하하. 켈리! 봤지? 역시 내 안목은 정확해. 조반니 저 놈은 진짜라니까?”

바로스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조반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뱃전에 서 있었다. 아직 전투의 흥분이 남아 있을 법도 하지만 그는 냉랭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조반니! 이번에 돌아가면 카린과 결혼식을 올려야지? 내가 아주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주고 싶은데, 어때?”

“고맙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어.”

조반니는 그제야 짧은 답례 인사를 하였다.

“하하하, 부끄러워하긴.”

바로스는 그의 무미건조한 반응이 멋쩍은 듯 괜히 한번 더 크게 웃었다. 약탈품을 모두 실은 바로스의 함대는 제대로 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서둘러 튀니스로 향했다.


“대장! 대장!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엄청 많아!”

오전부터 돛대 위에서 정찰을 하던 크롤리가 갑판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가 많아?”

그늘에 앉아 졸고 있던 바로스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함대는 어느새 튀니스 항이 지척에 보이는 라 골레타를 지나는 중이었다. 라 골레타는 튀니스 항구를 감싸듯이 가로막고 있는 곶이다. 그 곶의 끝엔 드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요새가 자리잡고 있었다. 선착장을 유심히 살펴보던 바로스는 무수하게 많은 선박들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가만······ 저건 바르바로사의 사령선이 아닌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어야할 바르바로사의 거대한 기함이 보이자 바로스는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보는군. 그런데 무슨 일로 죄다 몰려온 거야?”

켈리가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예감이 좋지 않아······”

항구에 도착하자 평소처럼 무하마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무하마드, 도시에 무슨 일 생겼나?”

부두로 올라온 바로스가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게······ 일하러 가신 동안 일이 좀 생겼네요. 아직 정확하건 아니지만 자칭 신성 동맹 연합군이 이 곳을 정벌하기 위해 다가오는 중이랍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황제가 직접 온다는 소문도 있네요.”

무하마드는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무심하게 대답하였다.

“그들의 황제가 직접? 왜?”

“글쎄요. 자세한 이야기는 라 골레타로 가면 들을 수 있겠네요. 라 골레타 요새에 지금 바르바로사 대제독과 각 지역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방어전에 참전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출발한 투르크 병사들도 지금 막 도착했고요. 아, 그리고 항구에 들여온 물건들은 처분하지 말고 갖고 있으라는 투르구트 제독님의 지시도 있었습니다.”

뒤이어 내린 조반니도 다급하게 돌아가는 항구 분위기에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하마드의 보고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항구는 이미 오스만 제국에서 보내온 병사들로 인해 시장 통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바로스는 켈리에게 하역을 맡기고 지체 없이 라 골레타에 위치한 임시 회의장으로 달려갔다.

“어딜 갔다가 이제 기어 들어오는 거야?”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 바로스에게 입구 쪽에 앉아 있던 하산이 이죽거렸다. 바로스는 신경 쓰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회의장 내부는 매우 복잡했다. 근방에서 이름 꽤나 날린다는 해적 두목들이 모두 몰려온 데다 튀니스의 고위 관리들까지 총출동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누구지?’

회의장의 가장 상석에는 처음보는 사내가 앉아있었다. 당연히 바르바로사가 앉아 회의를 주관할 줄 알았던 바로스로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바르바로사 제독, 카를로스가 어째서 가까운 알제를 제쳐 두고 이 먼 곳까지 쳐들어 온단 말이오?”

상석에 앉은 사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투르크 병사들을 직접 이끌고 온 요나스 군부 대신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요. 들리는 말로는 교황의 계속되는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을 거라고 하는데······ 교활한 카를로스가 겨우 그딴 이유로 여기까지 쳐들어온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요. 그리고 알제든 튀니스든 크게 상관이 있소? 어차피 다 우리 구역인데.”

바르바로사는 짜증이 나는지 연신 물담배를 빨아댔다. 회의는 요나스가 묻고 바르바로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지금 적들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파악하고 있소?”

“오늘 보고로는 사르데냐 섬 남부에 집결해 있다고 들었소. 지금쯤이면 그 곳도 출발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늦어도 닷새 안에 육군과 해군 모두 이 요새 앞에 집결할 것이 분명하오.”

“육군도 온단 말이오?”

“그건 당연한 일이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황제까지 따라나설 이유가 없소. 이번에 체면치레를 제대로 할 모양입니다.”

바르바로사는 돌아가는 정세도 잘 모르는 요나스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지휘관이······”

“육군은 톨레도의 다바로스, 해군은 제노바의 도리아. 뭐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오.”

바르바로사의 입에서 도리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안드레아 도리아? 아주 끝장내러 오는 구만.”

요나스 군부 대신은 탁자를 신경질적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난 여기가 처음이니 밖에 나가서 성벽과 지형을 좀 둘러봐야겠소. 방어 작전은 일단 제독이 맡아서 지휘해 주시오.”

결국 만사가 귀찮아진 요나스가 벌떡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함께 온 오스만의 부관들도 나란히 그를 따라 나갔다. 상석을 차지하고 있던 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회의장 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술탄께서 이 먼 곳을 꽤 신경 쓰나 봅니다. 저렇게 정예군들을 다 보내고.”

투르구트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궁전에서 술탄을 알현해보니 그분도 야망이 아주 크더군.”

바로바로사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물담배를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하였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알다시피 놈들의 상륙지점을 공격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들도 튀니스를 함락시키기 위해서 여기 라 골레타를 먼저 점령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야. 외곽 성벽에 빌어먹을 대포들을 있는 대로 쑤셔 박은 다음에 적들의 머리 위에다 포탄을 날리는 거다. 이상, 질문 있나?”

그는 심히 짜증이 난 목소리로 연설했다. 수도의 토프카프 궁전에서 유유자적 지내다가 여기까지 끌려오게 되었으니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껏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가장 끝자리에 앉아있던 바로스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대제독님, 이 싸움에 승산이 있다고 보십니까?”

바르바로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자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바로스라는 걸 확인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또 바로스야? 오랜만에 봤는데도 여전하구만.”

그는 완전무장을 하고 호기롭게 자신을 찾아왔던 수년 전의 바로스를 잊지 않았다.

“승산이라······ 첩보에 따르면 적들의 수는 약 3만명, 온갖 예수쟁이 나라들이 죄다 연합해서 쳐들어온다고 하지. 우린 저 용맹하다는 투르크 병사 6천명과 뮬라이 태수가 지휘하는 튀니스 병사 4백명. 그리고 여기 너희들이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전부야. 누가 이길지는 알아서들 분석하고 돈과 목숨도 각자 거는 거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지금부터라도 배를 타고 아주 멀리 도망가면 돼. 어지간하면 내 눈에 안 띄는 아주 먼 곳으로 가는 게 좋겠지.”

열변을 토한 바르바로사의 눈빛은 살벌했다. 장내가 한순간에 조용해지자 그는 탁자를 소리 나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럼 여기까지다. 투르구트! 뒷일을 부탁한다!”

투르구트에게 지휘봉을 던진 바르바로사는 그대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모든 이들의 시선은 2인자에게 쏠렸다. 해군사령관으로 영전된 바르바로사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바르바리 해적들의 수장은 투르구트였다. 그는 방어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 배의 주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4화. 배신의 대가 20.08.11 48 0 16쪽
44 43화. 위험한 거래 2 20.08.10 72 0 14쪽
43 42화. 위험한 거래 1 20.08.07 80 0 18쪽
42 41화. 탐험가 발레리오. 20.08.06 58 0 16쪽
41 40화. 사악한 노인 2 20.08.04 50 0 13쪽
40 39화. 사악한 노인 1 20.08.03 67 0 12쪽
39 38화. 괴짜 항해사 2 20.08.01 53 0 13쪽
38 37화. 괴짜 항해사 1 20.07.31 111 0 15쪽
37 36화. 환란의 시간 2 20.07.30 52 0 17쪽
36 35화. 환란의 시간 1 20.07.29 43 0 15쪽
35 34화. 폭풍전야 2 20.07.28 137 0 13쪽
» 33화. 폭풍전야 1 20.07.27 40 0 12쪽
33 32화. 출정식 3 20.07.26 37 0 13쪽
32 31화. 출정식 2 +4 20.07.25 43 1 14쪽
31 30화. 출정식 1 20.07.24 39 1 13쪽
30 29화. 해적 도시 +1 20.07.23 40 1 18쪽
29 28화. 황제의 의뢰 20.07.22 44 0 17쪽
28 27화. 우울한 도시 2 20.07.21 52 0 14쪽
27 26화. 우울한 도시 1 20.07.20 42 1 14쪽
26 25화. 마지막 구출작전 2 20.07.18 40 0 13쪽
25 24화. 마지막 구출작전 1 +2 20.07.17 37 1 16쪽
24 23화. 합리적인 방법 20.07.16 57 0 16쪽
23 22화. 맘루크의 마지막 왕자 +2 20.07.15 43 1 14쪽
22 21화. 불가피한 선택 20.07.14 43 1 17쪽
21 20화. 구출 작전 2 20.07.13 47 1 15쪽
20 19화. 구출 작전 1 20.07.12 45 1 15쪽
19 18화. 불안한 우정 20.07.11 45 1 11쪽
18 17화. 피의 복수 2 20.07.10 45 1 15쪽
17 16화. 피의 복수 1 20.07.09 48 0 16쪽
16 15화. 아버지의 과거 2 20.07.08 51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